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64화 (164/230)

〈 164화 〉 7. 총잡이들의 여명(20)

* * *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온 전류의 대방출.

애쉬가 그것을 깨달은 순간 그 자신은 이미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것은 통증을 인내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통제할 수 없는 종류의 공격이었다.

전류가 흐르며 신경계를 마비시켰고, 본능적으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몸은 의지를 따르지 않는다.

벌려진 그의 입으로는 위아래 치아를 통해 전류가 흐르는 게 육안으로 보일 정도였으며, 당연히 그런 상태에서 몸의 내부가 멀쩡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신체는 머리칼, 손가락, 발가락 등 그 말단부터 타들어갔다.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

몸의 내부를 감전시키고 태우는 고통 속에서도 반사적으로 든 생각이었다.

­ 퍼억!!

애쉬의 몸은 기적적으로 그 상태에서도 움직여 제일 던컨을 수 미터 이상 차 날렸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진 그에게서 탄내와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불과 일 초도 되지 않는 접촉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

끝났다.

제일 던컨은 믿을 수 없는 힘으로 걷어차여 날아가는 와중에도 쓰러지는 상대방을 보며 생각했다.

곧장 마비된 상대의 목을 검으로 마무리 쳤다면 더 확실했겠지만, 전류를 방출하는 순간에는 그의 몸도 함께 마비됐기 때문에 걷어차이는 것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결과는 다르지 않다.’

아쉬운 것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의 몸에서 단번에 뿜어져 나온 전력량은 겨우 강화인간 하나를 죽이기 위해 쓰기에는 너무 과분할 정도로 막대한 양이었다.

대기를 통한 전력의 방출은 거리가 조금만 멀어져도 그 효과가 대폭 줄어들었으나 방금처럼 가까운 거리, 특히나 검 같은 매개체가 있을 때는 다르다.

온 몸이 감전되어 내부에서부터 타들어가며 고통스럽게 죽었겠지. 설령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움직일 수 있는 상태는 아닐 것이다.

제일 던컨은 차라리 상대방이 제대로 의식을 가진 채 살아있기를 바랐다.

그래야 그가 직접 절망 속에서 천천히 죽음을 전해줄 수 있을 테니까.

“크윽.”

제일 던컨이 제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잘려나간 신체 때문에 균형이 맞지 않아 일어나는 순간에도 몸을 한 차례 기우뚱거린 것이다.

애쉬 론모어를 감전시키는 건 좋았지만, 공격을 단 한 차례 허용한 결과 그의 상황도 최악에 가까워졌다.

예리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뭔가 이상할 정도로 절삭력이 뛰어나던 새까만 칼날.

애쉬는 마지막 순간까지 검을 베어가는 팔에서 힘을 빼지 않았고, 그가 들고 있던 검이 몸을 보호할 요량으로 들어 올린 제일 던컨의 한 팔을 토막 내낸 뒤 그대로 몸통까지 절반가량 베어낸 것이다.

피부와 근육이야 강화인간의 그것이었기에 강도에 한계가 있었지만, 뼈만큼은 특수 제작된 개초 파츠로 이뤄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마 전력 방출에 감전당하지 아니었다면 그대로 상체와 하체가 분리됐겠지. 다행인 일이었다.

상대방이 들고 있던 새까만 칼날의 검은 회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 검은…. 아직도 쥐고 있나.’

자리에서 일어난 뒤 상대방이 떨어뜨렸을 검을 찾아 주변을 돌아본 제일 던컨이었으나 그가 검을 발견한 곳은 그 어디도 아닌, 살이 뻘겋게 익어서 까만 연기를 피워 올리며 쓰러져 있는 애쉬 론모어의 손아귀였다.

“…….”

그가 살아있는지, 아니면 죽어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애쉬는 전신이 감전당하고 타들어가는 그 상황에서조차 자신의 손에서 감을 놓지 않았고, 제일 던컨에게는 그것이 내가 진짜 칼잡이이며 너처럼 검이 아닌 다른 기물에 의존하는 놈들 따위는 가짜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정말로 괜한 생각이다. 그 혼자서만 착각하고 느끼는 감정.

제일 던컨은 상대방, 애쉬 론모어와의 전투 중 자신이 느꼈던 것들을 떠올렸다.

더 이상 최고의 칼잡이로 있지 못하며 단장에게 쓸모없는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공포.

그리고 제대로 된 대인 검술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던 남자에게 순식간에 추월당할지도 모른다는, 상대방의 천재성에 대한 열등감.

그것이 그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분노하게 만들었으며, 끝내는 칼잡이 대 칼잡이로서 싸움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차세대 과학의 힘을 빌리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상대는 이렇게 쓰러졌지만 기분은 결코 통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만 모조리 무너뜨렸을 뿐.

‘이렇게 승리하는 게 의미가 있는가.’

누군가는 단번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겠지만 자칭, 그리고 타칭으로 세계 최고의 칼잡이라 자부하던 제일 던컨의 무너진 자존심은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비척거리는 발걸음으로 쓰러진 상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 때, 쓰러져 있던 애쉬의 몸이 움찔하더니 이내 그는 기침과 함께 눈을 떴다.

