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화 〉 11. 죽음과 함께하는 자(7)
* * *
“무슨 일이야!”
“시, 13층에서 굉음과 함께 폭발물이 터진 것 같다는 제보가 있습니다!”
“당장 치안 유지국에 연락해!”
현재 시각 오전 4시.
아직 심야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소란이 소란이었던 만큼 게빌이 있던 객실에서 벌어진 일은 1층 로비까지 금세 전해져 직원들과 보안 요원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비상계단을 통해 내려온 게빌은 그 상황을 지켜보며 일말의 어색함을 느꼈다.
“뭔가 이상하군.”
“헤엑, 헥…. 뭐, 뭐가 말이시죠?”
게빌의 뒤에서 무릎을 짚고 숨을 헐떡이던 다니엘 벡이 물었다.
13층이나 되는 높이에서 비상구를 통해 뛰어 내려오다 보니 인생의 절반 이상을 책상 앞에서 살아온 그는 죽지 않기 위해 숨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죽을 것처럼 숨을 헐떡이면서도 묻는 다니엘 벡의 말에 게빌이 대답했다.
“모든 게.”
이 시간에 습격을 하면서 그 초진동 블레이드처럼 말도 안 되는 병기를 사용한 점이나, 그들이 13층이나 되는 계단을 내려오는 사이 다른 습격을 받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이곳 호텔의 직원들이 저렇게 멀쩡히 뛰어다니고 있다는 점까지 모든 게 말이다.
만약 게빌 자신이 누군가의 암살이나 처치를 원하는 킬러였다면 일단 이곳 로비부터 침묵시킨 뒤 행동했을 것이다.
이곳 슬럼에서 치안 유지국을 포함한 공권력은 다소 무시 받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온갖 위험이 넘치는 이곳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을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쉽게 움직일 수 없지만, 일단 움직이면 나타나는 결과가 그들의 힘을 말해줬으니까.
그 유명했다던 거대 갱단의 보스, ‘폭군 오마르’나 현재 71구역을 손에 넣고 있는 ‘레이라 플로리스’ 등이 공권력을 배제하지 않고 그들을 살살 구슬려 살아가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갱단의 규모가 크고 힘이 강하다고 한들 공권력을 완전히 적으로 돌리면 살아남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이 녀석들은….”
그딴 건 상관없다는 듯 마구잡이로 날뛰고 있었다.
그것도 치안 유지국이 불과 1km도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존재하는 이 호텔에서.
갱들이 전쟁을 벌일 때도 무조건 피하고 보는 치안 유지국 근처에서 일을 벌이고 있다는 말이다.
“후욱…. 그냥 외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럴 리가. 그쪽도 아까 봤을 텐데? 우리 객실을 습격했던 놈이 들고 있는 장비를.”
인간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신을 개조한 몸체와 소문으로만 들어봤던 최첨단 병기, 초진동 블레이드를 비롯한 온갖 대인 장비들.
그것들 하나하나가 민간에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이었다.
게빌이 그것들을 알아본 것도 군사 물품 쪽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지, 만약 아니었다면 어떤 장비인지도 제대로 몰랐을 정도다.
그런데 그런 눈에띄는 물건을 들고 치안 유지국 근처에서 이렇게 날뛴다고?
이건 겨우 ‘아메르아’같은 중견 기업에 소속되거나 고용된 킬러 따위가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공권력의 수사를 피할 자신이 있거나 어떤 일이 벌어져도 무마할 권력과 재력이 있는 이들이나 할 수 있는 방법.
그럴 리도 없겠지만, 만약 ‘아메르아’에서 저 킬러를 고용하고 장비를 지원한 것이라면 그들은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일 터였다.
아무리 연구 자료와 물품이 중요하다지만 겨우 그것 하나를 빼돌린 연구원의 목숨 하나와 기업 전체의 운명을 저울 위에 같은 무게로 단 것일 테니.
“그렇다면 지금 저희를 습격한 사람은….”
“글쎄.”
다니엘 벡의 목소리에 게빌이 애매하게 마무리 지었다.
그로서는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로 기업 쪽에서 미쳐서 이런 짓을 벌인 것일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았으니까.
“일단 자리부터 옮기자고. 괜히 휘말리면 골치 아프니까.”
