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화 〉 14. 동료(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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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자신의 사무실에 헛짓거리를 벌이던 놈들을 손봐준 애쉬는 언제나 그랬듯 소파에 자리한 채 TV에 시선을 향하고 있었고, 샤인과 케일은 가끔 들어오는 의뢰서와 문의 전화 등을 받으며 업무 시간을 보낸다.
자신의 리볼버 두 자루를 가져온 게빌은 애쉬의 맞은편 자리 소파에 앉으며 그것들을 테이블 위어 올리곤 하나하나 분해했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총기 손질.
총열 내부와 실린더를 닦고 기름을 먹이며 손을 바삐 놀리는 게 여간 정성이 아니다.
애쉬는 그런 게빌의 모습에 슬쩍 시선을 향하며 물었다.
“그거 안 귀찮냐?”
리볼버는 일반적인 자동권총보다 다루는 법도 어렵고, 실제 전투에서의 성능도 떨어지는 부분이 많은 데다 지금 보다시피 손질할 때도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최신예 자동권총류와 비교한다면 여러모로 단점은 많으면서 장점은 거의 없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물론 게빌에게는 성능보다 멋을 우선시해도 될 정도의 실력이 있었지만, 그것은 지금처럼 다소의 수고를 대가로 하는 것이었다.
게빌은 그런 뜻을 내포하고 있는 애쉬의 물음에 그게 네가 할 소리냐는 듯 반응했다.
“리볼버가 손이 많이 가는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네가 쓰는 검만큼은 아닐 텐데.”
리볼버는 가끔 정비를 해줘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그것은 결코 검을 사용한 직후 손질하는 수고에 비할 바가 못 됐다.
검으로 살아있는 인간을 베면 어쩔 수 없이 피와 기름이 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아무리 애쉬 같은 검의 달인이라도 피해갈 수 없는 일.
인간의 기름과 피가 엉겨 달라붙은 것은 생각보다 더 질척거리고 잘 벗겨지지 않기로 유명했다.
당연히 그것을 제거하는 데 힘이 더 쓰이는 것은 물론이었고, 애쉬가 검을 사용하는 것처럼 탄환을 쳐내거나 단단한 것을 베기라도 한다면 검신에 손상이 가거나 날의 이가 나가는 일도 많다.
그럼 그것을 다시 수리하거나 새로운 물건을 구해야 하는 일도 많았는데, 그런 검을 쓰는 녀석이 기껏해야 전투 후에 한 번씩 분해하여 총열과 실린더를 닦아주는 게 전부인 리볼버를 쓰는 게빌 자신에게 귀찮지 않냐는 얘기를 하니 황당할 수밖에.
“아니, 애초에 넌 검을 관리하고는 있나?”
“그야….”
게빌의 물음에 애쉬는 잠시 말끝을 흐렸다.
검의 관리라.
물론 하기야 했다. 전투가 끝나고 돌아오면 검신에 엉겨 붙은 피와 기름 따위를 천으로 적당히 닦아내는 식으로.
그의 완력도 완력이었고, 나름 요령도 있었기에 검신을 닦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검의 진짜 관리는 엉겨 붙은 피와 기름 따위를 닦아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애쉬는 워낙에 검을 거칠게 쓰는 편이었기에 짧은 전투 이후라도 검신이나 날이 손상되는 일이 많았다.
그럼 그것을 그때그때 고쳐줘야 했는데 그 자신은 어떻게 했는가.
‘대부분 그냥 버렸었나?’
넷상에서 구매한 양산품을 일회용으로 쓰다 버리기도 했고, 에리히 영감을 만나 검을 받은 이후로는 가끔가다 그에게 수리를 맡겼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귀찮음에 제때제때 찾아가지 않아 갈 때마다 온갖 호통을 다 들었었지.
돌아보면 애쉬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조금 게으른 것 같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그 자신인 것을.
게빌은 말끝을 흐리는 애쉬의 모습에 쯧쯧 혀를 찼다.
“이런 놈팽이가 뭐가 좋다고 그런 여자들이 모여드는 건지 모르겠군.”
외모와 괴물 같은 실력만큼은 게빌로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이 탈락감 아닌가.
