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 7. 총잡이들의 여명(23)
* * *
‘오늘은 운이 좋구만.’
끼익, 끼이익.
71구역 어느 구석진 곳.
낡은 건물 외벽에 설치된 금속 계단은 어찌나 오래됐던지 무너질 것 같은 소음을 비명처럼 흘렸지만, 그것을 오르는 남자, 오빌 베이커는 그마저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처럼 들릴 정도로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그는 면허를 정지당해 이곳 슬럼까지 흘러들어온 무면허 의사였는데, 오늘 불법 의료 행위를 대가로 받은 물건의 값어치가 자신의 상상이상이었기 때문이다.
“흐흐.”
이번에 들어온 돈으론 뭘 살까.
돈이란 게 모으는 과정은 너무도 힘겹고 어렵지만, 쓸 때는 무엇보다 쉽고 즐거운 법이다.
번 돈으로 유흥가를 갈지, 아니면 뭔가 특별한 물건을 구매할지 고민하며 계단을 오르니 어느새 집의 문 앞.
오빌 베이커는 평소처럼 문고리에 열쇠를 꽂았는데, 뭔가 이상하다.
“…응?”
분명 문을 잠가두고 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열쇠를 꽂아 돌리니 헛도는 느낌이 나는 것이다.
그에 오빌 베이커는 설마하며 문고리를 돌려봤는데, 문은 제대로 처음부터 잠그긴 했었냐는 듯 그대로 철컥, 열리고 말았다.
‘설마, 강도인가?’
오빌 베이커는 그 순간 방금 전까지 붕 뜬 것처럼 좋았던 기분이 싹 날아가고 불길한 기운이 자신의 몸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하루의 마무리를 지을 집에서 이런 일을 겪는가.
척.
그는 품에서 호신용으로 챙겨 다니는 권총을 꺼내 들고는 의료 도구가 들어있는 가방을 문 앞에 두고 집 안으로 슬금슬금 들어섰다.
71구역은 슬럼 중에서도 완전히 밑바닥에 있는 쓰레기장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집에 강도가 들거나 하는 일은 보기 어렵지 않았다.
멀쩡한 집에 있는 사람을 쳐 죽이고 그곳을 자신의 은신처로 쓰는 범죄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으니까.
‘빌어먹을.’
그런데 그런 일이 자신에게까지 벌어질 줄이야. 차라리 잠든 시간에 찾아온 게 아니라서 다행이긴 했지만,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썩 좋은 일은 아니었다.
오빌 베이커는 현관을 통과해 부엌을 조용히 지나 집 안쪽으로 향했다.
그의 집은 현관에서 바로 부엌이 이어지며, 거기서 방향을 꺾으면 거실이 나오는 구조였는데, 불도 켜지 않아 어두운 집안에 거실 쪽에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는 게 보였다.
탕, 타다당!
끼에에엑!!
망할 불법 침입자가 그의 집에서 영화라도 보고 있는 것일까.
불빛이 흘러나오는 거실에서 총성과 함께 괴물 따위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곧 너도 저런 비명을 지르게 해주마.’
감히 남의 집에서 마음 편하게 영화나 보고 있어?
권총을 굳게 잡은 그는 거실에 들이닥치며 불법 침입자를 쏘기 위해 긴장감을 돋우었다.
턱, 터억.
발소리를 최대한 죽인 채 걷고 있음에도 거기서 나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느껴진다.
앞으로 겨우 세 걸음. 세 걸음만 더 움직이면 그러면 거실의 입구에 도착한다.
혹여나 그림자라도 보일까 벽에 딱 달라붙어 움직인 오빌 베이커는 이내 거실 입구 바로 옆에 도착했고, 거기에 선 채 긴장에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호흡을 골랐다.
그의 목숨이 걸려있는 일이다보니 긴장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속으로 셋 세고 곧장 덮치기로 결심한 그는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하나, 두울….’
“셋!”
입 밖으로 튀어나온 기합. 그와 동시에 거실로 뛰어 들어간 그는 곧장 권총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인영을 겨눴고, 방아쇠를…….
“뒈져…억!”
뻐억!
당기지 못한 채 턱이 돌아가 쓰러지고 말았다.
터벅, 터벅. 쓰러진 그의 눈앞에 불법 침입자의 다리가 가까워지는 게 보였다.
“어, 억….”
이대로 끝인가.
눈앞이 흐려지는 가운데 고통의 신음을 흘리던 오빌 베이커는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하며 후회했다.
‘씨발, 이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모아둔 돈이라도 다 써보는 거였는데.’
개같이 일하며 죽어라 모아뒀던 코너, 크레딧.
오빌 베이커는 자신의 계좌에 찍혀있던 그 숫자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을 느끼며 의식을 잃었다.
