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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220화 (220/230)

〈 220화 〉 14. 동료(8)

* * *

“크크크, 놈이 진짜인지 가짜인진 모르겠지만 딱 그 녀석 성격이긴 하군.”

“아니, 진짜 애쉬 성격이었으면 이 정도로 안 끝났을 걸.”

그 녀석이라면 당사자만 작살 내는 정도가 아니라 그 주변까지 개박살을 내버려서 감히 자신에게 기어오를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뜻을 품고 있는 앳된 청년의 말에 크크 웃으며 말을 꺼낸 중년 남성도 그런가, 하고 턱을 짚었다.

“흐음. 그런가.”

깔끔하게 뒤로 넘긴 머리칼, 야성적으로 기른 턱수염.

이 중후하면서도 거친 분위기를 풍기는 중년인은 ‘존 시’에서 전설이 된 ‘이지스’라는 별명의 주인이었다.

요인 경호 및 보호 임무에서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는 전설적인 용병.

온갖 거대 기업의 총수들조차 막대한 금액을 들이며 스카웃을 요청하고 있는 그 외에 신의 방패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별명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런 남자는 자신의 동료이자 이제는 소년에서 청년이 된 ‘퀵 마우스’의 말에 다시 한번 과거 ‘애쉬 론모어’의 성격과 행보를 떠올려 봤다.

그리고 곧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 녀석이라면.”

그가 알던 애쉬 론모어는 상대방이 어린애나 여자가 아니라면 후환을 남기지 않는 성격이었다.

일단 시작을 하면 완전히 뿌리를 뽑아버리는 것이다.

과거 그랬던 그의 행동에 여러번 부딪히기도 했던 남자였기에 ‘퀵 마우스’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여지를 남겼다.

“혹시 모르지. 그 녀석도 시간이 지나면서 좀 사람이 됐을지.”

“그 애쉬가요? 꿈도 꾸지 마세요.”

“크흐흣. 뭐, 사실 나도 녀석이 변할 것 같다는 생각은 안 하지만.”

그럴 리가 절대로 없다는 청년의 말에 웃음을 터뜨린 ‘이지스’는 잠시 신경 인터페이스를 조작해 시간을 눈앞에 띄웠다.

[PM 07 : 14]

“그나저나 벌써 7시 30분이 가까워졌는데 녀석들이 늦는군.”

“바렛이라면 잭슨이랑 같이 온다고 했는데…, 뭔가 일이라도 생긴 걸까요?”

‘이지스’의 말에 ‘퀵 마우스’가 대꾸했다.

그래도 약속 시간은 제대로 지키는 녀석들이었는데 늦어지는 게 이상한 것이다.

뭔가 오는 길에 일이라도 생긴 것 같았지만, 먼저 이곳 음식점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둘은 조금 늦어지는 다른 둘을 걱정하지 않았다.

“알아서 잘 처리하고 올 테니. 우린 식사나 먼저 하고 있지.”

“그러죠.”

둘은 굳이 더 기다릴 것도 없이 먼저 음식을 주문했고, 그렇게 주문이 들어가 음식이 만들어질 무렵 객실의 문이 열리며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다른 둘이 도착했다.

“늦어서 미안해. 오는 길에 일이 좀 생겨서.”

“오랜만.”

레게 머리와 테가 두꺼운 안경을 끼고 있는 흑인, 브로디 잭슨과 여전히 검은 머리칼과 눈동자, 그리고 입은 옷가지까지도 새까만 ‘검은 개’ 바렛 오테너.

그 둘은 객실에 들어서며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퀵 마우스’와 ‘이지스’에게 인사했고, 그들은 늦은 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반응했다.

“오, 마침 방금 음식도 주문했는데 잘 왔네.”

“‘리버스’가 모이는 게 얼마 만인지도 잘 모르겠군.”

“하, 모였다기엔 세 명이나 자리에 없다만?”

“그럼 이만큼이나 모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라고 정정하지.”

텅 빈 세 명의 자리를 찔러오는 바렛의 목소리에 ‘이지스’가 가볍게 정정했다.

본래 ‘리버스’는 애쉬 론모어와 이 자리에 있는 넷, 그리고 또 다른 둘을 합쳐 총 일곱의 인원으로 이뤄진 그룹이었다.

애쉬가 사라지고 난 뒤로는 이렇게 넷이나 모이는 일이 거의 없었을 만큼 서로 얼굴을 보기가 힘들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넷이나 모였던 게 언제였지?”

“…일 년 전. 그때도 애쉬 때문이었지.”

“아, 그래. 그랬지.”

브로디 잭슨이 대답하자 신의 방패의 이름을 딴 별명으로 유명한 중년의 용병은 기억났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으로부터 약 일 년 전, 그때도 넷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었다. 지금 있는 넷에 ‘테일러’를 더해 총 다섯이나 되는 인원이.

