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91화 (191/230)

〈 191화 〉 11. 죽음과 함께하는 자(9)

* * *

어둠 속에서 솟아나는 붉은 안광들.

대충 세어보기에도 그 숫자가 십여 개는 넘어 보인다. 애쉬가 그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많이도 몰려왔네.”

만약 지금 보이는 저것들 하나하나가 앞서 상대했던 휴머노이드와 같은 타입이라면 모두 쇳덩이라 그 무게가 상당할 텐데도 기동에 있어 소음 하나 발생하지 않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하기야, 그런 특별한 게 없었다면 호텔 객실 바로 앞까지 다가오기도 전에 미리 감지했겠지.

“이번엔 숨어서 총질이나 해대지는 않을 건가 봐?”

이제는 완전히 어둠 속에서 벗어나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휴머노이드들 앞에서 애쉬가 물었다.

서로 간의 거리는 이십여 미터.

차세대 장비로 무장한 채 붉은 안광을 흘리며 달빛을 받아 빛나고 있는 휴머노이드들의 모습은 장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위압감이 넘쳐났지만, 겨우 그런 것으로 애쉬의 기세를 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애쉬는 몸을 슬슬 긴장시키며 허리춤의 검에 손을 가져갔다.

일단 말을 던지긴 했으나 저 깡통들이 호응해줄 리는 만무했으니.

곧바로 이어질 전투에 대비하여 검을 뽑으려던 애쉬는 놈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잠시 그것을 멈췄다.

“이름, 애쉬 론모어. 성별, 남성. 나이, 불명. 출신지, 불명. 약 3년 전 71구역 슬럼에 나타나 ‘오마르의 망치’와 ‘베이론’을 비롯한 갱단들을 해체 시켰으며 현재는 해결사 활동을 하는 중.”

“하, 깡통들 사이에 인간도 하나 숨어 있었나?”

기계에 의해 변조된 것이 뻔히 티 나는 인간의 음성.

완전한 기계음과는 다른 그 목소리를 들은 애쉬가 자신의 앞에 모습도 드러내지 못하는 놈을 비웃었지만, 어디 있는지 모를 녀석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최근 ‘웃는 악마’의 부단장 둘과 전투, 하나는 처치했으며 다른 하나는 패퇴시킴. 평가 등급 11레벨.”

앞선 내용이 대외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었다면 뒤이어진 목소리의 내용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

애쉬는 거기서 단번에 상대방이 어디서 온 녀석인지 알 수 있었다.

‘역시 ‘회사’에서 보낸 놈인가보군.’

이 정도 퀄리티의 휴머노이드를 뽑아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원작 게임 속에서도 1티어 중의 1티어, 일명 0티어라 부르는 엔드템이었던 초진동 블레이드를 비롯한 첨단 병기들을 착용시켜 보낼 수 있는 곳이 그렇게 많을 리는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곳은 ‘회사’였는데, 지금 상대방의 입에서 나온 말로 거의 확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 상대방도 지금 입 밖으로 내뱉은 정보로 인해 자신이 배후를 알아챌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입 밖으로 그것을 꺼낸 이유는 뻔했다.

어차피 여태껏 꼬리조차 제대로 잡지 못했던 ‘회사’였고, 또 이곳에서 자신을 확실히 죽일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이다.

건방지게도.

“재밌네.”

애쉬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확실히 지금 나타난 적의 전력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호텔 객실을 완전히 뒤집으며 느꼈던 것처럼 저 휴머노이드들에 탑재된 전투 프로그램은 보통 수준이 아니었으며, 저들 사이에 숨어 있을 놈도 일반적인 녀석은 아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앞에 두고 승리를 확신한다?

애쉬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을 앞에 두고 확신하는 놈들의 면상을 박살 내버리는 것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 파악!

공격의 앞에 예고는 따로 없었다.

긴장시키고 있던 근육을 폭발시킨 애쉬는 빛살처럼 휴머노이드들에게 뛰어들어 새까만 칼날을 들이밀었다.

­씨이잉!

그런 애쉬의 갑작스런 움직임에도 휴머노이드들은 내부 회로에 입력된 전투 프로그램대로 침착하게 움직이며 무기에 시동을 걸였지만, 가장 앞에 있던 놈은 애쉬의 검격에 그 무서운 초진동 블레이드를 제대로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팔이 잘려나갔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파고들어 난전을 유도하려 했던 애쉬는 아직 쓰러지지도 않은 휴머노이드를 가르고 튀어나오는 붉은 칼날에 뒤로 뺄 수밖에 없었다.

­ 카가가가가각!!

팔이 잘려나간 놈은 효용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인지 그와 함께 반으로 갈라보려 했던 것 같지만 두 쪽이 나며 쓰러진 것은 휴머노이드뿐.

