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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201화 (201/230)

〈 201화 〉 12. 린느 데 파르셰(4)

* * *

린느 데 파르셰.

그녀의 아버지이자 스승이며 동시에 전대 가주였던 이는 어릴 적 그녀를 향해 항상 가르쳤다.

‘닌자는 도구이며, 도구에게 자아는 필요 없다.’

도구란, 닌자란 그런 것이다.

감정도, 의지도 갖지 않고 그저 주인이 휘두르는 대로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될 뿐인 물건.

도구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눈물 흘리지도, 분노하지도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가르침에 따라 그녀는 감정을 제거하는 훈련을 받았고, 뇌 내에 분비되는 호르몬을 조절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이식했다.

그 외에도 고문을 버티는 훈련, 작은 생명체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맨손으로 그 모든 생명의 목숨을 거두는 훈련 등등.

인격을 죽이고 인간을 도구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그 모든 것을 견디고 완성된 그녀는10대의 어린 나이로 전대 가주를 암살하며 가문과 사명을 이어받았다.

후계가 가문을 승계받기 위해서는 전대 가주를 암살에 성공해야 한다는, 대대로 내려온 전통에 따라서.

그 당시의 감각은 어땠더라.

잠시 돌아본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유일한 혈육의 숨을 거둘 때를 떠올렸다.

전대 가주의 사인은 단순했다. 예리한 와이어에 의한 전신 분할.

그는 아마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갔을 것이다.

자신을 평생 키워온 혈육이자 스승을 죽인 그녀는 그저 가만히 서서 죽은 전대 가주를 내려다봤었더랬다.

충격적일 것도 없었다. 린느 데 파르셰라는 닌자는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도구였기에.

피를 보는 일에 어찌나 감정이 무뎌졌던지, 유일한 혈육을 제 손으로 죽이는 것보다 차라리 처음 살생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훈련을 할 때가 더 충격적이었을 정도다.

그렇게 전대 가주를 죽인 그녀는 그 시체가 썩지 않도록 잘 처분하고 돌아와 정해진 대로 움직였다.

자신의 손으로 살해한 전대 가주 대신에 ‘사신’ 혹은 ‘죽음과 함께하는 자’라 불리는 뒷세계의 암살자로서 활동을 이어갔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

그런데 그녀는 왜 지금 이런 어울리지도 않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의식중에 과거를 돌아보던 린느는 그 의식의 흐름 속에서 빠져나오며 의문을 품었다.

자신은 분명 며칠 간 주인에게 자신의 유능함을 보여줄 겸 그의 피를 얻기 위해 모습을 감춘 채 그를 따라다녔고, 기회를 노리며 움직였다.

그리고 끝까지 직접 피를 얻어내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주인이 될 적합자에게서 허락과 함께 내려진 피 한 방울을 받아들였었지.

그리고….

그리고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

자기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느끼고 있었으나 설마 정신을 잃은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은 꿈속?

‘…어째서.’

그녀가 생각했다.

꿈이라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생소한 것이었다.

왜냐면 뇌 내에 분비되는 호르몬 작용이 모두 통제에 들어가면서 수면 중 일어나는 뇌의 활동 또한 항상 일정한 상태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꿈 자체를 꾸지 않는다는 것.

신경 인터페이스를 이식한 뒤로 꿈이라는 것을 꿔본 적이 없던 린느는 정말로 오랜만에 들어온 꿈속에서 잠시 자신이 이렇게 오랜만에 꿈이라는 것에 빠져든 이유를 생각해봤고, 어렵지 않게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호르몬 및 뇌파 제어 실패.’

그 모든 것을 통제하던 신경 인터페이스는 바이러스 때문에 그녀의 손으로 뜯어낸 지 오래. 새로 연결한 신경 인터페이스는 개조 신체 동기화만 겨우 끝낸 간이 이식 상태였다.

모든 신체 신경에까지 연결을 끝내기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평생 수집한 자기 자신의 신체 데이터를 검토한 결과 문제가 없을 것이라 판단하여 제거한 것이었는데, 그 영향이 지금 바로 나타나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꿀 리 없는 꿈을 꾸고 있으며, 어떤 감정도 들지 않는 게 당연할 과거를 회상하며 묘한 기분이 빠진다.

