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 14. 동료(10)
* * *
“오랜만에 보는데 왜들 그런 얼굴이야?”
어느 날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졌으면서도 뻔뻔하게 나오는 표정과 말투.
자신들이 얼마나 애쉬 론모어라는 인간을 찾아 헤맸는지 알 텐데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 인사하는 그 태도란…….
놀라울 정도로 그들이 그리워하던 그 애쉬 론모어와 똑 닮은 모습이었다.
녀석이라면 제아무리 자신들을 오랜만에 본다고 해도 저런 모습으로 일관했을 것 같으니까.
“진짜 애쉬 너냐…?”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 모습에 눈앞에 있는 애쉬가 가짜일 수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브로디 잭슨이 저도 모르게 물었을 정도다.
그렇게 앞서 애쉬를 만났던 바렛 오테너에 이어 지금 브로디 잭슨까지 애쉬를 반쯤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자 기쁨을 감추지 못한 톨 마이어가 뛰쳐나가며 애쉬를 포옹했다.
“애쉬!!”
“꼬맹이가 좀 컸네.”
“지금까지 대체 어디 있던 거야! 우리가 얼마나 널 찾았는데!”
“일이 좀 있었지.”
“또 무슨 사고나 쳤겠지.”
애쉬의 목소리에 바렛 오테너가 뻔하다는 듯 떠든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서도 기쁨의 기색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중심에 앉아 있는 애쉬와 재회의 기쁨에 한 차례 포옹한 뒤 떨어지는 톨 마이어, 그리고 그런 둘을 바라보며 툴툴대는 바렛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이미 그가 진짜라고 믿기 시작한 듯한 브로디 잭슨까지.
그 넷이 그려내는 풍경은 마치 과거의 기억 한 조각을 현실로 끌어낸 듯한 모습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도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한 사람만큼은 그런 분위기에 쉽게 빠져들지 않았다.
[스캔 결과, 외형 일치율 98.89%.]
‘99.89%라….’
높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높아서 정말 본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
‘이지스’, 브라이언 테크는 이 감격의 순간에마저 일말의 의심을 풀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애쉬가 그의 기억 속 모습과 다르기 때문에?
아니다. 오히려 그와 너무도 같았기 때문이다.
고정밀 스캔 결과 과거의 애쉬와 지금 브라이언 테크 자신의 눈앞에 있는 애쉬는 동일인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의 외형 일치율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왜냐면 지금 저 애쉬 론모어는 사이보그가 아니라 강화 인간이었으니까.
어떤 방법으로 개조 파츠를 제거하고 신체를 되돌렸는지를 따지기 이전에 몸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기계장치를 제거하고 인간의 몸이 됐음에도 사이보그였던 과거와 완벽히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그럼에도 스캔 결과 도출괸 98.89%의 일치율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지금 그들의 눈앞에 있는 애쉬 론모어가 아주 정밀하게 만들어진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겉보기엔 호쾌한 성격에 더해 꽤나 거칠어 보이는 인상인 브라이언 테크였지만, 그는 오히려 ‘리버스’의 누구보다도 더욱 차가운 이성을 가진 남자였다.
겉으론 침착해 보이는 바렛이 사실은 뜨거운 심장을 가진 것과는 정반대.
하지만 그는 그런 의심을 갖고 있음에도 다른 동료들이 저 애쉬 론모어에게 반가움과 그리움을 표하는 것을 틀어막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거의 확신하고 있는 다른 동료들의 반감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인간을 설득하는 데 이성보다 감정이 더욱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았다.
‘그러니….’
일단은 동료들과 애쉬 론모어, 저 진짜인지 가짜일지 모를 남자를 지켜보며 천천히 얘기를 진행한다.
그리고 그가 가짜라고 생각된다면 위화감을 조성하며 동료들 스스로가 의심할 수 있도록 물꼬를 트는 방식으로 가면 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브라이언 테크는 자신도 분위기에 섞여 들어가고 있다는 듯 애쉬를 향해 가볍게 말을 던졌다.
“이거 오랜만에 보는데 앉으라는 말도 안 해주나?”
“새삼스럽게 앉으라는 말은 무슨. 그냥 적당한 데 앉아.”
“그래도 손님이 주인 허락도 없이 행동하면 쓰나.”
아직 진짜인지 아닌지 확실치 않은 너와 나는 동료가 아니다.
은근히 뼈가 숨겨진 브라이언의 대답에도 잿빛 은발의 해결사는 그냥 픽 웃으며 넘겼다.
마치 너라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아직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밝혀지지 않은 애쉬가 그런 반응을 보이자 약간의 불쾌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기대감을 느낀 브라이언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애쉬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곧 바렛과 브로디 잭슨, 톨 마이어 다른 동료들까지 모두 응접용 소파에 자리했고, 아직 애쉬를 의심하고 있는 브라이언과 먼저 그를 만나고 얘기했던 바렛을 제외한 다른 둘은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얘기를 시작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널 찾으려고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 놀랄걸?”