아무리 인간이 겉으로 보이는 것에 끌리기 마련이라지만….
“하, 이게 사장한테.”
“이봐, 사장도 사장 나름이지. 일은 안 하고 하루 종일 농땡이만 피우는 사장이 직원의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나?”
“그것도 그래요. 애쉬 씨도 슬슬 일 좀 해봐요.”
“내가 왜. 어제까지 해야 할 일은 다 했는데.”
고개를 젓는 게빌과 거기에 말을 더하는 케일.
하지만 애쉬는 그런 연인 한 쌍의 공격에도 그냥 코웃음 치며 고개를 다시 돌려 TV에 집중했다.
그가 반드시 해야 일은 사무실에 부정한 손길을 내뻗는 놈들을 손봐주는 것으로 끝났다.
추가 업무를 하느냐 마느냐는 어디까지나 그의 의지로 결정되는 것.
이대로 평생 아무런 일도 안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을 끝마친 만큼 재충전이라는 핑계로 조금 쉴 수 있는 것 아닌가.
최근 헛짓을 하던 놈들을 박살 낸다고 이 더운 날씨에 얼마나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며칠 동안 땀내며 일한 만큼 그에겐 충분히 쉴 자격이 있었다.
“그래, 네가 말 몇 마디에 움직일 리가 없지.”
게빌은 그런 애쉬의 태도에 처음부터 기대도 않았다는 듯 다시 총기 손질에 힘썼다.
괜히 한마디 더 했던 케일도 고개를 작게 한숨을 내쉬곤 자신의 업무로 돌아갔고.
그렇게 몇 분쯤 흐른 뒤, 잠시 사무실에 걸려온 업무 연락을 받고 있던 샤인이 전화의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애쉬를 불렀다.
“사장님, 한동안은 간단한 의뢰만 게빌 씨한테 부탁드리고 나머진 보류하라던 지시는 언제까지 유지하면 될까요?”
“글쎄. 아마 조만간 내 용무도 끝날 것 같긴 한데 정확히는 언제라고 말해줄 수가 없네.”
“음…. 그럼 지금 쌓인 의뢰서가 꽤 되는데 적당히 걸러내도 될까요?”
“편할 대로 해.”
샤인의 물음에 애쉬가 그러라며 대답했다.
샤인은 벌써 몇 년째 그와 함께 일하면서도 언제나 만족스런 일 처리를 보여준 소년이었다.
녀석이라면 애쉬가 평소에 받지 않고 거르던 류의 의뢰들을 알아서 판단하고 쳐낼 수 있을 것이다.
“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케일 씨 들어온 의뢰서들은 전부 저한테 넘겨 주시겠어요?”
“그럼 그건 퇴근 전까지 전부 정리해서 줄게.”
“네, 감사해요.”
케일의 답에 샤인이 짧게 감사를 표했다.
분해했던 총기의 손질이 끝났는지 그것을 다시 조립하던 게빌이 애쉬에게 물었다.
“그 용무라는 건 역시 그 ‘검은 개’와 ‘리버스’의 일인가?”
“어. 조만간 찾아온다고 했으니 금방 오겠지. 어쩌면 오늘 당장 올 수도 있고.”
애쉬가 과거 자신의 얘기를 한번 들었던 게빌의 물음에 긍정을 표했다.
원작 게임 속 ‘애쉬 론모어’가 속해있던 ‘리버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바렛 오테너와 다른 동료들이 그를 찾아올 것이다.
최근 들어오고 있는 의뢰들을 진행하지 않는 것은 단순 휴식의 의미 또한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그들과의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니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욱 컸다.
애쉬 자신이 알고 있는 그들의 성격이라면 가짜라는 것이 의심되는 순간 완전히 깽판을 쳐도 이상할 게 없었으니까.
얼굴을 직접 보고 얘기하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아직 그쪽에선 네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던데.”
그런 애쉬의 답에 게빌이 조금은 경계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듯 말했다.
아무리 당사자인 애쉬의 실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상대는 ‘존 시’의 정반대 편에 위치한 ‘웨인 시’까지 이름이 알려진 전설적인 용병들이 속해 있는 집단.
