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90화 (190/230)

〈 190화 〉 11. 죽음과 함께하는 자(8)

* * *

“…왔군. 어이, 이쪽이야!”

애쉬가 개인 단말에 뜨는 신호를 보고 움직이던 중, 멀리서 그와 눈이 마주친 게빌이 외쳤다.

애쉬는 그에 천천히 발걸음을 그쪽으로 향했다.

아직 시간이 오전 5시도 되지 않았는데 일이 터진 호텔 쪽으로 향하는 차량들 때문에 도로가 소란스럽다.

새벽까지 길거리를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그런 치안 유지국 쪽의 차량을 보며 떠들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몰라. 저쪽에서 뭔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다는데….”

그게 이곳 71구역 치안 유지국이 이렇게 움직일 만 한 일인가?

치안 유지국 쪽 차량을 보는 모든 이들의 감상이었고, 71구역에서 나름 오랫동안 머물러온 애쉬도 같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설마 뭔 일이 또 생겼나.’

기껏해야 신고를 받고 출동한 팀 하나 정도가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많이 움직이는 걸 보면 그가 자리를 떠난 뒤 뭔가 일이 터진 것 같았다.

“아.”

잠시 뭔가 있는 것인가 생각하던 애쉬가 곧 깨달은 듯 작은 목소리를 흘렸다.

그러고 보면 애쉬 자신이 목과 팔을 떨어뜨린 뒤 방치한 휴머노이드 쪽의 문제일지도.

유성 그룹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기에 이번에도 그냥 지나쳤지만, 휴머노이드의 제작 및 사용은 매우 엄격하게 금지된 일이었다.

그것이 발견됐기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해도 동원되는 치안 유지국 쪽 인원이 좀 많아 보이긴 하지만 그것 외에는 감이 잡히는 부분이 없다.

“이봐, 애쉬. 놈은 어떻게 처리했지? 그리고 지금 호텔 쪽으로 향하는 치안 유지국 쪽 차량들은 대체….”

“우릴 습격한 녀석은 목을 떨궈버리긴 했는데, 놈이 휴머노이드였어.”

“…뭐?”

“예?!”

습격자가 휴머노이드였다는 애쉬의 말에 게빌은 물론이고 한밤중에 깨어나 정신이 없던 다니엘 벡까지 경악을 드러냈다.

휴머노이드의 생산 및 활용 금지는 무려 일반 법률도 아니고, 연방의 수정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사항이었다.

‘문명의 발전에도 인간의 존엄성은 지켜져야 하며 인간과 유사한, 인간처럼 행동하는 모든 안드로이드, 클론의 생산 및 배양은 엄격히 금지한다.’

수정 헌법의 몇 조 몇 항인지는 모르나 애쉬도 익히 알고 있는 수정 헌법의 어느 사항이었다.

무려 수정 헌법에서 ‘금지’라는 단어를 사용할 정도로 연방에서 강력하게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잘 알고 있는 다니엘 벡은 애쉬의 말에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중얼거렸다.

“휴머노이드라니, 완전히 정신이 나갔군요. 그래도 제가 있던 ‘아메르아’는 그런 곳이 아니었는데….”

“핫, 겨우 돈 몇 푼 받자고 목숨을 내던진 그쪽이 할 말은 아닐 텐데 말이지.”

그에 이어지는 게빌의 대꾸.

휴머노이드야 들키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숨길 수 있었지만, 우리의 의뢰인은 무조건 들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일을 저지르지 않았던가.

잡히면 편치 못한 죽음은 확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의뢰인의 목소리에 코웃음을 돌려준 게빌은 곧 애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뭐, 어쨌든. 잠깐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그래.”

“그쪽은….”

게빌이 다니엘 벡 쪽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지금부터 오갈 얘기는 굳이 의뢰인인 그에게까지 들려줄 필요가 없는 것.

아니, 지금 게빌 자신이 품고 있는 의구심은 오히려 의뢰인에게 들려주지 않는 게 맞을 부분이었다.

호위는 해야 했으니 일단 가까이 두는 게 맞긴 한데.

“잠깐 이 옆에서 얘기 좀 하고 올 테니까 기다려.”

“너, 너무 멀리 가지는 말아주세요.”

“바로 옆에서 할 테니까 걱정 마.”

애쉬가 다니엘 벡의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에 대답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얘기하고 온다고는 했지만, 기껏해야 10여 미터 정도에 불과한 거리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늦지 않게 반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거리는 유지한 셈이다.

