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78화 (178/230)

〈 178화 〉 9. 과거(9)

* * *

“…애쉬 씨의 동료라고 하길래 예상은 했는데.”

“역시나 보통 분은 아니시군요.”

에아임의 목소리에 이어 베일라가 말했다.

둘은 모두 저 사격 테스트실 안에서 손놀림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게빌의 솜씨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지금 그들 스스로가 바라보고 있는 게 현실이 맞긴 한지 구분이 잘 안 갈 정도였다.

­ 탕! 타당! 타앙!

총성은 겨우 서너 번 밖에 들리지 않았으나 여섯 개에 달하는 표적 모두가 넘어간다.

그러자 뒤이어 곧장 올라와 움직이기 시작하는 또 다른 표적.

눈 깜짝할 새 리볼버의 실린더에 새로운 탄환을 삽입한 게빌은 손목을 튕기는 것으로 드러난 실린더를 다시 결합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대체 저 리로딩 속도는….”

베일라가 그것을 보며 감탄하는 사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정 시스템의 데이터를 확인하던 연구원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놀라고 있었다.

“이건 보정 시스템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군.”

“오히려 저희 측에서 이 사격 데이터를 참고해 시스템을 수정해야 할 정도입니다.”

재장전 속도도 속도였지만, 그것 이전에 사격의 정확도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현재 그들이 탑재한 사격 보정 시스템에서 참고 데이터로 사용하던 전 세계 사격 랭킹 1위의 그것보다도 뛰어난 부분이 많았으니 말이다.

일반적으로 스포츠 사격은 멈춰 있는 표적을 맞추는 것이었지만, 지금 그들이 개발하고 있는 보정 시스템은 실전에서 효과를 발휘해야 하는 것임을 생각하면 어느 쪽이 더 유용한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이 신체 스캔 데이터를 보면 손목에 접합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절단상이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실력이라니….”

“조만간 한 번 더 테스트를 위해 들러달라고 부탁드려야겠습니다!”

오늘 가능하면 더 좋겠지만 서령의 지인이다 보니 갑작스런 부탁으로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좋지 않을 것이다.

N­003 연구실의 연구실장은 부하 연구원들의 그런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마침 유서령 이사님의 지인이기도 하고, 테스터로서 발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기존부터 테스터로 활동하던 서령의 경호원, 베일라에 더해 한 명의 테스터가 더 생기는 것이다.

지금처럼 별도의 검사 없이 간이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보다 좀 더 진득하게 살피고 본격적으로 진행한다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게빌은 자신을 노리는 연구원들의 눈빛도 모르고 테스트를 문제없이 모두 마쳤다.

­ 테스트를 종료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철컥. 사격 테스트실의 문이 열리고 게빌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테스트에 들어가기 직전에도 뭔가 기대하는 듯했던 서령 일행과 연구원들의 눈빛은 역시라며 놀라는 듯한 그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저도 사격이 취미라 조금 아는데, 실력이 대단하시네요.”

“아…. 예, 뭐 이 정도는.”

게빌이 서령의 칭찬에 괜히 겸손을 떨었다.

평소 성격 같으면 한껏 뻐기고 있었을 텐데 어려운 상대인 서령이 앞에 있어서 그런가 그에게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에 애쉬가 다가와 파워 슈트에 둘러싸인 가슴팍을 괜히 툭 쳤다.

“겸손 떨기는.”

“겸손이라니. 손만 멀쩡했으면 지금보다 더 완벽했을 텐데.”

아직 재활이 끝나지 않은 손의 상태 때문에 제대로 된 실력을 내지 못했다는 게빌의 대답.

그에 게빌의 손을 바라본 서령과 베일라였지만 아직 파워 슈트에 감싸여 있어 뭔가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게빌과 애쉬, 서령 일행이 얘기를 나누고 있자 앞서 서령이 경고했던 것을 잊지는 않았는지 연구원 중 대표로 보이는 이가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이사님,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이번 테스트에 참가해주신 분과 잠시 대화를 해도 되겠습니까?”

