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74화 (174/230)

〈 174화 〉 9. 과거(5)

* * *

에아임은 서령의 지시에 따라 시 정부의 고위직과 협상하여 애쉬 론모어라는 인물의 신분을 생성하려 했다.

그 과정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로지 돈, 크레딧이었고, 크레딧 쯤이야 서령에게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달라는 서령의 부탁이 있었기에 협상에서 금액이 조금 더 커지긴 했지만, 그래도 유성만한 초거대 기업의 후계자인 서령에게 부담될 금액은 아니었다.

그렇게 에아임은 웨인 시 정부의 고위직 공무원과 협상을 마쳤고, 그들은 에아임에게 일정 기간 내에 행정 처리 끝낼 것을 약속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저 연줄과 돈만 있으면 일반인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일도 쉽게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일을 끝마친 에아임과 서령은 모든 행정 처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히려 문제가 생긴 곳은 시 정부와 접촉하고 협상하는 부분이 아니라 애쉬 론모어라는 인물의 신분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다섯 개의 시 정부는 연방의 이름 아래에 하나로 묶여 있으며, 범죄 및 시민에 대한 정보 등 대한 각종 데이터베이스 또한 공유하고 있다.

그랬기에 시 정부 내에서만 행정 처리를 하는 것으로 신분 생성이 끝나는 게 아니라 연방 데이터베이스에 등록을 마쳐야 완전히 끝나는 것이었는데, 연방 데이터베이스에서 신분 등록 요청을 반려한 것이다.

그 반려 사유는 기존 연방 데이터베이스에 중복된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

자신의 신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애쉬의 요청으로 신분 생성 과정을 밟아가던 서령으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연방 데이터베이스에 내 정보가 남아 있었다….”

“예. 드린 것 중 39페이지를 보시면 저희가 행정 서류를 전해 받은 게 나와 있을 겁니다.”

애쉬의 물음에 에아임이 정확히 페이지까지 짚어주며 대답했다.

그에 애쉬가 39페이지를 펼쳐 들여다봤는데, 거기에는 에아임의 말대로 연방 데이터베이스의 AI가 반려 처분한 서류가 첨부되어 있었다.

내용은 그 페이지를 거의 꽉 채우고 있을 정도로 길었지만, 한 줄로 짧게 요약해보자면 이러했다.

[이미 존 시에 거주 등록이 되어 있는 시민이므로 신분 등록 신청이 아닌 거주지 이전 신청을 하기 바람.]

연방 정부에서 사용하는 인까지 떡하니 박혀 있는 페이지.

저것을 스캔해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수 있겠지만, 여기까지 가져온 서령과 에아임이 그것을 해보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것은 연방에서 내려온 공식 서류가 맞았다.

“그래서 저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에아임을 통해 이번에는 존 시 쪽의 고위직 공무원들과 접촉해봤죠.”

애쉬가 그것을 모두 확인하는 사이 서령이 계속해서 얘기했다.

에아임은 존 시 쪽의 고위 공무원들과 만나 다시 한번 협상했고, 역시나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데이터베이스의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 결과는 이번에도 뭔가 이상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개인정보는 대부분 폐기 처리됐고, 애쉬 씨의 친인척이라는 분들로부터 실종 신고가 들어와 있었어요.”

“내 친인척이 있을 리가.”

“네. 그래서 좀 더 알아봤더니 외부에서 시 정부 데이터베이스에 손을 댄 흔적이 조금 보이더라구요.”

애쉬의 대꾸에 서령이 덧붙여 설명했다.

외부의 손길이 닿았다는 것. 그것은 상당한 실력의 해커가 위험을 무릅쓰고 시 정부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했다는 것을 뜻했다.

다소 급했는지 흔적이 남긴 했지만 무척이나 작은 수준이라 마음먹고 뒤져보지 않으면 알기 힘들 정도.

시 정부에서 이제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인물의 개인 정보를 이유 없이 들여다볼 리 없었으니 그동안 들킬 리도 없었겠지만, 서령의 명령에 의해 유성 그룹의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나서니 그 흔적이 드러난 것이다.

아마 시 정부의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한 해커는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애쉬를 찾을 수가 없으니 정부의 감시 체계를 이용하려는 속셈이었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애쉬의 머릿속에도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아니, 현실해서 보았던 것은 아니니 정확히 말하자면 얼굴이 아니라 캐릭터의 모델링이라고 해야 할까.

‘브로디 잭슨.’

테가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레게머리의 흑인 남성.

지금의 빌헬름보다 한 층 더 높은 수준일 것이 분명한, 이미 완성된 해커.

이진현이 플레이한 1회차의 동료였던 그는 사이버 네트워킹 숙련도가 9레벨에 도달한 최고의 실력자였다.

애쉬가 잠시 그에 대해 떠올리며 생각하자 에아임이 그런 표정을 읽은 듯 말했다.

“감이 잡히는 부분이 있으신가보군요.”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존 시에 살고 있으며 시 정부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굳이 사라진 애쉬 론모어를 찾기 위해 실종 신고까지 할 이유가 있는 해커라면 그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안경잡이답지 않게 꽤나 호쾌하며 음주를 즐기던 남자를 생각하던 애쉬가 입을 열어 말했다.

