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204화 (204/230)

〈 204화 〉 12. 린느 데 파르셰(7)

* * *

일상이란 특별할 것 없이 흘러가다가도 작은 변화 하나로 달라지기도 한다.

특히나 그 변화를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었다면 이전까지 유지해왔던 모든 것이 변할 수도 있는 것.

그런 의미에서 애쉬가 자신의 소유가 된 닌자를 체벌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고 있는 동안 사무소에 온 연락은 몇 년 동안 계속 되어왔던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의 일상을 완전히 뒤바꿔 놓기에 충분한 소식을 담고 있었다.

­ 예. 애쉬 님께 연락이 닿질 않아 사무소로 연락을 드리게 됐습니다.

“아아, 네. 그런데 지금 사장님이 부재중이셔서요. 이틀 전부터 들어오지 않고 계시는데 도착하시면 말씀은 전해 드릴게요.”

샤인이 ‘유성 그룹’ 소속의 비서라는 남자로부터 연락을 받아 대답했다.

듣자 하니 사무소로 연락을 해온 이는 꼬마 샤인의 고용주인 애쉬의 지인 밑에서 일하는 비서 중 한 명인 것 같았는데, 확실히 저번 ‘유성 그룹’의 의뢰를 받았던 게 신의 한수였던 것 같다.

평소라면 이 도시 최고의 엘리트 중 하나인 ‘유성 그룹’의 고위직 비서라면 똑바로 쳐다보는 것조차 꺼려졌을 텐데, 그런 이가 사장인 애쉬에게 누구누구 님이라는 극존칭을 쓰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애쉬가 이 비서에게 그 대단한 실력만큼이나 막 나가는 성격으로 매운맛을 보여준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조차도 비서가 모신다는 상사가 용납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일.

‘유성 그룹’ 내에서 높은 직위를 차지하고 있는 지인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비서보다도 애쉬를 가깝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였다.

­ 예. 그럼 애쉬 님이 돌아오시면 이전에 말씀해주셨던 것의 등록이 끝났고 물건이 현재 배송 중이라는 것을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전해드릴게요. 바쁘신 와중에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빚진 것이 너무 크다 보니 어떻게 다 갚을 도리가 없습니다. 혹시 이후에도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바로 연락 주시면 된다고 전해주십시오.

“네에.”

샤인이 여전히 극진한 태도의 목소리를 듣고는 대체 무슨 일을 해주었길래 도시 최고 수준의 엘리트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걸까 하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일전에 옆에서 듣긴 했지만, 그만큼 큰 건은 오히려 기억하고 있는 것이 위험할 때가 많아 흘려들으며 거의 잊어버린 상태. 사장인 애쉬는 조만간 신분이 만들어지면 도시 안쪽으로 사무소를 옮긴다고 했는데, 적당히 시간이 날쯤에 들어봐야겠다.

샤인의 대답을 들은 비서는 그럼 이만하고 연락을 끊었고, 곧 샤인은 자신을 바라보며 무슨 연락이었냐는 듯 묻는 것 같은 게빌의 눈빛에 입을 열어 대답했다.

“‘유성 그룹’의 고위 임원 비서실에서 연락 주셨다는데, 전에 부탁하셨던 것의 등록이 끝났다고 하더라구요. 직접적으로 언급은 하지 않으셨지만 사장님의 신분 등록이 마무리 된 것 같아요.”

“오. 그래?”

게빌이 눈치 좋게 대답한 샤인의 목소리에 안면에 화색을 띠었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슬럼에서 탈출할 수 있는 건가?

게빌이 슬럼, 정확히는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에서 일한 지도 이제 시간이 꽤 흘렀다. 벌써 개월 단위로 넘어가고 있었으니 말인다.

사실 절대치로 본다면 그 시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게빌에게는 어느 때보다도 길게 느껴지는 세월이었다.

냄새나는 거리. 골목길을 좀만 들어가도 약에 취한 인간들이 널브러져 있을 때가 많고, 새벽에 고성방가는 물론 총격음까지 들려오는 게 일상인 동네.

