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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214화 (214/230)

〈 214화 〉 14. 동료(2)

* * *

청소 업체와 주문했던 가구들이 도착하고, 적당히 테이블 배치과 기타 자재들의 배치를 변경한 애쉬와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의 직원들은 손님맞이를 준비했다.

­ 삐이이.

“아, 딜리버리 드론이 도착했나 보네요.”

샤인이 울리는 알림음에 드론 출입용으로 만들어진 창으로 다가가 그것을 열자 배달용 상자를 달고 있는 드론이 보온 상자를 붙들고 있던 고정 장치를 해제했다.

보온 상자를 받아 열어보니 들어있는 것은 막 조리한 것처럼 뜨끈뜨끈한 김이 올라오는 음식.

이런 딜리버리 드론의 존재 때문에 배달 시간이 길어봐야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 만큼 조리 후 바로 먹는 것과도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사무실의 창문으로는 미리 주문해뒀던 파티용 음식을 담은 드론들이 잇따라 도착하기 시작했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잘 배치해, 게빌.”

“알겠어.”

“확실히 도시 안쪽으로 오니까 이런 건 진짜 편하네요.”

음식을 옮기며 놓을 위치를 지시하는 케일과 그에 따르는 게빌. 샤인은 확실히 1구역이라 그런지 슬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하다며 미소 짓고 있었다.

슬럼에서는 드론이 워낙 자주 격추당하는 만큼 딜리버리 드론을 써도 배달 중에 음식을 도난당하는 일도 많았는데, 이 도심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으니 편할 수밖에.

“도심이 좋긴 하지.”

애쉬도 그런 샤인의 목소리에 동감했다.

딜리버리 드론도 드론이었지만, 이제는 창을 열 때마다 지린내와 온갖 더러운 냄새들에 구역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물론 대기 자체는 도심도 여러 이물질로 인해 약간은 오염돼 있겠지만, 허구한 날 뭔가를 불태우고 불법 투기물을 마구잡이로 버려대는 슬럼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는가.

특히나 이 세계에서는 대부분의 차량과 기타 대중교통 등이 모두 전기로 움직인다.

배기가스가 배출되지 않다 보니 오히려 이진현이 있었던 지구의 서울보다도 공기가 깨끗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그런데 이런 곳을 두고 지난 몇 년 동안 그 슬럼에 살았으니.

새삼스레 신분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낀 애쉬였다.

“애쉬 씨도 쉬지 말고 이쪽 좀 도와주세요!”

“…그래.”

애쉬가 자신을 부르는 케일의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였다.

어제 하루종일 움직인 데 더해 오늘 낮까지 계속 일했기에 조금 쉴까 했는데, 케일은 그것을 용납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게빌의 추천에 그녀를 새로운 직원으로 고용하긴 했는데, 어쩌면 잘못 선택한 게 아닐까.

애쉬는 사장인 자신을 부려먹는 케일을 보며 일순간 그런 후회에 빠질 뻔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파티를 여는 날인 만큼 수고를 감수하기로 했다.

“이건 어디에 놓으라고?”

“아, 사장님. 그건 이쪽에 둬주시면 돼요.”

각종 주류와 잔을 쟁반에 가져온 애쉬가 케일을 향해 묻자 그녀를 대신해 샤인이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런 샤인의 말에 잔과 와인을 하나씩 내려놓고 있는 사이.

­ 딸랑딸랑.

“와, 사무실 진짜 좋네….”

사무실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리며 초대받은 첫 손님이 등장했다.

바렛 오테너와는 또 다른 느낌이 흐르는 검은 머리칼과 눈동자의 앳된 청년.

한 손에 선물로 보이는 쇼핑백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서며 감탄을 터뜨리는 첫 손님은 다름 아닌 빌헬름이었다.

“어서 오세요.”

“아, 네. 새로운 직원분이신가 보네요.”

사무실 내부를 둘러보며 들어오던 빌헬름은 자신을 향해 인사하는 케일의 목소리에 어색하게 인사했다.

워낙에 외부 활동을 잘 안 하다 보니 사교성이 좋지 않은 그에게 처음 보는 미인의 인사는 좋다기보다 조금 불편한 쪽이었다.

“이제 준비도 거의 끝났으니 잠시 편한 곳에 앉아 계세요.”

케일도 그런 빌헬름의 분위기를 읽고는 굳이 더 말을 붙이지 않으며 앉을 것을 권했고, 빌헬름은 그런 그녀의 목소리에 따라 사무실 중심에 배치된 테이블 주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애쉬가 간단한 인사를 위해 다가가자 그를 향해 놀랐다는 듯 말했다.

