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화 〉 13. 바렛 오테너(6)
* * *
“넌 가짜다.”
바렛 오테너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애쉬 론모어에게 단언하듯 말했다.
그는 전날 애쉬와 마주친 이후 다크 웹, ‘게이트’에서는 물론이고 콜드 스팟의 모든 정보상들에게까지 애쉬 론모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전에도 동료의 입을 통해 이런저런 정보를 듣긴 했으나 현지에 온 만큼 새로운 정보가 있지 않을까 싶었기에 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는 확실히 동료의 입을 통해 대충 전해 들었던 것보다도 한참은 폭넓은 정보였다.
‘애쉬 론모어는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강화 인간으로 추정되며, 믿을 수 없지만 순수 인간이라는 소문도 있다.’
‘애쉬 론모어는 ’미친 칼잡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이미 슬럼 쪽에서 그의 얘기는 전설과도 같이 떠돌고 있다.’
‘애쉬 론모어는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라는 작은 사무소를 꾸려 해결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의뢰 성공률은 무려 100%에 육박한다고 한다.’
‘최근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에 ’총잡이들의 여명‘ 소속이었던 ’골든 캐니언‘, 게빌 리퍼슨이 합류했으며 그는 꾸준히 활동을…….’
등등.
상당히 상세하고도 많은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고, 바렛 오테너는 그런 정보들 하나하나를 확인하며 점차 의심을 더 키울 수밖에 없었다.
첫째로, 그가 알고 있던 애쉬 론모어란 남자는 순수 인간도, 강화 인간도 아닌 사이보그였으며.
둘째로, 그는 칼잡이가 아니라 바렛 오테너 자신과 같은 총잡이였다. 애초에 기업의 닌자들 정도가 아니라면 칼을 주무기로 쓰는 사람은 없을 테니 뒷세계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용병들의 주무기는 총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알던 애쉬 론모어라는 남자는 외부에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무척이나 귀찮게 여겨 피하는 성격이었다.
‘리버스’에 속해 있던 대부분의 동료들이 존 시의 전설로서 남아 널리 알려졌음에도 그들의 리더나 다름없던 ‘애쉬 론모어’라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남자는.’
그런데 지금 이 웨인 시에서 알려진 애쉬 론모어는 어떠한가.
그는 놀랍게도 도시 전역에 이미 이름이 알려질 만큼 알려진 상태였다.
뒷세계의 전설적인 인물들만큼 아무나 잡고 물어도 알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런 인물이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려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약하자면 몸, 사용하는 무기, 그리고 저런 성향까지도 바렛 오테너가 알던 애쉬 론모어와 달랐다.
같은 것이라곤 그저 외모와 분위기 정도.
그것이 너무도 흡사하긴 했지만 당장 보이는 것부터가 그런데 애쉬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해왔던 동료, 바렛 오테너가 그를 진짜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애쉬는 자신을 가짜라 치부하는 바렛 오테너의 말에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가짜라고? 그럼 넌 왜 내 앞에 이렇게 앉아있어?”
네 성격이라면 들어올 때부터 총을 뽑아 들고 쏴 갈겼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이미 너도 알고 있는 거 아니야? 내가 진짜라는 걸.
그런 뜻을 담고 놀리는 듯한 애쉬의 목소리에 바렛 오테너가 그를 노려봤다.
‘이런 점까지도…!’
닮았다. 빌어먹을 정도로 닮았다.
성격, 말투, 분위기. 그리고 ‘존 시’의 전설이 된 자신을 앞에 두고도 여유를 부리는 저 태도.
그 모든 게 닮은 것을 넘어 완전히 똑같은 수준이었다.
분명히 상대방은 가짜다. 가짜일 터였다.
그런데 왜 자신은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가. 어째서 저 가짜의 말처럼 이 자리에 얌전히 앉아 대화나 나누고 있는가.
‘검은 개’, 바렛 오테너는 대외적으로 상당히 침착하고 말수가 적은 이미지로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도 그게 어느 정도는 맞았고.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바렛 오테너라는 남자의 진면목에 대해 알았다.
겉으론 그저 침착하게 보이지만 차가운 머리 이상으로 뜨거운 가슴을 갖고 있어 은근히 장난과 전투, 위험을 즐기며 인내심의 임계점 또한 생각보다 낮다는 것을.
