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화 〉 10. 에리히 슈만(2)
* * *
“여긴가?”
“그래. 일단 지도상 위치는 이곳이 맞아.”
“딱 수준에 맞는 곳에서 사네.”
신경 인터페이스를 통해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곤 대답하는 게빌의 목소리에 애쉬가 말했다.
현재 애쉬와 게빌 두 사람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69구역의 어느 건물 앞이었는데, 칠이 다 벗겨진데다 벽면에는 스프레이 따위로 지저분하게 낙서가 그려진 그 건물은 외벽만 관리하지 않는 게 아닌지 바로 옆 골목에서 쏟아지는 지린내와 온갖 오물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으, 냄새 때문에 코가 떨어질 것 같군.”
애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게빌이 중얼거렸다.
냄새 때문에 거의 코가 아플 지경인데도 그냥 두고 있는 것을 보면 제대로 밑바닥 인생인 놈들이다.
빌헬름이 찾아준 갱단의 아지트를 올려다본 애쉬는 그래도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더 귀찮은 일로 번지진 않을 것 같네.’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애쉬의 자신의 주변인을 덮친 녀석들이었다면 그 배후까지 캐낼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는데, 이런 수준의 쓰레기들이었으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애쉬는 코를 막고 있는 게빌을 향해 말했다.
“그럼 들어갈 테니까 넌 바깥에서 빠져나오는 놈들을 모두 처리해.”
“그래, 알았다고. 사장 겸 의뢰인.”
애쉬의 지시에 게빌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하루 전에 자신을 부하처럼 부리는 것을 따져야겠다고 생각한 그였지만, 지금은 애쉬가 돈을 주는 의뢰인이었다.
물주의 요청이라면 당연히 따라야지.
애쉬는 묘하게 실실 웃는 것 같은 표정의 게빌을 뒤로하고 어느 듣도 보도 못한 잡 갱단의 아지트에 홀로 진입했다.
그가 진입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총격음과 고함 소리, 비명이 들려왔지만 게빌은 그저 리볼버 하나를 손가락에 걸고 빙글빙글 돌리며 위치를 지킬 뿐이었다.
*
“으아아!! 케엑!!”
팔이 잘려 비명을 지르는 놈의 목을 검은 칼날이 관통한다.
목이 꿰뚫린 갱은 비명도 끝까지 내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꺽꺽 거렸다.
이걸로 순식간에 다섯 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투두두둥!
홀에 있던 갱들은 자신들의 동료가 쓰러지자 다시 한번 총격을 갈겼지만 역시나 그것은 재빨리 움직인 잿빛의 침입자에게 이번에도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저, 저 새끼 미친 칼잡이야!!”
“뭐?!”
“71 구역에서 나대던 놈이 여긴 왜 나타난 거야!!”
잿빛 은발, 진청색 눈동자, 그리고 총기가 아니라 날붙이을 사용한다는 특징까지.
이미 슬럼 전체에 유명해지다 못해 도시 안쪽에까지 이름이 알음알음 알려지고 있는 애쉬의 외모와 특징을 69구역의 갱들이 못 알아볼 수는 없었다.
그들은 영문을 알 수도 없이 자신들의 보금자리에 들이닥친 천재지변에 대응했지만,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정예들조차 어쩌지 못한 것을 막아낼 수 있었을 리가.
애쉬, 이진현이 있던 지구에서도 군용이 아니라 호신용으로 사용했을 구식 무기들로 무장한 갱들은 손쉽게 쓸려나갔다.
“흐어억!”
“대, 대체 어째서.”
건물 내에 나자빠진 시체가 열댓 정도.
슬슬 피 냄새가 퍼져나갈 즈음이 되자 다리에 힘이 풀려 동료들의 피 웅덩이에 주저앉은 갱 한 명이 애쉬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며 묻는다.
그에 애쉬는 적당히 대답했다.
“모르면 됐어.”
에리히 대장간에서 에리히 슈만의 도제 여럿을 장애인으로 만들 정도로 패악질을 부렸으면서 감을 잡지 못하는 걸 보니 평소에도 그딴 짓거리를 제법 하고 돌아다녔던 것 같다.
슬럼에 자리 잡고 있는 갱이라는 놈들 중 대부분이 이런 놈들이다 보니 놈들을 목을 치면서도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냥 조금 귀찮다뿐이지.
