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3화 〉 14. 동료(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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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커뮤니티에서 얻은 정보라고?”
그런 애쉬의 대답을 들은 브로디 잭슨은 톨 마이어가 하루 종일 빠져 사는 커뮤니티 활동에 대해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유성 그룹의 소드 마스터’의 소문은 그도 들은 적 있었다.
‘유성 그룹’은 연방 전체에 그 영향력을 뻗치고 있는 초거대 기업체였고, 거기서 일어난 테러 사건은 그것이 벌어진 ‘웨인 시’를 넘어 ‘존 시’를 비롯한 연방 다섯 개 도시 전부에 알려지기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커뮤니티에서 들었다는 정보로 저렇게까지 연결이 될 줄이야.
‘재빠른 생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눈치 빠르고 잽싼 톨 마이어였기에 단번에 추측할 수 있었던 것이긴 했지만, 저번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떠돌던 그 게시글도 그렇고, 이번 일도 그렇고.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톨 마이어가 제대로 된 정보를 건져 올리는 것을 보면 이제는 정말 그 커뮤니티 사이트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게이트’는 진짜 쓸모 있다니까!”
그런 브로디 잭슨의 반응에 톨 마이어가 당당하게 외쳤다.
그렇게 브로디 잭슨이 그쪽까지 발을 넓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이 바렛은 그런 둘의 대화에서 빠져 애쉬에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그래서, 정확히 어떻게 된 건데. 그놈들의 부단장을 죽였다고?”
“어.”
애쉬는 바렛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웃는 악마’를 비롯한 ‘회사’와 엮인 이야기를 ‘리버스’의 넷에게 설명했다.
처음 ‘회사’와 엮였던 ‘달의 꽃’ 사건부터 시작해 ‘유성 그룹’ 테러 사건, 그리고 ‘총잡이들의 여명’에서 있었던 일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모든 것까지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일련의 과정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한 얘기였다.
“어쩐지. 저 녀석도 보통은 아니던데 이유가 있었군.”
바렛은 자신들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아닌 척 이쪽에 귀 기울이고 있는 게빌을 바라보며 말했다.
목숨을 걸고 싸운 건 아니지만 이미 한판 붙어본 그는 게빌이 뒷세계에 흔히 널려 있는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웃는 악마’에 그런 후원자가 있었다니…. 이상하긴 했지. 녀석들이 어떻게 그런 장비를 수급하고 자유롭게 움직이는지.”
“듣자 하니 그냥 후원자는 아니야. 제대로 된 무력 부대도 갖고 있던데.”
브로디 잭슨의 진지한 얼굴에 애쉬가 추가로 덧붙였다.
‘회사’ 소속이라던 ‘땅거미 부대’는 애쉬가 여태껏 상대해 왔던 집단 중에서는 아직도 첫손가락에 꼽히는 수준의 강적이었다.
단순 전력이야 ‘웃는 악마’쪽이 더 뛰어나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그쪽은 워낙에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 집단 전술의 이점 따위를 살리지 못했기에 집단으로 넣기엔 애매했고.
그런 애쉬의 설명을 들은 브라이언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우리가 네 일에 휘말려 피해를 볼까 봐 피하겠다는 거냐?”
“뭐, 일단은 그런 느낌이지.”
“허.”
애쉬가 빙 돌려 대답하자 브라이언은 복잡해지는 심정을 숨기지 않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동료라는 존재들이 있으면서도 자신이 벌인 일이기에 혼자 짊어지겠다는 저런 태도.
이런 부분까지 닮았다는 것이 더 그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젠 모르겠군.’
사이보그에서 강화 인간이 되었다고 하면서도 전혀 변하지 않은 저 외형은 그가 가짜가 아닌지 의심하게 만들었지만, 반대로 또 이렇게 보여주는 모습들은 계속해서 눈앞의 잿빛 해결사가 자신이 아는 애쉬 론모어가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아마 진짜 애쉬 녀석이었더라도 이런 태도를 보였겠지.
그 녀석은 그런 녀석이었으니까.
“저기 저 카우보이모자 녀석이나 지금 나와 함께하고 있는 녀석들은 대부분 ‘웃는 악마’에 원한을 갖고 있는 녀석들이야. 아무런 이유도 없이 너희까지 말려들게 할 생각은 없어.”
애쉬는 그런 브라이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얘기를 이어갔다.