“켁, 케헥…! 쿨럭, 쿨럭!”

몸에서만 연기를 피어 올리는 것으론 부족했는지 기침과 함께 속에서 매캐한 검은 연기가 폐를 뚫고 나온다.

애쉬는 숨이 넘어갈 듯한 기침을 하며 하늘을 바라봤다. 어두운 회빛 금속으로 뒤덮인 물류센터 천장이 보인다.

‘어떻게 된 거지.’

일시적으로 정신을 잃었던 것인지 그 직전의 상황이 잠시 기억나지 않았지만, 곧 그는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이 검을 내뻗고, 상대방이 전기쥐라도 된 것 마냥 전류를 줄기줄기 뿜어내던 모습을.

‘…그딴 게 가능할 줄이야.’

일단은 인간의 몸을 하고 있으면서 그런 걸 쓰는 건 반칙 아닌가.

애쉬는 웃기지도 않은 생각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으, 윽.”

빨갛게 익은 피부에서 물집이 올라오고, 까맣게 타버린 손끝에는 감각이 없다. 그런 손으로 땅을 짚자 완전히 탄화된 손끝이 살짝 부서지는 느낌이 났다.

다행히 손가락 자체가 전부 타버린 건 아니고 맨 끝의 살점만 그렇게 된 것이라 회복의 여지가 있어보였지만, 그것도 여기서 어떻게 잘 풀어나가야 가능한 일이다.

상체를 세운 채 고개를 돌린 애쉬는 아까부터 자신을 바라보며 가만히 멈춰있는 ‘웃는 악마’의 부단장, 제일 던컨을 향해 더 없이 뻑뻑한 눈을 돌렸다.

“…….”

팔 하나가 없고 반쯤 잘려나간 몸통에서는 피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어쩌면 지금의 애쉬보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도 볼 수 있었지만, 역시나 평범한 강화인간은 아니었는지 창백한 안색으로도 그는 서있었다.

애쉬는 반쯤 녹아서 눌러 붙은 손아귀와 검을 느끼며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섰다.

통증도 통증이었는데, 감전 때문에 신경이 맛이 가버렸는지 온 몸이 제대로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이런 상태로 강화인간인지 사이보그인지 모를 저 놈을 이길 수 있을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애쉬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무조건 이긴다.’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없다. 그것은 곧 죽음이었으니.

그리고 애초에 그는 지금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오더라도 포기할 성격은 아니었다.

도저히 못 이길 상황이더라도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

다행히 상대방의 상태 또한 그가 날린 최후의 일격으로 엉망이 됐으니 승산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애쉬는 격통 속에서도 통나무처럼 뻣뻣해진 몸을 풀며 자신을 내려다보던 제일 던컨을 향해 억지로 미소 지은 채 말했다.

“기다려줘서 고마운데, 그렇다고 봐주진 않는다.”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닐 것이다. 아직 반대편, ‘총잡이들의 여명’과 ‘웃는 악마’들이 교전하던 쪽 전투 소리가 들려왔으니까.

그런 애쉬의 말에 제일 던컨도 직전까지 보였던 모습과 달리 차분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당신을 보면서 다시 깨달았을 뿐입니다.”

애초에 애쉬가 쓰러져 있던 시간은 무척이나 짧았고, 그의 몸 상태도 멀쩡하지 않았기에 무언가를 할 시간도 거의 없었다.

물론, 들고 있는 검을 잘 던졌다면 목숨을 빼앗았을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그건, 아니야.’

제일 던컨은 자신의 멀쩡한 반대 손에 들려 있는 은빛 검을 보고는 꽈악 고쳐 잡았다.

이미 한번 마음에서 패배하고, 밀리던 상황에서 자신의 말도 안 되는 기능으로 반칙을 저지른 상태.

그런 상태에서 자존심을 따지는 것도 웃기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감정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생각이 변했다. 단장을 떠올렸을 때는 거의 이성을 잃었을 정도로 분노했던 그의 감정이 어째서 이렇게나 병적으로 오락가락 하는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그냥 이러고 싶었다.

제일 던컨은 애쉬가 제대로 자세를 잡을 때까지 기다렸고, 애쉬는 그런 그의 배려 아닌 배려에 검을 똑바로 잡은 채 그에 대한 보답을 돌려줄 생각을 했다.

당연하지만 그 보답은 녀석의 편안한 죽음이었다.

“갑니다.”

“프흐, 얼마든지.”

애쉬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앞서 있었던 전투와는 전혀 다른 양상의, 둘만의 싸움이 시작됐다.

*

­ 채앵!

검이 맞부딪힌다. 하지만 곧장 이어진 공격은 없었다. 그저 튕겨나간 서로의 검을 수습하기 바빴을 뿐.

애쉬는 전신이 감전당한 후유증에 제대로 힘을 쓰기는커녕 몸을 다루는 것도 힘겨웠고, 대부분의 전력을 소비하고 허리가 반쯤 잘려나가며 피를 대량으로 흘리고 있는 제일 던컨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껏해야 일반인 수준에 불과한 속도와 근력으로 전투가 이어진다.

