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 14. 동료(1)
* * *
“이봐,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뭐가.”
“그 녀석이랑 제대로 한바탕 해서 이렇게 됐다면서. 그 녀석이랑은 동료 아니었나?”
게빌이 몇 시간째 이어진 청소에도 아직 제대로 정돈되지 않은 사무실을 돌아보며 애쉬에게 물었다.
부서진 업무용 책상들과 손님맞이용 테이블, 그리고 바닥에 흩뿌려지고 짓밟힌 서류들까지.
하룻밤 만에 완전히 난장판이 된 사무실의 광경은 어쩌다 이런 꼴이 됐을까 싶을 정도로 처참했다.
겨우 두 사람이 싸운 것이 아니라 무슨 폭풍이라도 지나간 것 같은 모습.
게다가 애쉬의 얼굴에는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붓기와 퍼런 멍이 남아있어 전날 게빌이 떠나고 일어난 싸움이 얼마나 격한 것이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건…, 몰라도 돼.”
하….
서류를 주워 정리하던 애쉬는 그런 게빌의 물음에 무어라 대답하려다 얼버무리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케일은 첫 출근날 난장판이 된 사무실을 발견한 직후부터 애쉬를 잔뜩 쪼아대며 그에게 잔소리를 쏟아냈고, 그런 잔소리에 할 말이 없었던 애쉬는 얌전히 그녀의 말에 따라 이렇게 쭈그려 앉아 서류를 줍고 부서진 책상 따위를 치우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아무렇지 않게 흘려듣고는 넘어갔을 일이나, 이번만큼은 그 자신도 원인이 되었기에 그냥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그 자식.’
일을 같이 벌였으면 뒤처리는 하고 가야 할 것 아닌가.
애쉬는 전날 미리 도망친 바렛을 떠올리며 괜히 속으로 꿍얼거렸다.
바스락, 바스락.
“내일은 파티도 열 거라면서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건지.”
“…….”
책상 파편 따위를 청소하면서도 쯧쯧 혀를 차며 말하는 게빌의 목소리.
자신이 잘못한건 맞았기에 애쉬는 거기에 대고 뭐라 할 수 없으면서도 열이 받는 느낌이었다.
일순간 감정에 휩싸여 날뛴 것도 맞았고, 바로 내일 지인들을 모아 새로운 사무실에서 파티를 열기로 한 것도 맞았지만, 게빌에게 저런 소리를 들으니 괜히 짜증이 난다고 할까.
하지만 당장 새 사무실 오픈을 기념하여 파티를 열기로 한 게 내일인데 내부가 이런 꼴이 됐으니 한 소리 듣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책상도 새로 구하고, 테이블도….’
오늘은 못 쉬겠군.
청소 외에도 급히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린 애쉬가 다시 한번 속으로 바렛을 씹어댔다.
그렇게 게빌과 애쉬가 사무소를 청소하고 있을 때였다.
사무실의 자동문이 열리며 작은 종소리로 누군가의 방문을 알렸다.
딸랑딸랑.
“두 분 다 뭐라도 마시면서 하세요.”
“저 두 사람이 뭐가 이쁘다고.”
잠시 외부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러 간다던 샤인과 케일의 귀환이었다.
애쉬의 바렛의 싸움으로 인해 파손되거나 분실된 물건들이 제법 많았고, 애쉬는 케일과 샤인에게 크레딧 카드를 넘기며 필요한 물건을 모두 구매해 오라고 보냈는데, 그렇게 물건을 구매하는 도중에 간단한 마실 것과 간식 따위도 챙겨온 모양이었다.
“으으, 그래. 이봐 애쉬, 잠깐 쉬고 하자고.”
“어.”
자신을 부르는 게빌의 목소리에 쭈그려 앉아 서류나 물건을 줍던 애쉬가 일어서선 소파로 손님 접대용 소파로 향했다.
다행히 소파는 넘어진 것 외에 부서지거나 하지는 않아 사용하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물론, 마주 보고 있는 소파 사이에 있던 테이블은 완전히 반쪽이 나서 무너져 있었지만.
‘그 녀석의 머리로 깼었지 아마.’
애쉬는 자신이 바렛의 머리통을 내려쳐 저 테이블을 부쉈던 것을 떠올리며 소파에 앉아 샤인이 건네주는 마실 것과 간식을 받았다.
“사장님은 단 걸 별로 안 좋아하시니 너무 달지 않은 호두 파이랑 커피로 준비했어요.”
