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86화 (186/230)

〈 186화 〉 11. 죽음과 함께하는 자(4)

* * *

“……그리고 그때 어떻게든 몸을 던져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 영 숙맥인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나보구만.”

번화가 내를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게빌과 다니엘 벡.

애쉬는 그 뒤를 따르며 조용히 얘기만 들었다. 굳이 저 사이에 끼어서 대화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그럴 이유도 마찬가지로 없었다.

그렇게 몇 분 정도 걸으며 얘기하자 애쉬도 조금 끼어들어야 할 주제가 나왔다.

“그런데 숙소는 어디로 잡으면 될까요?”

“그야….”

“무조건 방은 3개 이상.”

무언가 말하려던 게빌의 말을 끊고 애쉬가 끼어들어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숙소 문제는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애쉬는 저 녀석들이랑 같은 방에서 지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단 1도 없었다.

그런 애쉬의 주장에 다니엘 벡이 당황해선 말했다.

“그럼 비용은….”

슬럼에서도 괜찮은 호텔은 있었고, 그런 곳에서 방이 세 개 이상인 곳을 잡으려면 금액이 꽤나 될 분명했다.

게다가 그 기간이 열흘. 그 정도씩이나 되면 어쩌면 일만 크레딧 가까운 금액이 깨질 수도 있었다.

“당연히 그쪽이 지불해야지.”

미리 얘기했던 대로.

그렇게 말한 애쉬는 다른 선택지 아닌 선택지를 추가로 내놓았다.

“아니면 방 두 개짜리에서 둘이 같이 자던가.”

“그건….”

“그건 안될 말이지.”

애쉬의 말에 다니엘 벡과 게빌의 의견이 동시에 맞아떨어졌다.

당연히 그들도 다른 남자와 같은 방에서 자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의뢰인, 다니엘 벡은 도시 안쪽에서도 평생 써본 적 없는, 하루 대실에 수백에서 일천 크레딧 이상 되는 호텔을 숙소로 잡기로 했다.

이번에 연구소의 결과물을 빼돌리며 큰돈을 벌었다지만, 아직 서민 정신이 강한 그에게는 손이 벌벌 떨리는 결정이었다.

그렇게 여러 의견을 나누며 걷던 일행.

애쉬는 어느 순간 그들의 뒤에서 뚝 멈춰섰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의 신경을 계속해서 쿡쿡 찌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메르아 쪽에서 보낸 놈들인가?’

“이봐, 거기 서서 뭐해?”

애쉬가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자 게빌이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모양.

일반인들은 다른 이들이 모두 멀쩡한 상태에서 자신만 이상함을 느끼고 있다면 쉽게 넘어가곤 했지만, 애쉬는 아니었다.

그는 그 자신의 감각과 본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고 있었고, 그로 인해 위험을 피한 일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자기 자신에게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애쉬가 갑자기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자 게빌도 그가 뭔가를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물어왔다.

“주변에 뭐라도 있나.”

애쉬 자신이 정신을 집중하지도 않았는데 급격히 늘어지는 게빌의 목소리.

세상이 재생속도를 늦추기라도 한 것마냥 느려지기 시작한 가운데 애쉬는 뾰족하게 자신의 감각을 찔러오는 무언가가 느껴지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발견할 수 있었다.

일 킬로미터 밖 정도 될까.

그곳에서부터 허공에 파문을 일으키며 이곳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거대한 탄환을.

‘이런 망할.’

그것을 발견한 순간 애쉬는 그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곧장 발끝으로 몸을 쏘아냈다.

정면으로 튀어나가 자신의 앞에 있던 게빌과 의뢰인, 다니엘 벡의 멱살을 잡아 던진다.

배려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거친 방법이었지만, 지금 애쉬가 달리고 있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는 목소리의 전달과 인식이 이뤄지는 시간보다도 그의 움직임이 빨랐다.

“무어….”

느릿한 목소리의 게빌이 그런 그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허공에서 몸을 뒤집었고, 의뢰인은 던져진 그대로 날아갔다.

그리고 애쉬는 이제 지척까지 다가온 탄환을 느끼고 자신도 몸을 날렸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가속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탄환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거대한 탄환이 그들 일행이 있던 자리에 폭격처럼 처박혔다.

­ 콰아아아앙!!

*

……페이즈 1, 회피 확인. 정보의 신뢰도 79.2%.

