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 8. 게빌 리퍼슨(1)
* * *
“전에도 느꼈는데, 허름하군. 이참에 사무소를 도시 안쪽으로 옮겨보는 건 어때.”
샤인이 내어준 차를 입으로 가져가며 괜한 참견 어린 목소리를 내뱉는 게빌.
그러나 애쉬는 그 말을 그냥 무시해버리곤 평온한 기색으로 샤인이 내려온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괜찮네.’
벌써 샤인을 고용해 접객 및 잡다한 업무를 맡긴 지 년 단위의 시간이 흘렀다. 손님이 올 때마다 차나 커피를 제조하다보니 날이 갈수록 샤인의 솜씨도 더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애쉬가 만족스럽게 커피 향을 즐기며 자신의 말은 들은 척도 않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게빌이 용건을 바꿔 입을 열었다.
“뭐,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내가 찾아온 이유는 방금 말한 게 전부야.”
게빌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한동안 신세를 지겠다고 선언했었고 샤인이 마실 것을 준비하는 동안 그 이유를 설명했는데, 그 이유라고 해봤자 별 것도 없었다.
그냥 ‘리퍼슨 물류’가 이번 일로 완전히 망해버렸고, 이제 할 일도 없으니 아는 사람 좋은 게 뭐냐며 잠깐 같이 일이나 하자고 찾아온 것이다.
당연히 예전이었다면 타인과의 협업 따위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애쉬였다.
혼자서도 다 할 수 있는데 괜히 업무 보조 따위를 만들어서 파이를 나눠먹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다만, 최근에는 그랬던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잠깐이라면….’
확실히 생각해볼 가치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최근 애쉬의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는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쁜 상태였다.
그 이유인즉슨 간단했다.
블러 처리 됐다지만 ‘애쉬 론모어’라는 해결사에 대해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특정할 수 있을 정도로 매스컴에 반쯤 공개되다시피 한 그의 모습과 무려 1,000만이 넘어가는 팬을 갖고 있다는 ‘베리 트윈즈’, 그 꼬맹이들의 원치 않은 간접 홍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궁금증을 갖고 알아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에 대한 정보가 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애쉬가 위치한 슬럼에서 괴담이나 전설처럼 떠도는 그의 얘기들도 알음알음 알려지고 있었으니 시간이 흐를수록 일거리가 떨어지기는커녕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평소라면 생각도 않았을 직원의 추가 계획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애쉬였다.
‘나쁠 건 없어 보이긴 하는데.’
애쉬가 슬쩍 게빌의 얼굴을 살폈다.
최근 수많은 일들에 시달렸기 때문인지 다소 피로한 얼굴이긴 했으나, 그렇다고 그 실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한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태지만 그런 상태에서조차도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미안할 정도였다.
그런 놈이니만큼 어느 정도 신용하고 일을 맡길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지금은 일거리가 혼자 다 처리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았으니 일만 맡기고 중간에서 수수료를 받아먹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겠는가.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애쉬는 게빌을 바라보다 툭 던졌다.
“6대 4.”
“6대 4? 그건 완전히 날강도잖아!”
게빌이 애쉬가 툭 던진 정산비에 말도 안 된다는 듯 소리쳤다. 아무리 이쪽 세계에서 일거리를 구해오는 딜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해도 6대 4는 거의 노예계약 수준의 조건이었다.
게빌은 곧장 자신이 원하는 비율을 불렀다.
“9대 1.”
“7대 3.”
“이봐, 좀 좋게 좋게 가자고.”
“나도 이 바닥 생리를 아는데, 좋게 가자는 놈이 9대 1을 불러?”
“그럼 8대 2. 이 밑으론 절대 안 해. 그리고 이대로 받아줄 때까지 매일 찾아와서 귀찮게 해주지.”
애쉬의 말에 게빌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듯 제안과 협박을 동시에 내밀었다.
사실 협박이라곤 해도 웃기지도 않는 위협이었지만, 만약 거절했다간 진짜 매일 찾아올 것 같아 애쉬는 이쯤에서 마무리 짓기로 했다.
“좋아, 8대 2.”
“아주 현명한 선택이야.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
게빌이 웃는 얼굴로 애쉬에게 손을 내밀었다.
게빌에게서 자신에게 내밀어진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애쉬는 곧 자신도 손을 내밀어 턱 그것을 잡았다.
가볍게 위 아래로 두어 번 흔들리는 손.
그렇게 ‘총잡이들의 여명’소속의 ‘골든 캐니언’, 게빌 리퍼슨이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에 합류하게 된 것이었다.
*
그리고 게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애쉬로부터 첫 의뢰를 전달 받았는데, 그것을 본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게 맞나?”
“왜.”
게빌의 목소리에 애쉬가 업무용 테이블에 대고 턱을 괸 채 실실 웃으며 대꾸했다.
일거리를 달래서 줬는데, 왜 난리란 말인가.
하지만 게빌은 거기에 대고 할 말이 분명 있었다.
“왜? 왜냐고?! 이걸 봐! 어떻게 기념스런 첫 의뢰가 이런 의뢰일 수 있냐고!”
타악!
테이블을 거칠게 내려치듯 펼쳐 보이는 한 장의 의뢰서.
거기에 적혀있는 내용은 애쉬에게도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그가 직접 골라준 의뢰기도 하고, 무엇보다 꽤나 전부터 지속적으로 들어왔던 의뢰였으니.
[고양이를 찾아주세요.]
“푸흐.”