“예, 예.”
이번 일이 그들의 객실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치안 유지국과 호텔 쪽에 붙잡혀 상당히 귀찮아질 수 있었다.
충분히 숨을 골랐는지 이제는 헐떡이던 것이 덜해진 다니엘 벡과 게빌은 주변을 경계하며 호텔 밖으로 나섰다.
*
특이점 발견. 회피 기동 실행.
“어딜.”
단단한 금속질로 된 허리가 반쯤 잘려나가자 팔에서 와이어 같은 것을 뽑아내며 입체 기동을 시작하는 습격자를 따라 애쉬의 검이 함께 움직였다.
수준은 볼 만큼 봤다. 주변 객실은 물론이고 호텔 전체에서 경고음이 울리며 소란이 일고 있었으니 이제 시간을 더 끌 것도 없었다.
와이어를 급격히 가속하며 움직이는 습격자를 따라간 애쉬의 검이 초진동 블레이드를 들고 있는 놈의 팔을 베어버릴 듯 어두운 빛을 발한다.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 와중에도 습격자는 놀라운 눈썰미로 그것을 캐치하고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애쉬는 진심으로 끝내고자 마음먹은 상태였다.
타앙! 탕!
그의 검을 막기 위해 초진동 블레이드를 들어 올리며 반대쪽 손으로는 권총을 뽑아 탄환을 쏟아내는 습격자.
애쉬는 몸을 가볍게 띄우는 것과 동시에 가까워진 적의 초진동 블레이드를 피해 놈의 팔을 완전히 잘라냈다.
카가가각!
잘려나간 팔과 함께 떨어진 초진동 블레이드가 바닥을 갈아내는 사이에도 움직임은 부드럽게 흐르듯 이어지며 검 끝에 굵은 목이 걸린다.
목 또한 일반적인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었으나 애쉬의 검은 그것을 가볍게 갈라냈다.
파악!
공중에 떠오르는 붉은 안광의 머리 하나.
와이어를 타고 움직이는 적을 따라 느려진 시간 속에서 공간을 유영하던 애쉬는 그 안광이 흐려지는 것을 확인하며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목이 잘려나간 습격자의 시체에서는 마땅히 쏟아져야 할 것이 쏟아지질 않았다.
직, 지직.
잘려나간 팔과 목에서 들려오는 스파크 튀는 소리.
애쉬가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듯, 끝에 가서 거의 확신했듯 습격자에게서 피 따위는 흐르지 않았다. 그저 푸른 빛깔의 전류만이 몸의 회로를 타고 움직였을 뿐.
살아있는 인간도 아니고, 기계 따위를 잡고 심문하려 해봐야 시간 낭비라 그냥 처리해버린 것이다.
“여기나 저기나 다 휴머노이드네.”
유성 그룹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연방에 걸리는 즉시 극형에 처해도 이상치 않을 범죄 행위를 봤지만, 크게 놀라지도 않은 애쉬는 떨어진 놈의 팔에서 초진동 블레이드를 분리해냈다.
스윽. 몸체와 연결돼있던 선을 분리하고, 쥐고 있던 손가락을 잘라내어 한 번 들어본다.
처억.
묵직한 무게감.
검신의 두께만 해도 애쉬 것의 두 배는 되고, 길이도 상당히 길었기 때문에 묵직한 감각이 만족스럽게 손아귀를 채웠지만, 애쉬는 곧 인상을 쓰며 그것을 휙 던져버렸다.
“하, 이건 그냥 깡통이잖아.”
아무래도 초진동 블레이드와 연결되어 있던 선이 전류를 공급하는 파워 서플라이와 이어진 것이었는지 애쉬의 손안에서는 작동할 생각을 안 했다.
그럼 결국 단단하고 부피도 크면서 특별한 점이라곤 없는 쇳덩이에 불과하다.
그렇게 애쉬가 잔뜩 실망하여 바닥을 구르는 침입자의 머리통을 걷어찰 때쯤.
그의 귀에 다수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경계 태세 늦추지 마! 눈 앞에서 뭐가 튀어나오면 바로 발포 및 사살해도 좋다!”
“예!”
“폭발물이 터지고 금속이 갈려나가는 소리가 들렸다는 소식이 있으니 그것도…….”
