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92화 (192/230)

〈 192화 〉 11. 죽음과 함께하는 자(10)

* * *

­ 콰직!

적에게서 뽑아낸 초진동 블레이드, 파워 공급이 없이는 작동도 안 하는 그 쇳덩이를 힘껏 내려치자 애쉬 자신이 깡통이라 부르던 것처럼 덤벼들던 휴머노이드 하나의 머리가 찌그러지며 바닥에 처박힌다.

그것으로 이곳저곳이 잘리거나 박살 난 채 바닥을 구르는 쇳덩이들의 숫자도 열에 가까워졌지만, 아직도 서 있는 놈들의 숫자가 더 많았다.

“흡!”

­ 티디디디딩!

계속해서 빗발치는 탄환을 걷어내며 전투를 지속하고, 가끔 날카롭게 찔러 들어오는 저격은 발을 한 걸음 움직이는 것으로 피한다.

애쉬는 눈을 감고 움직이는 그 과정에서 더욱 더 자신의 움직임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웃는 악마’의 부단장이었던 ‘제일 던컨’.

예전에 있었던 그와의 전투가 애쉬의 움직임을 한층 더 높은 차원까지 올려놓은 것이다.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이기만 했던 애쉬에게 배우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체계’라는 것이 깃들었고, 효율적이긴 했어도 다소 거칠었던 움직임이 깔끔하게 다듬어졌다.

제일 던컨에게서 훔쳐 배운 것 중 그렇게 대단한 것은 없었지만, 그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애쉬는 체감이 될 정도의 차이를 느끼고 있었다.

‘여기선 이렇게.’

애쉬의 검이 탄환과 맞닿은 순간 그는 가볍게 손목을 틀었다.

그에 작은 불똥이 튀는 것과 함께 탄환이 방향을 바꿔 그의 몸을 피해갔다. 굳이 힘을 쓰지 않아도 이런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원래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는 방법이었지만 한 번의 전투로 그 모든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더 이상 그는 탄환을 쳐내며 힘을 소모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이 무척이나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느꼈으니까.

굳이 탄환을 쳐낼 것도 없이, 검으로 조금만 그 길을 틀어주면 얼마든지 그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 콰앙!

물론, 저 무식하게 커다란 탄환으로 행해지는 저격은 받아내는 것 자체에 큰 힘이 소모되는 일이었기에 이런 식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탄막을 이루는 탄환의 숫자가 너무 많지만 않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이러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촤아악!

저격을 피하자 그 탄환이 바닥에 박혀 들며 아스팔트 파편을 주변에 흩뿌린다.

애쉬는 한 차례 휘두르는 것으로 자신에게 향하는 파편을 휩쓸어 보내고, 자신의 뒤쪽에서 발소리를 죽인 채 다가오다 어느 순간 덮쳐드는 초진동 블레이드의 검면을 바깥으로 튕겨냈다.

­ 쩌엉!

초진동 블레이드의 칼날을 받아냈다면 그가 들고 있는 검 또한 갈려 나갔겠지만, 날이 아닌 검면에는 그럴만한 파괴력이 없었다.

커다란 충격을 받으며 밀려난 초진동 블레이드가 일대를 울리며 떨어져 나간다.

기척을 숨긴 채 다가온 휴머노이드는 초진동 블레이드를 들고 있던 팔이 바깥으로 튕겨나자 반대 손에 들고 있던 폭발물을 그에게 던졌지만, 눈 깜짝할 새 휘둘러진 수 번의 검격은 그것이 채 폭발하기도 전에 십여 등분으로 나누어 베어버렸다.

화관까지 불이 닿기 전에 완전히 분해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애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폭발물이 분해되어 흩뿌려지는 화약과 파편 따위를 몸으로 받아 지나치며 자신에게 그것을 던졌던 휴머노이드의 머리에서부터 사타구니까지를 정확히 반으로 갈라버렸다.

­ 신체 손상 98%. 가동…불가능.

­ 치지직! 퍼엉!!

인간이 아니라 모든 것이 기계로 이뤄진 안드로이드답게 그 단말마도 딱딱하기 그지없다.

애쉬는 반으로 토막 난 휴머노이드가 미약한 전류를 방출함과 동시에 폭발하는 것을 피하곤 다시 감각을 집중해 주변으로 뿌렸다.

‘과연 뭘 노리고 있을까.’

