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화 〉 13. 바렛 오테너(4)
* * *
“이번엔 내 차례인가.”
“큭….”
바렛 오테너. 그가 자신과 게빌의 손목을 하나로 묶고 있는 줄을 강하게 당기며 말하자 게빌이 이를 악물고 버티며 그를 노려봤다.
그리고 이어지는 바렛 오테너의 행동은 지친 상태에서도 제대로 보기 힘들 만큼 재빠른 주먹을 내뻗는 것이었다.
퍼억!
“오…!”
“이번엔 막았어.”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안 쓰러지는군.”
게빌이 가까스로 팔을 들어 그 공격을 막아내자 구경꾼 역할을 하던 용병들이 감탄하고 떠든다.
벌써 몇 시간이나 이어진 이런 공방에 진이 빠진 게빌은 가드하면서도 중심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그냥 멈춰있을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그의 차례.
“후욱, 후욱…. 흐읍!”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것을 어떻게든 가라앉히며 힘겹게 발길질을 차올렸다.
그러나 너무도 지친 나머지 평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운이 빠진 움직임이 제대로 타격을 줄 수 있을 리가 없다.
바렛 오테너는 자신의 허리를 노리고 날아오는 게빌의 발길질을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그 또한 지쳤기에 몸이 약간 흔들리긴 했지만, 게빌보다는 더 나은 상황이었다.
파악!
“저쪽은 완전히 힘이 빠졌어.”
“슬슬 끝나겠군.”
계속 게빌의 움직임을 봐온 용병들이 떠들었다.
그 유명한 ‘골든 캐니언’ 게빌 리퍼슨과 존 시의 전설적인 용병, ‘검은 개’ 바렛 오테너는 벌써 이런 식으로 한 번씩 공방을 주고받길 몇 시간째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슬슬 그 게임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기적이 없다면 ‘골든 캐니언’ 쪽의 패배로 말이다.
‘재밌군. 재밌어.’
바렛 오테너는 계속해서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는 게빌을 보며 입가를 살짝 끌어올렸다.
자신이 제안한 게임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오래 끌릴 줄은 몰랐다. 그리고 설마 그가 몇 번의 유효타를 허용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고.
겉으로 보이진 않지만, 그나 게빌이나 지친 상태에서 가드하지 못한 유효타를 몇 번씩이나 주고받은 상황이었다.
한참 전에 한 방 허용한 갈비뼈에 금이 가기라도 했는지 붓기가 올랐고, 움직일 때마다 욱신거리며 통증이 느껴졌다.
게다가 손목에고 조금 문제가 생긴 것인지 불편한 감각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고.
하지만 비교적 멀쩡한 바렛 오테너 자신도 이 정도인데, 상대방인 게빌의 상태는 더욱 심할 게 틀림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쪽 또한 성한 곳이 없겠지. 먼저 지쳐서 유효타를 더 많이 허용한 것도 그쪽이었으니까.
하지만 바렛 오테너 자신과 1:1로 이 게임을 이어가며 이렇게 오랫동안 버틴 건 게빌이 처음이었다.
그 근성과 실력, 체력은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심 게빌이 마음에 든 바렛 오테너가 게빌을 향해 말했다.
“후우, 이제 슬슬 승패도 보이는 것 같은데 그냥 말하지. ‘애쉬 론모어’. 녀석이 어디 있는지.”
“하아…, 닥쳐.”
그가 게빌을 붙잡고 이런 게임을 시작한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그의 동료였던 남자, ‘애쉬 론모어’의 이름이 게빌의 입에서 나왔으며, 또 제법 친근하게 들려왔기에.
애쉬의 행방을 알고 있는 것 같았기에 게빌을 도발하고 이런 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게빌은 이제 명백히 자신이 밀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입을 열 생각을 않았다.
“후욱, 그딴 건, 날 완전히 때려눕힌 다음에나 후욱, 캐보라고.”
“후, 동료의 위치를 팔 수는 없다는 건가? 아주 눈물겨워.”
시작할 때부터 통 입을 열 생각을 않는 상대방의 반응에 바렛 오테너는 놀리기라도 하듯 말했지만, 그가 더 마음에 들고 있었다.
‘그렇게 나와야지.’
지금 이곳 웨인 시에 있다는 애쉬 론모어가 진짜 그의 동료였던 녀석이 맞는지, 아니면 가짜에 불과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료라는 남자가 이 정도의 의리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유쾌한 일이었다.
바렛 오테너와 게빌은 계속해서 게임의 탈을 쓴 싸움을 이어갔다.
퍼억!
서로의 한쪽 손을 묶은 줄을 당겨 균형을 흐트러뜨리며 공격을 하고, 그것을 막은 뒤 반격한다.