하지만 정말로 웃기게도. 아이러니하게도.

이제서야 진짜 칼잡이들의 싸움이 되었다.

서로 간에 근력도, 속도도 거의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그 외적인 요소.

각자가 쌓아온 기술, 실력이다.

“흐읍!”

“하아아!”

­ 채앵!

다시 한번 두 자루 검이 부딪힌다.

평소와 비교하면 굼벵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느려터진 움직임.

부상을 입고 지쳤다고 눈이 나빠지는 것이 아니니만큼 서로의 움직임은 모두 놓치지 않고 똑똑히 볼 수 있다.

그렇게 어느 쪽도 쉽게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공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흐, 프흐흐.”

“…….”

검이 오고가는 사이에도 애쉬는 즐겁다는 듯 웃었고, 제일 던컨은 그런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검을 따라 휘둘렀다.

차분한 마음가짐을 유지하려하며 검을 움직였지만, 그 또한 지금 상대와 같은 마음이었다.

즐겁다.

재밌다.

누군가와 진심으로 검을 주고받는다는 게 이렇게나 즐거운 일일 줄이야.

어디선가 진짜 칼잡이들은 서로의 검에서 감정을 읽을 수 있다고 하던가.

애쉬는 대놓고 즐기고 있었기에 그 감정을 알기 쉬웠지만, 그 또한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상대와 서로의 목숨을 노리며 즐겁게 검을 움직이자 제일 던컨은 무언가 자신을 묶고 있던 것에서 해방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거기에서 약간의 두통이 뒤따랐지만, 그런 건 이제 아무래도 좋다.

그저 지금의 상황을 끝까지 즐길 뿐.

애쉬와 제일 던컨은 무의식중에 상대와의 검무에 빠져들었으며, 이 순간 함께 미지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

‘그저 강하게 찍어 누르고 부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저 빠르고 변화무쌍한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애쉬는 제일 던컨의 기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속해서 흡수해나갔으며, 제일 던컨은 그런 애쉬의 손에 펼쳐지는 자신의 기술을 보며 또 다른 무언가를 엿보았다.

둘은 이 순간 서로에게서 배우고 성장해나갔지만, 그것에도 끝은 있었다.

­ 채앵!

검이 부딪힌 순간 제일 던컨은 뭔가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힘이 더 강해졌거나, 속도가 더 빨리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여태껏 애쉬의 검에서 느끼지 못한 부드러운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역시.’

제일 던컨이 쓴웃음을 지었다.

얼핏 보면 그냥 부딪히는 것 같지만 힘을 그저 힘으로 받아치지 않고 부드럽게 흘리며 돌려보내는 애쉬 론모어의 움직임.

제일 던컨은 그것을 느끼는 순간 정신을 차렸지만, 애쉬는 여전히 계속해서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다.

제일 던컨.

그가 모르는, 그보다 앞선 세계로.

어느 순간 같이 나아가며 이루던 균형은 무너졌고, 제일 던컨은 이제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 채애앵!

그는 자신의 검을 휘감아 낚아채듯 던져버리는 애쉬의 기술에 검을 놓치고 말았다.

제일 던컨, 그가 애쉬와의 전투를 시작했던 당시 가장 처음 보였던 손등 베기의 응용이었다.

­ 휘이익. 땡그랑.

자신의 움직임에 딸려온 검이 놓쳐지며 허공을 날아 그대로 수 미터 이상 떨어진 바닥을 구른다.

둘의 세계에서 나아가 이제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애쉬는 그 소리에 깨어났다.

바닥에 주저앉은 ‘웃는 악마’의 부단장과 멀리 날아간 은빛 검.

지금 이곳에 서있는 것은 애쉬 자신뿐이었다.

애쉬는 천천히 제일 던컨을 향해 걸어갔으며, 제일 던컨은 담담한 눈으로 그런 그를 올려다봤다.

감전 당했던 애쉬가 깨어난 직후와는 완전히 역전된 구도.

애쉬는 아쉬움과 통쾌함, 그리고 착잡함 따위를 담은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덕분에 재밌었다.”

비록 과정에 지저분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 처음과 마지막만큼은 무척이나 즐거웠고,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애쉬의 진심어린 목소리에 제일 던컨이 아무 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즐겁다는 감정을 느낀 것. 그것은 제일 던컨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는 다시 한번 애쉬가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준 순간부터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기다려준 것은 어떻게 되든 그 끝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웃는 악마’의 부단장, 제일 던컨이 아닌 한 명의 칼잡이로서.

애쉬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이름은?”

“…제일 던컨.”

그가 짧게 대답했다.

자신은 이곳에서 죽겠지만 그래도 저 칼잡이, 애쉬 론모어의 안에서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후련함까지 느껴졌다.

그런 그를 보던 애쉬는 잠시 지긋하게 눈을 감았다 떴고,

다시 눈을 뜬 순간.

예리한 진청색 눈동자를 빛내며 그대로 검을 들어올려 제일 던컨의 목을 내려…….

“잠깐.”

…치지 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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