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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211화 (211/230)

〈 211화 〉 13. 바렛 오테너(7)

* * *

“그렇다면 여기서 나한테 맞아 죽어라.”

진심이 담긴 그 목소리가 사무실 내에 울린다.

뺨 안쪽이 찢어졌는지 입안에 느껴지는 피의 맛과 정도를 넘어서는 충격에 조금 멍해진 머리.

애쉬는 고개를 털며 무너진 책상들 사이에서 일어나선 입가의 피를 닦았다.

그러자 그의 옆에 흐트러진 서류 더미가 슬쩍 움직이는 게 보였다.

툭.

“나서지 마.”

그것을 확인한 애쉬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작게 말했다.

뇌까지 충격이 전해져 정신이 이상해졌기에 허공에 대고 말을 건넨 게 아니라, 서류를 건드는 것으로 자신에게 일종의 신호를 보낸 린느에게 명령한 것이었다.

그녀는 애쉬를 주인으로 모신다고 맹세한 이후로도 자주 이렇게 모습을 감추고 있곤 했다.

­ 뚜벅, 뚜벅.

린느에게 명령한 애쉬는 다시 시선을 돌려 바렛 오테너에게 향했다.

진심으로 그를 때려죽일 듯한 기세로 다가오는 옛 동료의 모습. 게임 속에서 함께 했던 그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는 성격이라는 게 보였다.

애쉬는 그런 그를 향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미안하긴 하지만 지금 죽어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럼 역으로 날 때려 눕혀봐라.”

물론, 지금의 너한테는 무리겠지만.

작게 이죽거린 바렛 오테너는 이제 정신을 차릴 시간 정도는 충분히 줬다는 듯 강하게 땅을 박차는 것으로 자신의 몸을 쏘아냈다.

­ 쿠웅!

발소리가 울리는 것과 동시에 애쉬의 눈앞까지 치닫는 그의 동체.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때려 부술 것 같이 쥐어진 주먹과 그 속력, 그리고 기세는 가공할만한 것이었지만, 애쉬는 그것을 구태여 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맞아주는 건 한 번이 끝이야.’

기습적으로 뻗어진 첫 공격 또한 그가 의도적으로 받아준 것. 애쉬에게는 그보다 더 빠르고 기습적인 공격이라도 반응할 만한 반사신경과 신체 능력이 존재했다.

‘그러니까.’

­ 쇄애액!

애쉬의 주먹은 뒤늦게 출발했지만 대기를 가르듯 살벌한 소리를 울리며 오히려 바렛 오테너의 주먹보다도 먼저 그의 뺨에 박혀 들어갔다.

­ 콰드드득!

맞은 뺨 쪽에 위치하던 어금니가 부서져 나가는 심상치 않은 소리가 울리며 쏘아지던 바렛 오테너의 목이 반대로 꺾여 나간다.

모르긴 몰라도 정신이 혼미해질 충격이 머릿속을 뒤집어놨을 터.

느려진 시간 속, 애쉬는 벌어진 바렛 오테너의 충격에 벌어진 입 사이로 튀어 오르는 희고 붉은 파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너무 까불지는 말라고, 바렛.”

­ 쿠당탕!

느려졌던 시간이 다시 가속하며 바렛 오테너의 몸이 반대로 날아갔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앉아있던 소파를 쓰러뜨리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 뒤편에 위치하던 케일의 업무용 책상을 뒤집어엎으며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애쉬는 더 따라갈 것도 없이 가만히 서서 서류 더미 사이에 널브러진 바렛을 바라봤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기에 아무리 사이보그라도 두개골 전체를 금속으로 대체하지 않았다면 위험할 수 있는 공격이었으나, 바렛 오테너는 그 와중에도 고개를 움직여 충격을 어느 정도 완화 시켰다.

덕분에 머리가 반쯤 날아가도 이상치 않을 공격이 어금니 몇 개만 박살 내는 것으로 끝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의 충격은 정신을 잃었다고 해도 이상치 않을 정도였을 텐데, 바렛 오테너는 기어코 바닥을 짚고 쓰러진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크흐으…. 강화 인간, 이라더니.”