게빌은 ‘검은 개’ 바렛 오테너와 직접 게임이라는 이름의 격투를 벌여봤기에 알았다.
그의 실력이 결코 소문 못지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몇이나 모여 있는 집단을 혼자 상대한다면 아무리 애쉬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을 터.
잘못해서 일이 어긋나기라도 하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애쉬는 그런 걱정을 품고 있는 게빌의 말에도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래서 직접 보고 얘기하려는 거 아냐.”
“직접 보고 얘기한 ‘검은 개’와는 제대로 한판 붙어서 사무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놨고 말이지.”
“그건 그 녀석이 원래 그런 성격이라 그래.”
바렛 오테너는 겉보기엔 냉정하고 침착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었으나, 그와 달리 뭐든 쌓인 게 있으면 말이 아니라 몸의 대화로 풀어가려는 성격이었다.
실컷 주먹을 주고받으며 감정을 풀었으니 ‘리버스’의 다른 녀석들에게도 어느 정도 얘기를 전해놨을 것이다.
녀석이 어느 정도 설명을 해놨다면 일이 쉽게 풀릴 가능성이 높았다.
“또 사무실을 개판으로 만들어두진 말라고.”
“다른 녀석들은 안 그럴 거야. 아마.”
“…아마?”
게빌이 애쉬가 작게 덧붙인 말에 불길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에 애쉬는 시선을 살짝 피했는데, 생각해보자니 불안한 부분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쉬 론모어’의 동료 중에는 정신이 살짝 나간 놈도 하나 있었기에 커다란 일 없이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곤 확신할 수가 없었다.
“뭐, 너라면 알아서 잘 하겠다만.”
분해했던 리볼버의 청소 및 조립을 마친 게빌이 품에 두 자루 리볼버를 넣었다.
그러곤 애쉬처럼 소파에 몸을 묻으며 특징적인 카우보이모자를 푹 눌러 얼굴을 가렸다.
이제 할 것도 없는데 잠깐 눈이라도 붙이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
그렇게 애쉬가 TV에, 샤인과 레이라가 업무에 집중하고 게빌이 잠시 눈을 붙이고 있을 때였다.
딸랑딸랑.
작은 종소리와 함께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문을 연 남자가 인사도, 주인의 허락도 없이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정확히는 TV에 빠져 있던 애쉬를 향해.
뚜벅, 뚜벅.
애쉬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향하는 발걸음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곧 연락도 없이 찾아든 불청객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바렛?”
“그래, 나다. 빌어먹을 자식.”
검은 머리칼과 검은 눈동자, 그리고 옷차림까지 검은색으로 가득한 용병, ‘검은 개’ 바렛 오테너였다.
그는 한참 전에 완전히 멀쩡해진 애쉬와 달리 아직 맞았던 곳이 다 낫지 않았는지 붕대와 깁스를 하고 있었는데, 애쉬는 그것을 보자마자 픽 웃으며 그를 놀렸다.
“프흐, 잘 어울리는 꼴인데?”
“…닥치고 저 녀석들한테 뭐라고 말할지나 생각하시지.”
“응?저 녀석들?”
애쉬의 놀림에 바렛은 인상을 구기며 사무실 입구 쪽을 가리켰고, 그에다시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린 애쉬는 바렛이 들어온 데 이어 사무실로 진입하는 한 일행을 발견하곤 잠시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야성적이고 거칠면서도 중후한 인상의 중년 남성.
“애쉬? 진짜 애쉬야?!”
아직 성년과 미성년의 경계에 걸쳐있는 앳된 청년.
“…….”
레게머리와 테가 두꺼운 안경이 특징인 흑인 남성.
‘이지스’, 브라이언 테크.
‘퀵 마우스’, 톨 마이어.
이름 없는 해커, 브로디 잭슨.
그리고 '검은 개' 바렛 오테너까지.
비록 세 자리가 비긴 했으나 원작 게임 속 ‘애쉬 론모어’의 동료들이었던 ‘리버스’가 몇 년의 세월을 지나 ‘존 시’에서 수백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이곳 ‘웨인 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너희….”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발견한 애쉬는 예전에 이어 다시 한번 원인을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스로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치솟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며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보는데 왜들 그런 얼굴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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