톨 마이어는 ‘퀵 마우스Quick Mouse’라는 별명을 ‘퀵 마우스Quick Mouth’으로 갈아치우기라도 한 듯 입을 놀리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우리가 널 찾는다는 걸 알고 사칭하는 놈들이 몇이나 있었는지.”
“날 사칭하는 놈들이 있었다고?”
“응, 덕분에 헛고생을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야.”
이름값이 워낙에 높아진 만큼 이제는 평범하게는 접선할 수 없는 그들의 고용을 위해 애쉬 론모어가 있다는 헛소문을 퍼뜨린 이들도 있었고, 얼굴과 몸을 완전히 뜯어고쳐 외모까지 베낀 놈들도 있었다는 톨 마이어의 얘기에 애쉬가 인상 쓴 채 물었다.
“그런 새끼들을 그냥 뒀어?”
“그럴 리가. 바렛이나 다른 녀석들 성격 알잖아. 완전히 개박살을 내줬지.”
헛소문을 퍼뜨린 녀석들은 찾아가 반쯤 장애인을 만들어버렸고, 외모까지 따라 한 가짜는 격분한 바렛이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시켰다.
그냥 박살내는 것을 넘어 애쉬 론모어를 사칭하는 놈들을 그대로 죽여버렸다는 소문이 떠돌자 사칭범이나 헛소문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잘못된 목격담이나 정보로 인해 헛고생하는 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리버스’의 동료들은 실망하면서도 끝까지 애쉬를 찾길 포기하지 않았지만….
거기까지 얘기를 이어가던 톨 마이어는 잠시 말끝을 흐리며 슬쩍 애쉬를 바라봤다.
이제 그의 입에서 나올 얘기가 무엇일지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에 톨 마이어가 조심스럽게 얘기를 이어갔다.
“이 자리에 없는 세 명은…….”
그중 하나는 애쉬에게 실망한 채 은퇴해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어디론가 사라져 연락도 닿지 않았으며, 마지막으로….
“테일러도 지치는 건 어쩔 수 없었지.”
이곳 웨인 시에 애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도 발걸음을 않았던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을 듯이 애쉬를 찾아다니던 그녀였기에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불타 연소 되기라도 한 듯 애쉬를 찾는 것을 멈추고 일에 미쳐 살고 있다는 얘기가 있었으니.
톨 마이어가 테일러에 대한 얘기를 이어갈 때 브라이언은 애쉬에게 집중했다. 그가 자신의 연인의 얘기를 들으며 보이는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그래.”
애쉬는 테일러의 얘기를 들으면서도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그 기저에 깔린 음울한 감정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톨 마이어는 그런 애쉬의 반응을 보며 그것을 무마하기라도 하려는 듯 급히 덧붙여 얘기했다.
“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사실 바렛한테 얘기를 듣고 테일러한테도 연락을 보내 놨거든. 온다고 했으니 아마 조만간 볼 수 있을걸?”
일을 벌려놓은 게 많다고는 하지만 무려 그 바렛 오테너가 거의 확신한 느낌으로 그 애쉬가 맞다고까지 얘기한 만큼 그녀도 발걸음을 옮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는 말에 먼저 도착해있던 넷은 따로 움직였으나 톨 마이어의 말대로 조만간 그녀도 찾아오겠지.
“아니면 네가 직접 가도 되고. 아니, 그러는 게 좋겠다! 몇 년 동안 살아있으면서 연락도 안 했으니…!”
“그건 안돼.”
신나게 말을 이어가던 톨 마이어의 목소리 사이에 애쉬의 냉정한 말이 끼어들었다.
그것은 한창 밝아지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라도 하는 것처럼 차가운 목소리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몇 년 동안 우리는 물론이고 테일러한테까지 연락 한번 없었으면서 직접 가는 것 하나도 못하겠다고?”
그런 애쉬의 말에 지금까지 잠자코 듣고 있던 브로디 잭슨이 물었다.
몇 년 동안이나 자신을 찾고 있던 동료들에게 연락 한번 하지 않은 주제에 자신의 연인이었던 그녀에게조차 직접 찾아가는 것을 거부하다니.
애쉬가 가짜는 아닐지 의심을 이어가던 브라이언조차 그가 그런 말을 내뱉을 줄은 몰라 놀란 기색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 정도로 정밀하게 만들어진 가짜라면 오히려 더욱 그녀를 찾아가야 하지 않나?
바렛에게 듣자 하니 ‘리버스’ 내부의 정보도 어느 정도 갖고 있는 것 같았는데.
아니면 그녀에게까지 가면 들킬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인가?