그렇게 자리를 옮긴 애쉬와 게빌. 먼저 입을 연 것은 게빌 쪽이었다.

“호텔에서 나오면서부터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이번 습격은 의뢰인을 노린 게 아닌 것 같아.”

게빌은 자신이 이곳까지 움직이며 생각했던 것을 애쉬에게 얘기했다.

호텔에서 빠져나와 이동하며 공격을 받지 않았던 것부터 시작해서 의심이 가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게빌은 과연 뒷세계에서 오랫동안 굴러먹은 경력이 허툰 것은 아니었는지 애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설명을 모두 들은 애쉬가 고개를 끄덕여 거기에 동의했다.

“그래. 의뢰인을 노린다기엔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지.”

지금 돌아서 생각해보면 가장 처음 저격을 받았던 것도 의뢰인을 죽이기 위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은 그들 일행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애쉬를 노리고 쏘아진 탄환이었던 것이다.

물론, 탄환의 크기가 무슨 포탄에 가까웠으니만큼 피하지 못했다면 의뢰인과 게빌 또한 같이 피해를 봤겠지만 노리는 대상이 의뢰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 호위라는 것은 의뢰 수행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의뢰인을 생포하기 위해서 그들 호위를 먼저 처치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기엔 게빌 쪽으로 너무 초점이 향하질 않는다.

낮에 있던 저격부터 시작해 새벽에 있던 습격은 높은 확률로 애쉬 자신을 노린 것일 터였다.

“어디 예상 가는 곳은 있나?”

“글쎄, 잘 모르겠는데.”

게빌의 물음에 애쉬가 대답했다.

워낙에 적이 많다 보니 대체 어디서, 왜 자신을 노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그들을 덮친 습격자가 어디 한 곳에 속한 녀석이라면 기술력으로 그 범위를 좁혀볼 수 있겠으나, 고용된 외부 인력이라면 그게 불가능할 정도로 적이 많다 보니 좀처럼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럼 따로 떨어져 활동하는 게 좋겠군.”

“그러던가.”

지켜야 하는 이들이 호위 대상을 자신의 개인 사정 때문에 위험하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따로 활동하자는 게빌의 말에 애쉬도 순순히 동의했다.

게빌은 다니엘 벡과 함께 다니고, 애쉬는 자신을 노리는 놈들의 습격을 기다리며 대기하다 저쪽에 무슨 일이 생기면 호출에 응한다.

둘은 그렇게 합의를 본 뒤 불안한 기색의 다니엘 벡에게 돌아갔다.

“아, 오, 오셨군요.”

“그래. 그런데 이쪽은 이제 다시 갈 예정이야.”

“예? 애쉬 님이 가시면 어떻게….”

애쉬가 떠날 것이라는 게빌의 말에 다니엘 벡이 말도 안된다는 듯 반응했다.

그가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에 그만한 돈을 주고 의뢰한 이유가 무엇이던가. 바로 애쉬 론모어라는 해결사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런데 부하 하나만 남겨두고는 계약 기간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가버리겠다고?

그럼 그 막대한 금액을 투자한 이유가 없지 않은가.

심약한 다니엘 벡은 차마 그렇게까지 말하지 못했으나 그의 표정과 태도에서 그런 느낌이 여실히 드러났기에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에 그런 감정을 읽은 게빌이 차분히 설명했다.

“어차피 이 녀석도 우리한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 있을 거고, 또 나도 이름 좀 날린 몸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면서 게빌은 자신의 ‘골든 캐니언’이란 별명과 과거 ‘총잡이들의 여명’에 있었던 것을 알렸는데, 과연 리퍼슨 가문의 부자가 유지하던 그 유명세는 어디 가지 않았는지 다니엘 벡도 조금 납득 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 유명한 ‘골든 캐니언’이라면 어지간한 상황은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애쉬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섣부르게 판단해 죄송합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니엘 벡이 기분 나쁜 티를 냈던 것을 사과하고, 조심스럽게 부탁하자 애쉬와 게빌은 그것을 이해했다.

자신들이 같은 상황이었어도 비슷한 반응이긴 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 후 게빌과 애쉬는 마지막으로 짧은 대화를 나눴다.

“이제 이쪽은 사무실에 들러 파워 슈트를 갖고 다른 호텔을 잡을 건데 애쉬, 넌?”

“적당한 곳에서 유인해봐야지.”

애쉬가 게빌의 물음에 대답했다.