특히나 그의 역린이라고 할 수 있는 동료들을 건드는 일에 대해서만큼은 그는 손대중이 없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지금 그가 왜 자신의 동료를 사칭하고 있는 가짜를 앞에 두고도 가만히 앉아만 있는가 하면 아직까지도 흔들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와 ‘리버스’의 동료들은 자취를 감춘 애쉬를 몇 년 동안 찾아다녔고, 그중에 가짜들도 여럿 보았다.
그 쓰레기들은 이제는 전설이 된 동료들이 애쉬 론모어라는 인간을 찾고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듣고는 그를 사칭하는 가짜들이었고, 바렛 오테너와 동료들은 그런 놈들을 발견할 때마다 일말의 자비조차 남기지 않고 처분했다.
놈들은 하나같이 비슷하긴커녕 자신들을 앞에 두고 벌벌 떨 줄이나 아는 쥐새끼들에 불과했으니까.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은 그런 가짜들과 전혀 달랐다.
기세를 끌어올려 압박하고 있음에도 재밌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자신을 바라보는 저 눈.
저 진청색 눈동자에서 시작된 눈빛은 묘한 감정을 담고 그의 마음속까지 흘러들어왔다.
반가움, 그리움, 그리고 흥미와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전해진다.
저런 눈을 하고 있는 녀석을 어떻게 그저 가짜로만 치부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그 외의 모든 것들이 다르다고 해도 바렛 오테너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애쉬 론모어를 그냥 처분해버릴 수가 없었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몇 번이나 겪지 않았던가.
여태껏 뒷세계에서 활동하며 겪은 일들에 비하면 애쉬가 어느 날 모습을 감췄다가 갑자기 사이보그 총잡이가 아닌, 강화인간 칼잡이가 되어 나타난 정도는 엄청나게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설령 가짜라도 얘기 정도는….’
대화 정도는 해봐도 괜찮지 않나?
이 모든 게 만약 자신을 홀리기 위한 수작이라면 바렛 오테너는 그 정성과 능력에 감탄하며 눈앞의 가짜 놈을 그 어느 때보다도 끔찍한 꼴로 만들어줄 자신이 있었다.
‘그래, 대화 정도라면.’
찾아올 때까지만 해도 이 가짜를 비롯한 사무실 자체를 쓸어버리리라 각오하고 왔건만 직접 눈앞에 두고 보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이 가짜를 처분하는 것은 일단 얘기를 듣고 나서.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았다.
최대한 흥분과 흔들림을 가라앉힌 바렛 오테너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가짜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건방 떨지 마라. 모든 정황이 널 가짜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얘기 정도는 들어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뿐이야.”
“핫, 필요성은. 조금만 아니다 싶어도 머리부터 깨부수는 놈이.”
명백히 자신을 위협하는 목소리. 거기에는 만만치 않은 살기가 담겨있음에도 가짜는 틈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그를 다시 한번 놀리듯 말했을 뿐.
바렛 오테너는 자신을 대하는 익숙한 태도에 다시 한번 흔들리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을 억지로 미뤄두고 입을 열어 물었다.
“너는 분명 사이보그였어.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강화인간이 된 거지?”
“프흐, 너는?”
“…진짜 애쉬 론모어는.”
가짜의 지적에 바렛 오테너가 한 박자 늦게 그것을 정정했다.
그의 말대로 애쉬 론모어는 사이보그였다.
그것도 그냥 팔다리만 바꿔 끼운 수준이 아니라, 폐와 심장, 그리고 척추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신경계 전체를 갈아치운 진짜배기.
그런데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애쉬 론모어의 몸을 스캔해본 결과 그 흔한 신경 인터페이스 하나 감지되지 않는다.
예전 바렛 오테너가 알던 애쉬 정도의 사이보그를 만드는 것은 극악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사이보그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은 현대 의학으로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가짜는 인간의 몸을 갖고 있지 않은가.
사칭을 하고 위장을 할 것이라면 제대로 해야 의심을 덜 받을 텐데, 그 흔한 피하 코팅 하나 없어 스캔 한 번에 모든 것이 드러나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그저 가짜라서 그렇다기엔….’
대놓고 알아채라고 사용했기에 스캔 기능이 켜진 눈이 한 차례 자신의 몸을 훑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숨기지 않는 걸까. 저렇게 무방비한 상태로도 자신을 속일 수 있다는 건가?
아니면 정말로 무슨 사정이 있어서….
아니, 아니다. 이 녀석은 가짜다. 그저 대범한 척하며 자신을 속이고 있을 뿐인 가짜.