“애쉬 씨한테 돈이 많은 줄은 알았는데, 설마 1구역 중심에 이만한 사무실을 차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게다가 바로 위층도 주거 공간으로 쓰신다면서요?”

사장을 포함한 직원은 겨우 넷 밖에 안 되면서 넓이는 무려 200평에 달하는 사무실.

이곳의 위치가 도시 땅값이 가장 비싼 1구역, 그리고 그중에서도 중심가라는 것을 생각하면 눈이 돌아갈 정도로 많은 금액이 소요됐을 것이다.

아무리 애쉬에게 돈이 많다고 해도 임대에 막대한 비용이 들 텐데 겨우 넷이서 이만한 공간을 사용하다니.

게다가 위층의 주거 공간도 비슷한 넓이일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사치 중의 사치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소비처럼 보였다.

하지만 애쉬는 그렇게 넘겨짚어 생각하는 빌헬름의 목소리에 그것을 정정해주었다.

“네 말대로 위층도 쓰고 있긴 한데, 내가 구한 곳은 아니야.”

“네? 그럼 누가….”

“누구겠어.”

“…아.”

자신이 구한 것이 아니라는 애쉬의 말에 의문을 표하던 빌헬름.

하지만 그는 곧 알고 있지 않냐는 듯 말하는 애쉬의 목소리에 납득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애쉬의 지인 중 이 정도의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한 명 밖에 없었다.

“확실히, 그분이라면.”

무려 ‘유성 그룹’.

연방을 주름잡는 초거대 기업체 중 하나의 후계자인 그녀, 유서령이다.

빌헬름 자신도 유성 그룹 사건 당시 그것의 해결에 기여하는 것으로 대단한 사례금을 받았지만, 애쉬는 거기서 한층 더 나아가 서령과 완전히 좋은 관계를 만들고 있는 만큼 이런 지원을 받았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분도 오늘 오시겠죠?”

“온다곤 하던데.”

애쉬가 빌헬름의 말에 대답했다.

아마 서령만 오는 게 아니라 그녀와 함께 일하는 에아임과 베일라, 그리고 기타 인물들도 같이 오지 않을까 싶다.

“오랜만에 뵙겠네요.”

애쉬의 경우에는 유성 그룹 사건 이후에도 서령을 가끔 봤지만, 빌헬름에게는 확실히 오랜만이라고 할 만했다. 그때로부터 벌써 몇 개월이나 지났으니 말이다.

“아마 오늘 오는 사람 중 반가운 얼굴도 있을 걸.”

“반가운 얼굴이요?”

“이따 보면 알아.”

애쉬가 초대한 손님은 서령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빌헬름도 아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했고.

애쉬가 직접 보라며 대답하자 빌헬름은 누가 더 있을지 생각하던 도중 문득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얼굴에 안색을 바꿨다.

“설마….”

­ 딸랑딸랑.

빌헬름이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애쉬에게 물어보려던 순간 다시 한번 울리는 작은 종소리.

그에 따라 자동으로 빌헬름의 시선이 사무실 입구로 향했고, 거기서 언뜻 보인 얼굴에 그는 창백한 안색으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

색의 톤이 조금 어두운 금발과 차분한 비취빛의 눈동자로 내부를 돌아보는 시선.

자신의 몸에 딱 맞게 재단한 정장을 입은 채 여전히 눈이 돌아갈 정도의 미모를 자랑하는 그녀는 빌헬름이 그토록 꺼려하는 ‘뱀파이어’의 보스이자, 이제는 당당히 한 기업체의 주인이 된 ‘레이라 플로리스’였다.

일이 끝나자마자 이곳을 향한 것인지 여성용 바지 정장에 구두를 신고 어딘가 낯익은 부하 한 명과 등장한 그녀는 곧 애쉬와 빌헬름을 발견하곤 그들에게 발걸음을 향했다.

“마녀….”

과거 선을 이어줬을 때 어지간히도 괴롭힘을 당한 모양인지 애쉬의 귀에 질색을 하는 빌헬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에 픽 웃은 애쉬는 자리에서 그녀와 그 부하를 반겼다.

“어서 와, 레이라.”

“보아하니 늦진 않은 모양이네.”

“아직 시작도 안 했어. 그리고 너는….”

레이라에게 대답한 애쉬가 이어서 그녀가 데려온 부하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끝을 흐렸다.

노란색으로 물들인 머리칼과 검은 눈동자. 그리고 뺨에 작게 난 흉터까지.

저 얼굴은 기억에 있었다. 유성 그룹의 의뢰 당시 레이라에게 빌려 짧지만 그와 함께 활동했던 녀석이었으니.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남자는 쉽게 지워버리는 애쉬의 기억 속에 그의 이름은 남아있지 않겠다.

