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212화 (212/230)

〈 212화 〉 13. 바렛 오테너(8)

* * *

모든 것에는 끝이 있었고, 그것은 애쉬와 바렛 오테너, 과거의 동료였던 둘의 싸움도 마찬가지였다.

“뒈져버려라! 애쉬!!”

“너나 뒤져!”

서로를 향해 외치며 달려드는 둘.

애쉬와 바렛 오테너는 최후에 서로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고, 완벽히 동시에 서로의 얼굴에 주먹을 꽂은 결과.

­ 콰득!

“커헉…!”

턱뼈가 부서지며 바닥에 쓰러진 것은 그 스스로도 예상했듯 바렛 오테너 자신이었다.

­ 털썩.

“후욱, 후우우….”

쓰러진 바렛 오테너를 앞에 둔 애쉬는 홀로 서서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무식하게 바렛 오테너의 공격을 모조리 허용하며 맞부딪힌 결과 그의 몸도 멀쩡하진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타격 부위가 붓거나 찢어진 정도에 불과한 반면, 바렛 오테너는 전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졌다.

애쉬는 욱신욱신 붓기가 올라오고 있는 뺨을 가볍게 문지르며 바렛 오테너가 무너뜨린 업무용 책상 위에 대충 걸터앉았다.

그리고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리고 있는 바렛 오테너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프흐, 이긴 적도 없으면서 덤비기는.”

“개, 자식….”

놀리는 애쉬를 향해 쓰러진 바렛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의 말대로 바렛은 1회차 게임을 진행하던 시절 여러 번의 싸움에도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다.

애쉬 론모어가 주인공 캐릭터였던 만큼 성장에 대한 모든 투자는 애쉬에게 우선적으로 들어갔으니까.

그렇게 이진현이었던 때의 기억을 되살린 애쉬는 전신이 멀쩡한 곳이 없음에도 기분이 유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쩐지 게임 속에서 있던 그 사건들이 모두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떠오르며 괜히 이런 상황이 웃긴 게 아닌가.

다짜고짜 달려들어 싸움을 건 이 녀석도, 그리고 거기에 유치하게 자존심을 세우며 같이 싸운 자신도.

게임 속에서나 봤던 인물이기에 엄밀히 말하면 처음 보는 녀석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바렛 오테너였지만, 그에게 맞은 부분은 아프면서도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퉤!”

“이사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사무실인데 어디다 뱉는 거냐.”

애쉬가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앉고는 피가 다량 섞인 침을 뱉는 바렛 오테너에게 따졌지만, 그는 애쉬의 말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어차피 엉망이 된 상태인데, 피 좀 뱉는다고 문제라도 생기나.”

“음….”

바렛 오테너의 말에 한 차례 사무실을 둘러본 애쉬가 침음을 삼켰다.

그의 말대로 사무실은 난리가 난 상태였다.

소파고 업무용 책상이고 모조리 부서지거나 넘어져선 그 위에 있던 물품들을 모조리 바닥에 쏟은 데다, 서류들도 바닥을 구르며 이리저리 밟히고 피가 튀어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된 것이 많았다.

차라리 청소하기도 전, 이사를 진행하던 현장이 더욱 깨끗한 것 같을 정도.

특히나 신경 쓰이는 점이라면 직원들, 그중에서도 샤인과 케일이 이용하는 업무용 책상에 있던 서류들이 이리저리 흩뿌려지며 뒤섞였다는 것.

깐깐하고 은근히 성깔 있는 케일이 이것을 보고 보일 반응이 조금은 걱정됐다.

게다가 샤인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겠지만 그런 게 더 찜찜하다. 아무런 타박도 않으니 오히려 눈치를 조금 보게 되는 느낌.

애쉬가 이후 있을 일을 걱정하는 동안, 바렛 오테너는 턱과 마찬가지로 부서져 삐뚤어진 것 같은 코를 제자리로 되돌리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 뚜둑…!

“크흐, 개자식…. 망할 자식.”

얼굴 곳곳이 멍들고 부은 애쉬와 달리 거의 피떡이 된 그는 자꾸만 눈가를 타고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코를 만지작거리면서도 자신을 이런 꼴로 만든 애쉬를 원망하는 감정 따위를 가지진 않았다.