총 일곱 명으로 이뤄진 ‘리버스’에서 사라진 애쉬를 제외한다면 여섯이 전부이니 그중 대부분이 모였던 것이다.

이번에는 남은 테일러마저 자리를 비워 넷밖에 모이지 않았지만.

이지스가 마침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테일러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바렛이 ‘퀵 마우스’에게 물었다.

“테일러는? 온다고 하지 않았나?”

“아마 지금쯤 열심히 일하는 중일걸. 기업들 쪽에서 일이 터졌다나.”

‘퀵 마우스’가 바렛의 물음에 가장 마지막으로 들었던 그녀의 소식을 전했다.

테일러는 연방 정부의 특수 요원으로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대단히 유능한 것으로 알려져 일이 많이 바쁜 편이었다.

오죽하면 조금 큰 일만 터져도 연방 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그녀부터 찾는다는 얘기가 있겠는가.

그래서 이번에는 모이지 못했다는 대답을 들은 바렛이 작게 말했다.

“…테일러도 많이 지치긴 했지.”

“그럼. 누구보다 열심히 그 녀석을 찾아다닌 게 테일러였으니까.”

가짜들의 수작에 이끌려 찾아가고 실망하길 몇 년씩이나 반복하다 보면 지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그녀도 인간이었고,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해도 정신력에 한계는 있었으니까.

아마 이번에도 억지로 몸을 빼서 ‘웨인 시’까지 찾아오려면 찾아올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거의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잠시 테일러의 얘기에 가라앉는 분위기.

마지막으로 봤을 때, 처연한 얼굴로 술잔을 넘기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린 ‘퀵 마우스’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바렛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보다 바렛, 너는 왜 그런 꼴이야?”

조금 뜬금없다 싶은 주제 변경이었지만, 그것은 꽤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넘어갔다.

바렛은 현재 오른팔과 얼굴 부분에 각각 깁스와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그 꼴이 여간 우습고 어색한 게 아니었다.

어중간한 부상에는 아픈 티도 내지 않는 ‘검은 개’가 깁스와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눈에 크게 들어온 것이다.

분위기 전환이 아니더라도 곧 물었을 질문.

그런 ‘퀵 마우스’의 물음에 ‘이지스’도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어디서 얻어맞고 온 것 같은 꼴이긴 하군. 대체 뭘 하고 왔길래 그런 모습이지?”

“…녀석이랑 한판 하고 왔다.”

“녀석? 애쉬를 말하는 거야?”

“그래.”

“우리보다 며칠 일찍 도착했다 싶었더니 벌써 녀석을 만나고 온 모양이군.”

“바렛, 나한테는 그런 말 안 했잖아.”

“모인 자리에서 말하려고 했지. 두 번 설명하기는 싫으니까.”

바렛이 어떻게 된 일이냐는 듯한 브로디 잭슨의 물음에 안 그래도 말하려 했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자 그런 그의 대답에 ‘이지스’가 그런 사소한 얘기는 됐다는 듯 물었다.

“그래서, 녀석은 어땠지?”

바렛 오테너, 네가 만난 애쉬 론모어는 진짜였는가, 아니면 가짜였는가.

그런 그의 물음에 바렛이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녀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애쉬 론모어랑은 다른 부분이 너무 많았어.”

“다른 부분?”

“그래. 그것도 꽤나 큰 부분들이.”

바렛 오테너는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동료들에게 천천히 자신이 보고 겪었던 것을 설명했다.

“여기서도 나름 유명인이긴 하더군.”

처음 콜드 스팟에서 애쉬 론모어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던 것부터 시작해서 그를 직접 만나고 싸웠던 것.

그리고 굴욕적이게도 거의 일방적으로 밀렸던 그 싸움의 결과까지 말이다.

“네가 그렇게 일방적으로 밀렸다고?”

“그건….”

솔직히 믿기 힘든 얘기였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바렛 오테너라는 인물의 실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존 시’에서 전설적인 용병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의 모든 성장 과정을 지켜본 이들이 ‘리버스’의 동료들이었기 때문이다.

바렛과 마찬가지로 전설적인 용병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이지스’ 또한 그와 한판 붙는다면 우세를 가리기 힘든 싸움이 될 터였는데, 웨인 시에 있는 애쉬 론모어가 그를 압도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그것을 쉽게 믿을 수가 있겠는가.

그들이 알던 애쉬 론모어 또한 전설적인 용병들이 모인 ‘리버스’에서도 특히나 뛰어난 실력을 보이긴 했지만, 지금 바렛이 묘사하는 것만큼 압도적이지는 못했다.

“그, 그럼 여기 있는 애쉬가 진짜 그 애쉬라고?”