바렛 오테너는 말하던 도중 벌린 입안에서 핏물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주먹에 맞은 쪽의 어금니가 완전히 작살났고 뺨은 거의 구멍이 날 것 같은 수준으로 찢어진 것 같다.

반응해서 충격을 완화시킨 게 이 정도인데, 대체 이게 어딜 봐서 강화 인간의 완력이란 말인가.

머리가 윙윙 울리는 게 뇌까지 충격이 전해져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바렛 오테너는 한 방 맞았다고 기가 죽을 수준의 남자가 아니었다.

“그 정도라면, 나도 진심으로 간다.”

[시스템 온라인. 에너지 잔량 99.7%. 예상 가동 시간 21분.]

[전 회로 이상 무.]

[통합 신체 능력 상승치 43%.]

머릿속으로 내린 명령에 따라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시스템 볼케이노’.

연방 최고의 엔지니어 중 하나인 그의 동료가 만들어준 특수 기능.

전신의 개조 파츠를 과부하 시키는 것으로 신체 능력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는 능력의 발동이었다.

“하, 쓸 거면 처음부터 썼어야지.”

1회차에서 저런 현상을 많이 봤던 애쉬도 바렛 오테너의 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그가 볼케이노를 사용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녀석이 1회차에 비해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확실한 건 방금처럼 쉽게 나가떨어지진 않을 거란 것이었다.

“덤벼.”

도발하는 듯한 애쉬의 목소리와 함께 바렛 오테너는 다시 한번 땅을 박찼다.

*

­ 퍼엉!

애쉬가 뻗은 다리가 그것을 막기 위해 들어 올린 팔에 부딪히며 뭔가 폭발하기라도 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자신의 다리가 막히는 것과 동시에 애쉬는 상체를 뒤로 빼며 어느샌가 내질러진 바렛 오테너의 주먹을 피했고, 주먹이 턱 끝을 스쳐 지나가자 그대로 상체를 다시 세우며 오른 주먹을 쏘아냈다.

그러나 그것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바렛 오테너의 반대 손.

­ 파악!

정확히 받아냈음에도 손바닥의 가죽이 찢어질 듯한 통증을 느낀 바렛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멈춘다는 것은 아니다.

“이 새, 끼가!”

바렛 오테너의 거친 목소리와 함께 그의 다리가 애쉬의 허리를 향해 날아왔다.

애쉬는 팔을 들어 그것을 막고 명치에 강권을 박아넣을 생각이었으나, 예상치 못한 곡선을 그리며 채찍처럼 목으로 휘어지는 바렛 오테너의 공격에 유효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 촤악!

목을 정확히 강타하는 발차기에 휘청이는 몸, 그림 같은 브라질리언 킥이었다.

고무보다 질긴 목의 근육이 그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했음에도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제대로 된 타격이었지만, 애쉬는 눈을 부릅뜬 다음 머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똑바로 고정해 그것을 버텨내고 자신이 계획했던 대로 상대방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 뻐어억!

“……!”

목을 강타한 애쉬나 명치를 제대로 찔린 바렛이나 어느 쪽에서도 고통의 신음은 없었지만, 둘은 서로가 상대방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입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공방.

애쉬의 주먹이 얼굴을 노리고 날아가면, 바렛은 그것을 막고 어퍼컷을 올려친다.

고개를 빼는 것으로 다시 그것을 피한 애쉬는 하이킥을 올려 차고 바렛 오테너가 그것을 막는 것의 연속.

둘은 자존심 싸움이라도 하듯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치고받았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공격과 방어의 연속에서 주고받는 주먹질이 계속될수록 바렛 오테너는 점차 이상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버티는 거지?’

분명 지금의 애쉬는 강화 인간이었다. 그는 사이보그였고.

그렇다면 그 신체의 내구성을 생각했을 때 서로 간에 같은 타격이 오고 가더라도 이득을 보는 것은 당연히 신체가 기계로 이뤄진 사이보그다.

아무리 강화됐다지만 피륙으로 이뤄진 강화 인간과 기계로 이뤄진 사이보그, 둘 중 어느 쪽이 더 뛰어난 내구성을 갖고 있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뿐 아니었다.

“크흡…!”