사각에서 쏘아진 저격이었으나 회피하는 것으로 보아 원거리 공격으로 피해를 주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정보는 사실에 가까울 것으로 확인.

위치 변경 후 페이즈 2 진행.

*

­ 와장창!

“꺄아아악!”

“무, 뭐야!”

충격파로 인해 터져나가는 유리창과 당황한 행인들의 비명, 목소리가 이명이 앵앵 울리는 귓가에 흘러들어온다.

몸을 던지며 바닥을 굴렀던 애쉬는 자신의 등 뒤에 얕게 덮인 모래 따위를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보도블럭이 폭발하듯 부서지고, 흙먼지가 피어올라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다.

하지만 애쉬는 자신의 감각으로 주변의 지형을 느끼며 거침없이 걸어 움직였다.

흙먼지 바깥에서 그를 찾는 게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애쉬! 살아 있나?!”

“어, 멀쩡히 살아있어.”

애쉬가 그런 게빌의 목소리에 대답하며 피어오른 흙먼지 바깥으로 나왔다.

충격파에 귀가 먹먹해지긴 했지만 그것 외에 특별한 이상은 없다.

나온 직후 애쉬는 자신이 게빌과 의뢰인을 던진 방향을 바라봤는데, 역시 게빌은 허공에서 몸을 뒤집으며 잘 착지한 것 같았고, 의뢰인도 바닥을 구르긴 했지만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하아…. 이거 완전히 오산이군.”

“누가 아니래.”

게빌의 말에 애쉬가 대꾸했다.

설마 번화가 한복판에서 이딴 말도 안 되는 무기를 쓸 줄이야.

애쉬는 정말 근처에 전차포가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민간에서 사용하는 것이 금지된, 군용 병기라는 뜻이다.

“어이, 정신 차리지.”

“예, 예에….”

애쉬에게 던져진 뒤 자신이 있던 자리에 일어난 일을 보고 넋이 나간 의뢰인.

게빌이 그의 정신을 깨웠다.

상대방은 번화가 한복판에 이딴 것을 쏘아낼 정도의 미친놈들이다. 곧장 다른 공격이 이어지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게빌, 일단 의뢰인을 데리고 움직여.”

“알겠어.”

애쉬의 지시에 게빌이 군말 없이 그의 말을 따랐다.

게빌 또한 포탄과 같은 무언가가 떨어지기 직전에 그것을 느꼈지만, 만약 애쉬가 그와 의뢰인을 던져주지 않았다면 반응하는 것이 늦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못해도 중상, 사망했을 가능성도 높았다.

목숨을 구해졌으니 지시를 따르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럼 위치는 보낼 테니 알아서 뒤따라오라고.”

“어, 어억.”

“뒤뚱거리지 말고 빨리 움직여!”

의뢰인을 재촉한 게빌이 그와 함께 자리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저격인지 포격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적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했다. 어디 건물에라도 들어가면 안전할 것이다.

그렇게 게빌과 다니엘 벡을 떠나보낸 애쉬는 뒤돌아 흙먼지가 가라앉은 자리를 바라봤다.

흙먼지가 가라앉자 직경 2~3 미터 정도의 크레이터가 생긴 보도가 드러난다.

그러나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탄환이….’

없다.

그가 직접 보고 반응했던 그 거대한 포탄인지 탄환인지가 보이질 않았다.

애쉬는 곧장 주변으로 고개를 돌려봤지만 무슨 일인가 싶어 구경하는 행인들 말고는 보이는 게 없었다.

“우, 운석이라도 떨어진 건가?”

“맞아, 운석은 추락한 다음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어.”

처음에는 비명을 질렀으나 이제는 기웃기웃 작은 크레이터를 구경하러 다가오는 행인들.

그들이 하는 소리는 애쉬도 들었지만 이건 절대로 운석 충돌 같은 게 아니었다.

그는 날아오는 그것을 직접 봤으니까.

분명 그 포탄에 가까운 탄환은 지면에 부딪히기 직전까지 멀쩡하게 있었는데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설마번화가에 그딴 걸 쏴놓고 다른 사고로 위장하려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아주 현명한 판단이다.

이 슬럼은 공권력의 힘이 약한 만큼 모든 일에서 적극적이지 않았고, 이런 크레이터 하나 정도는 진짜 행인들이 떠드는 것처럼 소형 운석 충돌 따위로 치부하고 넘어갈 확률이 높았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탄환을 숨길 이유가 없었고, 지금도 공격을 계속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아주 제대로 마음먹으셨군.”