평소 제어해왔던 호르몬이 움직이며 그녀를 도구가 아닌 인간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위험.’

지금은 그나마 제어되고 있던 호르몬들이 관성처럼 적게 분비되고 있는 것 같았지만, 현 상태가 일정 이상 유지된다면 최악의 경우 그녀는 완성된 닌자가 아니라 인간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뇌 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라는 것은 인간의 성격과 취향, 심지어는 신체까지도 바꿀 정도로 엄청난 힘을 갖고 있었기에 어떤 경우에도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원인은 신경 인터페이스 간이 교체 및 고열.’

호르몬을 제어하는 신경 인터페이스를 적출 해낸 상태에서 일반인이라면 쇼크사해도 이상치 않을 고통을 겪은 데다 수면과 식사까지 걸렀으니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열이 난다는 것은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신체가 그만큼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는바.

그 모든 것이 다시 활성화되기 전에 통제력을 갖춰야 한다.

‘우선 순위 설정.’

최우선이라고 하면 역시 꿈에서 깨어나는 것, 각성이었으며 그 다음은 바로 간이 연결된 신경 인터페이스를 제대로 박아넣는 것이다.

호르몬의 통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가 모르는 부분에서 작용하고 있을 것이었으며, 그로 인해 생길지도 모르는 변화는 그녀에게 작은 두려움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두려움?’

급히 정신을 일깨우려던 그녀가 자신의 생각에 잠시 멈칫했다.

또. 또다. 다시 한 번 있어선 안 되는 감정이 생겨나고 말았다.

그녀는 어떻게든 꿈인지 뭔지 모를 공간에 갇힌 자신의 정신을 깨우기 위해 집중했고, 그런 그녀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귓가에 그녀를 두고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사람 몸 상태가 이런지.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이 났을 겁니다.”

“어떤데?”

“고열은 물론이고 빈혈기도 있는 데다 최근 신체를 개조한 것 같은데 그 부위가….”

“…음.”

신체를 개조한 우측 팔목을 덮고 있던 이불을 살짝 걷는 것이 느껴진다. 이제는 그녀의 주인이 된 남자가 작게 침음을 흘리는 것도.

의사거나 관련 직종의 전문가 정도로 보이는 목소리가 보았냐는 듯 말했다.

“신체를 그냥 개조한 것도 아니고, 잘라낸 다음 거기에 결합부를 삽입한 모양입니다. 아직 혈액이 베어나오는 게 보이시죠? 이 상태라면 얼마 가지 않아 곪다 못해 썩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이쪽에서 어떻게 해줄 수 있겠지?”

“가불가만 따지자면 가능하긴 합니다만….”

주인의 물음에 말끝을 흐리는 목소리.

지금 그녀의 오른 팔목은 누가 확인해도 불법 신체 개조의 모습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상태였다.

마무리만 깔끔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해도 그런 일에 동참하라는 말이었으니 꺼려질 수밖에.

잘못해서 신고라도 들어가면 인생이 망하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됐으니까 이거나 받아.”

­ 툭.

주인, 애쉬 론모어가 남자를 향해 무언가를 건네는 소리가 들렸다. 가벼운 소리로 보아 부피가 있는 물건은 아닌 것 같다.

“넉넉히 넣었으니까 빨리 수술이나 들어가.”

“…예. 알겠습니다.”

주인이 다른 목소리에게 넘긴 물건은 크레딧카드거나 그와 비슷한 현물의 가치를 지닌 물건인 것 같았다.

한 차례 뜸을 들인 목소리가 대답했고, 곧 그녀가 누워 있는 침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달그락, 덜컹.

침상은 의료용으로 제작된 이동식 침상이었는지 바퀴가 구르며 턱에 살짝 걸리거나 틈을 밟으며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수술이 진행될 곳으로 이동하는 중에 주인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깨어 있는 걸 아니까 미리 말해두겠는데, 혹시라도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대가는 톡톡히 받아낼 테니까.”

“…….”

