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88화 (188/230)

〈 188화 〉 11. 죽음과 함께하는 자(6)

* * *

“게빌!!”

이 정도 소리로 외쳤으니 어지간하면 깨어났을 터. 여기서 그쪽으로 더 신경 써줄 여유는 없었다.

애쉬는 깨어난 게빌이 알아서 대처할 것이라 믿으며 연기가 뿜어지고 있는 정면을 향해 뛰어들었다.

“흡!”

연기 속으로 뛰어드는 순간에는 숨을 완전히 멈추고 계속해서 연기를 뿜어내던 가스탄을 걷어차 현관 쪽으로 날린다.

이러면 게빌 쪽까지 연기가 가는 데까지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벌릴 것이었다.

자신이 소리친 직후 게빌과 의뢰인 쪽에서 인기척이 움직이는 것을 느낀 애쉬는 곧장 문 쪽으로 나아가며 외쳤다.

“어디 겁도 없이 일을 벌인 놈의 얼굴 좀 볼까!”

문밖에서 느껴지는 하나의 기척. 안쪽을 향하는 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철저하게 훈련을 받은 전문가 같다.

그렇게 연기가 뿜어지고 있는 현관으로 향해 살짝 열려 있던 문을 잡아당겨 완전히 열려던 애쉬는 그 순간 불쑥 자신의 눈앞으로 튀어나오는 붉은 무언가를 보고 반사적으로 몸을 뺐다.

“…검?”

­ 씨이잉!

공간을 울리는 듯한 특이한 소리과 함께 나타난 기다랗고 붉은 칼날.

금속으로 된 문짝을 꿰뚫고 그의 눈앞까지 치달았던 붉은 물체는 검의 일부인 칼날 부위, 검신이었다.

다만 그 검신이 뿌옇게 보일 만큼 엄청난 속도로 진동하고 있는.

애쉬가 몸을 빼게 만든 새빨간 칼날은 그대로 금속으로 된 문짝을 종잇장 베듯 쭈욱 그어 내렸다.

­ 콰가각! 카가가가각!!

엄청난 소음과 함께 칼날이 지나간 절단 부위가 초진동 마찰의 고열에 의해 반쯤 녹아내린다.

그러다 곧 쿠웅, 반토막 난 문짝이 안쪽으로 쓰러지며 칼날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 목표 식별 완료.

일자로 이어진 붉은 안광.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계로 뒤덮인 전신과 어울리는 기계적인 음성.

인간의 신체 부위가 전혀 보이지 않아 사이보그라기보다는 휴머노이드에 가까워 보이는 외견을 본 애쉬가 중얼거렸다.

“살벌하네.”

정체가 과도하게 신체를 개조한 사이보그인지 아니면 진짜 인간형 안드로이드, 휴머노이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검게 칠해진 온몸에 권총, 검, 단검, 수류탄 등 대인전에 사용할 수 있는 무기란 무기는 모두 두르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살인병기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그중에서도 애쉬가 시선을 향하고 있는 것은 상대방이 차고 있는 무기 중에서도 가장 압권이라고 할 수 있는 저 초진동 블레이드였다.

지금이야 잠시 진동을 멈춰 붉게 달아올랐던 검신이 하얀 모습으로 돌아와 있지만, 그것은 언제든 본래의 위력을 되찾아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분쇄할 것이다.

‘저걸 그냥 받아내도 되나?’

애쉬가 그 검을 보며 생각했다.

비록 현실에서는 처음 보지만 그도 저 초진동 블레이드라는 무기에 대해서는 나름 알 만큼 알았다.

바로 ‘The Cyberpunk’, 원작 게임에서도 근접 무기 엔드템 중 하나로 유명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검술 숙련도를 전혀 찍지 않아도 10레벨까지 찍은 것보다 강력한 근접 공격력을 보정 해주던 물건.

덕분에 1회차에 사이보그 총잡이로 플레이했던 ‘이진현’도 우연찮게 얻어서 줄곧 애용했던 기억이 있었다.

물론, 지금 그가 사용하는 에리히 영감제 무기도 원작 게임식으로 치면 총 아이템 등급을 나누는 1 ~ 10급 중 3급은 될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1급 중에서도 최상위에 손꼽히는 엔드템에 비하면 손색이 클 수밖에 없었다.

저건 근접 무기 중에서도 단순 공격력만 보면 최고 수준에 도달한 무기였으니.

“헉!”

“젠장,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애쉬가 습격자의 검을 잠시 바라보는 사이.

급하게 옷, 장비를 챙긴 게빌과 소란에 깨어난 다니엘 벡이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에 애쉬가 시선을 여전히 습격자에게 고정한 채 말했다.

“됐으니까 신호를 주면 의뢰인을 데리고 자리를 피해.”

지금 이 녀석이 혼자 습격을 해왔을 가능성은 적다. 이 장소에서 끝을 보기 위해 어지간히 준비를 하고 왔겠지.

그런 만큼 괜히 싸움에 휩쓸려서 의뢰인이 죽지 않도록 자리를 피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그런 애쉬의 말에 게빌이 대답했다.

“그래, 위치는 낮에 그랬던 것처럼 미리 전송하지.”

“그럼….”

­ 페이즈 2.

애쉬의 목소리와 이쪽을 지켜보던 습격자의 기계음성이 겹쳤다.

“뛰어!”

­ 실행.