“그래. 고맙다.”
“게빌, 넌 단 걸 좋아하니까 도넛류로 사 왔어. 마실 건 마찬가지로 커피.”
“고마워.”
소파에 앉아 양손에 커피와 간식을 들고 티타임을 갖는 네 명.
대체로 파이 종류는 달기 마련인데, 역시나 똘똘한 샤인이 고른 것인지 그렇게 달지 않으면서도 고소한 맛이 강한 호두 파이와 커피를 즐기던 애쉬.
그런 그의 옆에서 마찬가지로 도넛을 먹던 게빌이 손끝에 묻은 가루를 털어내며 애쉬에게 물었다.
“테이블이랑 책상은 좀 봤나? 내일 유성 그룹의 아가씨는 물론이고, 그 갱단 보스랑 다른 사람들도 온다면서.”
그 전에 사무실의 꼴을 제대로 돌려놔야 하지 않겠냐는 게 그의 물음이었다.
그에 애쉬도 다시 고개를 돌려 사무실 내부를 한 차례 둘러 봤다.
“아직 안 보긴 했는데, 이제 구해야지.”
사무실이 난장판이 된 건 둘째 치더라도 그게 문제긴 했다. 워낙에 부서진 책상과 집기들이 많아 전부 치워내고 나면 사무실이 휑해질 것이 보일 정도였으니 최대한 빨리 채우긴 해야 하는데 어디 가구가 주문한다고 바로 나오던가.
특히 애쉬 같은 경우에는 사무실을 바꾸며 고급 원목을 사용한 것들만 들여놨기 때문에 같은 것으로 주문한다면 한참 걸릴 것이 분명했다.
게빌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애쉬에게 제안했다.
“그 유서령 이사님한테 부탁하면 안 되나?”
유성 그룹의 후계자인 그녀라면 아무리 고급스런 원목 가구라고 한들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유성 그룹의 힘을 생각하면 정말 우습지도 않을 정도로 간단한 일이었다.
‘그럴까.’
그녀의 힘을 조금 빌린다면 하루는커녕 몇 시간 내로 사무실 정리는 물론이고, 책상이나 기타 집기를 채워 넣는 것까지 끝낼 수 있겠지.
아니, 굳이 그녀에게까지 연락할 것도 없이 그녀의 수석 비서인 에아임에게 소식을 전한다면 끝날 일이었다.
그냥 얘기만 꺼내도 그런 일이 있었냐면서 아무렇지 않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터.
진지하게 그것을 고민하던 애쉬는 문득 자신이 부숴 먹은 가구와 집기 중 절반 가까운 숫자가 서령에게 선물 받은 것들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자신이 선물한 것을 쌈박질하다 박살 냈는데, 그걸 다시 달라고 도움을 요청한다?
아무리 평소 안면에 철판을 깔고 게으름을 피우는 애쉬라고 해도 그건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그럼 텅 빈 사무실에서 파티를 할 셈이야? 뭐, 치울 게 적어서 편하기야 하겠지만.”
너무 없어 보이지 않겠는가.
게빌의 그런 목소리에 애쉬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대답했다.
“괜찮아. 해결할 방법이 있으니까.”
“해결할 방법?”
“어.”
애쉬가 게빌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 도시에서 돈으로 불가능한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고급 원목 가구? 다른 곳에 가기 위해 미리 만들어 뒀던 걸 추가금을 주고 빼 오면 되지 않겠는가.
제아무리 브랜드의 신용도를 지키려 한다고 한들 열 배를 부르면 그냥 내놓겠지.
지금 애쉬에게 넘치는 것이 바로 돈이었다.
“그렇다면 더 말은 않겠는데. 너무 초라하게 보이지는 말자고.”
“걱정하지 마.”
열 배로도 안 되면 스무 배를 부르면 된다.
애쉬는 게빌의 목소리에 대답하며 속으로 덧붙였다.
“그런데 그 갱단 보스라는 사람은 누구를 말하는 거죠?”
“아, 레이라 플로리스라고…….”
그렇게 게빌과 애쉬의 대화가 끝나고, 이어진 케일의 질문에 답해준 애쉬는 짧은 티타임을 마치고 다시 사무실 정리에 들어갔다.
치울 것은 구석으로 치워놓고, 뺄 것은 빼며 정리하자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주문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애쉬의 예상대로 열 배의 가격을 부르자 가구가 바로 도착했고, 그것을 배치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애쉬는 이어서 도착한 청소 업체에게 뒤처리를 맡기곤 소파에 앉아 그것을 지켜보며 생각에 빠졌다.