이것으로 딱 열에 달하는 휴머노이드가 파괴됐다.

이 깡통들 사이에 숨어있던 목소리의 주인도 바보가 아니라면 이것들로는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겠지.

이것들 하나하나가 값비싼 자산일 텐데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이렇게 그냥 박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전투를 시작한 지 벌써 10여 분이 지났는데, 아무리 총격전이 일상인 슬럼이라곤 하지만 이 시간에 이런 소란이 벌어지면 관심을 갖고 나오는 주민들도 많을 터.

휴머노이드를 사용하고 있기에 바깥에 노출될 수 없는 상대방은 어떻게든 짧은 시간 내에 그와 결판을 봐야 할 상황이다.

그리고 그가 해야 할 것은 상대방이 노리는 것을 제대로 포착하고 받아치는 것.

애쉬는 고성능 레이더만큼이나 뛰어난 자신의 감각에 의지하여 총격을 피하며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반쯤 맛이 갔던 청각은 거의 다 되돌아왔고, 불타는 것 같은 통증에 시달리며 눈물을 줄줄 흘리던 눈도 슬슬 떠도 될 것 같았다.

애쉬는 쓰라린 통증을 참아내고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흐.”

아직 눈물이 고여 있어 흐릿한 시야를 붉은 안광과 거무튀튀한 색으로 칠해진 휴머노이드들이 가득 채운다.

그러던 중 애쉬는 때마침 자신의 시야 외곽에서 몸이 옅어지더니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몇몇 개체를 발견했다.

‘노리는 게 저거였나?’

광학미채.

빛의 굴절을 이용해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투명하게 숨기는 과학 기술의 산물.

이진현이 있던 지구에서는 제대로 개발조차 되지 않은 기술이었지만, 애쉬 론모어의 세계에서는 군용으로 개발이 모두 끝난 물건이다.

광학미채는 총 5개 등급으로 구분되며 그 은폐 수준에 따라 등급이 달라지는데, 지금 애쉬의 눈앞에서 완벽히 모습을 감춘 것은 빛의 굴절에 의해 허공에 어색한 느낌이 남지 않는 것으로 보아 못해도 4등급 이상.

적외선 서치나 소리의 외부 확산까지 막아내는지는 아직 정확히 모르겠으나 만약 그런 것까지 가능하다면 3등급이나 2등급까지 올라갈지도 모른다.

어떤 방법으로 저 많은 전투용 휴머노이드들을 이곳까지 옮겨왔나 했는데, 저런 값비싼 군용물품을 사용했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아주 돈지랄을 해놨…군!”

정면에서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블레이드를 피한 뒤 곧장 자신의 자리에 떨어지는 폭발물과 저격을 피해 몸을 띄운 애쉬가 생각했다.

지금 바닥을 구르고 있는 휴머노이드 하나하나의 가격은 과연 얼마나 될까.

당장 보이는 장비만 해도 그 값어치를 예상하기 힘들 정도인데, 거기에 광학미채와 아직 드러내지 않았을 기능들을 생각해보면 애쉬가 지금까지 긁어모은 모든 금액을 합친다고 한들 여기에 있는 휴머노이드를 몇 체나 만들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것들을 수십 체나 끌고 왔으니, 그야말로 돈지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대충 알겠어.’

거기까지 확인한 애쉬는 여태까지 의심해왔던 ‘회사’의 정체가 어느 정도 눈앞에 잡히는 것 같았다.

솔직히 이 정도까지 왔는데 감조차 잡지 못하면 그것도 이상할 터.

그만한 기술력, 재력, 권력을 갖고 있는 곳은 연방 전체를 통틀어도 ‘리델’, ‘츠미모토’, ‘유성’의 3대 기업체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그중에서도 ‘유성’은 제외해야 했으니 남은 곳은 단 둘.

‘리델’과 ‘츠미모토’다.

그중에서도 애쉬가 가장 크게 의심하고 있는 곳은 당연히 ‘리델’쪽이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규모가 함께 3대 기업체로 꼽히는 다른 두 곳에 비해 압도적으로 컸기 때문이다.

일단은 한데 묶이고 있지만, 사실상 다른 둘이 범접할 수 없는 곳에 ‘리델’이 위치하고, 그 밑에 ‘유성’과 ‘츠미모토’가 있는 수준이었으니 의심이 가장 크게 갈 만했다.

­ 피잉!

“하!”