콰앙!

강하게 땅을 박차며 앞으로 튀어나가는 애쉬의 뒷모습.

습격자는 붉은 안광을 빛내며 오른손에 들고 있는 초진동 블레이드를 정면으로 겨눴다.

­ 씨이잉!

공기가 울리는 소리와 함께 붉은색으로 달아오른 놈의 칼날.

애쉬의 새까만 칼날이 초진동 블레이드의 검과 맞부딪히자 쇠가 갈려 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폭죽 터지듯 불똥이 튀었다.

­ 콰가가가각!!

“뭐해! 뛰어!”

“예, 예엣!”

게빌이 그것을 보며 정신을 반쯤 놓고 있던 다니엘 벡에게 소리쳤고, 둘은 확 멈춘 채 애쉬가 만들어준 공간을 통해 아직까지 연기와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현관을 지나쳤다.

“핫!”

그것을 확인한 애쉬는 더 이상 상대방과 검을 맞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맞대고 있는 검을 강하게 밀쳐내며 뒤로 물러났는데, 습격자는 여전히 그를 붉은 안광으로 바라볼 뿐 도망친 둘을 따라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다른 녀석들을 믿고 있다는 건가? 아니면….’

애쉬는 자신을 보며 습격자가 내뱉었던 기계 음성을 떠올렸다.

‘목표 식별 완료’라던 그 말을.

처음에는 그냥 저 벽 너머로 다니엘 벡을 스캔했다거나 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저들의 목표는 도망친 연구원이 아니라 애쉬 자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애쉬는 자신과 비슷한 거리 정도를 밀려나 초진동 블레이드를 다시 들어 올리는 놈을 바라봤다.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일단 잡아놓고 물어보면 대충 알 수 있겠지.

그러니까 죽이진 않는다. 다만 팔다리 정도는 먼저 잘라야 말을 듣겠지.

습격자를 사로잡고자 마음먹은 애쉬는 에리히 영감에게서 받은 검의 상태를 살폈다.

검을 맞댄 순간 진동에 의해 손에도 엄청난 충격이 있었던 만큼 칼날에도 문제가 생기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그런 그의 예상대로 새까만 칼날은 이가 제법 나가 있었다. 그의 검술 숙련도는 무기의 공격력은 보정해줬지만 내구도까지 보정하는 능력은 없었다.

“이거 최대한 손상 안 가게 아껴 쓰던 건데.”

영감이 보면 또 뭐라고 하겠네.

그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검을 들어 올리자 습격자 쪽에서도 초진동 블레이드를 다시 들었다.

그에 잠시 멈칫한 애쉬가 곧 팔다리에 이어 초진동 블레이드에도 눈독 들이며 말했다.

“그것도 좀 받아가자.”

­ …….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지만 어쩐지 애쉬는 상대방의 붉은 안광이 한 차례 일렁거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곧.

­ 처억!

습격자 쪽에서 사이보그 특유의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덤벼드는 것으로

전투가 다시 이어졌다.

*

­ 콰가가가각!!

다시 한번 부딪힌 칼날이 불똥과 함께 갈려 나간다.

애쉬는 거기서 느껴지는 충격에 검 손잡이를 부서질 듯 쥐며 그것을 떨쳐냈다.

근력은 상대방보다 그가 더 뛰어났기에 떨쳐 내는데 성공했지만, 밀려나는 와중에도 자세가 전혀 흐트러질 생각을 않는다.

애쉬는 저 습격자가 물러나며 뒷발로 땅을 딛는 동시에 다시 한번 달려들어 검을 대각으로 휘둘렀다.

노리는 것은 왼 어깨부터 반대편 옆구리까지.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죽어도 이상치 않을 치명상이겠지만 몸을 저만큼이나 개조한 녀석이라면 죽지 않을 것이다.

이쪽은 일격으로 끝을 보고, 약간의 심문 뒤 저 초진동 블레이드를 챙겨 게빌 쪽을 따라가려던 애쉬였다.

그러나.

­ 촤아악!

검이 휘둘러졌음에도 손끝에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상대방이 그렇게나 개조를 거친 몸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가벼운 움직임으로 검격을 피한 것이다.

애쉬는 거기에서 작게 놀라며 곧장 따라붙어 직전보다 더 빠르게 검을 베어 올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 콰가가가각!!

녀석이 들어 올린 초진동 블레이드가 그의 검이 베어가던 경로를 정확하게 막는 게 아닌가.

‘첫 번째에 피했던 건 운이 아니었군.’

다시 한번 귀가 찢어질 듯한 소음과 함께 갈려 나가는 칼날을 회수한 애쉬가 생각했다.

상대방은 분명 그의 움직임을 눈에 제대로 담고 있었다.

그냥 잡졸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의 실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느낀 애쉬가 픽 웃으며 말했다.

“그래, 보통 놈들은 아니다 이거지.”

원작 게임 속에서도 후반부에서나 겨우 구할 수 있었던 초진동 블레이드.

사이보그인지, 휴머노이드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는 습격자.

그냥 지루할 거라고만 생각했던 의뢰가 생각보다 재밌어질 것 같다.

“그럼 어디 이것도 한 번 받아봐.”

여태껏 가볍게 날렸던 공격과 달리 약간의 진심을 담은 일격.

그가 들고 있는 검의 새까만 칼날이 잔상과 함께 검은 호선을 그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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