그렇게 자신의 상념을 지워버린 바렛 오테너가 애쉬를 노려보는 것으로 대답을 재촉하자 애쉬가 입을 열었다.
“그야 그때랑은 전혀 다른 몸이니까.”
“…다른 몸?”
“그래. 다른 몸.”
커스터마이징은 완벽히 같았기에 외견상 차이는 없겠지만, 새 게임을 시작하며 새로이 만들어진 몸이니 전혀 다른 몸이라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런 애쉬의 대답에 바렛 오테너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대체 그딴 게 어떻게…. 아니, 그렇다면 사용하는 무기는 어떻게 된 거지? 너는 분명 총잡이였다. 지금 이곳에 알려진 것처럼 칼을 쓰는 녀석이 아니었어!”
바렛 오테너 자신과 함께할 때 애쉬는 칼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지금 웨인 시에 알려진 것처럼 실력이 대단하지도 않았고.
사용한다고 해도 아주 가끔 적을 마무리할 때나 쓰곤 했지, 지금처럼 주무기로 사용하진 않았다는 말이다.
이제는 반쯤 넘어온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도 않으려는지 다시 ‘너는’이라고 지칭하는 바렛 오테너의 물음.
그에 애쉬는 이번에도 진실을 사실대로 얘기했다.
“그냥 되던데?”
12레벨로 설정한 숙련도의 영향.
칼을 잡으니 직감적으로 어떻게 써야 할지 알았고, 그것을 그저 사용했을 뿐이다.
게임 속 세상이니 뭐니 하는 얘기는 꺼낼 수 없었기에 남은 사실만을 대답한 애쉬였으나, 바렛 오테너는 그런 그의 태도에서 자신을 놀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애쉬 론모어는 원래 이런 녀석이었다.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니라면 좀처럼 진지해질 때가 없고, 언제나 다른 사람을 놀리는 걸 즐기던 녀석.
그것을 그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한 바렛 오테너는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리고 그랬기에 너무도 화가 나는 것이다.
으드득.
어디선가 단단한 것이 갈리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바렛 오테너는 그것이 자신의 입에서 들려온 소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가슴 속에서 들끓던 불길을 쏟아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연락 한 번 정도는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점차 높아지던 언성은 어느새 고함이 되어 사무실 내부를 울렸다. 바렛 오테너는 어느샌가 자신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애쉬를 내려다보고 있음을 알아챘다.
몇 년 동안 사라진 녀석을 그렇게나 찾았다.
그를 비롯한 모든 동료들이 직접 발로 뛰며 모든 곳을 확인했고, 그것은 불과 얼마 전까지도 계속됐다.
그런데 지금 이 녀석은 이 자리에 앉아 자신을 찾아온 전 동료에게 이딴 태도를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리고 넌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녀석이 아니더라도!”
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연인에게만큼은,
“테일러에게만큼은 알려야 했다!!”
너는 반드시 연락해야 했다.
바렛 오테너는 수 년 동안 자신과 동료들이 쌓아뒀던 감정을 이 순간 모조리 쏟아내며 외쳤고, 이번만큼은 애쉬도 가볍게 받아내지 못했다.
“그건….”
뭐라고 말해야 할까.
새 게임+가 아닌, 새 게임으로 진행했기에 과거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너희가 남아 있을 줄 몰랐다?
아니면 사는 게 바빠 너희에 대해 생각할 틈이 없었다?
무엇이라고 말해도 저 무거운 감정의 폭류를 거스를 수는 없을 터다. 애쉬는 이번만큼은 갖잖은 변명을 꺼내길 포기했다.
“…그건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바렛 오테너는 애쉬의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분노, 그리고 더한 분노.
그는 이딴 사과나 듣기 위해 이곳에 찾아온 게 아니었다.
바렛 오테너는 자신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격분을 느끼며 의도적으로 그것에 몸을 맡겼다.
퍼어억!!
우당탕!
그렇게 이성을 잃길 일순간, 정신을 차리니 쓰러진 소파와 자신의 주먹에 맞아 뒤편의 업무용 책상을 뒤엎고 있는 애쉬가 보인다.
하지만 그의 정신을 완전히 차지한 분노는 꺼질 생각을 않고 오히려 더욱 격하게 타올랐다.
바렛 오테너는 입가를 타고 흐르는 피를 닦으며 무너진 책상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애쉬를 바라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한테 맞아 죽어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