이런 비슷한 꼴이 될 때까지 싸운 게 한두 번이어야지.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한 것은 처음이었지만, 몇 년 만에 이런 다툼을 벌이다 보니 오히려 이 고통이 반가운 느낌조차 없잖아 있었다.

이런 고통이 반갑다니. 스스로 보기에도 정신 나간 것 같은 생각에 픽 웃다가 고통에 인상을 찡그린 바렛 오테너는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끄윽….”

이거, 느낌을 보니 코와 턱만 부서진 게 아니라 갈비뼈 쪽도 두어 대는 나갔다. 오늘 이후로 못해도 한 달 정도는 회복에 전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일어나선 주변의 넘어진 소파를 다시 세운 바렛 오테너는 먼지투성이가 된 소파에 앉아 애쉬를 바라봤다.

“뭐해, 이 개자식아. 안 앉고.”

“프흐, 네 얼굴이 웃겨서.”

“…다음번엔 널 이 꼴로 만들어주마.”

애쉬는 복수를 다짐하는 바렛 오테너의 맞은편 소파를 다시 세워 앉았고, 그렇게 처음처럼 서로를 마주 보게 된 둘은 상대방이 하고 있는 꼬라지에 웃음을 참지 않았다.

“프흐흐흐.”

“크흐흐.”

머리와 얼굴 곳곳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웃고 있는 바렛 오테너와 부상의 정도는 훨씬 덜하지만 얼굴이 퍼렇게 멍들고 부어서는 몰골이 된 애쉬.

그런 그들이 서로를 보며 웃는 모습은 몰래 고개를 빼꼼 내밀고 그들을 바라보던 샤인이 보기에 꽤나 호러블한 모습이었지만, 당사자들만큼은 그런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웃었다.

그렇게 서로를 보며 웃기도 잠시, 애쉬가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

“그래서 다른 녀석들은?”

‘리버스’에 속한 그의 동료들에 대한 물음. 잠시 생각한 끝에 나온 질문이라곤 겨우 그런 것이었다.

바렛 오테너는 그런 애쉬의 물음에 소파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흩어진 녀석들도 있고, 아닌 녀석들도 있고.”

“흩어진 녀석들?”

“그래. 네가 없어졌으니까.”

이어진 애쉬의 목소리에 바렛 오테너가 대답했다.

‘리버스’는 온갖 개성 넘치는 녀석들이 여덟 명이나 속한 집단이었다.

하나같이 통통 튀는 녀석들은 그 개성이 강하고 실력이 대단한 만큼 자아도 강했기에 이리저리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끌어모았으며 구심점이 되던 게 바로 애쉬였으나, 그가 모습을 감췄으니 어떻게 됐겠는가.

아예 현역에서 물러나 그동안 쌓은 명성과 돈으로 놀고먹는 녀석도 있었고, 혼자 나가선 애쉬를 찾겠다고 움직이고 있는 녀석도 있었다.

“보리스는 결혼까지 했다던데. 와이프가 임신했다며 배 속의 아기 사진까지 보내더군.”

“그 녀석이?”

“그래. 나도 그놈이 그렇게 될 줄은 몰랐지.”

“허.”

“그리고 아이작은 널 찾겠다고 나갔다. 웨인 시에서 네 흔적을 발견했다는 얘기는 전해뒀는데, 제대로 확인이나 했을지 모르겠어.”

바렛 오테너는 애쉬에게 낯익으면서도 그리운 이름들을 하나씩 부르며 그들의 근황을 전했는데, 대부분은 애쉬 자신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게 그의 얘기였다.

미안하긴 하지만 다들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는 얘기에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있던 애쉬는 곧 바렛 오테너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듣고 조금은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테일러는….”

그렇게 변한 애쉬의 표정을 슬쩍 살핀 바렛 오테너가 말을 이었다.

“아주 애타게 널 찾고 있었지. 연방 정부국의 힘까지 빌려서 말이야. 아마 지금쯤이면 존 시에서 출발했을 걸.”

테일러 뫼이헨.