예전에는 작은 실수가 있었다지만 이번엔 수면 중 이어지던 호흡이 어색함이나 끊기는 곳 없이 자연스러웠을 텐데 어떻게 눈치챈 것일까.

결국 잠들어 있던 척을 멈춘 그녀가 눈을 떴고, 자신을 내려다보며 움직이고 있는 한 쌍의 진청색 눈동자와 눈을 맞췄다.

거친 듯하면서도 인간적인 감정을 담고 있는 눈동자가 그녀의 하얀 눈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

그에 괜히 눈을 한번 깜빡인 린느는 주인의 명령 아닌 명령에 알겠다고 답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시 눈을 감고 몸에 힘을 풀었다.

신경 인터페이스를 제대로 연결하는 급한 일이긴 하지만 일단 주인의 명령이 떨어졌다면 따라야 했다. 그것이 지금 같은 대기 명령이 아니라 설령 도구가 부서지는,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그녀가 보인 모습에 애쉬 또한 뜻을 알아듣고 그녀를 수술실 내부로 보냈다.

보조가 되는 간호사들과 개조 파츠 전용 수술기기가 들어오고 수술이 시작됐다.

*

덜컹.

자리에 앉은 채 구식 개인 단말로 커뮤니티나 훑어보고 있던 애쉬가 수술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수술실로 들어간 지 한 시간이 조금 더 지났을까.

문이 열리고 나온 것은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는 린느 데 파르셰, 순백의 닌자였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마치 병약한 미인처럼 보여 애쉬 같은 초인에게 중상을 입혔던 암살자라고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애쉬는 침상에 누워 들어갔다가 제 발로 걸어 나온 그녀에게 다가갔고, 린느는 그런 자신의 주인을 보며 천천히 몸을 숙였다.

“응?”

“린느 데 파르셰. 데 파르셰 가문의 닌자가 주인께 충성을.”

소곤소곤 속삭이는 것 같이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가 갑작스런 행동에 조금 놀란 듯한 애쉬를 향해 말했다.

애쉬는 처음엔 고개 숙인 그녀를 보며 무어라 말할까 고민하다 그냥 툭, 무릎 꿇은 린느의 앞에 그녀가 입고 왔던 슈트를 가볍게 던져 놓았다.

“괜히 시선 끌지 말고 그거나 입고 따라와.”

“…….”

린느는 애쉬의 말에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병원복 위에 슈트를 입었다.

그러자 허공에 스며들 듯 사라지는 모습. 애쉬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서도 자신의 감각 안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느낌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곤 수술실 앞의 관계자 대기석을 지나 자연스럽게 병원을 빠져나갔다.

돈이라면 의사에게 직접 지불했으니 갑자기 사라져도 그쪽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그렇게 애쉬가 병원을 나와 향한 곳은 가까운 숙박업소였다.

호텔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허름하지만 그렇다고 일반 가정집에서 운영하는 것 같지도 않은 애매한 포지션의 숙박업소.

거기서 적당한 방을 하나 잡고 들어간 애쉬는 나름 깨끗하게 정리는 된 객실을 둘러보곤 곧장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보이지도, 제대로 느껴지지도 않지만 온 신경을 곤두세운 뒤에야 아주 희미한 느낌을 통해 지금도 이곳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린느 데 파르셰를 불렀다.

“모습을 드러내.”

명령하듯 말하자 스스스, 그런 효과음이 들리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허공에서 하나의 형상이 나타난다.

새하얀 머리칼과 눈동자, 빈혈기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조금은 창백하게까지 보이는 흰 피부까지.

몸에 딱 달라붙는 광학미채 슈트를 입은 순백의 닌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로.

“….”

애쉬는 반항의 기미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정말 자신을 주인으로 섬기겠다는 건가 싶은 의심과 함께 근 며칠간 자신을 괴롭힌 그녀에게 복수할 좋은 기회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입을 열어 조용히 무릎 꿇은 채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린느에게 물었다.

“날 주인으로 섬기겠다고?”

“…맹세, 했습니다.”