“브로디 잭슨이라는 이름의 해커, 그리고 리버스. 존 시에서 조금만 수소문해도 녀석들이 알아서 찾아올 거야.”

아마 한밤중에 수소문하던 사람을 찾아가 총칼을 들이밀겠지.

‘리버스’는 현재 존 시에서 진짜 명칭 대신 ‘다크 나이트’라고 불릴 정도로 그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으며, 특히나 다른 녀석들과 달리 외부 활동을 하지 않는 ‘브로디 잭슨’의 이름은 부활을 뜻하는 리버스라는 단어와 같이 묶일 리가 없었기에 무척이나 민감하게 반응하리라.

“그리고 그쪽에서 찾아오면 말해. 너희가 찾는 애쉬 론모어가 웨인 시에 있다고.”

그들, ‘리버스’와는 한 번쯤 만나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이었다.

이진현이 1회차를 진행했던 애쉬 론모어와 지금의 그는 다른 존재였으나, 또 어떻게 보면 어느 정도는 같은 존재라고도 할 수 있었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애쉬의 말을 들은 에아임이 대답했다.

그의 상사는 서령이었고, 아직 그녀는 지시하지도 않았지만 서령은 이미 애쉬의 말을 들어줄 생각만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그 실종 신고와 데이터베이스에 손을 댄 해커 다음으로는 삭제된 개인 정보 기록에 대한 것인데…….”

에아임은 거기서 무어라 더 말을 하지 못하고 끝을 흐렸다.

서령은 유진혁 회장으로부터 하나씩 유성 그룹의 모든 것을 인계받고 있었다.

그 중에는 유성 내에서 자체적으로 굴리고 있는 정보 단체도 있었는데, 애쉬의 삭제된 개인 정보 기록에 대해서는 그들의 정보력으로도 아무런 단서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누가, 어떤 연유로 거기에 손을 댔는지 알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앞서 말했던 실종 신고 기록에 대한 것처럼 어떤 흔적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다.

정말 그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것처럼 정보만 완전히 사라져있었기에 에아임과 유성 그룹으로서도 거기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애쉬는 이번에도 감이 잡히는 부분이 있었기에 이해하고 넘어갔다.

“거기에 대해선 됐어.”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마 이진현이 2회차를 시작할 때 선택했던 새 게임 선택지 때문이 아닐까.

순수인간의 몸으로 이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하는 것도, 게임 속 스킬이 현실에서 어느 정도 발현 되는 것도 모두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 존 시의 시 정부에서 보관하고 있던 정보가 조금 사라지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일이었다.

그런 애쉬의 말에 서령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신분을 존 시에서 이쪽으로 이전해오면 그쪽에서 실종 신고를 넣은 분들이 알아챌 것 같아 바로 진행을 못했었거든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연락을 한번 하려고 했었는데, 애쉬가 이렇게 직접 찾아와 불안하던 부분을 없애주니 마음 놓고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이곳까지 찾아온 용건이 정리되어가는 듯하자 게빌이 애쉬를 향해 속삭이듯 물었다.

“…혹시 저분이 그 유성 오너 집안의 따님이신가?”

사무소에서 레이라와 애쉬가 얘기할 때부터 설마하며 의심하긴 했으나 슬슬 확신이 들려고 한다.

서령의 성씨도 그렇고, 오가는 얘기를 들어보니 아무리 유성 그룹이라고 해도 이렇게 어린 임원 한 명이 손을 뻗을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업무적 목적이 어느 정도 끼어있다면 모르겠으나 이건 얘기를 들어보면 완전히 회사를 자기 마음대로 써먹고 있지 않은가.

이런 게 가능한 것은 단 두 가지 경우 밖에 없었다.

하나는 그 사람이 회사의 사장급 이상 되는 최고위직에 있는 경우. 또 다른 하나는 오너 집안의 직계 혈족인 경우다.

애쉬는 게빌의 그런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대답했다.

“맞는데. 내가 얘기 안했었나?”

“이봐, 그런 얘기는 안 했다고…!”

그런 애쉬의 대답을 들은 게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유성 그룹 내부의 암투는 바깥으로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기에 게빌은 서령이 다음 대 회장 후계라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이 해할 뻔했던 대상이 유성 그룹의 직계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럴 것이.

이 연방 내에서 유성 그룹이라는 초거대 기업이 가지는 위상은 정말로 대단해서 사람 몇 명 정도 흔적도 없이 치워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정말 운이 안 좋았다면 용돈벌이 한번 하러 나갔다가 손목을 잘라먹고 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평생을 쫓겨 다닐 수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을 의뢰한 의뢰인 또한 서령과 같은 유성 그룹의 직계 혈족이었고, 서령이 거기서 당했다고 한들 유진혁 회장이 복수를 해줬을지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런 사정을 모르는 게빌로서는 이렇게나 질겁할 수밖에 없었다.

서령도 그런 게빌의 변한 안색을 보고는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그, 그때 일은 사죄드리겠습니다!”

“네?”

