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85화 (185/230)

〈 185화 〉 11. 죽음과 함께하는 자(3)

* * *

“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괴한들에게서 구해진 뒤, 차량을 타고 이동하면서도 질질 짜며 감사를 표하는 의뢰인.

애쉬는 사내새끼가 질질 짜는 소리를 감상하는 취미 따위는 없었기에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게빌이 먼저 대화에 들어간 통에 그럴 수가 없었다.

“자, 그럼 한 차례 구해드렸으니 자세하게 알려주시지. 대체 당신을 쫓는 기업이 어디고, 또 무슨 기술을 훔친 건지.”

그리고 겸사겸사 결제도.

통화에서나 사용하던 존댓말을 집어치운 게빌이 의뢰인에게 물었고, 의뢰인은 그것을 알리면 이 해결사들이 돈만 받아먹고 도망치는 건 아닐까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다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저, 저는 ‘아메르아’의 수석 연구원이었습니다.”

의뢰인, ‘다니엘 벡’은 게빌과 애쉬의 예상대로 ‘아메르아’라는 중견기업에서 세운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이었다.

그가 개발하던 것은 ‘아메르아’의 주력 분야인 제약 쪽의 물건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꽤나 큰돈이 되는 신체 활성화 약물이 그것이다.

복용량에 따라 일반인들의 생활이나 의학 쪽에도 적용할 수 있고, 특히나 군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기에 값어치가 대단한 물건.

“그런데 그런 물건을 넘겼다고?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게빌이 어이가 없다는 듯 의뢰인, 다니엘 벡을 쳐다봤다.

민간용으로만 사용되는 물건이면 모르겠는데, 심지어 군용으로도 활용될 여지가 있는 물건이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모두 알다시피 군용 물품은 그 가격대가 정말 어마어마했으니까.

‘아메르아’는 게빌도 이름을 들어본 적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있는 기업이었는데, 그런 이들에게 쫓긴다는 것은 사실상 400만 크레딧에 목숨을 팔아넘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다니엘 벡은 자신도 바보가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 그래서 제가 두 분께 연락을 드린 겁니다. 딱 일주일 정도만 버티면 몸을 완벽하게 뺄 방법이 생기니까요.”

“그 방법이란 게 뭔데?”

“그건….”

끼어든 애쉬의 물음에 의뢰인이 말끝을 흐렸다.

아무리 자신이 목숨을 맡기고 있는 이들이라지만 그것까지 밝힐 수는 없다는 듯이.

목숨을 거의 이쪽에 맡기고 있으면서 마음에 드는 태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그 방법까지 알아야 할 이유도 없는 게 사실.

그들은 돈만 제대로 받으면 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고개를 저은 애쉬가 게빌에게 계속하라며 한발 물러나자 게빌이 얘기를 계속했다.

“그래, 몸을 뺄 방법이야 아무래도 좋지. 그럼 당신은 이제부터 어떻게 하고 싶지?”

“저는 그냥 적당한 곳에 숨어서 지내고 싶어요….”

“숨어서 지낸다고?”

“네.”

다니엘 벡이 게빌의 물음에 대답했다.

의뢰인이 몸을 완전히 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에 대한 확신을 강하게 갖고 있는지 그냥 어떻게든 시간만 끌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뭐, 나쁘진 않네.’

게빌과 의뢰인의 대화를 듣던 애쉬가 생각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나쁠 것 하나 없는 계획이었다. 그냥 숨어있는 게 전부일 의뢰인 근처에서 10일 정도만 버티면 된다는 것 아닌가.

혹시라도 습격이 오면 받아치면서 의뢰인을 지키고, 위치가 파악된 것 같으면 가끔 자리만 옮겨주면 되겠지.

귀찮게 이곳저곳 나다니지 않겠다는 것부터가 마음에 들었다.

“그럼 숙소부터 구해야겠구만.”

게빌도 애쉬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만족스런 얼굴로 말했다.

‘아메르아’가 말이 중견기업이지 군사기업도 아니었기 때문에 어디 외부에서 진짜 군용 병기를 끌고 오지 않는 이상 게빌 자신과 애쉬로 이뤄진 호위진을 뚫을 수 있을 가능성이 낮았다.

그냥 혹시 모를 저격이나 의뢰인을 향하는 공격만 조심하면 되는 것이다.

“그럼 숙소를 구하는 비용은 따로 청구하지.”

“예? 그것도 구해주시는 거 아니었나요?”

“뭐?”

의뢰인의 말에 게빌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그를 바라봤다.

의뢰인은 그들 측에서 안전가옥 따위를 준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그것은 매우 큰 오산이었다.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는 벌어들이는 돈에 비해 투자가 매우 적어 영세한 영업장이었기 때문에 모든 일을 인력으로 대체했다.

그런 곳에 비밀 안가 따위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당연히 의뢰인이 지내야 할 곳은 안전가옥 따위가 아니라 슬럼에 널리고 널린 허름한 호텔 정도 될 것이었다.

“그, 그게 무슨….”

그런 게빌의 설명을 들은 다니엘 벡은 당황을 내보였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게빌은 당황한 의뢰인를 보며 그게 당연한 거라는 듯 말했다.

“이봐, 의뢰비는 의뢰비고 댁이 머물 숙소에 대해서는 당연히 스스로 비용을 내놔야지.”

언제 습격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샤인이 있는 사무소에서 머물게 할 수도 없다.

설령 그런 문제가 없더라도 애쉬가 사무소에 털 숭숭 난 사내놈을 열흘씩이나 재워줄 리도 없었고.

게빌 자신도 사무소에서 지내게 해달랬다 쫓겨난 기억이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앞서 말했던 계약 내용 또한 어디까지나 호위가 전부였으니 그 외의 숙식까지 이쪽에서 비용을 댈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해야 한다면 하겠습니다. 대신 호위만 잘 부탁드립니다.”

