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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72화 (172/230)

〈 172화 〉 9. 과거(3)

* * *

레이라가 다녀간 다음 날.

계속해서 전날에 들었던 얘기를 떠올리던 애쉬는 어느 순간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한번 다녀와야겠어.”

레이라를 통해 전해들은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존 시까지 직접 가는 것은 좀 그렇다 쳐도 이 정보를 가져왔다는 서령의 비서 정도는 만나야 할 것 같았다.

이왕이면 서령 본인을 만나는 게 가장 좋겠지만, 레이라를 보고 느꼈다시피 그쪽은 어지간히 바쁜 게 아닌 것 같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만큼 비서라도 만나야지.

“그럼 사무소는 어떻게 할까요?”

그런 애쉬의 말에 샤인이 물었다. 이번에 게빌 리퍼슨이라는 새로운 현장 직원이 더해지긴 했지만 들어오는 의뢰의 숫자 비해 인력이 턱없이 모자란 게 사실이었다.

샤인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는 의뢰서를 더 받을지, 아니면 말지를 물었다.

그러자 애쉬가 가볍게 대답했다.

“의뢰서는 더 받지 마. 그리고 넌 어떻게 할래?”

“흠, 그럼 어제 그 여성분이랑 만나러 가는 건가?”

샤인과 애쉬의 대화 도중 대화의 방향이 게빌에게로 향한다.

손님 접대용 테이블 앞에 앉아 리볼버 한 자루를 손끝에서 돌리고 있던 게빌이 대답 대신 물었다.

대충 들어봐도 중요한 일로 만나는 것 같았는데, 솔직히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이 사무소에서 애쉬와 맺은 계약은 사무소장인 애쉬가 직접 던져주는 의뢰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그런 만큼 가능하다면 따라가서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런 뜻을 숨긴 게빌의 물음에 애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유성 그룹 쪽에 가볼 거야.”

“유성 그룹? 아, 예전의 그 의뢰로 연줄이 단단히 생긴 모양이로군.”

“그런 셈이지. 아무튼 어떡할래. 너도 오늘 쉴 거면 사무소 문도 그냥 닫고.”

빨리 결정하라는 듯한 애쉬의 말투에 게빌이 슬쩍 물었다.

“오늘은 쉬고 그쪽을 따라가도 되나?”

“날 따라오겠다고?”

“그래. 솔직히 궁금하단 말이지. 그 전설적인 ‘다크 나이트’와 연관돼 있는 일이라니 말이야.”

보통 사적인 일에는 관심을 보이거나 끼어들지 않는 게 예의다.

게빌도 그것을 잘 알았지만, 이 연방의 거대한 도시를 구했다는 그 칠흑의 기사들의 일이라면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악명 높은 ‘웃는 악마’와는 또 다른 부분으로 유명한 이들이었으니.

특히나 그와도 나름 관계 깊다고 할 수 있는 이 잿빛 해결사가 ‘다크 나이트’ 소속이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있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뭐, 그러고 싶으면 그러든가.”

애쉬는 게빌의 물음에 별다른 고민도 않고 대답했다.

어차피 서령, 혹은 그 비서와의 대화에서 오갈 것은 그렇게 비밀스럽고 깊은 이야기도 아닐 터였다.

유성 그룹 쪽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을 테니까.

이제부터 애쉬도 거기에 대해서 알아가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마침 게빌이 끼어들어준다면 필요한 일에 그를 써먹을 수도 있겠지.

애쉬로서는 그렇게 나쁘지도 않은 일이었다.

“오, 정말 괜찮나?”

그렇게 애쉬가 그의 동행 제안을 거절하지 않자 게빌의 안색이 밝아졌다. 이렇게 재밌어 보이는 일에 끼어들 수 있다니.

애쉬의 생각을 알았다면 재밌어 보이는 일에 끼어든 게 아니라 귀찮아질 수도 있는 일에 휘말린 것을 알았겠지만, 지금은 모르니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게빌을 써먹기 위해 끌어들인 애쉬는 이젠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 대충 대답하며 말했다.

“어. 그리고 ‘다크 나이트’같은 유치한 이름이 아니라 ‘리버스Rebirth’야.”

‘다크 나이트’는 어디까지나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시민들이 붙인 별명.

애쉬가, 아니, 정확히는 ‘이진현’이 플레이 했던 애쉬 론모어가 속해있던 그들 그룹의 이름은 부활이라는 뜻의 ‘리버스’였다.

애쉬와 게빌의 대화로 그들의 동행이 결정되자 샤인이 미리 인사했다.

“다녀오세요.”

“어. 아마 오늘 당일로 끝나진 않을 것 같으니까 너도 푹 쉬고.”

서령이 있는 곳은 도시 가장 안쪽에 위치한 1구역이었다.

이곳 71구역 슬럼에서 그곳까지 가려면 못해도 수 시간 이상은 걸렸으니 왕복 시간만 해도 오늘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급하게 움직일 이유도 없었고.

편히 쉬라는 애쉬의 말에 샤인이 대답했다.

“네, 사무소는 잘 지키고 있을게요.”

어쩐지 최근 들어 이렇게 쉬는 날이 더 많아진 것 같았지만, 고정 봉급을 받는 샤인에게는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러다 사무소가 망한다면 소년도 일자리를 잃겠지만, 애쉬야 과거부터 마음대로 쉬고 일하면서도 망하지 않지 않았던가.

그런 것을 보면 그렇게 쉽게 문을 닫을 것 같지도 않다.

샤인은 아무런 걱정 없이 애쉬와 게빌을 보내줄 수 있었다.

“자, 그럼 가자고.”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게빌이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쭈욱 켰다.

사무소와 동행 여부 모두 결정 됐으니 이제 움직일 때였다.

