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209화 (209/230)

〈 209화 〉 13. 바렛 오테너(5)

* * *

바렛 오테너.

지금은 ‘검은 개’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는 존 시의 전설적인 용병.

하지만 그런 인물이라고 처음부터 지금처럼 이름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었고, 그것은 바렛 오테너 또한 마찬가지.

지금이야 존 시의 전설이니 뭐니 불리고 있었지만, 그도 처음에는 멋모르고 뒷세계에 굴러들어온 풋내기에 불과했다.

재능은 있지만, 경험도, 실력도 모자란 애송이였던 그는 애쉬 론모어, 정확히는 애쉬 론모어를 플레이하던 이진현과 만나 동료가 됐으며 온갖 모험을 펼치며 성장해나갔다.

슬럼의 갱들과 맞붙기도 하고, 기업과 중요한 물건 하나를 두고 다투기도 했으며 시 정부를 넘어 연방 정부와 맞서 싸웠던 적도 있다.

무엇이 됐든 하나같이 목숨이 오고 가는 게 당연시될 정도로 위험한 사건들의 연속.

누군가 보았다면 자살희망자들이냐며 욕지거리를 내뱉었을 행보들이 지금의 전설적인 용병들을 만든 것이다.

200시간에 가까운 플레이타임.

게임 속에서 흐른 세월로는 약 4년에 달하는 그 시간은 빛나는 재능의 애송이들이 최고의 실력자로 성장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천재적인 재능들이 일찍이 모여 하나의 그룹을 이루었으니 그것이 바로 ‘리버스’.

외부에 나서는 것을 즐기지 않던 리더 애쉬 론모어와 지금은 하나같이 전설이 된 용병들이 모인 조직이었다.

“하, 그게 너희 짓이었나? 아주 난리가 났었는데.”

“내 쪽도 고생이 많았지.”

오늘 오후에 찾아올 것이 분명한 바렛 오테너.

그를 기다리며 적당히 과거의 얘기를 풀고 있던 애쉬가 고개를 젓는 게빌의 모습에 픽 웃으며 대답했다.

애쉬가 말하고 있던 것은 과거 그가 속했던 ‘리버스’가 연방 정부와 한판 했을 때의 얘기였는데, 그 당시 어찌나 난리가 났던지 연방 정부의 요원들이 다른 도시 중심부의 콜드 스팟에까지 튀어나왔을 정도였다.

같은 일의 재발생을 예방한다나 뭐라나.

당시에는 지구인 이진현으로서 게임을 플레이했던 애쉬도 그때 연방 정부의 요원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벌였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동료 중 하나가 지나가듯 얘기했던 기억이 있었으니.

그것은 분명 게임 속 장면에 불과했으나 어쩐지 추억처럼 아련하게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럼 그 녀석도 그때 함께 있었겠군.”

이유 모를 감정에 젖어 드는 것 같던 애쉬의 상념을 게빌의 목소리가 깨뜨렸다.

“바렛 오테너?”

“…그래, 그 ‘검은 개’.”

눈치껏 그가 말하는 그 녀석이 누구인지 맞춘 애쉬의 말에 게빌이 그것을 긍정했다.

콜드 스팟에서 바텐더, 그리고 각종 의뢰의 중계인을 겸하고 있는 지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끼어들어 애쉬의 행방을 묻던 남자.

게빌이 그것에 대한 대답을 거절하자 그를 도발해 게임을 방자한 싸움을 걸어온 녀석이었다.

애쉬가 그런 게빌의 물음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 그 녀석도 같이 있었지.”

바렛 오테너는 애쉬가 가장 먼저 동료로 받아들인 남자였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그와 모든 행보를 같이한 녀석.

애쉬와 마찬가지로 성격이 조금 모난 편이라 중간에 몇 번 다투기도 했던 녀석이었지만, 그 녀석은 가장 믿음직한 동료였다.

어느 정도 이상의 규모를 가진 사건에서 그가 함께하지 않았을 리가.

바렛 오테너는 언제나 이진현이 플레이하던 애쉬 론모어의 등 뒤를 지켰다.

200시간에 가까운 플레이 타임. 그 시간 동안 항상 함께한 녀석이기 때문일까.

게임 속에서나 함께한 녀석임에도 괜히 그를 보면 알 수 없는 친근감과 반가움이 섞인 감정이 애쉬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 녀석, 강하더군. 처음 보는 녀석이라 멋모르는 놈이 덤벼온 건 줄 알았는데.”

실제로 용병들은 한번에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뒷세계의 유명인들에게 도전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완전히 박살이 나서 쫓겨나곤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게빌이 직접 겪은 바렛 오테너라는 남자는 솔직히 감탄할 수밖에 없는 실력자였다. 어찌나 강하던지 일종의 벽이 느껴질 정도.

오기로 끝까지 버텼으나 결국 먼저 무너진 것은 게빌 자신 쪽이 아니었던가.

애쉬의 난입으로 인해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으나, 조금만 더 이어졌더라도 게빌은 그 자리에서 무릎 꿇은 것은 자신이었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총잡이가 총을 들지 않고 맨몸 박투를 한 것이니 실전에서는 분명 차이가 있겠으나, 그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

무려 한 도시의 뒷세계를 제패한 전설적인 총잡이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게 ‘검은 개’, 바렛 오테너였다.