애쉬는 예상치 못한 공격에 조금 놀랐지만 그래도 손쉽게 피해냈다.

그리고 그 뒤로 곧장 이어지는 저격 또한.

­ 콰아아앙!!

앞서 한번 겪었던 포탄만 한 저격 탄환이 땅에 처박히며 아스팔트 파편을 흩뿌린다.

애쉬는 느려진 시간 속에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돌덩이들을 가볍게 쳐내며 탄환이 날아온 곳을 바라봤다.

‘아주 제대로 작정했군.’

약 2km정도 밖. 제 몸집만 한 저격총 한 자루를 든 채 스코프를 그에게 향하고 있는 휴머노이드의 모습이 확대되듯 보였다.

그리고 그 외에도 그를 노리고 있는 것 같은 몇 개의 감각이 더 느껴졌는데, 아주 일대에 제대로 포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호텔에서 치안 유지국 대원들을 죽인 것도 지금처럼 소란을 일으키는 동안 바깥에서의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함이었을지 모른다.

뭐,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애쉬는 이번에는 다른 각도에서 날아오는 저격 탄환을 피하며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휴머노이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 콰아앙!!

“흡!”

숨을 한 차례 들이쉬며 진심을 다해 검을 움직인다.

씨이잉! 살벌하게 공기를 울리는 초진동 블레이드의 날이 아닌, 검면을 밀어 그것을 빗겨내며 그의 검끝이 휴머노이드의 금속질 몸체를 난자했다.

아무리 통상적인 강화인간, 사이보그보다 내구성이 뛰어난 안드로이드라곤 해도 제 몸에 검이 열댓 번이나 박히고도 멀쩡할 수는 없었다.

­ 지지직!

어디 배터리 부분을 찌르기라도 했는지 검을 타고 손을 저릿하게 만드는 전류를 느낀 애쉬가 그것을 걷어차며 검을 뽑아내자 곧 제 친구들 사이로 나가떨어진 휴머노이드는 폭탄이라도 된 것처럼 콰앙! 하고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그러나.

­ 투다다다다!!

폭발로 일어난 연기를 꿰뚫고 쏟아지는 탄환의 비.

역시나 일반적인 탄환은 아닌 듯 애쉬가 몸을 피하자 그것은 애쉬가 있던 자리 뒤편의 건물 외벽을 단번에 갈아버렸다.

“으아아악!”

덕분에 소란을 피해 움직이려던 슬럼의 주민 중 피해자가 생겨났지만, 거기에 신경 쓰고 있을 틈은 없다.

탄환의 비가 쉴 새 없이 됐지만 애쉬가 그것을 피하고 튕겨내자 이어지는 각종 폭발물의 투척.

개중에는 단순한 수류탄뿐 아니라 일순간 주변의 전자기기를 모두 마비시키는 EMP탄이나 주변에 백린 가루를 흩뿌려 불태우는 백린탄 따위도 있었지만, 애쉬를 당황시킨 것은 적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들이 아니었다.

­ 삐이이이!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폭발물들을 단 하나조차 놓치지 않고 두 눈에 담으며 피하는 사이 일순간 터져 나온 섬광과 소음.

“크윽!”

일생동안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강렬한 빛이 눈을 불태우는 것 같았고, 귀를 찢을 듯한 소음은 그의 머릿속을 이명으로 가득 채웠다.

그야말로 불의 일격에 한 방 제대로 맞고 만 것이다.

“이런 씹…!”

아무리 그라지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시각과 청각을 잃은 채로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다.

당황한 애쉬가 속설을 내뱉으며 잠시 몸을 멈추자 그 틈을 놓칠 적이 아니었다.

­ 투우웅, 투웅!

빛도, 소리도 없는 세계에서 단 한 명을 노리고 쏟아지는 작고 빠른 무언가.

애쉬는 처음 겪는 상황이었지만 그 급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각, 본능이 이끄는 대로 움직여 그것을 피했다.

­ 핏!

하지만 역시나 완전하진 않았는지 뺨을 가볍게 건들고 지나간다.

아마도 적이 쏘아낸 탄환일 그것은 그냥 스치고 마는 수준이 아니라 뺨의 살점을 얕게 뜯어낼 정도로 위험했다.

애쉬는 감은 눈에서는 눈물을, 그리고 총탄에 패인 뺨에서는 피를 흘렸지만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잠시 마비된 시청각은 조금만 지나면 어떻게든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아주 작은 위험 신호에도 최대한 민감하게 반응하며 움직임으로 커버하는 수밖에 없었다.

­ 촤아악!

눈을 꽉 감은 채 모든 것을 자신의 육감에 의지하고 있음에도 애쉬는 자신을 향하고 휘둘러지는 초진동 블레이드 하나를 피함과 동시에 그것을 휘두른 놈의 목을 시원하게 쳐 날렸다.