잠시 3대 기업체에 대해 생각하다 어느 순간 일반적인 탄환보다 훨씬 가벼운 소리와 함께 배는 빠른 속도로 날아든 탄환을 가까스로 피한 애쉬가 탄환이 날아온 곳으로 시선을 보냈다.

그곳에서 보이는 것은 탄환에 반쯤 갈려 나간 담벼락 하나뿐.

하지만 애쉬는 자신의 감각으로 그곳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광학미채로 위장한 휴머노이드들이 그를 둘러싸는 식으로 공간을 점유하고 본격적인 공세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완전히 끝을 내겠다고 마음먹은 것인지 이때부터 그를 향해 쏟아지는 탄환들도 일반적인 탄환보다 탄속이 훨씬 빠른 것들로 바뀌어 있었다.

­ 피잉! 팅! 티디딩!

엄청난 속도로 들이닥치는 탄환들. 애쉬는 조금 여유 있었던 여태까지와 달리 급박하게 몸을 움직였다.

머리, 가슴, 목, 어깨, 팔, 다리.

전신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탄환의 세례에 전력을 다해 움직이던 애쉬는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뒤편에서 다가오는 기척에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 카가가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불똥이 마구 튀며 그의 검이 갈려 나간다.

광학미채를 유지한 채 다가오다 애쉬가 검을 휘두르자 미리 초진동 블레이드를 들고 대기하던 녀석이 그것을 받아낸 것이다.

12레벨의 공격력 보정을 받은 검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버티는 것을 넘어 역으로 갈아버리는 초진동 블레이드의 반발력에 급히 검을 회수한 애쉬는 바로 땅을 박차고 감각에 의지한 채 검을 휘둘렀다.

벨 수 없는 초진동 블레이드는 피하고, 단번에 베어버릴 수 있는 팔이나 몸을 노린다.

­ 촤악!

한 박자 늦었지만, 휴머노이드는 전투 프로그램에 따라 반응하긴 했는지 검 끝에 걸리는 감각이 얕았다.

목을 정확히 떨굴 수 있는 것을 절반 정도만 가르는 정도에서 멈추고 만 것이다.

다만, 그것만으로도 광학미채로 숨기고 있던 모습을 드러내기엔 충분했다.

­ 파지직.

검이 반쯤 베고 지나간 허공에서 전깃불이 튀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검은 몸체가 드러난다. 누전과 몸체 파손으로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애쉬는 그것을 완전히 마무리 지으려 했지만, 자신이 마무리 지으려던 휴머노이드의 가슴이 열리며 튀어나온 무언가에 깜짝 놀라 그것을 쳐낼 수밖에 없었다.

­ 푸슉!

잔뜩 응축돼 있던 가스를 동력으로 쏘아지는 흰 빛깔의 무언가.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그것에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쳐내긴 했으나,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적이 노리던 것이었다.

­ 찰칵!

기관이 작동하며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하얀 갈고리가 펼쳐지며 검을 콱 물고 늘어진다.

그것의 재질은 초진동 블레이드와 같은 것을 사용하고 있는지 쉽게 잘려나갈 생각도 않았다.

“뭔….”

애쉬가 얽히고설킨 그것을 풀어내려고 할 때였다.

­ 푸욱!

한 순간, 불과 일이 미터나 떨어져 있었을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허공에서 검은 빛깔의 단검이 나타나 그의 어깨에 꽂혀 들었다.

“……!!”

몸속으로 파고드는 차갑고 예리한 감촉과, 느껴지는 격통.

목을 노린 듯했지만, 그것이 목의 피부에 닿는 순간 반응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그대로 목에 박혀 들어 절명했을지도 몰랐다.

애쉬는 그것이 어깨에 꽂히는 감각을 느낀 순간 피하는 것은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아챘고, 그것을 피하거나 막으려고 노력하는 대신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상대방의 손목이 있는 곳을 전력을 다해 붙잡았다.

­ 우드드득!

기계의 차가운 감촉이 아닌, 인간의 뼈가 바스라지는 소름 끼치는 감촉이 손아귀에 가득 찬다.

하지만 인간의 것임이 분명한 그 분쇄 골절의 상황에도 마땅히 뒤따라야 할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애쉬는 완전히 박살을 내버린 그 손목을 놓지 않은 채 몸을 뒤틀며 손목의 주인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급박한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나온, 그림 같은 메치기의 정석이었다.