의뢰인, 다니엘 벡은 더 이상 그들 해결사들과 얘기를 나눠봤자 변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더러운 슬럼 놈들’이라며 욕지거리를 내뱉곤 그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 목적지까지 200미터 남았습니다.

택시의 AI가 곧 목적지인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려왔다.

그렇게 세 명의 일행은 사무소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내렸고, 애쉬는 게빌과 의뢰인을 단 둘이 남겨두고 잠시 사무소에 다녀오기로 했다.

샤인에게도 곧 열흘 동안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것을 알려야 했으니 말이다.

“그럼 다녀온다.”

“그래, 빨리 다녀오라고. 여기 의뢰인 님께서 불안해 하시는 것 같으니까.”

“괘, 괜찮습니다.”

애쉬는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괜찮다 말하는 의뢰인을 쓱 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확실히 돈이라는 게 대단하긴 했다.

저런 소심한 성격의 인간에게도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짓거리를 벌일 용기를 내어줬으니.

­ 딸랑딸랑.

그렇게 애쉬가 사무소로 복귀하기까지 소요된 시간이 약 1시간.

그것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으나 적어도 샤인이 준비해둔 식사의 온기가 모두 사라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오셨어요, 사장님.”

“아.”

음식의 온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얇은 천 따위를 덮어둔 식탁.

샤인이 돌아온 애쉬를 향해 인사하자 그는 그제야 자신들이 샤인에게 음식을 부탁하고 나갔다는 것을 기억했다.

애쉬는 식은 음식들을 보며 자신의 개인 단말을 들었다.

­ 음? 금방 다녀온다더니, 무슨 일이야?

연락을 하는 곳은 당연하게도 게빌의 신경 인터페이스.

역시나 게빌 또한 샤인에게 식사 준비를 부탁했다는 것을 잊고 있었는지 애쉬에게 물었다.

그에 애쉬가 대답했다.

“…야, 일단 와서 밥이나 먹고 가.”

아, 음….

게빌이 애쉬의 말에 짧게 반응했다. 그도 애쉬에게 얘기를 듣고서야 떠올린 것이다.

자신들의 실책을.

­ 그럼 일단 의뢰인까지 데려가지.

“어.”

애쉬가 게빌의 말에 대답하자 뚝, 연락이 끊겼다. 이제 게빌과 의뢰인이 올 테니 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

애쉬는 슬쩍 서류 업무에 바쁜 샤인 쪽을 바라보곤 식탁 위에 올려진 천을 치웠다.

역시나 온기가 모두 가신 음식들.

“잘 먹을게, 샤인.”

“네. 조금 데워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열심히 만든 음식들이 모두 식어버렸으나 아무렇지 않게 친절히 물어오는 샤인에게 애쉬는 일말의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온 게빌과 함께 식사를 끝마친 뒤.

“그럼 다녀오세요!”

사무소를 나서는 애쉬와 게빌의 뒤로 샤인의 명랑한 목소리가 인사했다.

“이거 참. 얘기라도 하고 왔어야 했는데 말이지.”

다시 사무소를 나서며 중얼거리는 게빌의 목소리에 애쉬도 내심 동의했다. 다른 녀석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샤인에게만큼은 약해지는 애쉬였기에 여전히 작은 죄책감이 남아 있었다.

“그럼 적당한 위치에 숙소부터 잡아볼까.”

일단 셋이나 되는 인원이 같이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슬럼 내에서도 입지가 좋지 않은 외곽은 제외한다. 그럼 당연히 번화가 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 험악한 슬럼 내에서도 나름 유동 인구가 많아 공권력의 눈이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 곳.

“그럼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니엘 벡, 의뢰인과 해결사 둘로 이뤄진 일행은 슬럼의 중심가를 향해 나아갔다.

* * *

*

이름 : 애쉬 론모어.

성별 : 남성

외모 : (검을 든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잿빛 은발 남성의 사진이 붙어 있다.)

특이 사항 : 여태까지 알려진 활동과 클라이언트에게서 전해 받은 정보로 결론지었을 때 목표물은 위협적인 실력을 지닌 강화인간으로 추정됨.

검으로 ‘웃는 악마’의 부단장을 잡았다는 정보를 입수한 만큼 목표물을 상대함에 있어 최고 수준의 경계를 갖춰야 할 것.

또한 전투에 있어 다소의 손해를 감수해야만 사냥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아낌없이 투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딱히 약점으로 생각되는 부분은 없으며 원거리 사격으로는 어떤 피해도 입힐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

슬럼 어느 고층 건물의 옥상.

파일철에 끼워둔 한 장의 서류가 바람에 나풀거리며 춤춘다.

그리고 그 옆에서 자신의 몸집만 한 저격총의 스코프에 눈을 가져다 대고 있는 저격수 한 명.

남성인지, 여성인지,아니면 강화인간인지 사이보그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전신을 완벽히 가린 복장의 저격수가 자신의 스코프 중점에 들어온 한 일행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수많은 슬럼의 주민들 사이.

잿빛 해결사와 카우보이모자의 총잡이, 그리고 잔뜩 불안한 모습의 남성 한 명으로 이뤄진 특이한 일행을.

그리고 그렇게 그들을 바라보던 어느 순간.

저격수에게서 무기질적인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페이즈 1, 장거리 저격. 실행.

‘실행’이라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방아쇠가 당겨진다.

­ 쿠우웅!

옥상 바닥이 울릴 정도의 반동과 함께 두터운 건물 외벽이라도 터뜨려버릴 위력의 총탄이 허공을 일그러뜨리며 쏘아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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