게빌이 어울리지 않게 예의를 차리고 하는 사죄에 서령이 당황한 듯 반응했다.

사실 그녀는 게빌을 보기도 전에 자리를 떠났기에 그 당시 습격받았을 때 게빌이 그 자리에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냥 애쉬의 동료라는 사람이 갑자기 사과해오니 당황할 수밖에.

애쉬는 어떻게 해보라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서령의 눈길에 게빌 대신 설명했다.

“예전 도로쪽에서 습격 받았을 때 있잖아. 그때 이 녀석도 거기 있었거든.”

“아….”

서령이 이해했다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왜 사과하는가 싶었더니 그때 얽힌 인연이었었구나.

그렇게 반응한 서령은 곧 쓴웃음을 지으며 게빌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그때 일은 다 잊었으니까요.”

무척이나 무섭고 끔찍한 경험도 했지만, 이제는 정말로 괜찮았다. 과거는 과거일 뿐.

이렇게 나중에 와서 애쉬가 동료로서 받아들였으니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

“…감사합니다.”

대체 슬럼의 해결사가 어떻게 이런 사람과 이어지기까지 한 걸까.

괜찮다는 서령의 대답에 고개를 숙여 한 차례 목례 해보인 게빌은 정말로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눈길로 애쉬를 바라봤다.

그렇게 애쉬와 서령, 에아임의 얘기는 십여 분 정도 더 이어지다 끝났고, 슬슬 자리를 마무리할 때 쯤 서령이 모두에게 제안했다.

“그럼 조금 늦었지만 식사나 같이 할까요?”

“아, 예. 좋습니다.”

“프흐, 안 그래도 출출했는데 좋네.”

“그럼 적당한 곳으로 자리를 잡아보겠습니다.”

어색한 태도로 넙쭉 받아들이는 게빌과 그걸 보며 웃는 애쉬가 서령의 제안에 동의를 표하자 에아임이 그들을 안내했다.

카페를 나서서 그들 일행이 향한 곳은 1구역 중심가에 위치한 어느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었다.

과거 애쉬가 서령과 같이 일할 때 자주 다녔던 음식점과 조금 다르게 꽤 본격적인 곳이었는데, 그 비싼 가격대만큼이나 나오는 요리들의 수준 또한 만족스러웠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아줌마는 어디 있어?”

“아줌마요?”

“베일라 아줌마.”

식사를 하던 중 애쉬의 입에서 나온 ‘아줌마’라는 단어가 누구를 뜻하는지 순간 알아듣지 못했던 서령이 다시 돌아온 그의 목소리에 그제야 기억했다는 대답했다.

“아. 베일라는 오늘 비번이라 쉬고 있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베일라한테 말하는 걸 잊었네요.”

봤으면 베일라도 반가워했을 텐데.

애쉬와 베일라의 사이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기에 자리에 함께 하자고 말했으면 분명 같이 나왔을 것이다.

대답한 서령은 내친김에 말한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럼 내일 연구소 쪽으로 한번 가볼까요?”

“연구소?”

“네. 베일라는 내일 오전에 연구소 쪽으로 출근했다가 오후에나 제 쪽으로 올 예정이라서요. 마침 연구소 쪽에 점검을 나갈 일도 있고, 또….”

당신에게 보여준 뒤 협력 받고 싶은 것도 있다.

애쉬는 평소 ‘연구소’라는 단어에 상당히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지만, 서령의 말이니만큼 조금은 생각해 볼 만도 했다.

보여준다는 게 무엇인지도 조금 궁금했고.

“좋긴 한데, 가도 피 뽑거나 그런 건 안한다.”

“푸훗, 물론이에요. 그냥 파워 슈트의 테스트만 부탁할 테니까요.”

“파워 슈트?”

애쉬가 서령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번쩍 눈을 떴다.

파워 슈트라면 ‘더 사이버펑크’ 1회차를 플레이한 그도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몸에 장착하여 신체능력과 방어력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는 슈트.

그것은 성능도 성능이지만, 무엇보다 멋진 외견으로 인해 마음에 들어 했던 기억이 있었다.

“내일이라고? 좋아.”

‘이건 못 참지.’

남자라면 누구라도 꿈꾸는 것 아닌가. 단숨에 승낙한 애쉬가 게빌에게 물었다.

“너도 가지?”

“나도? 가고 싶기야 한데….”

여태껏 소심하게 음식만 먹고 있던 게빌이 말끝을 흐렸다.

파워 슈트라니, 군사물품으로 지정된 그것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기에 솔직히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해할 뻔 했던 사람이 유성 그룹의 직계라는 것을 알게 되니 자리가 조금 불편하다.

그렇게 게빌이 고민하는 듯하자 애쉬가 대신해서 결정을 내려주었다.

“이 녀석도 간다는데, 갈 수 있지?”

“네. 참관만 하시는 거라면 얼마든지요.”

“뭐? 잠깐…!”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게빌이 끼어들려 했지만, 이미 애쉬와 서령은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얘기를 진행해갔다.

그렇게 다음 날.

그들의 일정은 유성 그룹의 연구소에 들르는 것이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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