“아, 네.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앞선 경고 한 번에 아주 조심스러워진 태도. 그에 서령이 고개를 끄덕이자 연구실장이 서령에게 인사하고는 게빌에게 다가갔다.

그에 게빌은 자신이 입고 있던 파워 슈트를 해제하려 했지만, 오히려 연구실장은 그것을 막았다.

“아, 이거 받아가려고 오셨나? 그럼….”

“아뇨, 아닙니다. 혹시 저희와 계약 하나 하시지 않겠습니까?”

“…계약?”

“예. 이번 사격 보정 테스트를 보며 체크해봤는데…….”

연구실장은 얼떨떨한 얼굴의 게빌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늘어놓았고,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그 내용은 이러했다.

“그러니까 나보고 이걸 계속 사용하면서 테스터가 돼 달라?”

“예. 계약 사항만 지켜주시면 계속해서 무상으로 시스템 업데이트 및 추가 기능을 넣어드리겠습니다.”

보안 유지 계약이나 기타 조건들만 지키며 사용하면서 전투 데이터를 넘겨주면 새로운 버전이 나올 때마다 무상으로 업그레이드 해주겠다는 제안.

당연히 게빌로서는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이었다.

이런 차세대 파워 슈트이 값이 얼마던가.

그 가치는 못해도 수백만 크레딧 이상.

일전에 슬럼에서 폐품이 되어버린 그의 애마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값비싼 물건이었다.

연구실장은 혹한 표정의 게빌에게 계속해서 설명했다.

“아직 군사물품에 대한 법률에 포함되지 않는 가동 방식의 파워 슈트다보니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사용하셔도 될 겁니다. 그러니 계약서에 서명만 해주신다면 제가 상부와 잘 얘기해서….”

“아니, 잠깐만. 그럼 나는 뭐 없어?”

연구실장이 얘기를 이어가던 중 무슨 얘기를 하나 싶어 대화를 엿듣던 애쉬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테스트에 참여한 것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마찬가지인데 왜 게빌에게만 저걸 넘겨준단 말인가.

저런 타입의 파워 슈트는 원작 게임을 플레이했던 애쉬조차 본 적이 없는 물건이었고, 그 외형과 휴대성을 확인하니 탐날 수밖에 없었다.

애쉬의 초인적인 몸에도 실질적인 신체 강화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없는 것보단 좋을 것이다.

그런 애쉬의 말에 설명을 이어가던 연구실장은 당황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그게, 애쉬 님은 신경 인터페이스도 이식하지 않았을 뿐더러, 아직은 통제 시스템을 파워 슈트에 넣지 못해서….”

“그럼 뭐라도 좀 만들어주던가.”

“예…?”

“왜, 그런 거 있잖아. 형태를 바꿀 수 있는 검이라던가.”

애쉬가 대놓고 뭔가를 바란다는 듯 밀어붙이자 곤경에 빠진 연구실장이 도움을 바라듯 서령을 바라봤다.

게빌에게는 실전 테스트 및 전투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목적이라도 있지, 애쉬에게 그냥 뭔가를 넘겨주면 그것은 횡령이다.

아니, 아직 외부에 밝혀지지도 않은 기밀을 횡령한다면 그것은 단순 횡령이 아니라 기술 유출로 잡혀 인생이 끝장날지도 몰랐다.

게빌 측과 할 계약도 연구소장, 혹은 그 윗급의 인사와 얘기해야 할 판인데 어찌 멋대로 애쉬에게 물건을 넘겨주겠는가.

연구실장이 구원을 바라는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자 서령이 쓴웃음을 지으며 나섰다.

“나중에 기술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얼마든지 줄 테니까 진정해요, 애쉬.”

“정확히 언제?”

“…으음.”

돌아본 애쉬의 질문에 서령이 잠시 말을 잃었다.

그녀가 물론 이곳의 연구소장에게서 실적에 대한 보고를 전달받고 있긴 했지만 연구가 언제 어떻게 끝을 맺을지는 모르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냥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그래서 서령은 확답 대신 애매한 기간만을 불렀다.

“한… 2년?”

“2년이나 기다리라고?”