“그럼 기다릴 테니까 차나 가져와.”

“응? 차?”

“어. 아님 1구역까지 걸어갈래?”

게빌의 물음에 애쉬가 대답했다.

거기까지 가려면 차량이 있어야할 것 아닌가. 애쉬는 신분부터가 아직 없었으니 게빌에게 말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게빌이 개인 차량을 몰고 다니는 것을 봤었으니.

그런 애쉬의 말에 게빌은 다시 한번 구겨진 깡통처럼 완전 폐품이 돼버린 자신의 애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금은 나도 차가 없어.”

“응? 며칠 전까지만 해도 타고 다니지 않았냐?”

“그게…….”

게빌은 자신에게 일어난 불행을 애쉬에게 모두 얘기했고, 그것을 듣던 애쉬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큭큭.”

“이봐, 웃지 말라고. 진심으로 아끼는 차였는데. 아니, 그보다 왜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말 안 했지?”

“프흐, 아니, 난 한 동안 잘 타고 다니길래 문제없는 줄 알았지.”

억울한 듯한 태도의 게빌에게 애쉬가 대답했다.

그 사고가 터진 후 게빌이 경찰서에 가서 들은 얘기는 길었지만, 요약해 말하면 ‘답이 없다.’는 대답 하나뿐이었다.

이곳에서 차량 테러는 외지인과 현지인을 가리지 않고 자주 일어나는 범죄였으며, 슬럼에는 도시 안쪽처럼 CCTV나 기타 치안 체계가 잘 구성돼 있지 않아 범인을 잡으려면 긴 시간과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워낙에 사건 사고가 많았기에 경찰서는 언제나 인력이 모자랐으며, 설령 찾는다고 하더라도 문제였다.

슬럼의 빈민들이 그 값비싼 차량의 수리비나 기타 보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그 패거리들의 원한을 사 귀찮은 일이 일어났으면 일어났겠지.

도시 안쪽에서 살던 게빌로서는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이제 내가 왜 차를 안 끌고 다니는지 알겠지? 나도 그런 걸 몇 번 당했거든.”

“…그래, 아주 잘 알겠다.”

게빌이 웃음기 어린 애쉬의 말에 이를 갈았다. 이런 범죄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해주지 않다니.

언젠가 복수하고 말 테다.

“그럼 택시나 타고 가자고.”

그런 게빌의 원망이 담긴 눈빛을 받던 애쉬가 말했다.

그렇게 늦지는 않은 오후.

애쉬와 게빌.

과거와 현재의 피해자 두 명은 자신들의 부름에 달려온 택시를 타고 도시 안쪽으로 향했다.

*

택시를 타고 도시 안쪽으로 향하는 길.

아직 이동한 지 몇 분 지나지도 않았건만 가는 길이 심심했는지 게빌이 애쉬에게 물었다.

“그래서, 오늘 보러가는 유성 그룹 쪽 인사는 누구지? 이사급인가?”

“일단은 이사급이지.”

자세히 설명하기 귀찮았던 애쉬가 게빌의 물음에 적당히 대답했다.

지금 그가 만나러 가고 있는 서령은 회장 후계로 확정된 인물이다. 하지만 현 직급은 이사급이었으니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 애쉬의 대답에 게빌이 상식적인 얘기를 꺼냈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다른 곳도 아니고 유성 그룹의 이사급이면 바쁠 텐데 미리 연락하지 않아도 되나?”

“아.”

애쉬가 게빌의 지적에 깜빡했다는 듯 반응했다.

아무리 애쉬와 서령이 가까운 관계라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이 들이닥치는 건 문제가 있었다.

“…설마 아무 생각도 없이 일단 가보려던 거였냐.”

“연락은 지금 해도 돼.”

게빌의 황당하다는 듯한 목소리에 애쉬가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서령 본인을 꼭 만나야 하는 것도 아니고 비서.

그녀의 비서 하나 만나게 해달라는 일인데 조금 늦게 연락해도 괜찮겠지.

애쉬는 바로 자신의 구식 단말기를 꺼내 서령에게 연락했다. 그러자 뚜르르르하고 수신음이 들려오길 몇 차례.

그것이 어느 순간 뚝 끊어지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유서령 이사님의 수석 비서 에아임 펠튼 연락 받았습니다. 유서령 이사님은 현재 회의에 들어가셔서 연락을 받기가 어려우니 용무를 말씀해주시면 대신 전해드리겠습니다.

“응? 에아임 아저씨?”

­ 아, 음…. 절 알던 분이신가 보군요.

애쉬가 낯익은 목소리와 자기소개에 정체를 알아보고 그를 불렀지만, 거기에 돌아온 대답은 그를 반기는 게 아니라 어색한 목소리였다.

­ 저는 믿기 힘들지만 최근 제가 사고로 머리 쪽에 큰 충격을 받아 단기 기억 상실에 걸렸습니다. 의사의 말로는 몇 개월 정도의 기억을 잃었다고 합니다.

에아임은 짧은 설명과 함께 자신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애쉬에게 사죄를 전했다.

애쉬는 그런 에아임의 목소리를 듣고 언젠가 서령과 나눴던 대화를 기억해낼 수 있었다.

‘에아임은 복구할 수 있다고 해요. 그런데…….’

백업 인격 데이터와 기억은 남아 있지만 몇 개월 전에 저장해둔 것이 마지막이라 최근의 기억은 되살릴 수 없다던 그 얘기를.

에아임은 안드로이드였기에 죽음에서도 돌아올 수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이 한계.

미리 저장해둔 데이터 이상으로 모든 것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는 애쉬와 서령, 그리고 다른 이들과 함께 했던 그 시간을 기억하지 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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