처음보다는 움직임이 훨씬 느려졌지만, 그럼에도 다시 격해지는 싸움의 진행에 구경꾼들이 환호했다.
“그렇지! 난 그쪽에 걸었다고, 검은 개!”
“젠장! 골든 캐니언! 내가 이틀 동안 뼈 빠지게 번 돈이 걸려 있으니 제대로 좀 해!!”
몇 시간 동안 이런 공방이 이어지다 보니 내기판까지 벌려진 듯한 상황.
그런 인파의 사이에서 게빌과 바렛 오테너의 싸움을 지켜보던 애쉬는 슬슬 자신이 나서야 하나 고민했다.
원작 게임 속 1회차에서 보았던 바렛 오테너의 경우에는 대놓고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한 편이었고, 평소에는 능청스러운 게빌 또한 아닌 척하지만 그 자존심이 상당했다.
끼어든다면 자신을 찾으러온 바렛 오테너는 몰라도 게빌은 별로 반기지 않겠지.
하지만.
뻐어억!
“커흑…!”
게빌이 다시 한번 자신의 몸에 꽂힌 유효타에 숨을 헉 삼키며 비틀거렸다.
그리고 그 고통을 어떻게든 참아내며 자신의 차례라는 듯 덤벼들었지만 이미 게빌은 한계에 달한 상황.
여기서 더 이어지는 것은 결코 좋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새롭게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의 직원이 된 케일 또한 게빌을 걱정하고 있지 않았던가.
이쯤에서 자신이 끼어들어 이 게임을 끝내는 게 맞아 보였다.
“허억, 허억! 젠장, 할!”
버틸 체력조차 잃은 게빌이 바렛 오테너와 묶여 있는 손목의 움직임에 따라 기울어질 때였다.
“그만.”
그것을 지켜보던 애쉬가 재빨리 인파를 헤치고 나오며 검을 휘둘러 바렛 오테너와 게빌의 손목을 묶고 있던 밧줄을 잘라냈고, 힘이 풀린 듯 그대로 쓰러질 것 같던 게빌의 몸을 지탱했다.
그에 쓰러지던 상태에서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게 된 게빌이 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왜….”
“왜긴. 네 여자친구가 좀 찾아달래서 왔지.”
“아…. 케일.”
애쉬의 부축에 몸을 맡긴 게빌이 애쉬의 입에서 나온 여자친구의 이름을 작게 중얼거렸다.
그를 붙잡고 도발해온 상대방에게 넘어가 이 싸움인지 게임인지를 계속하다 어느 순간 잊고 말았지만, 그러고 보면 케일과의 저녁 약속이 있었다.
게빌이 힘겨운 목소리로 애쉬에게 물었다.
“…지금이, 몇 시지?”
“여덟 시 좀 넘었어.”
“하아, 기다리고 있겠군.”
“그래. 그러니 빨리 돌아가서 용서나 빌지그래. 화가 아주 잔뜩 난 것 같던데.”
“하핫. 하지만….”
놀리듯 말하는 애쉬의 목소리에 이런 상황에서도 힘겹게 한번 웃어 보인 게빌이었지만, 그는 자신과 직전까지 치고받던 상대방, 바렛 오테너를 바라봤다.
자신이 그렇게 찾던 애쉬가 나타나 서로의 손목을 묶고 있는 밧줄을 잘라버리자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
애쉬의 행방을 거칠게 물으며 끝내는 도발까지 해오던 저 남자와 애쉬를 그냥 두고 가도 될 것인가.
애쉬의 뒤 없는 성격에 무혈지대로 약속된 이 콜드 스팟에서 피라도 보는 건 아닐지 걱정됐다.
“한창 재밌었는데, 뭐야?”
“그냥 끝인가?”
“내가 건 쪽이 이기고 있었는데 무슨 짓이야!”
관객 역할을 하고 있던 용병들도 판이 끝나가는 분위기를 읽었는지 불평을 내뱉었다.
하지만 애쉬도, 그에게 부축받고 있는 게빌도, 그리고 애쉬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바렛 오테너도 그들의 불평에 신경 쓰지 않았다.
“한창 재밌었는데.”
“이럼 내기도 파토네? 나이스.”
애쉬의 등장으로 인해 게빌과 바렛 오테너가 싸움을 멈추자 구경하던 용병들도 김이 빠진다는 듯 천천히 물러갔다.
다만 시선만큼은 여전히 그들 셋을 향한 채로.
그렇게 상황이 대강 정리된 후 애쉬는 시선을 돌려 바렛 오테너에게 향했다.
그에 바렛 오테너의 검은 눈동자와 애쉬의 진청색 눈동자가 마주쳤다.
