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화 〉 13. 바렛 오테너(2)
* * *
“…사무실은 옮겼는데, 딱히 변하는 건 없군.”
“다른 점이라면 전에는 무척 바빴는데, 지금은 오히려 한산해졌다는 것 정도네요.”
게빌의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샤인이 대답했다.
서령이 워낙 사무실을 깔끔하게 준비해뒀던 터라 불과 이틀 만에 사무소의 이전도 모두 끝났고,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는 이제 1구역에 완전히 자리 잡았다.
그리곤 영업을 개시했는데, 어째 사무실에 오는 연락이 없었다.
영업 시작 시간인 오전 10시부터, 지금 현재 시각인 오후 2시까지 단 한 통의 연락도.
게빌은 그런 상황에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며 말했다.
“이래서 연락처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했는데, 사장이란 녀석은.”
일일이 이전을 신청하고 옮기기 귀찮으니 그냥 이사한 다음 새로 달아버리자는 것이 애쉬의 뜻이었다.
덕분에 지금 애쉬의 사무소 이전 소식은 원래 그들을 찾던 의뢰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것이다.
워낙에 이름값이 있다보니 다시 이곳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의 연락처가 알려지고 그를 찾는 사람들이 모이기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겠지만, 최소한의 홍보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게빌이 자신의 지인들에게라도 홍보를 조금 진행할까 고민하던 찰나, 사무소를 옮겼음에도 변하지 않은 종소리와 함께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의 새로운 직원, 케일이 들어왔다.
딸랑딸랑.
“안녕, 게빌. 그리고 우리 꼬마 선배님.”
“안녕하세요, 케일 씨.”
“오, 마침 잘 왔군. 케일, 문제가 조금 생겼는데 같이 생각해보자고.”
“응? 문제?”
“사무소를 이전할 때 문제가 생겨서 의뢰가 뚝 끊겼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의문을 표정을 드러내는 케일에게 게빌이 물었다.
사실은 이전할 때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애쉬의 게으름이 만들어낸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문제가 맞긴 맞았다.
“의뢰가 끊겨?”
“그래. 우리 사장님께서 일일이 옮기는 건 귀찮다고 모든 회선을 통째로 바꿔버린 바람에.”
“애쉬 씨…. 조금 게으른 것 같기는 했는데, 확실히 남다르네.”
“조금? 조금이 아니라 엄청나게 게을러.”
게빌이 미소 짓는 케일의 목소리에 불평했다.
지금도 영업 개시 첫날에 오후 2시가 됐는데도 아직 위층에서 내려올 생각을 않지 않는가.
애쉬가 서령에게 임대받은 층은 이 커다란 빌딩의 31, 32층의 2개 층이나 됐는데, 31층이 사무실이었다면 그 바로 윗층인 32층은 개인 주거용으로 배치를 끝낸 상태였다.
보통 영업 첫날이라면 일찍 나와 준비하기 바쁜 게 일반적이었는데, 일찍 나오긴커녕 영업을 시작하고 4시간이 더 지났는데도 늦장 부리고 있다는 것은 조금 게으르다는 정도로 넘어갈 수 없을 수준이다.
“애쉬 씨도 생각이 있겠지.”
“…그래, 그랬다면 좋겠군.”
케일의 말에 게빌이 차라리 그런 것이라면 좋겠다는 듯 대꾸했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는 일을 쉬든 말든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그동안 모아둔 돈도 있었고, 의뢰를 수행하지 않더라도 애쉬와 계약을 맺으며 약속받은 기본 급여도 존재했으니.
기본 월급은 조금 적다지만 아무런 일도 안 하고 편하게 돈을 벌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게빌은 도저히 애쉬 만큼이나 게으르게는 살 수가 없는 성격이었다.
돈을 받으면 반드시 그 대가에 맞도록 일을 해야 하고, 일이 없다면 찾아서라도, 만들어서라도 하는 것이 그의 성격.
급여를 받으면 무조건 그에 상응하는 성과를 내놓아야 게으름을 부리더라도 부릴 수 있는 양심적인 사람인 것이다.
그런 그에게 지금과 같이 아무런 일도 없어 쉬고 있는 상황은 가시방석에 앉은 것만큼이나 불편한 상황이었다.
게빌과 오래 봐왔기에 그의 성격을 알고 있는 케일은 그런 게빌의 목소리에 쓴웃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차라리 콜드 스팟이라도 가보는 게 어때?”
“콜드 스팟?”
“응. 거긴 대체로 프리랜서 용병들이 자주 찾는 곳이긴 하지만 지금 우리처럼 이름을 알려야 할 때는 괜찮은 곳이니까.”
굳이 거기서 일거리를 찾아서 할 것도 없이, 게빌의 얼굴과 애쉬 론모어라는 이름만 팔아도 어느 정도 홍보가 될 것이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총잡이들의 여명’에 속했던 ‘골든 캐니언’, 게빌 리퍼슨이라는 이름은 무척이나 유명했기에 일단 찾아가기만 한다면 알아보는 이들이 많이 나타날 터.