우우웅!
“구석부터 시작합시다!”
돌아가는 저음 청소기 소리와 청소 업체 직원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각각 귀와 눈에 담고 있으면서도 생각에 빠져들자 그 무엇도 머릿속까지 닿지 않게 됐다.
바렛이 다녀간 이후로 이따금 생각하게 되는 것은 과거의 동료들과 자기 자신에 대한 일이었다.
‘나는 왜 그런 감정을 느꼈을까.’
바렛을 본 순간 느껴진 반가움,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리움.
그중에서도 반가움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이 즐겨 하던 게임 속 캐릭터를 현실에서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오히려 그런 만남이 반갑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할 터.
하지만 그에 뒤따른 그리움은 명백히 그런 범주를 벗어난 감정이었다.
아무리 애착을 갖고 플레이했던 게임이라지만, 게임 속 캐릭터에게 그리움을 느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진현이었던 그가 게임 속 캐릭터를 현실에서 직접 만나봤던 것도 아니고.
‘그리고 무엇보다.’
원작 게임 속 애쉬 론모어의 연인이었던 테일러의 얘기를 들은 순간 그는 자신의 심장이 한순간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게임 속 그래픽으로만 봤던 자신의 캐릭터의 연인의 이름을 듣는 것으로 심장이 뛴다?
바렛을 보고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것보다도 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바렛이 떠난 이후로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돌아봤으나, 생각할수록 느껴지는 위화감은 커져만 갔다.
대체 그런 감정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지금의 애쉬 론모어는 엄연히 따지자면 이 세상에서 수십 년간 살아온 애쉬 론모어가 아니라 불과 200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이 세계를 게임으로서 플레이했던 이진현이었다.
아무리 몸이 바뀌었다곤 하나 그 영혼까지 바뀐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감정들이 느껴진다는 건 몸의 영향인가?’
애쉬는 이 세상에 떨어졌을 초기의 자신을 떠올리며 지금의 자신과 비교해봤다.
게임 속 캐릭터, 애쉬 론모어가 되어 이 세상에 떨어진 처음의 이진현은 슬럼의 몇몇 쓰레기들의 위협에도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현대인이었던 만큼 당연히 지금처럼 전투와 피, 그리고 살인에 무감각하지도 않았고.
물론 그렇다고 아주 벌벌 떨었다는 건 아니지만, 첫 살인 당시의 기억은 아직도 제법 크게 남아있었다.
그의 첫 살인은 어느 골목길에서 자신에게 총을 겨눈 놈의 머리통을 맨손으로 터뜨리다시피 부순 것이었다.
인간을 초월한 근력에 박살 나는 두개골과 뭉개지는 뇌. 그리고 사방팔방으로 튀는 피와 흰 뼛조각, 그리고 뇌수.
그것은 인간 이진현에게 있어 무척이나 충격적인 것이었을 터나, 생각 외로 그 여파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첫 살인 직후에는 긴장과 불안에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으나, 겨우 하룻밤 잠드는 것으로 그 모든 것을 털어낸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이상하긴 했다.
이진현은 인간의 머리통을 맨손으로 터뜨리고도 그날 잠을 이룰 수 있을 정도로 대담한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 뒤로 이뤄진 성격의 변화 또한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차이가 존재했다.
마치 이진현이 애쉬 론모어라는 인물의 성격에 동화되는 것처럼.
예전부터 조금 생각해오던 것이었는데, 결정적으로 애쉬가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유성 그룹의 사건의 마지막.
그는 ‘웃는 악마’의 부단장이라는 놈과 싸웠고, 죽기 직전까지 갔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몸이 멋대로 흥분하고, 기뻐하고, 즐기며 움직이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지.
그때의 그가 보였던 움직임은 여러 차례 발전한 지금의 애쉬라도 따라 할 수 없을 정도로 고차원적인 것이었다.
‘그게 만약 내 안에 남아있는 ’애쉬 론모어‘의 잔재의 영향이라면.’
여태껏 있었던 모든 변화와 유성 그룹 사건 당시 몸이 멋대로 움직이던 감각.
그리고 바렛과 만났을 때 자신이 느꼈던 감정들까지도 모두 설명이 됐다.
애쉬, 아니, 아직은 자신을 이진현이라 여기는 존재는 잠잠한 자신의 정신 속으로 물음을 던졌다.
‘아직내 안에 있는 거냐?’
애쉬 론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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