특히나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애마를 떠나보내지 않았던가.

얼굴도 모르고 원한이라고는 있을 리도 없는 쓰레기들에 의해서.

끝내 그 가해자들을 찾지 못한 것은 아직도 게빌의 가슴 속에 천추의 한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니 슬럼을 곧 떠날 수 있다는 소식이 반갑지 않을 리가.

‘드디어….’

원래 ‘리퍼슨 물류’가 위치하던 곳보다 더 안쪽, 제 1구역의 도심으로 사무실을 옮긴다니 생각만 해도 즐거워지는 상상이다.

최소한 거기서는 비싼 차를 끌고 다녀도 그게 박살 나지는 않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렇게 다시 도시 안쪽으로 들어갈 생각에 가슴 벅찬 설렘을 느끼던 게빌은 곧 시선을 사무소 문쪽으로 돌리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 녀석은 대체 뭘 하길래 안 오는 건지.”

애쉬 론모어. 이 해결사 사무소의 사장이자 동료인 그가 어느 순간 자리를 비운 채 모습조차 비추지 않고 있었다.

하루라면 모르겠는데, 지금은 이틀이 넘게 얼굴을 못 본 상황.

샤인도 어디로 갔는지를 모르겠다는 말을 한 만큼 조금이나마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애쉬, 그 녀석 실력에 어디서 뭔가 당했을 것 같지도 않고.’

슬럼의 갱이나 쓰레기들에게 당했을 확률은 없고 봐도 좋았고, 최근 가장 위험했던 그 여자 암살자도 무사히 마무리 짓지 않았던가.

뭘 하는진 모르겠지만 연락도 없는 게 괜히 마음에 조금 걸렸다.

하지만 그런 게빌보다 애쉬를 한참은 오래 봐온 샤인은 아무런 긴장감도 없이 가벼운 일처리를 마쳤다.

애쉬가 연락 없이 사라졌다 귀신처럼 나타나는 건 일상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또 어디서 유흥가에서 여자들이랑 놀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샤인의 직감적인 생각은 실제로 어느 정도도 맞아 들었다.

애쉬가 있는 곳이 유흥가는 아니었지만, 여자랑 놀고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렇게 사무소의 샤인과 게빌이 애쉬를 기다릴 때, 그는 아직도 자신의 여닌자를 잔뜩 괴롭혀주고 있었다.

* * *

­ One day when the sunshine was pouring, you came up to me♪

­ And told me, the world is like a dream♬

요란한 밴드 음악이 울리는 어느 클럽. 그곳에 한 남자가 발을 들였다.

­ 저벅, 저벅.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밴드 음악과 사람들의 목소리로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존재감을 발하고, 클럽 구석에 있는 계단 하나를 향해 움직인다.

어두운 분위기의 클럽은 무척이나 활기찬 분위기였지만, 계단에 가까워질수록 음악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발소리와 목소리 또한 점점 멀어져 그곳은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입구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끝내 남자가 계단의 앞에 도달한 순간, 계단을 지키고 있던 세 명의 가드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어둠 속에서도 붉은빛을 발하고 있는 눈동자. 눈을 인공 안구로 갈아치운 흔적이나 다름없는 그것이 남자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쓸어본다.

그리고 그들의 대표로 가드 하나가 앞장서 남자에게 말했다.

“이곳은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출입증을 제시해주십시오.”

그렇지 않는다면 들여보낼 수 없다는 단호한 태도의 목소리.

그 외모와 덩치도 무시무시했지만, 무엇보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평범한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아마 이곳에 다다른 것이 일반인이었다면 기가 죽어 물러났겠지.

하지만 지금 이곳에 도달한 검은 머리칼의 남자는 일반인이 결코 아니었다.

“…출입증? 그딴 건 없다.”

은연중에 자신을 압박하는 가드들의 눈빛에도 그것이 우습다는 듯, 혹은 가소롭다는 듯한 말투로 답하는 남자.