‘전부 끝내면 내일 모레쯤 술이나 사들고 가야겠어.’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낄낄대며 노름이나 하고 있던 갱들의 아지트는 피바다가 되었지만, 애쉬는 에리히 대장간에 찾아갈 생각이나 하며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그날, 71구역과 맞닿은 69구역 외곽의 어느 소규모 갱단은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것 참. 너무 쉬워서 돈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구만.”
“그럼 다시 내놓던가.”
돈을 받고 싱글벙글하고 있는 게빌을 향해 애쉬가 말했지만, 당연히 이미 돈을 받은 이상 돌려줄 리가 없다.
게빌은 애쉬에게서 넘겨받은 크레딧 카드를 품에 쏙 집어넣었다.
“그럴 순 없지. 계약은 지켰으니 대가는 받아야 하는 법.”
아무리 실제로 일한 게 그 허름한 갱단 아지트에서 뛰쳐나온 네댓 명 잡은 게 전부라곤 하지만 프로라면 계약 사항의 이행과 거기에 따른 대가를 제대로 지켜야 하는 법이었다.
애쉬는 그렇게 말하는 게빌을 보다 툭 던지듯 물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무덤덤하네?”
애쉬는 갱들의 목숨을 거둘 때 게빌이 말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도 생각했었다.
지금 이 자리에 굳이 필요 없는 인력인데도 그를 데려온 것은 그런 성향 테스트를 겸하고 있기도 했고.
하지만 게빌은 애쉬의 예상과 달리 그를 말리거나 하지 않고오히려 뛰쳐나온 갱들의 미간을 저 리볼버로 꿰뚫었다.
애쉬가 의외라는 듯 말하자 게빌이 대답했다.
“이봐, 네가날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특별하게 피해를 신경 쓰는 건 민간인들밖에 없다고.”
이 뒤쪽 세계에 속한 이상 어느 정도 목숨을 내걸고 일하는 것은 당연했고, 의뢰나 기타 업무를 하다보면 이해관계에 따라 적의 선악에 상관없이 목숨을 거두는 일도 허다했다.
게빌은 어지간하면 그런 일들은 피하는 편이었지만그럼에도 자신의 손을 한 번도 더럽히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그가 어찌 보면 우습게도 보일 수 있는 저 카우보이모자와 케이프를 고집하고는 있지만 결국 살아가는 곳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이다.
“핫, 그래. 오늘은 적당히 가서 쉬고 조만간 대장간에 가서 거기 영감이랑 술이나 한 잔 하자고.”
게빌의 말을 들은 애쉬가 픽 웃고는 말했다.
여러모로 마음에 드는 녀석.
서른에 가까운 갱들을 모두 처리하면서도 피 한 방울 튀지 않아 정말 어디 청소나 하고 온 것 같은 느낌의 두 사람은 그렇게 일을 마치고 71구역에서 흩어졌고, 며칠 뒤 다시 에리히 대장간을 찾았다.
*
“이 망할 동네는 제대로 된 술을 살 곳도 찾기가 힘들구만.”
“기대를 하지 말았어야지.”
게빌의 불평에 애쉬가 대답했다.
둘은 현재 술을 두어 병씩 들고 대장간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 들고 있는 술 몇 병은 슬럼에서 거의 반나절동안 괜찮은 곳을 찾아다니다가도 끝내 찾지 못해 유흥가 쪽에서 구해온 물건들이었다.
유흥가, 주점에서 판매하는 물건이다 보니 그 가격이 배 이상 뛰어오른 것은 당연하다.
잔뜩 덤터기를 쓴 게빌은 도시 안쪽에서 자신이 즐겨 마시던 술을 구매하기 위해 애쉬가 주었던 크레딧 카드의 금액 절반 가까이를 썼을 정도.
불평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아, 가서 그 영감한텐 우리가 했던 일에 대해 얘기하지 마. 잔뜩 열을 낼 게 보이니까.”
“나도 그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다고.”
애쉬의 말에 게빌이 대꾸했다.
게빌이 보기에도 에리히 슈만은 꼬장꼬장해 보이는 영감이었는데, 그런 영감이 하지 말라던 일을 하고는 굳이 먼저 떠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짧은 대화를 나누며 대장간에 도착한 둘은 전에 들렀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조용한 대장간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용하군.”
대장간 안에 들어선 게빌이 중얼거렸다.