연방 법률이 무섭지도 않은지 휴머노이드까지 사용하는 놈들이지만, 외부의 시선을 신경 쓰긴 하는지 시선이 많이 쏠리는 곳에서는 대놓고 덤벼들 것 같지가 않았다.

지금 자신을 노리고 있는 놈들을 제대로 끌어내려면 그만큼 외진 곳으로 갈 수밖에.

물론 의뢰인에게서 너무 멀어져도 안 되니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기다릴 셈이었다.

게빌 쪽에서 연락이 오든, 아니면 자신을 노리는 습격자 쪽에서 다른 공격을 받든 할 때까지.

‘번화가 바로 바깥 정도면 되겠지.’

71구역 번화가까지 달려오는데 얼마 걸리지도 않았기에 여차하면 금방 올 수 있었고, 공권력의 시선이 닿지 않는 진짜 슬럼에 속한 부분이다 보니 습격자가 날뛰기도 편할 것이었다.

하루에도 시체가 수십 개씩은 치워지는 곳이 슬럼이었으니 말이다.

“이봐 애쉬.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놈들이 갖고 있던 장비도 심상치 않아 보이던데 조심해.”

“하, 내 걱정할 시간에 그쪽 샌님이나 잘 지키지그래.”

이쪽은 전혀 문제없을 테니까.

애쉬가 자신만만하게 내뱉은 말에 게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처럼 걱정을 해줬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저런 거라니. 정말 신경을 써줄 이유가 없는 녀석이다.

“그럼 이쪽은 이만 가보지.”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게빌과 다니엘 벡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떠났고, 혼자 남은 애쉬는 앞서 정했던 대로 번화가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며 개인 단말을 들어 연락했는데, 그 연락이 향할 곳은 당연히 한 곳밖에 없었다.

사건이 일어난 호텔의 객실에서 자신들이 머물렀다는 것을 들키면 굉장히, 매우매우 귀찮아질 게 틀림없으니 그것을 처리해줄 해커, 빌헬름에게 연락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오전 5시가 다 된 지금은 자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애쉬는 빌헬름의 주 활동시간이 새벽이라는 것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예상대로, 빌헬름은 애쉬의 연락을 신호음이 채 두 번도 가기 전에 받았다.

­ 네, 연락받았습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도움이 좀 필요해서. 71구역 번화가에 있는 ‘아이리스’ 호텔의 CCTV 영상을 모두 지워줬으면 하는데.”

­ 어렵진 않은 일이네요. 잠시만요.

빌헬름은 71구역 호텔 하나를 해킹하는 일은 연락을 끊을 필요까지도 없다는 듯 곧장 작업에 들어갔고, 일 분 남짓한 시간이 지났을 때 다시 애쉬에게 말을 걸었다.

­ 어, 확인했는데 누가 이미 손을 댄 모양인데요?

“누가 손을 댔다고?”

­ 네. 한참 전에 깔끔하게 지워둔 게 전문가의 솜씨 같던데.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그것을 행했을 이는 누구인지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애쉬를 습격했던 그쪽에서 처리한 것이겠지.

그런 애쉬의 반응을 본 빌헬름은 호텔 측 CCTV를 통해 본 것을 얘기했다.

­ 다행히 애쉬 씨가 한 건 아닌가 보네요. 그쪽에서 치안 유지국 대원들이 제법 죽어난 것 같던데, 누군진 몰라도 아주 벌집을 제대로 건드려놨어요.

“슬럼 주민들은 신경 안 써도 지들 목숨은 끔찍하게 신경 쓰는 놈들이니까.”

한둘도 아니고 열이 넘어가는 숫자가 한 자리에서 몰살당했으니 저렇게 과민반응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알겠어. 수고해라.”

­ 네. 혹시 모르는 일이니 애쉬 씨도 조심하시구요. 상대도 보통이 아닌 것 같던데.

애쉬의 인사에 빌헬름이 답하곤 연락을 끊었다.

게빌도 그렇고 빌헬름도 그렇고, 그의 실력을 알면서도 이렇게 걱정해주는 녀석들이 있는 걸 보면 이 세계에 와서 만든 것은 적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자신에게 걱정의 말을 건넨 이들은 아무도 듣지 못하지만,그래도 그들에게 애쉬가 대답하듯 말했다.

“조심하긴 해야지. 내가 아니라 이제부터 날 덮칠 놈들이.”

그리고 어느새 번화가 바깥까지 나온 그가 뒷쪽으로 시선을 향하자, 그곳의 어둠 속에서 수십은 될 붉은 안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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