브라이언이 생각을 이어갈 때 바렛은 뭔가 감이 잡힌다는 듯 물었다.
“그건 저번에 말했던 그 일 때문이냐?”
“그래.”
바렛의 물음에 애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렛은 먼저 도착해 애쉬와 만났을 때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같이 ‘존 시’로 돌아가자는 말에 지금은 돌아가지 못한다는 대답도 들었었고.
그때는 자세한 정황은 묻지 않았기에 그저 일이 있어 가지 못한다는 얘기밖에 듣지 못했지만, 그게 보통 일은 아닐 것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다른 동료들이 있는 자리에서까지 설명하지 않고 그냥 일이라고 뭉뚱그릴 줄이야.
자신을 몇 년 동안 찾아다닌 동료들에게까지 말 못 할 일이라고? 적어도 바렛 자신의 기준에서 그런 것 따위는 없었다.
바렛이 이번만큼은 제대로 얘기를 들어야겠다는 듯 말했다.
“그럼 그 일이 뭔지 알아야겠는데.”
“맞아, 대체 그게 무슨 일이길래.”
“…….”
바렛의 말에 톨 마이어가 동의하고, 다른 둘도 같은 마음으로 애쉬에게 시선을 향한다.
브로디 잭슨은 바렛, 톨 마이어와 마찬가지로 이미 애쉬가 진짜라고 거의 믿는 상태에서 의문을 갖는 것이었고, 브라이언은 아직 의심하고 있는 상태에서 무슨 변명을 할지 궁금해한다는 점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어쨌든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이유는 모두 그 일이라는 것에 대해 묻기 위함이라는 건 다름없었다.
그런 넷의 시선에 애쉬가 입을 열었다.
“‘웃는 악마’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그야, 물론.”
브로디 잭슨이 ‘리버스’의 넷을 대표해 대답했다.
용병계에서 활동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 정세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면 ‘웃는 악마’에 대해서 모르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리버스’에 속한 애쉬의 동료들이 연방 내에서 전설적인 용병으로 유명하다면 ‘웃는 악마’는 전 세계의 분쟁지역에서라면 그 이름이 빠지지 않는 전설의 용병집단이자 테러리스트들.
특히나 최근에는 ‘유성 그룹 테러 사건’으로도 굉장히 악명을 떨치고 있었기에 그 이름을 모를 수가 없었다.
애쉬는 웃는 악마에 대해 안다며 긍정을 표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럼 ‘회사’에 대해서는?”
“회사?”
“회사라면 그냥 그 회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뭔가 다른 집단을 지칭하는 말인가?”
“그래. ‘웃는 악마’와 ‘회사’, 그 녀석들이랑 조금 일이 생겨서 말이지. 지금 너희도 나랑 얽히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설마 애쉬 네가 그 ‘유성 그룹의 소드 마스터’야?”
자신과 얽히지 않는 게 좋을 거라는 애쉬의 말에 톨 마이어가 그에게 물었다.
‘유성 그룹의 소드 마스터’.
다크 웹, 그중에서도 뒷세계의 커뮤니티 사이트인 ‘게이트’에서 한창 유명한 이름이었다.
그 별명이 어찌나 크게 알려졌는지 처음에는 ‘웨인 시’ 카테고리에서만 유명하던 것이 연방 내 다른 도시에까지 퍼졌을 정도로.
지금이야 무슨 검열이 있기라도 한지 영상 사라졌기에 뒤늦게 그런 용병의 존재를 알게 된 ‘존 시’의 뒷세계에서는 그것을 볼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 소문만큼은 들을 수 있었다.
‘웃는 악마’의 부단장을 처치했다던 ‘유성 그룹’ 경호원의 얘기 정도는 말이다.
검으로 탄환을 베거나 튕겨내고 일반적인 눈으로는 그 흔적조차 잡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다던 소문의 괴인.
톨 마이어는 그런 소문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지만, 커뮤니티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다른 셋은 그게 뭐냐는 듯 설명을 요구했고, 톨 마이어가 ‘유성 그룹의 소드 마스터’에 대한 소문을 풀어 놓았다.
“최근 유성 그룹에서 테러 사건이 있었던 건 다들 알고 있지? 거기서 활약했다는 경호원인데, 듣기론 ‘웃는 악마’의 부단장을 죽였다나.”
“‘웃는 악마’의 부단장을 죽였다고?”
“응.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떠돌던 소문인데, 설마 그게….”
‘웨인 시’에서 활동하고 있던 애쉬와 그가 이제는 검을 주로 사용한다는 바렛의 얘기.
그리고 ‘웃는 악마’와 얽혔다는 당사자의 말까지.
그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애쉬가 그 ‘유성 그룹의 소드 마스터’가 아닌지까지 생각이 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톨 마이어의 물음에 대한 애쉬의 대답은.
“맞아. 그게 나야.”
긍정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