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 14. 동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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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혼자서 천 단위의 갱이 속한 갱단을 상대로 승리했다고? 의뢰 성공률 100%? 허풍도 정도가 있어야지.”
동료들과 함께 어느 바에 자리 잡은 남자, 쿨레인은 어디선가 주워들었던 애쉬 론모어의 소문에 대해 떠올리며 그것을 비웃었다.
어떻게 일개 개인이 그만한 숫자를 상대로 이긴단 말인가.
천 명이라면 총을 각자 한 발씩만 쏴도 무려 천 발이다. 그런데 현대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총기들은 모두 분당 수백발 이상을 쏟아내는 살인 병기들.
그런 게 천 명에게서 쏘아진다면?
그런 걸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의뢰 성공률 100%라는 것 또한 앞의 소문 정도까진 아니어도 이쪽 세계에서 일하는 용병들이라면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얘기인지 알 것이다.
“지금쯤 구멍 뚫린 치즈 꼴이 돼서 바닥을 구르고 있겠군.”
“그놈들이 작업장에 발을 들인 외부인을 살려서 보낼 리가 없지.”
“큭큭, 거기서 살아나오기만 해도 어느 정도 한다는 건 인정해준다.”
쿨레인이 동료들이 떠드는 소리에 맞장구치며 웃었다.
그들이 어느 노숙자를 고용해 애쉬 론모어가 운영하는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에 넣은 의뢰는 표면적으로는 어느 실종 인물의 조사다.
하지만 그 실상은 애쉬로 하여금 이곳 제 1구역에서 알아주는 마약 딜러들의 작업장을 건들게 하는 일종의 위장 의뢰였다.
겉만 봤을 때는 범죄 조직 하나 없을 것 같이 생긴 1구역이었지만, 인간이 있는 곳에 범죄가 없을 수는 없는 법.
오히려 치안이 철저한 곳이기에 이곳에 위치한 범죄 조직들의 활동성과 은밀성은 외부의 여타 범죄 조직에 비할 바가 못됐다.
위험성 또한 그런 은밀성에 정비례해 치솟아 오르는 것은 당연했고.
생각해 보라.
웨인 시 최고의 용병들과 시 의원, 사회의 각종 고위직이 자리하고 있는 1구역에서도 자신들만의 영역을 일궈낸 마약상들이 얼마나 큰 재력을 갖고 있을 것이며, 그런 재력으로 쌓아진 성벽이 얼마나 두터울지를.
1구역의 마약상들의 작업장은 뒷세계에서도 건드려선 안 될 불가침의 영역으로 손꼽히는 곳이었으니 그 위험도를 알 만도 할 터였다.
그리고 그런 곳에 홀로 기어 들어간 쓰레기장의 해결사가 어떤 꼴이 될지 또한.
“그럼 나중에 들려올 소식이나 기다리면서 한 잔 하자고.”
“그 멍청이의 최후를 위하여.”
“킥킥, 위하여!”
남자, 쿨레인과 동료들은 시시덕거리며 잔에 찰랑거리는 술을 목으로 넘겼다.
거슬리던 놈을 하나 처리해서 그런지 술이 부드럽게 넘어가는 게 기분 좋은 음주 자리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그들이 술자리를 실컷 즐기고 있을 때였다.
덜컹.
바의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술과 술자리의 분위기에 취한 쿨레인 일행은 단 한 명도 그것을 돌아보지 않았다. 열린 문에서부터 시작된 발소리가 자신들을 향하고 있었음에도.
“그러니까 이번에 제대로 해먹을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대충 얼마나?”
“한 삼십만?”
“…크레딧?”
“그럼 코너겠냐?”
“미친, 그런 건수를 어디서 물어왔대.”
쿨레인과 그 동료들은 한창 일과 돈 얘기로 분위기를 띄워가고 있었는데, 그런 그들 사이에 낯선 목소리가 하나 끼어들었다.
“그 얘기는 나도 조금 들어보고 싶은데. 사기 의뢰의 보상금은 받아야겠거든.”
“그러니까…. 으응?”
쿨레인이 이어가는 얘기를 듣던 쿨레인의 동료는 갑자기 끼어든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시야를 무언가가 덮으며 머리를 테이블에 처박았다.
콰앙!!
“뭐, 뭐야!!”
“엔벤!”
쩌적, 하고 깨져나가는 테이블의 유리. 그것을 직접 깬 남자의 머리 또한 멀쩡할 리가 없다.
깨진 테이블 유리 위로 피가 흘렀으며, 처박힌 남자는 그대로 의식을 잃은 듯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최근에 물어온 돈벌이 얘기를 하던 쿨레인은 그런 광경을 보자 술기운이 싹 날아가는 것을 느꼈고, 그대로 자신의 동료의 머리를 처박은 손의 주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디 계속 얘기해 봐. 나도 궁금하다니까?”
그곳에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어 보이는 잿빛 은발과 진청색 눈동자의 미남자가 서 있었다.