자신들의 통제자가 잡혔기 때문일까. 휴머노이드들이 쏟아내던 탄환이 멎었고, 애쉬는 일순간 모든 소음이 가라앉은 상황에서 자신의 어깨에 꽂힌 단검을 뽑아냈다.

다행히 미리 대비하고 받아냈기에 단검 자체로 입은 상처는 치명상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단검에 새겨진 회로에 흐르던 독액이 주입됐는지 새까만 피가 줄줄 흐른다

어지간히도 효력이 강한 독이었는지 애쉬는 벌써부터 머리가 어지러워짐을 느끼며 바닥에 꽂힌 상대방을 바라봤다.

­ 위이잉.

작은 기계음과 함께 육각 판넬이 뒤집히듯 광학미채가 걷히고, 감히 자신의 어깨에 굵직한 쇠침을 박아넣은 상대의 모습이 드러난다.

새하얀 머리칼. 그리고 동공과 눈동자의 구분선이 명확히 그어져 신비하게까지 보이는 인공 눈동자.

전신에는 몸에 딱 달라붙는 슈트를 입고 있는 상대방을 본 애쉬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여자?”

손목이 완전히 으스러진 데다 바닥에 내리꽂히며 그 부상을 다시 한번 뒤집어놨음에도 비명 한번 지르지 않았던 상대방은 예상치도 못한 미모의 여성이었다.

애쉬가 정말 뜻밖의 정체에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머뭇거린 순간이었다.

­ 휘익!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는지 살짝 찡그린 인상의 암살자는 그 새를 놓치지 않고 잡힌 반댓 손으로 다른 단검을 뽑아 휘둘렀고, 애쉬는 자신의 손목이 잘리지 않으려면 잡고 있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잡혀있던 손목이 놓이자 탄력 있는 움직임으로 몸을 단숨에 일으킨 상대방.

애쉬는 자신의 어깨에서 쏟아지는 피를 느끼며 다시 허공으로 모습을 감추는 암살자를 바라봤다.

“하, 젠장.”

저런 미인은 죽이고 싶지 않은데.

대량의 독이 혈관 속을 흐르며 몸을 갉아 먹는 사이에도 애쉬는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가 아직 몸이 멀쩡하게 움직일 때 끝을 보기 위해 다시 움직이려던 때.

­ 왜애애애앵!!

멀리서부터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전투 시작 20분. 치안 유지국에서 드디어 그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이곳으로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이렌 소리를 들은 것은 애쉬뿐이 아니었는지, 휴머노이드들은 급히 이곳저곳 파손되어 바닥에 널브러진 다른 휴머노이드들을 챙겨 광학미채로 모습을 감췄다.

“이대로 가겠다고? 어딜…!”

이대로 떠나려는 듯한 기척에 애쉬는 꼬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바로 달려들려 했지만, 허공에서 온갖 폭발물과 연막탄, 가스탄들이 날아들었다.

­ 콰아앙!!

­ 취이이이익!

그것들이 경로를 틀어막고 여기저기서 터지고 흩뿌리며 난리를 치는 통에 그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고, 그 사이 멀어진 기척들은 완전히 그의 감각권에서 벗어나 사라졌다.

그에 애쉬도 어쩔 수 없이 현장에서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계속 있으면 이번엔 치안 유지국에 쫓길 게 분명했으니까.

그렇게 애쉬도 자리를 벗어났고, 그 뒤로 십여분 정도를 빠르게 움직이던 도중 어느 인적 없는 골목길의 담벼락에 몸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으윽…, 망할. 효과 한번 제대로네.”

어깨의 출혈도 출혈이었지만, 지독한 독 때문에 몸이 더 이상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애쉬는 힘없는 손으로 그 전투 속에서도 멀쩡한 개인 단말을 꺼내 들어 손이 가는 대로 연락했다.

뚜르르르, 짧게 신호가 가더니 곧 연락을 받은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응. 당신이 먼저 연락하다니, 무슨 일이야?

“하아, 여기. 부하들 좀 보내줘.”

­ 무슨 일 있어? 목소리는 또 왜 그렇게….

“윽, 의사도 한 명. 최대한 빨리….”

­ 애쉬.애쉬?

흐려지는 정신 속에서 애쉬는 마지막으로 힘겹게 내뱉었고, 답지 않게 자신을 다급히 부르는 여성, 레이라의 목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잃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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