과연 그런 남자가 게빌 자신보다 총을 다루는 실력이 떨어질까?

‘…그럴 리가.’

자기 객관화가 잘 되는 게빌로서는 무조건 자신의 실력이 더 나을 것이라 우길 수 없었다.

상대방의 움직임 자체가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느꼈음에도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는 것은 추한 짓이다.

게다가 그 애쉬가 몇 년 동안 함께한 진짜 동료라고 하지 않았나.

애쉬 자신이 그런 괴물인 만큼 그 남자도 그에 비견되는 괴물일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게빌 자신이 밀리는 것도…….

“…젠장.”

생각을 이어가던 게빌이 문득 자신의 멍청함에 욕지거리를 짓씹었다.

지금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그래, 바렛 오테너는 분명 게빌 자신보다 뛰어난 실력자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지는 것이 당연한 일인가?

‘이딴 머저리 같은 생각이나 하다니.’

게빌이 순간 패배감에 빠졌던 자신의 머릿속을 모조리 뒤엎었다.

어째서 자신이 이런 생각에 빠졌던 걸까. 겨우 한번 몸싸움에서 졌다고 이런 생각을 하다니.

졌으면 어떤가. 좀 더 실력을 쌓아 다시 도전하면 되지 않겠는가.

애쉬와 겨뤘을 때는 오히려 이런 패배감이 없었는데, 그것은 애쉬가 게빌 자신으로서는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차량과 줄다리기를 해서 졌다고 상심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지금 그가 이런 생각에 빠진 이유는 상대방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분명 강했다. 하지만 그 늙은이나 이 괴물 녀석처럼 닿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데일 리퍼슨, 그리고 눈앞에 있는 애쉬 론모어.

그 둘을 모두 겪어본 게빌이었기에 알 수 있었다. 저 둘 만큼은 자신과 살아가는 세상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그러나 바렛 오테너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어떻게든 죽을 힘을 다해본다면 손이 닿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런데 겨우 그런 상대방에게 패배감을 느끼고는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는 꼴이라니.

스스로 보기에도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안 되겠군.”

“응?”

게빌이 갑자기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애쉬가 눈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뭔가 비장함이 흘러나오는 것 같은 표정.

자리에서 일어난 게빌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사무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

“재활. 그리고 훈련도 조금 하려고 한다.”

“갑자기?”

재활과 훈련을 하기 위해 어딘가로 가겠다는 게빌의 말에 애쉬가 의문을 나타냈다.

평소에도 뭔가 운동기구 같은 것을 주물럭거리며 재활은 하고 있지 않았나. 그런데 갑자기 비장한 표정으로 어딜 가려고 하는 건 뭔지.

게빌은 애쉬의 의문에 자세히 답하지 않고 그냥 대답했다.

“뭔가 일이 생기면 불러. 난 잠시 밖에 있을 테니.”

의뢰나 일거리가 생긴다면 그것은 한다. 하지만 그런 게 없는 지금은 한시라도 쉬지 않겠다는 각오를 한 게빌이었다.

그에 영문을 모르는 애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그냥 보내줬다.

“뭐…. 그러던가.”

일이 생기면 온다고 하기도 하고, 어차피 지금처럼 일거리가 없을 때는 굳이 붙잡아둘 필요도 없었다.

쉴 때는 뭘 하든 무슨 상관인가.

그렇게 사장인 애쉬의 허락을 받은 게빌이 사무실 밖으로 통하는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 위이잉.

미세한 기계음과 함께 열리는 자동문.

하필이면 이때 손님인가 싶어 시선을 향한 게빌의 눈에 들어온 것은 흑발에 흑안, 그리고 전체적으로 검은색 계열의 옷차림.

허리춤의 벨트에는 흑백 한 쌍의 자동권총을 매달고 있는 ‘검은 개’, 바렛 오테너였다.

“…….”

“…….”

서로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자동문이 열리자 한순간 두 총잡이의 눈빛이 맞부딪혔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차가운 표정의 바렛 오테너와 각오로 딱딱하게 굳힌 표정의 게빌.

전날 한판 붙었던 둘은 서로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는 그대로 아무런 말도 없이 갈 길을 향했다.

게빌은 바깥을 향해, 그리고 바렛 오테너는 자신의 전 동료가 기다리는 사무실을 향해.

엇갈리는 발걸음처럼 서로 간의 목적 또한 엇갈려 그냥 지나치는 두 사람이었지만, 언젠가 다시 한번 보게 될 날이 있을 것이었다.

­ 위이잉.

다시 한번 미세한 기계음과 함께 움직이며 두 사람을 갈라놓는 자동문.

게빌은 그 언젠가를 준비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섰고, 바렛 오테너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목적인 애쉬를 향해 움직였다.

­ 털썩.

“아, 왔네.”

애쉬가 앉아있는 소파 맞은편으로 향해 허락도 받지 않고 털썩 앉는 바렛 오테너.

그를 향해 애쉬가 반기듯 인사했지만, 돌아온 것은 전날보다도 더욱 차가운 눈빛이었다.

애쉬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바렛 오테너의 눈빛을 받아 흘렸고, 바렛 오테너는 그런 애쉬를 바라보며 더욱 분위기를 무겁게 깔았다.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던 샤인이 눈치껏 자리를 피하는 가운데, 애쉬를 바라보던 바렛 오테너가 입을 열어 단정하듯 말했다.

“넌 가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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