다소 딱딱하고 조용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닌자의 충성 맹세란 말처럼 단순한 충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목숨과 영혼을 다 바쳐 주인을 섬기겠다는, 아니, 도구가 되어 그의 뜻대로 쓰이다 버려져도 좋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일종의 의식인 것이다.

여전히 침대에 걸터앉은 애쉬는 놀리듯 물었다.

“그럼 내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 있나?”

“불가피한 상황에서의 희생이라면.”

“불가피한 상황에서의 희생이 아니라면 못하겠다?”

“…후계의 양성을 마친 후 자결하겠습니다.”

닌자로서의 사명은 중요했지만, ‘데 파르셰’ 가문의 가주로서의 사명 또한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어떤 명령이든 따르겠지만 단 하나, 그녀의 목숨은 주군을 위해서 희생하는 게 아니라면 가문의 후계가 양성되기 전까지는 아무 의미 없이 버릴 수 없었다.

“뭐, 그래. 좋아.”

그런 그녀의 대답에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으나 당장은 진심이라는 것을 제대로 느낀 애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자결하도록 시킬 생각도 없었고, 마찬가지로 그것을 알고 있을 상대방이었지만 돌아온 대답에서 무거운 진심이 느껴지는 게 마음에 들었다.

당장에야 완전히 믿을 수 없었지만, 일단은 천천히 지켜봐도 좋을 것 같다.

그녀의 대략적인 의지를 확인한 애쉬는 곧 자신이 대화 장소를 이곳 숙박업소로 잡은 이유를 감추지 않고 밝혔다.

“그럼 벗어.”

대화라면 그냥 적당한 골목길 안에서 해도 됐다. 하지만 굳이 여기까지 온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지난 며칠간 그를 거슬리게 한 복수였다.

자신을 주군으로 모시겠다고? 목숨을 바치겠다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아무리 충성을 맹세하기 전에 벌인 일이라지만 그로 인해 애쉬는 머리 끝까지 화가 차오른 상태였고, 아직 그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니 그 대가는 제대로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당연히 돈이 아니라, 몸으로.

그런 애쉬의 명령에 린느는 잠시 입을 다물고 다시 한번 머릿속에서 우선 순위를 설정했다.

‘명령, 신경 인터페이스 정식 연결.’

둘 중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었지만, 역시 더 중요한 쪽이라면 주군의 명령이다.

앞서 말했듯 후계의 양성을 위한 목숨의 연장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경우에도 우선시 되는 것은 명령이었으니.

하지만 반대편 또한 상당히 중요한 일인 만큼 한번 주인에게 말을 해볼 필요성은 있었다.

린느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자신을 바라보자 애쉬가 픽 비웃었다.

“자결이라도 하겠다더니, 이런 일은 못하나 보지?”

“…이틀만 시간을.”

단 이틀만 있으면 신경 인터페이스를 완벽히 조정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 주인이 바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그녀도 잘 알았다.

수사 기술이 극한에 달한 현대에 이르러서는 거의 선택이 불가능한 침대 위에서의 암살과 방중술이었으나 지식적으로나마 그것을 배운 적이 있었으니까.

그게 두려워서 피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주인의 명령이라는 것만 떼어놓고 본다면 단순한 성욕 처리와 닌자로서의 기능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 제거.

단순히 그 둘을 비교했을 때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는 명백한 일이었을 뿐.

그러나 애쉬는 시간을 달라는 그녀의 말보다 행동으로 먼저 대답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팔을 당겨 자신의 품으로 이끈 것이다.

뒤이어지는 말을 들어보지 않아도 자신의 요청이 거절당했음을 안 린느는 그 행동에 저항하지 않고 몸을 맡겼고, 애쉬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말했다.

“안 되겠다면?”

“…명령, 복종하겠습니다.”

남성과의 관계라고 해봤자 길어봐야 하루. 그 정도라면 큰 변화를 겪지도 않을 것이고, 완전히 호르몬이 활성화되기 전에 다시 그것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명령에 복종하겠다 대답하며 머릿속에서 그런 계획을 세웠고, 애쉬는 그녀의 이번 대답만큼은 마음에 든다는 듯 웃었다.

“그래, 그럼 한동안 나를 귀찮게 한 값은 제대로 받아주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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