전에는 안쪽으로 들어가자 도제 한 명이 망치질을 하는 소리라도 들렸지만 오늘은 그조차 없어 완전히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영감. 진짜 문을 닫으려는 건가?’
항상 소란스럽고 에너지 넘치는 대장간을 봐왔던 애쉬에게는 그것이 너무도 낯선 모습이라 괜히 에리히 영감이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
전에 들어올 때 걸었던 복도를 따라 사무실 쪽으로 움직인 애쉬와 게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류 뭉치 같은 것을 들고 움직이는 에리히 슈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감!”
“으응?”
애쉬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는 건장한 노인.
에리히 슈만은 여전히 몸에 붕대를 두르고 있었지만, 거동에 이상은 없는지 무리 없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들어들 와라.”
양손 가득 술병을 들고 있는 게빌과 애쉬를 발견한 에리히 슈만은 왔냐는 듯 먼저 사무실로 들어서며 말했고, 둘은 그의 말에 따라 사무실로 따라 들어갔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은 셋.
애쉬는 들고 온 술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에리히 슈만에게 물었다.
“저번보다 더 조용해진 것 같은데, 전에 있던 도제는 어디 갔어?”
“…이제 대장간도 닫을 때가 됐으니 떠나보냈지.”
기존에 있던 도제들 대부분이 일을 하지 못하게 됐고, 겁먹은 사무직 직원들도 더 이상 출근하지 않게 된 대장간.
에리히 슈만은 평소와 같은 어조로 곧 문을 닫을 운명이니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도제 한 명까지 떠나보냈다는 대답을 했지만, 어째선지 그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평소와 달리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겉으로야 괜찮은 척 하고 있지만 에리히 슈만 본인 또한 울적한 기분일 것이었다.
그는 애쉬가 이 세계에 떨어지기 전부터 지금 이 자리에서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었던 만큼 더욱 애착이 컸을 테니까.
그렇게 대답한 에리히 슈만은 곧 분위기 전환이라도 하려는 듯 용건을 바꿔 대화의 방향을 틀었다.
“뭐, 그렇게 이미 지난 일이니 됐고. 며칠 전에 받았던 물건은 한번 정밀 검사를 해봤다. 그런데 결과가 이상하더구나.”
“결과가 이상하다고?”
“그래. 내가 알고 있는 금속 중에는 저 정도의 경도와 탄력, 그리고 빛깔을 띠는 물건이 없어.”
애쉬의 반응에 에리히 슈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곳 대장간은 비록 도심에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춘 곳들에는 비할 수 없지만 나름 에리히 슈만 자신의 투자로 필요한 물건들은 다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어지간한 물건들은 모두 이곳 대장간에서 만들 수 있었고 애쉬가 의뢰한 물건에 대한 검사도 진행할 수 있었는데, 검사 결과 연방 내에서도 손에 꼽는 장인인 에리히 슈만 자신이 모르는 재질의 금속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제련 방식은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낸 것 같은데 그래도 내구성이 대단하더구나. 저걸 어디서 구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경우는 둘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제조법으로 만들어진 물건인 경우.
다른 하나는 비교적 최근에 발견되어 에리히 슈만이 모르는 금속일 경우다.
당연하지만 에리히 슈만은 그 중에서도 후자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저런 물건을 등록하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 연방에 등록 됐음에도 내가 모르는 경우일 확률이 높지.”
시 정부, 그리고 연방 정부와 계약하여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이런 식으로 정보에서 뒤처지는 일은 없었는데, 이곳 슬럼으로 유배당한 뒤로는 새로이 등록되는 물건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었다.
그가 에리히 대장간에서 갱들과 씨름이나 하는 사이 새로운 금속이 발견된 것이다.
에리히 슈만은 자신이 시대의 흐름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체감에 허탈감을 느끼면서도 최대한 미련을 갖지 않기 위해 감정을 조절했다.
어차피 이제는 대장간도 닫고 완전히 은퇴할 몸.
미련을 가져봐야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으니.
“아마 그 검을 이루는 재질과 그것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알아내려면 도시 안쪽으로 가는 게 좋을 게다.”
점차 나아가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최신식 장비와 지식을 갖춘 이들이 퇴물이나 다름없는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테니.
끝내 감추지 못한 씁쓸함이 배어나오는 에리히 영감의 설명이 끝나자 조용히 그를 바라보던 애쉬가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던 술병 하나를 들어올렸다.
“그래? 그럼 이제 술이나 한 잔 하자고,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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