그렇게 말끝을 흐리는 애쉬의 목소리에 남자가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하하, 케인입니다.”

“맞아. 그런 이름이었지.”

이름은 케인.

‘뱀파이어’에 소속된 갱 중 하나로, 말단이 아니라 간부 정도 되는 녀석이었다.

레이라가 ‘뱀파이어’를 ‘플로리스’란 이름의 기업으로 바꾸며 그도 따라간 모양이었지만, 정장을 입고 있는 모습이 아직은 조금 어색하게 보였다.

애쉬의 앞에 선 케인은 자신의 양손에 가득 들고 있던 물건들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이건 당신한테 주는 선물이야.”

“보스…가 아니라 사장님께서 직접 고른 옷가지들입니다.”

케인이 레이라의 말에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애쉬가 평소 옷을 대충 입고 다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고른 듯한 선물이었다.

애쉬는 그녀의 성의에 감사를 표하며 자신의 옆자리로 손짓했다.

“몸만 와도 되는데 뭘 이런 걸. 여기 앉아.”

“응.”

레이라가 애쉬의 손짓에 순순히 따라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그녀와 얼굴을 마주하게 된 빌헬름의 안색이 더 창백해지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레이라의 부하인 케인도 애쉬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서령이 준비해준 곳이라더니 사무실이 확실히 괜찮네.”

애쉬의 옆자리에 앉은 레이라가 사무실을 호평했다.

사무실의 위치도, 넓이도 과연 유성 그룹 후계자가 준비해준 곳이라고 할 만큼 좋았다.

하지만 애쉬가 집중한 곳은 그녀의 평가가 아니라 그 매력적인 입술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서령의 이름이었다.

“그렇지. 근데 서령이랑은 제법 친해졌나 봐?”

“일적으로 가끔 만나다 보니 그렇게 됐어.”

애쉬, 빌헬름과 마찬가지로 유성 그룹 의뢰 때 애쉬를 통해 만났던 둘은 처음에는 상당히 어색했지만 이후 만남이 계속될수록 서로를 편하게 여기게 되었다.

서령은 그녀를 멘토 삼아 정신적으로 성장해 나갔으며, 레이라는 그런 그녀에게서 기업의 관리자로서 해야 할 일들을 배울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며 어느 정도 상대방을 의지할 수 있을 만큼 친분을 쌓은 것이다.

덕분에 지금은 사적인 자리라면 언니 동생 하며 친하게 지내는 상태였다.

“뭔가 그런 모습이 잘 그려지질 않는데.”

애쉬는 잠시 머릿속으로 서령과 레이라가 같은 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그려보려 했지만, 억지로 그린 광경은 너무 어색하게만 보였다.

서령은 그래도 사교성이 조금 있는 편이라고 해도 레이라는 차가운 느낌만 가득했으니까.

심지어 사교성이 좋은 쪽이 사회적 위치상 한참은 올려봐야 할 만큼 위에 있었으니 그 둘이 친해진 과정을 상상하기란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었다.

“나도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이렇게 됐나 싶지만, 당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으니까.”

애쉬의 그런 목소리에 레이라가 말했다.

밑바닥 출신의 전 갱단 보스와 날 때부터 드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아가씨에게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을 것 같았으나 하나 정도는 있었던 것이다.

애쉬에 대한 것은 특히나 둘 모두 상당히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었기에 그런 쪽에서 통하며 친분을 쌓은 것 같다는 게 레이라의 생각이었다.

“애쉬 씨, 그리고 게빌! 마지막으로 이것만 좀 도와주세요!”

애쉬는 그 이후로도 몇 분 정도 레이라와 대화를 나누다 케일의 도움 요청에 잠시 자리를 떴고, 사무실의 직원 모두의 힘이 합쳐져 파티 준비가 모두 끝날 무렵.

마지막 손님이 사무실의 종소리를 울렸다.

­ 딸랑딸랑.

“흠, 이놈은 여복만 좋아서는.”

“하하, 그러는 마이스터께서도 열심히 선물을 준비하지 않으셨습니까.”

“파티 준비는 끝난 모양이군요.”

언제 그랬냐는 듯 힘을 되찾은 꼬장꼬장한 노인의 목소리와 그에 가볍게 웃는 비서의 목소리. 거기에 더해 중요 인물을 호위하는 여성 경호원의 목소리까지.

동시에 여러 목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애쉬의 귀를 사로잡은 것은.

끝이 살짝 웨이브 진 검은 단발과 흑요석을 박아놓은 것 같은 검은 눈동자, 그리고 가느다랗게 늘어진 눈매 밑에 처연하게 콕 찍힌 눈물점이 매혹적인 미인의 목소리였다.

“애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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