연구원이었다던 다니엘 벡. 그를 뒤쫓는 ‘아메르아’ 쪽의 각오가 심상치 않았다.

대체 훔친 게 정확히 뭐길래.

크레이터를 바라보고 있던 애쉬는 점점 모여드는 행인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게빌이 그의 개인 단말로 보낸 위치는 애쉬 자신도 알고 있는, 슬럼 내에서는 나름 유명한 호텔 방향.

일단은 규모가 조금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들이 머물 방 3개 이상의 구조를 구하기도 쉬웠고, 조금만 신경을 쓰면 외부의 저격을 피할 수 있었다.

‘호텔에 진짜 전차포를 갈겨대진 않겠지.’

아무리 번화가 한복판에 포격에 가까운 저격을 실행하는 정신 나간 놈들이라지만, 그건 진짜 공권력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일이다.

‘유성 그룹’만 한 초거대 기업도 꺼릴 만한 일을 겨우 ‘아메르아’ 같은 중견 기업이 할 리는 없었으니 괜찮은 위치 선정인 셈이었다.

자리에서 벗어난 애쉬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게빌 쪽과 합류할 수 있었다.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아….”

“고생하쇼.”

호텔 직원에게 용무를 마친 뒤 인사하고 돌아오는 게빌.

애쉬와 게빌, 그리고 의뢰인인 다니엘 벡까지.

남자 세 명으로 이뤄진 일행은 자신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호텔 직원에게서 등돌려 대실한 곳으로 향했다.

­ 띠링. 1층입니다.

“이봐, 애쉬. 대체 그건 뭐였지?”

내려온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게빌이 물었다.

그에 애쉬는 정확하지 않지만, 자신이 생각해본 것을 얘기했다.

“저격인 것 같던데.”

“젠장, 그게 저격이라고?”

게빌이 애쉬의 대답에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말했다.

아무리 봐도 일반적인 저격총으로 발휘할 수 있는 위력은 아니었다. 애쉬가 느꼈던 것은 게빌도 그대로 느꼈던 것.

그것은 저격보단 포격이라는 말이 차라리 더 어울릴 공격이었다.

“대놓고 타살이라는 걸 보일 생각은 없는 것 같으니 일단은 저격이라고 하지.”

“그게?”

그게 대놓고 타살이라고 할 만한 일이 아니라니.

애쉬의 말에 게빌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냐며 반응했다. 그런 게빌의 반응에 애쉬가 간단히 설명했다.

“흙먼지가 사라지고 보니 탄환이 없었어. 그리고 일부러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은 피해서 쏜 것 같았고.”

뭐,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애쉬가 확신 없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탄환은 분명 다른 행인들과 거리가 조금 떨어진 상태에서 그들 일행을 향해 쏘아졌고, 그로 인해 피해를 본 행인들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비산하는 파편에 스치거나 고막이 조금 다친 정도. 병원에 가고 조금만 쉬면 회복할 수 있는 작은 부상이다.

그 외에 충격파로 유리창들이 모조리 깨지는 불상사가 있었지만 거기서 발생한 피해 역시 금전적인 것 말고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주변을 신경 쓰는 게 맞다면 차라리 좋겠는데.”

­ 띠링. 13층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쪽에서도 경계해야 할 거리가 그만큼 적어지는 것이었으니.

그런 게빌의 목소리와 함께 스르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애쉬의 예상이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더 저격을 당하는 건 사양이었기에 일행은 벽에 난 창을 경계하며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 띠리릭.

그들이 빌린 1309호에 도착한 뒤 카드 키를 대자 열리는 문.

애쉬와 게빌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일단 커튼부터 치는 것으로 저격을 방지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예상보다 복잡해지겠구만. 먼저 받았던 돈으로는 좀 모자랄지도 모르겠어.”

“…예? 더 말입니까?”

“농담. 하지만 예상보다 복잡해질 것 같다는 건 사실이야.”

돈 타령을 하자 기겁하는 의뢰인을 한 번 놀려먹은 게빌이 소파에 털썩 앉았다.

일단 이것으로 잠시 쉴 수 있겠지만, 당연히 처음의 저격 한 번으로 끝날 일은 아니었다.

슬쩍 커튼 밑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애쉬도 내심 게빌의 말에 동감했다.

‘저 녀석 말대로 일이 생각보다 더 귀찮아지겠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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