“어쩔 수 없잖아요, 언제 기술이 제대로 자리잡을 지도 모르는데. 애쉬의 동료 분에겐 죄송한 말이지만, 지금 계약을 부탁드리는 것도 일종의 실험체 같은 느낌이구요.”

“예?”

차세대 파워 슈트를 공짜로 받는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던 게빌이 서령의 목소리를 듣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서령은 그런 말에 이어 그에게 이해해달라는 듯 눈짓했는데, 이후 게빌은 용케도 그것을 알아듣고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게빌의 입을 다물린 서령이 애쉬에게 애교 부리듯 말했다.

“오늘 하루는 시간을 비워뒀고, 또 저녁 식사는 진짜 유명한 곳에 예약해뒀으니 저랑 잠깐 이곳저곳 다니다 같이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요.”

“…뭐, 그러든가.”

서령의 말에 애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서령에게서 게빌에게 간 신호는 그도 읽었지만 어쩌겠는가. 서령 같은 미인이 이렇게 애교 부리며 부탁하는데 져주는 수밖에.

애쉬와 게빌, 그리고 서령 일행은 그렇게 용무를 마친 뒤 발걸음을 옮겨 1구역 내의 이곳저곳을 구경 다녔다.

* * *

­ 타닥, 타다닥.

어둑어둑하면서도 조용한 공간. 커다란 모니터 스크린만 여럿 방을 밝히고 있는 그곳에는 쉴 새 없이 두드려지는 타자음만이 울렸다.

모니터의 화면에는 알 수 없는 문자와 숫자만이 계속해서 나열되며 주르륵 내려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앞에서 피곤한 기색으로 타자를 두드리던 남자가 눈을 번쩍 떴다.

“이건 뭐야?”

온갖 기업의 데이터 베이스와 잡다한 커뮤니티들을 모조리 뒤집어보는 작업을 벌써 년 단위로 계속하고 있는 그에게 잡힌 몇 개의 단어.

*

[제목 : 사람을 찾습니다.]

이름 : ‘브로디 잭슨’

성별 : 남성

나이 : 31 세

키 : 183cm 이상

소속 : ‘리버스’

특이사항은 체구가 큰 흑인 남성으로, 테가 굵은 안경을 쓰고 다녔다고 함.

그 외에도 홀로그램 투사가 지원되지 않는 구식 단말기를 항상 휴대하고 다녔다고 하며, 이를 발견하시는 분은 식별 번호 XKB – 10231582로 메시지를 주시기 바랍니다.

제보자에게는 소정의 보상이…….

*

어째선지 그의 이름과 소속이 그대로 밝혀져 있는 게시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한번 훑어보고 넘어갔을 법한 글이었지만, 장본인인 그에게는 아니었다.

“대체….”

그의 이름이야 그렇다 쳐도 외부에는 알려지지도 않은 ‘리버스’라는 이름. 이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레게머리와 테가 굵은 안경을 낀 흑인 남성, 브로디 잭슨이 그 화면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

­ 벌컥!

“잭슨, 이거 봤어?! 네 이름하고 소속이…!”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뛰쳐 들어와선 자신의 휴대용 단말 화면을 보이는 소년과 청년의 경계에 있는 남성.

그의 목소리에 브로디 잭슨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그래. 나도 봤어.”

그것은 어느 커뮤니티 하나에 올라온 게시글이었다.

모르는 사람은 그냥 지나가겠지만, 아는 사람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정보를 담은.

그런데 설마하니 연방에서도 손에 꼽을 실력의 해커인 자신과 하루 종일 커뮤니티를 기웃거리기만 하는 저 밥버러지가 동시에 같은 정보를 얻을 날이 올 줄이야.

그것도 이렇게나 중요성이 높은 정보를 말이다.

브로디 잭슨은 일단 ‘누군가에게서 전해 들었다는 것 같은 뉘앙스로 올린’ 저 게시글의 근원지를 파악하기로 하고, 동료들에게 메시지를 하나 전하며 다시 전뇌세계에 빠져들었다.

‘애쉬, 이번엔 진짜 너냐?’

자신의 절친한 친우이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녀석을 떠올리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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