번개처럼 빠른 애쉬의 주먹이 바렛 오테너의 얼굴을 노리고 쏘아진 것을 막았지만, 오히려 가드가 밀려난다.

단순 내구성뿐 아니라 근력에서조차 그가 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게…!’

사이보그 개조 수술이야말로 개인의 무력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라는 그의 상식이 무너졌다.

게다가 체력 또한 지칠 생각을 않아, 이대로 가면 볼케이노 시스템을 발동하고 있는 그의 개조 신체가 먼저 정지할 판이었다.

­ 까드득.

바렛 오테너는 이대로 가면 자신이 먼저 쓰러질 것이라는 것을 느꼈지만 이를 갈며 물러나지 않았다.

그에 부러진 이가 아파 왔지만, 그런 건 이미 그의 신경에 없다.

어떻게든 이 녀석을 때려눕히고 동료들에게 끌고 간다. 그것만이 지금 바렛 오테너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생각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의 몸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관절 기동부 과열. 에너지 잔량 11%. 예상 가동 시간 2분.]

예상 밖으로 과격한 기동을 계속했기 때문일까, 처음에 21분의 가동 시간을 예상하던 시스템 메시지는 십여분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2분 가량의 잔여 기동 시간을 알려왔다.

아마 이마저도 2분이 아니라 일분 남짓한 시간이 지나면 끝날 터.

그럼 볼케이노 시스템 없이 애쉬를 상대해야 했는데,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 와중에도 겨우 맞서던 것을 그것이 없는 상태로 계속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예상대로 끝이 왔다.

[볼케이노 시스템 오프. 과열 부위 냉각 시작.]

“제기랄…!”

볼케이노 시스템의 종료.

과열됐던 신체 부위가 냉각되는 게 느껴지며 신체 능력 또한 눈에 띄게 느려지는 게 보였다.

그런 것을 그와 맞서 싸우던 애쉬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이번엔 애쉬가 싸움을 시작할 때 바렛 오테너에게 들었던 것을 돌려주듯 그를 향해 이죽거렸다.

“이걸 어쩌나, 볼케이노 시스템도 끝인 것 같은데.”

볼케이노 시스템이 꺼지자 억지로 유지되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겨우겨우 막아내던 공격은 이제 얼굴, 가슴, 배 할 것 없이 사정없이 꽂혀 들기 시작했으며, 반대로 바렛 오테너의 공격에서는 더 이상 유효타가 나오지 않았다.

­ 퍼억!

“이제 그만하지그래.”

바렛 오테너의 안면에 다시 한번 주먹을 먹여준 애쉬가 충분하지 않냐는 듯 말하며 한 발짝 물러났다. 더 이어가는 것이 의미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 나름의 배려였다.

하지만 바렛 오테너는 그런 애쉬의 태도에 그를 죽일 것처럼 노려봤다.

‘날 배려해?’

머리 끝까지 화가 차오르다 못해 뚜껑이 열리고 불이 쏟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네가 날 무시하지 않는다면 이딴 짓거리는 해선 안 됐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이 모습은 뭐지?

바렛 오테너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악에 받쳐 외쳤다.

“닥치고 끝까지 덤벼라 애쉬!!”

지옥에서 올라오는 듯한 외침이 그의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온다.

바렛 오테너는 이대로 계속된다면 먼저 쓰러지는 것은 자신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지만, 오기로라도 한 명이 완전히 박살이 날 때까지 물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외치며 다시 달려드는 바렛 오테너를 본 애쉬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곤 표정을 굳혔다.

그래, 방금 그것은 정말 괜한 배려였다.

멍청한 짓이었다.

녀석을 존중한다면 끝까지 싸워 쓰러뜨리는 게 예의였다.

애쉬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거기에 대고 사과하지는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진짜로 녀석을 우롱하는 행위가 될 터였으니.

그렇다면 지금 해야할 것은 정해져 있었다.

‘저 녀석을 완전히 때려눕히는 것.’

남은 얘기는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았다.

애쉬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바렛 오테너를 향해 마주 달려들었으며, 더 이상 그의 공격을 피하지도, 막지도 않고 모두 몸으로 받으며 자신도 죽어라 주먹질을, 발길질을 쏟아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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