그런 그의 태도에 가드들은 품에서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하나씩 꺼내 들어 위협했다.

“그렇다면 물러나. 치즈처럼 온몸에 구멍이 뚫려서 뒷골목 쥐새끼들 먹잇감이 되고 싶지 않으면.”

건방진 태도에 화라도 난 것인지 존칭은 버려두고 반말로 위협하는 그들의 태도에 검은 머리칼의 남자는 작게 웃었다.

여기가 존 시였다면 감히 자신의 얼굴을 보고도 이딴 태도를 보이지는 못했을 텐데, 확실히 다른 도시로 와서 그런지 아주 건방진 놈들이 넘쳐난다.

존 시였다면 그를 알아보지 못한 죄로 그냥 초장부터 박살을 내버렸겠지만, 이곳은 그의 신상이 알려지지 않은 다른 도시.

그것을 감안한 검은 머리칼의 남자는 아주 자비롭게도 가드들에게 권유했다.

“그 장난감들로 뭘 하려고. 다치기 싫으면 그냥 비키는 게 좋을 걸.”

“미친놈.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의를 가르쳐주마. 죽이진 말고 팔 다리 정도만 날려버려.”

“간만에 웃긴 놈 하나 나타났네.”

“하.”

경고와 위협에도 검은 머리칼의 남자가 물러나려 하지 않자 가드들이 그를 비웃으며 총구를 들어 올렸다.

총격음이 울리며 작은 소란이 일겠지만, 그것은 클럽의 커다란 소음 속에서 사그러들 것이다.

그러기 위해 굳이 이 입구를 클럽의 안쪽 깊숙한 곳에 설치한 것이었으니까.

그들이 총구를 자신에게 향하며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하자 흑발의 남자가 씩 미소지었다.

그래, 이렇게 나오지 않으면 뒷세계에 속한 놈들이 아니지.

어느 도시를 가나 뒷세계에 속한 놈들은 같은 느낌이었다.

­ 투웅! 투두둥!

소음기에 억눌린 총격음이 울리고, 흑발의 남자가 그와 함께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그리고 그의 품에서 흑백, 두 자루의 자동 권총이 뽑혀 나오며 자신들의 위용을 과시했다.

흑발과 흑안.

그리고 기성품이 아닌, 개별 제작된 흑백의 자동 권총 두 자루와 기다란 검은 코트.

피부색과 한 자루 백색의 권총을 제외하면 전신이 검은색으로 도배된 그 모습은 존 시에서는 너무도 유명한, 전설이 된 한 인물의 특징이었지만 멀리 떨어진 웨인 시에서 클럽 가드나 하고 있는 이들이 알아보기엔 너무도 먼 곳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잠시 후, 먼저 방아쇠를 당겼던가드들은 그 남자를 알아보지 못한 대가로 팔다리가 하나씩은 날아가 바닥을 굴러야 했다.

“커, 크흑. 이곳이 어딘 줄 알고…. 이곳은 규칙에 따라 무혈지대로 지정된 걸 모르나…?”

“안다.”

흑발의 남자가 바닥을 구르며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는 가드의 물음에 가볍게 대답했다.

각 도시에 몇 개씩은 존재하는 콜드 스팟(Cold Spot).

뒷세계에 속한 온갖 용병들과 딜러들이 자신들이 가진 것을 사거니 팔거니하며, 크레딧을 주고받는 이곳은 어떤 원한이 있더라도 내부에서 피를 보는 것이 금지된 곳이었다.

하지만,

“아직 콜드 스팟 안까지 들어가진 않았지.”

그가 다른 도시에서 전설적인 인물이라곤 해도 콜드 스팟의 법칙을 깰 만큼 예의가 없진 않았다.

다만 이곳은 아직 콜드 스팟 바깥. 자신에게 건방지게 구는 클럽 가드 몇 정도는 피떡으로 만들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무슨 그딴….”

“너희들은 그냥 거기서 바닥이나 구르고 있어라.”