“이게 끝이야? 직접 나와보지 그래!”

눈과 귀는 비록 멀쩡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깡통들에게 당할 자신이 아니다.

애쉬는 그것을 직접 증명하며 외쳤고, 휴머노이드들의 사이에 모습을 숨긴 채 자신을 찾는 목소리를 듣던 백색의 눈동자 한 쌍이 중얼거렸다.

“…상정 외.”

‘이론상 인간의 감각 정보 중 시각의 의존도는 70% 이상. 청각 또한 남은 30% 중 절반 이상을 차지.’

대충 잡아도 90%에 가까운 감각이 완전히 막혔는데도 상대방은 쏟아지는 탄환을, 저격을, 초진동 블레이드의 궤적을 읽고 피하고 있다.

대체 어떻게?

알려지지 않은 개조 파츠의 존재?

그것을 의심해 다시 한번 스캔해봐도 보이는 것은 그 흔한 신경 인터페이스 하나 존재하지 않은 인간의 육체다.

스캔 모드로 들어가 푸른빛을 띠는 백색의 눈동자가 계속해서 목표물, 애쉬 론모어를 그 안에 담았다.

‘……불가능. 시뮬레이션 결과 집중포화 사이에서 시청각이 없는 강화 인간이 3초 이상 살아남을 확률 0.03%.’

그리고 그 확률은 생존 시간이 1초씩 늘어날 때마다 소수점 아래로 0이 셀 수 없이 많아진다.

통계학상으로는 사실상 확률이 없다고 해도 좋을 일이었는데, 저 남자는 지금 그 말도 안 되는 확률을 뚫고선 그것을 현실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 아슬아슬 곡예 하듯 움직이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효율과 간결함, 그리고 속도를 추구하는 지휘자의 눈에 아름답게까지 보였다.

몇 초 정도, 홀린 듯 그것을 바라보던 백색의 눈동자는 곧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움직임의 극한에 다다른 것 같은 그 모습에는 감탄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소란이 길어지고 있는 만큼 새벽임에도 점차 외부의 시선이 많이 달라붙어 하나하나 차단하기에 거슬리는 것도 사실.

그러니 이제는 직접 움직여 끝을 봐야 했다.

백색 눈동자를 비롯해 검은 슈트를 입고 있는 전신이 허공에 스며들 듯 사라진다.

하지만 그 위치에서 정말로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저 한계까지 진화한 광학미채 기술을 이용해서 모습을 감췄을 뿐.

그것은 과학 기술로 모습을 감춘 것뿐이었지만, 거기에 육중한 무게의 휴머노이드들마저 기척을 완벽에 가깝게 숨길 수 있도록 만든 침투 프로그램의 원본이 된 움직임이 더해지자 연방의 모든 고위층 인사들이 그 방문을 두려워했던 ‘사신’이 이 자리에 나타났다.

‘사신’, 다른 말로는 ‘죽음과 함께하는 자’라고 불렸던 이는 자기 자신조차 그 존재를 확신할 수 없을 만큼 은밀한 움직임으로 이동하며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10M 밖 원거리 총격의 성공 확률, 1.8%.’

거기서 더 가까워진다면 물론 탄환이 목표물에 닿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줄어들겠지만, 그런다고 드라마틱한 확률의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근거리의 공격이라면?

허공에 스며든 백색의 눈동자 위에 시뮬레이션 결과가 출력된다.

­ 목표물 즉시 절명 확률 53.3%, 목표물 중독 후 1분 이내 절명 확률 15.6%

대충 70%에 가까운 확률이 암살의 유효성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남은 30%는.

­ 목표물의 반격으로 사망할 확률 30.2%, 그외 1.1%…….

죽음을 관장하는 ‘사신’에게 역으로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으니.

하지만 ‘죽음과 함께하는 자’라고도 불리는 ‘사신’이 선택하는 것은 언제나 효율.

그 존재에게 임무의 실패는 곧 죽음이었다. ‘사신’이 ‘죽음과 함께하는 자’라고 불리는 이유는 곧 자신의 목에도 죽음의 낫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 스르륵.

‘사신’이라 불리는 존재의 품에서 짧은 날붙이 하나가 뽑혀 나왔다.

애쉬의 것과는 달리 빛의 반사를 없애기 위해 검게 칠한 단검.

짤막한 검신 내부에 혈관처럼 만들어진 라인과 거기에 흐르는 독액이 인상 깊은 단검은 곧 자신의 주인과 마찬가지로 허공에 스며들어 모습을 감추며 목표물에게 가까워졌다.

자신의 치명적인 독니 앞에 목표물이 그 하얀 목덜미를 드러내길 기다리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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