그렇게 얼마나 서로를 바라봤을까. 먼저 입을 열어 적막을 깬 것은 바렛 오테너 쪽이었다.
바렛 오테너는 방금 전까지 열기를 띤 채 게임의 탈을 쓴 싸움을 계속해가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라앉은 눈으로 애쉬를 바라보며 물었다.
“…넌, 가짜인가?”
“어떤 것 같아?”
그런 바렛 오테너의 물음에 애쉬가 이렇게 현실에서는 처음 보는 자신의 동료를 향해 역으로 물었다.
그러자 바렛 오테너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넌 가짜야.”
“그런 것치곤 확신을 못하는 것 같은데?”
애쉬가 자신을 가짜로 치부하는 바렛 오테너의 목소리에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아닌척 하려는 것 같지만, 바렛 오테너의 목소리에는 묘하게 힘이 부족했다.
애쉬의 말처럼 스스로도 아직 애쉬가 진짜 자신의 동료였던 그 남자가 맞는지, 아니면 가짜에 불과한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바렛 오테너는 애쉬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대답했다.
“녀석은 사이보그였어. 너 같은 강화인간이 아니라.”
“그래, 네가 알던 난 사이보그였지. 그런데 왜 확신하지 못하는 거지?”
“그건…….”
순순히 인정하는 애쉬의 물음에 바렛 오테너는 말끝을 흐렸다.
그건 너무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분위기와 목소리, 눈동자, 외모, 체격, 그 모든 부분에서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가짜와 자신이 알던 애쉬 론모어는 완벽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똑같았다.
단 한 가지, 사이보그와 강화 인간이라는 점이 다른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렇게 자신이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혼란에 빠진 듯한 바렛 오테너에게 애쉬가 결정타를 날렸다.
“‘시궁쥐 사냥’.”
“……!!”
애쉬의 입에서 나온 단어의 조합에 경악에 빠진 바렛 오테너의 동공이 한순간에 확장됐다.
‘시궁쥐 사냥’.
저것은 애쉬가 모습을 감추기 전 마지막으로 펼쳤던 작전의 작전명이었다. 애쉬 본인이 아니라면 결코 알 수 없는 정보라는 말이다.
그들, ‘리버스’를 존 시 전체에 ‘다크나이트’라는 이름으로 알리게 한 최후의 도시 구원 작전.
그런데 저 가짜는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는가.
경악에 빠진 바렛 오테너의 생각을 읽은 듯 가짜가, 애쉬 론모어가 입을 열어 말했다.
“궁금하면 내일 오후,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로 찾아와.”
어딘지는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되겠지.
덧붙인 애쉬가 게빌을 부축한 채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1회차 시절의 동료들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당황할 것도 없다.
과거의 동료가 직접 찾아온 만큼 얘기할 것은 많았지만 지금은 부하 직원들의 케어가 더 중요했다.
얘기야 살아있다면 언제든 할 수 있었지만, 다친 게빌을 케일에게 인계하는 건 지금만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애쉬는 자신의 뒤통수를 강하게 찔러오는 바렛 오테너의 시선을 느끼며 콜드 스팟을 벗어났고, 게빌을 기다리고 있던 케일에게로 무사히 데려갈 수 있었다.
“세상에! 게빌!”
“하, 하핫. 늦어서 미안. 지금이라도 갈까?”
“이 지경이 돼서 가긴 어딜 가…!”
케일은 애쉬가 부축해 온 게빌의 농담에 걱정하면서도 불같이 화를 내며 그를 혼냈고, 애쉬에게 도움을 청해 그를 병원으로 옮겼다.
진단 결과는 뼈에 실금이 난 몇 곳을 제외하면 큰 부상은 없음.
다만 몇 시간의 싸움 끝에 체력이 완전히 소진돼 제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음…. 굳이 깁스까지 할 것도 없다니까.”
“가만히 있기나 해! 정말!”
“불편한데….”
철썩!
“악!”
케일이 게빌의 등짝을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게빌의 작은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 뒤이어지는 케일의 잔소리 세례.
잠시 그것을 듣고 있던 애쉬는 픽 웃으면서도 다음날 찾아올 바렛 오테너를 떠올렸다.
과거의 동료에게 무어라 얘기해야 할까.
원래 이 세계는 게임이었고, 플레이어였던 자신은 어느 날 눈을 뜨니 애쉬 론모어가 되어 다른 도시에 떨어져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런 걸 얘기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의심을 조금 받더라도 적당히 둘러대는 수밖에.
게빌을 혼내는 케일의 잔소리를 흘려 듣던 애쉬는 다시 시선을 그들에게 돌리며 발걸음을 향했다.
여러모로 소란스럽고 복잡한 밤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