그러나.
“…놀라서 주먹부터 나갔네.”
그런 그의 예상과 달리 불법침입자가 된 남자, 애쉬는 그를 어떻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이 슬럼에서 그나마 쓸모 있는 의사 하나를 찾아왔을 뿐.
자신이 아는 의사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해 졸고 있던 애쉬는 자신도 모르게 기절시킨 남자, 오빌 베이커를 내려다보며 아주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다.
이 슬럼이라는 곳이 워낙 위험한 곳이다 보니 충분히 오해할 상황이었고, 자기 방어를 펼치려다 맞고 기절한 것 아닌가.
원래라면 자잘한 배려 따위는 하지 않는 애쉬였지만, 자신의 잘못이 있으니만큼 그는 기절한 오빌 베이커를 소파로 끌어올려 놓고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허억!”
다행히 오빌 베이커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의식을 되찾았다.
그는 깨어나자마자 주변을 돌아봤는데, 곧 자신의 근처 의자에 앉아 홀로그램 TV를 보고 있는 애쉬를 발견하곤 화색을 띄었다.
“…애쉬 님?”
“어.”
“애쉬 님이 저희 집에 든 강도를 잡아주신 겁니까?”
“…….”
“가, 감사합니다! 정말 죽는 줄만 알았는데!”
진심으로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 보이는 오빌 베이커. 애쉬는 일말의 죄책감을 느꼈지만, 그냥 흘러가는 대로 오해하도록 두었다.
굳이 좋게좋게 갈 수 있는 걸 망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아, 뭐라도 대접해드리겠습니다.”
“대접은 됐고, 약이나 좀 처방해주지 그래.”
겸사겸사 가벼운 치료도 할 수 있으면 하고.
애쉬가 오빌 베이커에게 말하자 그는 호들갑을 떨며 재빨리 어두운 거실의 불을 켰다.
“아, 다친 곳이 있어서 오신 거군요! 지금 당장 상태를 봐드리겠습니다!”
평소였다면 공포의 대상이었을 그 미친 칼잡이가 오늘은 목숨을 살려준 은인으로 다가왔으니 이렇게 살가울 수가 없었다.
오빌 베이커는 불을 켜고 곧장 애쉬를 돌아봤는데, 밝은 곳에서 애쉬를 다시 돌아본 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으음, 이건….”
온몸에 긁힌 상처나 자상이 가득하고, 얼굴이나 바깥으로 드러난 피부는 상당한 화상까지 입었는지 물집이 올라오고 있었다.
몸에 온갖 상처가 난무했지만, 그 중에서도 면허 취소 의사인 오빌 베이커의 눈에 가장 크게 들어온 것은 두 가지.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옆구리의 상태와 완전히 까맣게 타버린 손끝이었다.
방금까지 호들갑을 떨던 그는 진지한 얼굴로 돌아가 환자를 대하는 의사가 되었다.
비록 돈을 밝히며 불법 개조 시술을 하다가 면허를 취소당한 상태였지만, 그도 의사는 의사.
한 눈에 봐도 보통 상처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누가 몸에 옆구리에 발전기랑 연결된 칼을 꽂아 넣고 전기라도 흘린 겁니까?”
“…닥치고 그냥 고치기나 해.”
오빌 베이커의 물음에 애쉬가 인상을 와락 구기며 대꾸했다.
안 그래도 기분이 영 좋지 않은데 이런 돌팔이 의사까지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을 찔러오지 않는가.
애쉬가 인상을 구기자 움찔하고 순간 쫄았던 오빌 베이커였지만, 이내 그는 다시 진지한 얼굴로 애쉬의 환부를 살피며 진단을 내렸다.
“화상 입은 피부는 약 좀 바르고 쉬면 어느 정도 회복 될 겁니다. 그런데 옆구리는 살이 익어서 일시적으로 지혈이 되긴 했지만, 그대로 두면 피부가 괴사할 겁니다.”
“그럼?”
“아무래도 일부분을 잘라내고 꿰매야….”
오빌 베이커는 말끝을 흐리며 애쉬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내린 판단은 옳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이 마음에 들지 않아하면 어떡하지 하면서.
보통 의료 인력이 적은 이곳 슬럼에서는 의사 쪽이 대부분 갑이었지만, 상대방이 일정 규모 이상의 갱단 소속이거나 애쉬처럼 건드릴 수 없는 괴물이라면 그 정반대로 돌아갔다.
그러나 애쉬는 그의 걱정처럼 심기가 불편하다는 내색은 하지 않았고, 계속 말해보라는 듯 눈짓했다.
그에 안심한 오빌 베이커는 계속해서 진단을 내렸다.
“피부 표면의 얕은 자상들은 그냥 둬도 회복이 되겠지만 타버린 손가락은 약간의 절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절단이라고?”