바렛의 얘기를 듣던 ‘퀵 마우스’가 물었다. 희망어린 목소리였다.

아무리 죽고 죽이는 실전이 아니라 맨몸 격투라지만 어지간한 전설적인 용병들 이상의 실력자라는 것 같았는데, 그런 이가 대체 무슨 이유가 있어 애쉬로 위장하고 있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자신의 실력만으로 명성과 돈, 그 모든 것을 잡을 수 있을 텐데.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곳 웨인 시에 있는 애쉬는 진짜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터였다.

그러나 그런 ‘퀵 마우스’의 신난 기색은 곧장 이어진 바렛의 말에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녀석은 사이보그가 아니었다. 강화 인간이었지.”

“강화, 인간…?”

“그래. 직접 스캔해본 결과 몸 내부에서 그 어떤 개조 신체도 발견되지 않았어.”

“그런….”

그들이 알던 애쉬는 사이보그였다. 그것도 척추를 비롯한 기타 신경층까지 모두 개조 신체로 갈아치웠을 만큼 하드하게 개조한 사이보그.

그 상태에서 인간으로 되돌아갈 방법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그가 진짜 애쉬 론모어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 아닌가.

“게다가 녀석은 칼잡이로 유명하다더군.”

“…….”

이어진 바렛의 목소리에 ‘퀵 마우스’는 더 이상 무어라 말하지도 못했다.

사이보그가 아닌 강화 인간.

총잡이가 아닌 칼잡이.

바렛의 얘기를 들어보면 외모는 거의 똑같다는 것 같은데, 그런 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외모 외에는 닮은 게 없다는데 그런 것을 그들의 동료였던 애쉬 론모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퀵 마우스’는 쉽게 실망하고 일순간 들떴던 기분을 가라앉혔지만, ‘이지스’는 그런 바렛의 목소리 뒷면에 숨겨진 무언가를 읽었다.

“그래서 녀석이 진짜 애쉬라는 거냐, 아니라는 거냐.”

“그건 당연한 거 아냐? 사이보그가 아닌 강화 인간이라잖아, 그것도 칼잡이.”

“아니, 아직 저 녀석은 자기가 봤던 애쉬가 가짜라곤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

당연한 것을 왜 묻냐는 듯한 ‘퀵 마우스’의 목소리에도 ‘이지스’는 바렛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가 아는 바렛은 가짜 애쉬를 보고 그냥 물러났을 위인이 아니었다.

이 웨인 시에 있는 애쉬가 가짜라는 판단이 든 순간 녀석을 쳐죽였으면 쳐죽였지, 맨손으로 투닥거리고 물러났을 놈은 아니라는 말이다.

애쉬의 첫 번째 동료이자 가장 오랫동안 함께한 악우인 그는 어쩌면 테일러만큼이나 죽을 힘을 다해 애쉬를 찾아다닌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이지스’의 날카로운 지적에 바렛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아물지 않은 입술이 다시 찢어져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런 건 상관 없었다.

“그래, 난 녀석이 가짜라곤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

“하지만 강화 인간에 총잡이라며! 그렇다는 건…!”

“나도 그래서 처음에는 가짜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렇다면 지금은 아니라는 거야?”

브로디 잭슨이 뜸 들이지 말고 확실히 대답해보라는 듯 재촉했다. 그런 잭슨의 반응에 픽 웃은 바렛은 입을 열어 대답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녀석은 우리가 알던 애쉬 론모어가 맞았어.”

외모를 제외하곤 모든 것이 변했지만, 그는 바렛 오테너 자신이 알던 애쉬 론모어가 맞다.

그의 확언에 ‘퀵 마우스’와 브로디 잭슨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이지스’는 턱을 짚고 생각에 빠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너희도 곧 직접 만나보면 알 수 있을 거다. 녀석은 애쉬가 맞아. 숨기는 것도 빌어먹을 정도로 많은 자식이지.”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는 건.”

정말로 진짜라는 건가? 이곳 웨인 시에 있는 애쉬 론모어가 자신들이 알던 그 애쉬라는 게?

브로디 잭슨은 영민한 자신의 뇌가 일순간 멈추는 것 같았다.

바렛에게서 이런 말이 나올 정도라면 거의 확신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진짜 이곳에 있는 애쉬 론모어가 진짜 애쉬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건데, 그렇다면….

“테일러와 다른 한놈한테까지 연락을 해야 하나…?”

“그래. 시간이 안 된다면 억지로라도 끌고 와야지.”

바렛이 브로디 잭슨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애쉬의 연인인 테일러와 지금은 은퇴하고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한 녀석.

어쩌면 정말로, 정말로 오랜만에 그들 ‘리버스’가 모두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을지 모르는 기회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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