사납게 웃는 표정과 표정으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찢어 죽일 것처럼 사나운 기색을 풍기는 해결사가.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이딴 짓거리를…!”
지금처럼 술에 취하지 않고 정신이 멀쩡할 때였다면 그가 자신들이 사지에 밀어 넣은 ‘애쉬 론모어’의 인상착의와 같은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단숨에 알아챘겠지만, 이미 그들은 술이 들어갈 대로 들어간 상태였다.
뻐억!
쿨레인의 또 다른 동료 하나는 애쉬를 알아보지 못하고 달려든 대가로 인식조차 하지 못할 만큼 빠르게 날아든 주먹에 그 하얀 이를 옥수수처럼 튀기며 나자빠졌다.
‘방금, 움직임이 제대로 안 보였다.’
그렇게 동료 하나가 더 당하는 것을 본 쿨레인은 자신을 노려보듯 바라보는 남자를 마주 보며 몸을 굳혔다.
아무리 술에 취한 상태라지만 상대방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은 그가 자신보다 한 차원 높은 위치에 있는 실력자라는 것을 뜻했다.
그는 비록 뒷세계의 정점까지 오르지는 못했으나 나름 잔뼈 굵은 베테랑 용병.
이 정도 술기운에 취해 자신보다 강할 게 뻔한 상대방에게 덤벼들 정도의 얼간이는 아니었다.
1구역 중심가에 위치한 이 바에서 총을 쏠 수도 없었고.
“미, 미친. 우리랑 원한이라도 있는 새낀가?”
쿨레인의 남아있는 동료 둘 중 하나도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섣불리 달려들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물었다.
그에 상대방, 애쉬는 여전히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자신의 주먹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대답했다.
“잘 생각해 봐. 대충 알 것 아냐.”
“무슨, 설마…?”
그런 상대방의 말에 쿨레인은 설마 하며 애쉬를 다시 바라봤다.
잿빛 은발과 진청색 눈동자. 거기에 허리춤에 걸려 있는 검 한 자루.
처음에는 술기운도 술기운이었고, 워낙에 경황이 없어 제대로 살피지 못했는데 마침 이 녀석의 특징이 그들이 술자리를 시작하며 조롱하던 누군가와 완전히 겹치지 않는가.
“애쉬, 론모어…?”
“그래. 그럼 내가 왜 너흴 찾아왔는지도 잘 알겠지?”
“어떻,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쿨레인은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던 목소리를 삼키고는 재빨리 모르는 척 발뺌했다.
대체 어떻게 그곳에서 살아서 나온 건지, 그리고 또 어떻게 자신들이 원흉이라는 것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그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우기면 저 녀석도 잘못을 입증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 가짜 의뢰를 넣은 이후로 불과 이틀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증거품 따위를 찾아낼 수 있었을 리 없으니까.
“저 녀석이 요새 유명한 그 애쉬 론모언가?”
“그런가 본데?”
“뭔가 일이 있나 보군.”
게다가 이곳은 1구역 중심가에 있는 바였지만, 이용객은 거의 전부가 뒷세계의 인간들.
지금도 치안 유지국에 신고 하나 없이 싸움이 일어난 것인지 흥미롭게 보고 있는 이들이 많은 상황이었는데, 이런 곳에서 아무런 증거도 없이 자신들을 죽이거나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런 쿨레인의 계산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다. 애쉬에게는 그들을 죽일 생각이 없었으니까.
슬럼과 달리 1구역 중심가에 있는 남의 영업장에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사람을 죽이면 아무리 그라도 몸을 빼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뭘 믿고 발뺌하는지는 알겠는데. 다른 건 생각 안 해봤냐?”
그래, 저 녀석들이 직접적으로 공격한 것도 아닌데 자신이 먼저 놈들을 죽이면 분명 일이 커질 것이었다.
그러나 죽이지만 한다면 일종의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다.
마침 이 바가 반쯤 뒷세계에 설쳐 있는 장소기도 했고, 그것은 곧 저들을 병신으로 만들어 놔도 뒷세계만의 룰 안에서 모든 것이 처리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죽이지는 않는다.”
다만 반만 죽여놓을 뿐이다.
저항할 테면 하라지. 애쉬는 이런 어중이떠중이들이 완전히 무장한 채 덤빈다고 한들 벌레 짓밟듯 눌러버릴 힘이 있었고, 저들은 그것에 대한 얘기를 들었음에도 안일하게 생각하고 덤볐기에 이런 꼴을 당하는 것이다.
발걸음을 뗀 애쉬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쓰러져 있던 놈을 제 동료들에게 던지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렇게 이어진 싸움의 결과는 용병들 측의 참패.
애쉬는 피떡이 된 채 사지가 박살 난 용병들을 내려다보며 손을 털었다.
‘겨우 이 정도 놈들이 덤비다니, 슬럼에서 멀어진 게 체감이 되긴 되네.’