거기에 특징 외에 얼굴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골든 캐니언’이라는 게빌의 별명 이상으로 그 존재만큼은 널리 알려진 ‘애쉬 론모어’의 그것까지 더해진다면 그 홍보 효과가 상당하지 않겠는가.
“오, 좋은 생각인데?”
게빌이 케일의 말에 반색했다.
콜드 스팟이라면 굳이 발품을 팔 것도 없이 바텐더나 무기상들과 대화하는 것으로 적당히 정보를 풀기만 해도 훔쳐 듣는 이들이 알아서 정보를 퍼뜨려 줄 것이다.
더불어 오랜만에 뒷세계 구경도 가고.
‘이게 얼마 만이지.’
콜드 스팟에 들르는 게.
케일의 말에 따르기로 결정한 게빌이 속으로 세월을 헤아렸다.
‘총잡이들의 여명’ 정도 되는 명성을 지닌 집단은 굳이 콜드 스팟에 들를 것도 없이 직접 찾아오는 이들이 넘쳐났기에 별일이 없다면 그곳에 갈 필요가 없었다.
게빌도 가끔 그쪽의 딜러들에게 용무가 있어 찾아갈 때가 아니면 굳이 찾지 않았고. 안 그래도 바쁜 데다 술과 가벼운 도박을 즐기기도 부족한 시간에 그런 곳을 왜 가겠는가.
그러다 보니 발걸음이 뜸했는데, 이번에 한 번 구경 갈 기회가 생긴 것이다.
“좋아, 그럼 한번 나가볼까. 샤인, 나중에 애쉬가 오면 홍보차 나갔다고 전해줘. 아무리 늦어도 저녁 시간쯤엔 돌아올 테니까.”
“네, 다녀오세요.”
“괜히 가서 사고 치지는 말고.”
인사하는 샤인과 거기에 한 마디 더하는 케일.
게빌은 자신을 애 취급하는 듯한 케일의 그 목소리에 인상을 찡그리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솔직히 불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지만, 거기에 무어라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괜히 사고쳤던 과거 얘기나 끌어와서 놀림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럼.”
“다녀와, 게빌.”
“그래.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케일.”
게빌은 케일과 저녁 식사를 약속하며 사무실을 나섰고, 길가의 택시 하나를 잡아 이동했다.
우우웅.
거친 느낌 없이 깔끔한 엔진 소리가 들려오는 택시. 역시 도심에서 활동하는 택시다 보니 슬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관리가 잘 되어 승차감이 차원이 달랐다.
‘슬럼은 역시 사람 살 곳이 못 돼.’
다시는 슬럼에 내려가지 않으리라.
그렇게 결심한 게빌은 이제 도시 안쪽으로 돌아왔으니 새로운 차량을 구할 생각에 빠져들었고, 어떤 게 좋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AI의 알림에 정신을 차렸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덜컥.
차량이 멈추자 게빌은 문을 열고 내렸고, 그의 눈앞에 도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클럽 하나가 들어왔다.
“저희 ‘오메튼’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 입장 대기 예상 시간 2시간 10분입니다!!”
“2시간이나?”
“오늘도 미어터지겠군.”
“휘이~! 기다리는 동안 잠깐 얘기나 하면서 놀 사람!”
클럽 오메튼.
제 1구역에 위치한 모든 유흥 시설 중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며, 그것은 입구에서부터 늘어진 인파의 대기열만 봐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대기 입장 인원만 무려 수백 이상이 되는 규모. 아마 안쪽에는 못해도 천 단위의 사람들이 들어가 즐기고 있겠지.
그리고 클럽 오메튼은 게빌의 목적지인 1구역의 콜드 스팟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했다.
“여긴 두 번째로 오는구만.”
게빌은 클럽 오메튼 입구에 몰려있는 인파들을 둘러보다 발걸음을 옮겨 후문을 향했다.
콜드 스팟은 대체로 이런 유흥 건물이나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만들어지기 마련이었는데, 그 이유는 무혈지대라는 콜드 스팟의 존재 의의에 있었다.
내부에서 피를 보는 것은 절대적으로 금지돼 있으며 그것을 어길 수 없도록 만드는 일종의 장치.
콜드 스팟에서 일정 규모의 일이 터지면 그 위에 위치한 민간인들에게도 피해가 갈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곧 인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그냥 인질이 아니라 막대한 인력과 무력, 그리고 수사력의 공권력을 끼고 있는.