절단. 그 한 단어에 애쉬의 표정이 확 굳었다.
아무리 그의 회복력이 대단하다지만 없어진 신체 부위를 재생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딴 게 가능하다면 그건 그냥 인간이 아니라 진짜 괴물이지 않은가.
손가락을 절단하면 진짜 개조 신체로 몸을 바꿔야 할 수도 있었다. 당연히 그것은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고.
갑자기 험악해진 애쉬의 기세에 순간 쫄아버린 오빌 베이커가 더듬거리며 다급히 덧붙였다.
“무, 물론 손가락 전체를 절단한다는 건 아닙니다! 타, 타버린 피부를 포함한 끝부분만 조금 절단하면 충분히 재생을….”
“이런 씹,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어야지.”
“죄, 죄송합니다!”
애쉬의 위협에 오빌 베이커가 사죄와 함께 고개를 박았다. 역시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라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였다.
그에 고개를 저어보인 애쉬는 곧장 오빌 베이커에게 물었다.
“바로 가능해?”
“가, 간단한 수술 도구는 있긴 한데….”
“있긴 한데?”
“…마취제가 없습니다.”
어쩌면 수술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마취제였다.
인간이 느끼는 고통을 마비시켜 의사나 환자나 편안히 수술을 진행하도록 도와주는 물건이었으니까.
어떻게 평범한 사람이 살을 째고 뼈를 긁는 고통을 견디며 수술을 진행한단 말인가.
고통에 의한 쇼크로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러나 애쉬는 그게 뭘 별 것이냐는 듯 말했다.
“난 또 뭐라고. 가서 수술 도구나 가져와.”
“…예? 하지만 마취제가 없는….”
“괜찮으니까 가져오라고.”
지금 이 시간에 어디서 마취제를 구할 방법도 없었고, 그걸 더 기다릴 시간도 없었다.
고통이라면 익숙하다. 애초에 고통에 약했다면 그만한 부상을 달고 여기까지 올 수나 있었겠는가.
그냥 꾹 참으면 되겠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하, 한 2시간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만, 진짜 괜찮으시겠습니까?”
“어. 최대한 빨리 끝내봐.”
“…알겠습니다.”
대답한 오빌 베이커가 문 밖에 두고 왔던 가방을 가져와 이런저런 물건들을 쭉 펼쳐놓았다.
그 뒤에 준비할 것들은 수술 도구를 소독할 끓는 물과 환부를 닦을 깨끗한 천 정도.
거즈나 붕대는 상비용으로 준비된 것들도 충분히 있었기에 어디서 구해올 필요는 없었다.
수술 도구를 든 오빌 베이커는 소파에 몸을 반쯤 눕히듯 앉은 애쉬를 바라보며 눈을 꾹 감았다 떴다.
그러자 온갖 피로와 욕망에 절어 흐리멍텅하던 눈동자에 빛이 돈다. 과거 유명 대형 병원에서도 수술 솜씨로 유명하던 수술실의 독재자의 재림이었다.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오빌 베이커의 목소리에 애쉬가 작게 대답했다. 오빌 베이커는 수술을 완벽히, 그리고 빠르게 끝내기 위해 전력을 다해 움직였다.
“윽….”
애쉬의 작은 신음과 함께 수술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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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셨습니다. 약은 받은 뒤 하루에 한 번씩 드시면 될 거고, 연고는 시간이 날 때마다 발라주시면 좋습니다.”
“어. 입금은 항상 보내던 대로 보낸다.”
“아, 아닙니다.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애쉬의 목소리에 오빌 베이커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비록 욕심 많은 인물이었지만 은혜는 알았다.
목숨을 구함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서 돈까지 요구할 정도로 양심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애쉬는 스스로 양심에 억지로 말했다.
“줄 때 받기나 해.”
“…예.”
“그럼 간다. 다음에 보던지 하자고.”
“네, 네! 알겠습니다.”
애쉬가 짧은 인사와 함께 끼이익 소음을 흘리는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오빌 베이커는 온 몸에 붕대를 감고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진짜 그 수술을 마취 없이 견딜 줄이야.’
중간중간 작은 신음은 내긴 했지만, 그것이 전부. 정말 인간이라고 보기 힘든 정신력이었다.
애쉬가 계단을 타고 완전히 내려가자 오빌은 고개를 저으며 집으로 들어갔고, 그것으로 ‘총잡이들의 여명’과 애쉬의 인연은 마무리되는 듯 했다.
며칠 뒤, 애쉬의 사무소에 불청객이 방문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여어. 오늘부터 한 동안 신세 좀 지자고.”
동료들의 장례를 끝낸 '골든 캐니언', 게빌 리퍼슨. 그가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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