애쉬 자신이 살던 71구역까지 갈 것도 없이 몇 구역이나 떨어진 유흥가에서도 감히 그에게 덤벼들 생각을 못했는데, 도시 외곽과 중심부의 거리가 확실히 멀긴 멀었다.
애쉬가 잡스런 놈들에게 시간을 낭비했다며 발걸음을 돌리자 그 일방적인 싸움을 구경하던 뒷세계 소속의 용병들이 휘파람을 불고 환호했다.
“휘익!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진짜 제대로 싸우잖아!”
“아무리 술에 취해 있었다곤 해도 너무 일방적인데?”
“방금 저 녀석이 발 뻗는 게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고.”
그리고 그런 그들 사이에서 애쉬에게 가까워지는 발소리가 하나 있었으니, 다름 아닌 바의 주인으로 보이는 바텐더였다.
“저, 손님. 기물 파손에 대한 보상은….”
“거기 쓰러져 있는 놈들 품에서 알아서 챙겨. 난 생각 없으니까.”
“예, 감사합니다.”
애쉬가 바닥을 구르는 놈들을 가리키며 말하자 바텐더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감사를 표하고 움직였다.
쓰러진 놈들의 품속에서 지갑과 크레딧 카드 따위를 챙기는 폼이 한두 번 해본 것 같지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애쉬는 그렇게 금품을 챙기며 쓰러진 남자들을 적당한 곳에 빼놓기 시작한 바텐더를 바라보다 말했다.
“아, 그리고 내친김에 부탁 하나 할게.”
“예, 기물 파손의 보상 받은 치고는 과하게 받은 것 같으니 어렵지 않은 일이라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여기에 들르는 놈들한테 소문 하나 내주지.”
“어떤 소문을…?”
“애쉬 론모어가 사무실에 대고 헛짓거리하는 놈들을 전부 찾아가서 반쯤 죽여놓고 있다고.”
“쉬운 부탁이군요. 안 그래도 요새 유명한 애쉬 론모어에 대한 이야기거리가 하나 생겨 좋아했는데, 열심히 알려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애쉬는 선선히 자신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바텐더에게 인사하곤 바를 나섰다.
아직 찾아가야 할 놈들이 여럿 존재했던 탓에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이곳저곳 오가느라 귀찮긴 했지만 필요한 일.
지금 확실하게 잡아두면 적어도 그의 사무소에 사기 의뢰와 가짜 의뢰인을 보낸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박멸될 것이었다.
“어, 빌헬름. 여기는 끝났고, 다음은 어디라고?”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무소예요. 경쟁자 제거를 줄여보려고 일을 벌인 것 같은데 거기도 안타깝게 됐네요. 하필 애쉬 씨를 건들다니.
“안타깝긴. 뿌린 대로 거두는 거지.”
그것도 그래요. 그럼 위치 바로 보낼 게요.
“그래, 고맙다. 근데 넌 언제쯤 이사할 거야?”
여기 정리가 끝나면 갈 테니 일이 주 정도 더 걸릴 것 같아요. 그때쯤 뵐게요.
“오케이.”
사무실에 헛짓거리를 벌인 놈들의 추적을 돕던 빌헬름의 말에 애쉬가 가볍게 대답하곤 전화를 끊었다.
애쉬가 71구역을 떠나니 빌헬름 또한 1구역 쪽으로 거취를 옮기겠다 알려왔고, 정해진 일정은 일이 주 정도 뒤.
안 그래도 빌헬름과 멀어지는 게 좀 아쉬웠는데, 잘된 일이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기 시작한 도시의 저녁.
그러나 1구역의 하늘은 화려한 네온사인과 온갖 조명들로 인해 저녁에도 그 빛을 잃지 않았다.
“꺄르르. 그럼 이쪽으로 가보는 건 어때?”
“좋아. 오늘은 밤새 노는 거다.”
“물론이지!”
그와 같은 도시의 길거리를 걷지만,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젊은 남녀의 일행 하나가 스쳐 지나간다.
애쉬는 자신도 빨리 마지막 목적지를 찾아 처리하곤 놀러 가리라 생각하며 빠른 속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애쉬는 그렇게 며칠간 도시 곳곳을 헤집으며 자신의 사무실에 개 같은 짓거리들을 벌인 놈들을 하나하나 찾아 반병신으로 만들었고, 그런 과정에서 알려진 저절로, 그리고 인위적으로 퍼져나간 소문과 목격담을 통해 그의 행보는 날이 갈수록 유명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놈들을 손봐주는 게 끝났을 때는 도시 중심부 뒷세계에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를 건들면 애쉬 론모어가 찾아온다.’는 말을 모르는 이가 없게 되었으니….
“크흐흐, 놈이 진짜인지 가짜인진 모르겠지만 딱 그 녀석 같은 성격이긴 하군.”
그것은 어찌나 유명해졌던지 ‘웨인 시’에 막 발을 들인 ‘존 시’의 전설들, 과거 ‘애쉬 론모어’의 동료였던 이들의 귀에까지 닿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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