자신의 업무용 테이블 위에 펼쳐진 의뢰서 맨 윗줄, 제목을 본 애쉬는 그만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한참 전부터 들어와도 무시하던 그 고양이 찾기 의뢰는 이제 의뢰금이 처음의 몇 배 수준까지 뛰어 올라 있었는데, 슬슬 할까 말까 하던 찰나에 게빌이 합류하면서 애쉬가 그쪽에 떠넘긴 것이다.
“프흐흐, 진정해. 의뢰금을 보면, 큭큭.”
애쉬는 어떻게든 게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다시 터져 나온 웃음에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카우보이모자에 독수리가 그려진 케이프.
요즘 시대에는 쓰지도 않는 그 불편한 리볼버를 쓰면서까지 온갖 폼이란 폼은 다 잡던 녀석이 허둥지둥 고양이를 쫓아다닐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을 참을 수가 있겠는가.
“이봐, 애쉬. 진짜 이런 걸로 장난치지 말자고.”
게빌이 어찌나 진심으로 흥분했던지 그 멋들어진 콧수염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그것을 본 애쉬는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릴 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든 참고 자신의 결정을 통보했다.
“그럼 앞으로 하고 싶은 의뢰만 하겠다 이 말이야?”
“윽, 그런 건 아니지만….”
“맞는 것 같은데?”
일반적인 딜러와 개인 프리랜서 간의 거래 관계였다면 마음에 드는 의뢰를 골라서 하는 것도 아무런 문제없을 일이긴 했으나, 지금 게빌과 애쉬의 관계처럼 사무소의 소장과 그곳에 소속된 직원의 사이가 된다면 그런 것은 불가능했다.
애쉬가 그런 정론을 기반으로 정확히 지적해온 것이었으니 게빌도 거기에 대해서 할 말이 없어졌다.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총잡이들의 여명’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소속된 모든 직원들이 기피하는 의뢰라고 언제까지 그냥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조직이 돌아가려면 누군가는 해야 하는 게 맞았다.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무어라 반박하진 못했지만, 그런 지적을 설마 자신보다 더 게을러 보이는 저 남자, 애쉬 론모어에게 듣게 될 줄이야.
얼핏 봐도 일거리가 넘치는 가운데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있으면서 저런 말을 하는 게 게빌에게는 너무도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분노를 풀 방법을 찾아 헤매다 어떻게든 꼬리를 잡아끌고 갈 생각으로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
“끄득. 그럼 우리 사무소장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하겠는데, 당연히 첫 의뢰에는 사수가 동행해주겠지?”
“그야 당연하지.”
“…?”
애쉬의 입에서 흔쾌히 나온 대답에 게빌이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그의 입에서 나온 사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럼 애쉬 자신보고 같이 가자는 그의 말에 선선히 동의한 것 아닌가.
이렇게 쉽게 넘어올 놈이 아닌데?
게빌이 그런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애쉬의 바로 이어진 목소리는 그가 상상도 못한 내용을 품고 있었다.
“샤인. 오늘은 업무 쉬고 출장 좀 다녀와라.”
“네?”
“고양이 찾기 의뢰 있지? 이 녀석이랑 같이 다녀오면 돼.”
“아….”
한창 서류를 정리하던 사무실의 꼬마, 샤인이 애쉬의 말에 그래도 되겠냐는 듯 게빌을 바라봤다.
그에 게빌이 당황해서 외쳤다.
“자, 잠깐! 나는 의뢰 진행의 사수를 붙여달라고 했지 사무직 직원을 붙여달라고는…!”
“사무직 직원이라니? 샤인은 나랑 현장도 몇 번 다닌 사무직 겸 현장직인데.”
애쉬가 게빌을 놀리듯 말했다. 실제로 맞는 말이긴 했다.
지금처럼 바쁠 때는 같이 현장에 나가지 못했으나, 한가할 때는 위험한 임무를 제외하고 가끔 따라다닌 적이 있었던 것이다.
일단 현장에 자주 나가긴 했으니 현장직이라는 게 애쉬의 주장이었다.
그런 애쉬의 말에 게빌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하기 싫어도 그렇지, 한창 일하고 있는 꼬맹이를 내보낼 정도일 줄이야.
아니, 애쉬가 나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업무량을 보면 꼬마 샤인이 사라지는 순간이 바로 이 사무소의 모든 업무가 마비되는 순간일 텐데 괜찮은 것일까.
그런 게빌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애쉬는 자신의 생각대로 밀어붙였다.
“안 그래도 최근 바빴으니까 산책이나 하고 와, 샤인.”
“네, 사장님.”
“…그래도 되는 거냐?”
“내 사무손데 어떻게 하든 내 마음이지.”
게빌의 물음에 애쉬가 쿨하게 대답했다.
돈이야 안 그래도 넘치는 상황인데다 사무소를 계속 열고 있는 것도 자신의 심심풀이 겸 샤인을 위함이었다.
안 그래도 최근 좀 무리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머리를 식히고 오기에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애쉬의 태도에 진심이라는 것을 느낀 게빌이 급히 말을 바꿨다.
“아, 아니. 그냥 혼자 갈 테니까 그, 샤인? 꼬마는 그냥 두라고.”
“됐으니까 같이 다녀와. 샤인도 휴식 시간이 좀 필요하니까.”
“…일하러 가는 거 아니었나.”
“겸사겸사.”
게빌의 힘 빠지는 목소리에 애쉬가 적당히 대꾸했다.
그리고는 얘기가 끝났다는 듯 푹신한 개인 의자에 몸을 묻으며 단말기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게빌의 옆으로 오늘 함께 할 사수이자 파트너가 다가왔다.
“그럼 저희는 언제쯤 출발할까요?”
“…점심만 먹고 가지.”
바야흐로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의 게빌, 샤인 듀오 첫 의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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