나중에 교대자가 와서 발견된다면 난리가 날 수도 있겠지만, 그 전에 들어가서 이곳의 터줏대감 정도 되는 이와 얘기를 끝내면 되는 것 아닌가.

흑발의 남자는 바닥을 기고 있는 가드들을 차가운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계단 아래쪽으로 향했고, 곧 나오는 문을 열고 지하 내부에 펼쳐진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섰다.

“젠장, 오늘은 완전히 허탕이야.”

“뭐야, 또 돈이라도 떼였냐?”

“아니, 의뢰 보상을 받긴 했는데 그게 가품이라더라.”

“제대로 한 방 맞았구만.”

“그래, 멍청하게도 한 방 맞았지. 다음에 그 놈 얼굴을 보면 아주 작살을 내줄 거야.”

오픈 바에 앉아 신세 한탄이나 하고 있는 용병들과,

“2,500 크레딧.”

“3,200. 그 이하로는 안 돼.”

“하아…. 이봐, 좀만 더 깎아 달라고.”

“군용 물품이 흔한 줄 아나. 부족하면 저리 꺼져.”

“3,000. 진짜 마지막으로 흥정하지.”

물건을 늘어놓고 가격을 주고받는 상인과 용병들.

그리고.

“오…. 저 녀석이 그 유명한 레드 필드? 저 팔에 달린 건 ‘유성’에서 최근에 발매한 파츠인가? 아주 온몸을 황금으로 감싸고 있군.”

“그 옆에 있는 녀석들은 어떻고. 하나같이 조그만 부품 쪼가리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어. 저쯤 되면 돈도 엄청나게 벌겠지.”

“듣기론 매달 못해도 몇십만 크레딧 씩은 번다는 것 같던데.”

“하…. 나도 저 정도 벌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네.”

다른 용병들의 선망과 시기, 질투를 받고 있는 네임드들까지.

온갖 인간 군상이 모여 있는 이곳이야말로 뒷세계의 모든 정보와 무기, 그리고 각종 불법 시술과 개조 파츠들이 오고 가는 콜드 스팟이었다.

웨인 시의 콜드 스팟에는 처음 발을 들여본 흑발의 남자였기에 저쪽에서 온갖 시선을 다 받고있는 네임드들에게 관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는 저런 애송이들 몇과 놀아보자고 온 게 아니었다.

­ 저벅, 저벅.

발걸음을 옮겨 콜드 스팟 안쪽으로 향한다.

오픈 바를 맡고 있는 딜러 겸 바텐더들이 언뜻 그를 향해 시선을 던지다가도 눈을 돌리는 게 느껴졌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보니 궁금했던 거겠지.

흑발의 남자는 그런 초짜 딜러들을 지나 발걸음을 계속했고, 그를 본 순간 눈에 이체를 띠는 한 바텐더를 발견해 그 앞에 있는 오픈 바 자리에 앉았다.

안쪽, 그것도 조금 구석진 곳에 있었기에 바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곤 옆에 고개를 쳐박고 있는 용병 하나밖에 없는 자리였기에 바텐더 정면의 자리에 소란 없이 앉을 수 있었다.

그가 자리에 앉자 바텐더가 느긋하게 잔을 닦으며 물어왔다.

“바렛 오테너. 존 시의 전설인 ‘검은 개’가 웨인 시에는 무슨 일이신지?”

역시. 자신을 알고 있는 녀석이 맞았다.

저 멀리 떨어진 존 시에서 활동하던 자신의 인상착의를 단숨에 알아본 만큼 정보에 무지한 놈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그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를 달성하기에는 무척이나 좋은 인선이었다.

흑발 흑안의 남자, 존 시의 뒷세계에서는 전설적인 명성을 떨치며 ‘검은 개’라 불리는 바렛 오테너가 입을 열었다.

“애쉬 론모어. 그 남자를찾고 있다.”

소식을 듣자마자 다른 동료들보다 한 발짝 이상 먼저 달린 남자가 이곳 웨인 시까지 자신의 동료를 찾아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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