특히나 지금과 같이 수천 단위의 사람들이 즐기는 클럽의 지하라면 공권력의 시선은 더욱 엄격해질 수밖에 없었고, 일이 터지는 순간 그들이 나설 터였으니 일종의 억제력으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공권력의 힘이 미약한 슬럼에는 이러한 콜드 스팟이 존재하지 않았고, 도시 내부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발걸음을 옮긴 게빌은 두 명의 가드가 지키고 있는 뒷문을 찾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입장 자격을 확인시킬 것도 없이 그를 알아본 가드들이 문을 덜컥 열어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골든 캐니언’. 소식은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카우보이모자와 독수리가 그려진 케이프. 그리고 모자 아래로 언뜻 드러나는 예리한 눈빛까지.
그 모든 것은 ‘골든 캐니언’, 게빌 리퍼슨의 특징으로 알려진 것이었고, 또 이들 가드들은 이미 과거에 한번 그를 받아본 적이 있었기에 눈치껏 알아보고 열어준 것이다.
덕분에 게빌은 품속에 넣었던 손을 다시 빼내어 그들의 어깨를 툭 두드려주며 안쪽으로 들어섰다.
“수고해.”
“예.”
애쉬에게나 가끔 놀림 받지, 바깥에서까지 그에게 그런 장난을 칠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유명세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안으로 들어선 게빌은 소란스러운 클럽 구석에 위치한 계단으로 향했는데,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근처에는 대여섯 명의 가드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그냥 보내줄 생각이 없는지 정면을 가로막는 그들의 모습.
“이곳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일반 고객님들께서는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여기 회원인데.”
“회원증을 보여주시겠습니까?”
가드의 공손하면서도 경계심 어린 목소리에 게빌은 품에서 회원증 하나를 꺼내 그들에게 보여줬다.
뒷세계 커뮤니티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콜드 스팟 모든 곳에 통용되는 회원증.
저게 있어야만 콜드 스팟에 입장할 수 있었다.
일반인들이 멋모르고 들어왔다간 난리가 날 수도 있으니 생긴 절차다.
게빌의 회원증을 받은 가드들은 그것을 인공 안구로 스캔하는 등 진위 여부를 확인했고, 곧 다시 돌려주며 고개를 숙였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골든 캐니언’ 님. 입장하셔도 좋습니다.”
“음,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전에 왔을 때는 가드가 기껏해야 두셋 정도였는데.”
회원증을 돌려받은 게빌이 흉흉한 기세의 가드들을 둘러보며 묻자 그들 중 하나가 입을 열어 대답했다.
“…최근에 한 번 일이 있어 경비를 확충했습니다. 지금은 모두 해결 됐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그래. 수고가 많군.”
“예. 원하는 것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게빌은 내려가는 계단을 통해 지하로 향했고, 곧 1구역의 콜드 스팟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
“흐응….”
“응? 뭐야, 아직 인수인계가 안 끝났어?”
“아, 애쉬 씨. 아뇨, 게빌이 조금 늦어서요.”
현재 시각 오후 7시 40분.
주거층에서 샤인과 식사를 마친 애쉬가 퇴근할 때가 되었는데도 대기 중인 케일에게 물었고, 케일이 그런 그의 물음에 걱정을 숨기며 대답했다.
그러나 애쉬의 눈썰미가 그런 기색을 읽지 못할 리가.
마침 심심했던 차라 무슨 일인가 묻던 애쉬는 케일에게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녀석이?”
“네. 사실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는데, 조금 늦네요. 연락도 없고.”
“흠.”
그런 사정을 들은 애쉬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어쩐지 시간도 늦었는데 같이 식사나 하자는 자신의 말에 외식을 할 예정이라더니 게빌과 약속이 잡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막상 그 약속의 당사자인 게빌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었고.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게빌은 다소 장난기 있는 부분이 있었지만 적어도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특히나 그 상대가 좋은 관계가 되어가고 있는 케일이라면 더더욱 그럴 터.
그런데 연락조차 없이 이렇게 늦고 있다니.
언뜻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잘 생각해보면 별 일 아닌 것 같진 않았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애쉬가 케일에게 물었다.
“그 녀석, 어디로 갔는데?”
“1구역에 있는 콜드 스팟이에요. ‘클럽 오메튼’ 지하에 있는 곳이죠.”
“마침 할 것도 없었는데, 내가 한 번 가보지 뭐.”
“…감사해요.”
케일은 더 이상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숨기지도 않은 채 애쉬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녀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직원 관리는 사장이 해야지.”
어차피 할 일도 없었고,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으니 커뮤니티에서만 보던 그 콜드 스팟이라는 곳을 한번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애쉬는 케일에게 가볍게 얘기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식사하며 대화했던 샤인의 말들도 떠올려 입을 열었다.
“이참에 거기 가서 홍보도 조금 해야겠네.”
원래라면 굳이 홍보까진 하지 않았겠으나 가는 김에 겸사겸사 하면 될 것이다.
그런 가벼운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애쉬는 게빌의 연락이 끊어졌다는 ‘클럽 오메튼’, 정확히는 그 지하에 있는 제 1구역의 콜드 스팟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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