명령하고 따르는 목소리들을 들으니 공권력 쪽의 선두 진입부대가 들어온 것 같다.
애쉬는 그 소리를 들은 순간 잠시 객실을 둘러봤다.
여기저기 갈려나가고, 잘리고, 터지고, 그을리고.
창문이 있는 외부 벽면은 한쪽이 완전히 무너져 바깥 풍경이 보이고 있었다.
특히나 바닥에 구르고 있는 휴머노이드는…….
“슬슬 자려고 했더니만.”
교대 시간에 직전 일어난 일 때문에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다.
애쉬는 무너진 벽면 쪽으로 향해 바깥을 내려다봤다. 슬슬 도착하고 있는 치안 유지국 대원들이 보인다.
여기서 잡힐 수는 없었으니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했는데, 당장 입구 쪽을 조여오고 있는 상황.
그렇다면 탈출구는 하나밖에 없었다.
‘이 시간에 이게 뭔 짓이냐.’
바로 외부 벽면을 타고 나가는 것.
애쉬는 무너진 벽면을 건너가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동안 마음 가는 대로 살았기에 적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지금 자신을 노리고 습격한 게 ‘웃는 악마’인지, 아니면 ‘회사’나 다른 집단인지 모르겠지만, 오늘의 일은 반드시 기억해놨다가 언젠가 갚아줄 것이다.
그렇게 애쉬가 위험천만한 외벽 타기를 시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치안 유지국의 대원들이 객실까지 들어섰다.
“…이건 총자국이고, 이건 수류탄 류의 대인 폭발물 같습니다.”
“이쪽에도 있습니다! 첨단 기술이 적용된 무기 같은데…!”
어두운 전등이 모두 나간 객실 안을 후레쉬 하나로 비추며 들어서는 대원들. 그들은 입구에서부터 속속들이 주변을 살피며 보고를 이어갔다.
그리고 그러다 발견했다.
예리한 무언가에 목과 팔이 잘려나간 전투용 휴머노이드를.
“이건…….”
“…휴머노이드.”
“세상에.”
연방 법률로 강력하게 금지된 인간형 안드로이드. 그것을 발견한 치안 유지국 대원들은 침음을 삼켰다.
휴머노이드의 제작이 금지된 대외 명분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하여.
하지만 그것이 진짜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연방 정부에서 극도로 신경을 쓰고 있는 중범죄 중 하나이니만큼 윗선으로 보고가 올라가는 즉시 연방 정부 쪽에서 수십은 될 전문 수사관들을 보낼 현장이었다.
“…이걸 보고하면 한동안 난리가 나겠군.”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시 정부 치안 유지국의 상위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연방 정부의 공권력이 끼어들면 이곳 71구역의 치안 유지국은 아주 쑥대밭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대원들이 연속 야근과 근무의 끔찍한 미래를 상상하며 고개를 젓는 사이.
발소리도 없이 붉은 안광들이 어두운 객실 안에 스며들었다.
“흐윽!”
“켁…!”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제대로 듣기도 힘들 작은 신음 소리와 함께 생명의 불꽃이 하나씩 꺼져간다.
객실 내부에서 현장을 살피던 대원들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출동한 대원들의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은 뒤였다.
“컥…!”
“저, 적이다!!”
“젠장! 여기에 있는 것과 같은 휴머노…!”
투다다다당!
동료가 쓰러지자 반사적으로 외친 대원 하나.
그에 돌아본 다른 대원들은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는 붉은 안광의 주인들이 현장에 쓰러져 있는 휴머노이드와 같은 것들이라는 것을 알아챘지만, 그것은 의미가 없었다.
곧 그들은 모두 구멍난 고깃덩이가 되어 바닥을 굴렀으니까.
“현장 수습 완료. 페이즈 3 및 최종 전투 진행 준비.”
이동.
붉은 안광들 사이, 하얗게 빛나는 한 쌍의 눈동자가 뒤돌아 움직이자 휴머노이드들이 남성인지 여성인지도 알 수 없는 목소리의 명령에 뒤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약 30분 뒤.
현장에 도착한 후속 부대가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거친 전투의 흔적과, 같은 치안 유지국 대원들의 식지 않은 시체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