그녀는 이진현이 플레이했던 1회차 시절 스토리 라인에서도 메인 히로인격이 되는 캐릭터였으며, 연방 정부의 특수 요원으로서 뛰어난 첩보원이기도 했다.

“…….”

연한 보랏빛으로 물들인 머리칼과 자수정을 박아놓은 것처럼 깨끗한 자주색 눈동자의 미인이 절로 머릿속에 그려진다.

마치 그녀를 실제로 보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려진 그녀의 모습은 슬픈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알 수 없는 현상에 애쉬가 잠시 생각에 빠지자 바렛 오테너는 그런 그에게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조만간 녀석들이 웨인 시에 모일 거다. 그리고 너를 찾아서 여기로 향하겠지. 얼마 남지 않았어.”

일단 한번 꼬리를 잡힌 순간 그것은 정해진 미래였다. 최고의 실력자들이 모인 ‘리버스’의 일원들이라면 아주 작은 흔적 하나만으로도 그를 어떻게든 찾아낼 터였으니.

바렛 오테너의 경우에는 웨인 시에 도착한 후에야 콜드 스팟에서 그 정보를 얻었지만, 다른 녀석들은 이미 애쉬가 이곳에 사무실을 차렸다는 것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녀석들이 왔을 때도 오늘처럼 대답할 거냐?”

“글쎄.”

바렛 오테너의 물음에 애쉬가 장난기를 버리고 대답했다. 명확히 대답을 내놓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사실대로 말하기엔 너무도 이상한 얘기지 않은가.

너흰 내가 플레이했던 게임 속의 캐릭터이고, 이 세계는 그 게임 속 세계다.

그리고 나는 어느 날 게임 속에 들어와선 내가 플레이하던 캐릭터가 됐다.

이런 식으로 있는 사실을 그대로 설명한다고 믿기나 할까?

괜한 일을 벌이느니 차라리 애매하게 대답해서 흐려버리는 게 낫다는 게 애쉬의 생각이었다.

그런 애쉬의 대답에 바렛 오테너도 그의 생각을 대강 읽고는 말했다.

“그래, 넌 옛날부터 숨기는 게 많은 녀석이었지.”

과거 그가 몇 년 동안 봐왔던 애쉬 론모어라는 남자는 분명 대단하지만, 그만큼이나 이상한 부분도 많은 녀석이었다.

그가 대충 정하듯이 뽑은 인재들은 하나같이 천재적인 재능과 실력을 갖고 있었고, 분명 입으론 처음 가는 곳이라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앞장서 움직이면 옳은 곳으로 향하곤 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생판 처음 보는 녀석에게서 의뢰를 받아온다거나.

도시를 주름잡는 기업들에게마저 거침없이 덤벼들곤 하던.

애쉬는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진 않았으나, 그가 나선 일이면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결되곤 했다.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 녀석이 숨기고 있는 게 많다는 건 바렛 오테너 자신을 비롯한 모든 동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몇 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도 묻지도, 답을 듣지도 못했던 것에 대해 지금이라고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다만 바라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제 네가 알던 그 옛날의 애송이들이 아니야.”

그러니까 네가 모든 것을 사실대로 밝히더라도, 무엇을 숨기고 있더라도 그것을 받아들 준비가 되어 있다.

그가 자신들을 믿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바로 바렛 오테너의 바람이었다.

“…….”

애쉬는 그런 바렛 오테너의 목소리에도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할 수 없었다.

저렇게나 강한 믿음을 전해오는데도 거짓을 말하거나 그냥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는 것은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바렛 오테너는 여전히 생각에 빠진 애쉬를 보며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굳이 말하지 않겠다고 해도 캐물을 생각은 없어. 다만 이번처럼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지는 마라.”

그렇게 되면 우린 너를 믿었던 만큼 크게 실망하고 말 테니까.

그것이 바렛 오테너가 전한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그런 얘기들을 끝으로 애쉬를 두고 사무실을 떠났으며, 애쉬는 엉망이 된 사무실 중심에서 바렛이 전하고 떠난 말을 좀 더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세상에…. 무슨 강도라도 든 건가요?”

정식으로 출근하게 된 케일이 완전히 난장판이 된 뒤 아직 정리가 끝나지조차 않은 사무실을 보며 경악을 터뜨리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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