지금 그가 동료라고 할 수 있는 이들 중 빌헬름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웃는 악마’와 직간접적인 원한을 가진 이들.
자신의 가족과도 같이 생각했던 이를 ‘회사’쪽의 배신자로서 처단해야 했으며 조직에 심대한 타격을 받았던 레이라 플로리스.
혈육 간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끔찍한 상잔을 일으켰으며, 끝내는 가족을 살해당한 뒤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당한 유서령.
그들에 의해 자신의 동료이자 친구였던 이들이 몰살당하고 보금자리였던 ‘리퍼슨 물류’, ‘총잡이들의 여명’이 무너진 게빌 리퍼슨.
린느의 경우에는 조금 특수한 관계라 제외했지만, 남은 넷 중 셋이 모두 ‘웃는 악마’에 원한을 가진 이들이었다.
굳이 애쉬와 얽히는 게 아니더라도 ‘웃는 악마’를 적대하는 이들이라는 뜻이다.
그런 만큼 그들이 스스로 피해를 볼 것을 각오하면서도 복수를 다짐한 이들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애쉬 론모어’의 동료였던 ‘리버스’의 멤버들은 다르다.
그들은 현재 ‘웃는 악마’와 아무런 악감정도 없는 상태.
‘웃는 악마’가 가진 위험성을 생각하면 이유 없이 그들을 적대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리버스’가 아무리 ‘존 시’에서 전설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용병들이라지만 애쉬가 직접 겪어본 ‘웃는 악마’는 그들조차 어떻게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애쉬, ‘이진현’은 아직 과거 ‘애쉬 론모어’였던 존재의 잔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끝나지 않아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지금 자신은 ‘애쉬 론모어’인가, 아니면 ‘이진현’인가.
그가 설령 자신을 ‘애쉬 론모어’라 규정한다 해도 그 동료들을 사지로 끌어들이는 것이 옳은 것인가.
‘회사’를 적대하는 것은 ‘달의 꽃’ 사건까지만 해도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을 박살 낸다’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애쉬가 그 어떤 일보다도 위중하고 위험한 일이 되어 있었기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그러니 일단은 그들을 이 일에서 떼어놓는 수밖에.
하지만 그런 애쉬의 결정에 톨 마이어는 곧장 반발했다.
“…우리가 네 일에 끼어들 이유가 없다고?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한껏 들떴던 목소리가 가라앉았고,가벼웠던 분위기도 무게감을 갖추며 직전까지 보여줬던 소년 같은 모습이 사라졌다.
애쉬는 그런 톨 마이어의 갑작스런 변화에 조금 놀라고 말았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며 그를 바라봤다.
원작 게임 속에서 보던 소년은 장성해 어느덧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만큼 항상 열혈에 불타던 그 소년도 변한 것일까.
지금 애쉬의 앞에 있는 톨 마이어는 더 이상 원작 게임 속 그 소년이 아니라 ‘존 시’의 뒷세계에서 나름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한 명의 용병이었다.
애쉬가 알던 소년의 티를 벗어가고 있는 청년은 애쉬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우린 ‘동료’야.”
동료란 무엇인가.
‘리버스’의 모두는 단순히 같이 일하는 이들을 동료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동료란.
서로의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존재이자 기쁨도, 슬픔도 나누며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이들을 뜻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들에게 위험한 일이니 그냥 빠지라고?
너희는 나처럼 위험한 일에 발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그것은 그들을 걱정했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실망스러운 말이기도 했다.
동료란 목숨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서로를 믿어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앞에 있는 애쉬는 어떤가.
자신들을 마치 동료가 아닌, 그의 보호 대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 않은가.
‘리버스’는 여태껏 모두가 서로를 믿고 힘을 모았기에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사지를 헤쳐나왔고, 앞으로도 그럴 터.
그것은 아무리 그 ‘웃는 악마’가 상대라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그들을 동료로 여기고 있다면 애쉬는 저리도 오만한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들이 알던 애쉬도 홀로 모든 것을 짊어지려는 성향이 있었음에도 끝내 동료들을 믿고 자신의 짐을 나눠 짊어졌지만, 지금의 애쉬는 그 이전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듯 ‘리버스’의 결성 이후였다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말을 내뱉고 있다.
톨 마이어는 애쉬를 향해 실망의 기색을 숨기지 않았고, 그것은 바렛과 브로디 잭슨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너라도 방금 그 말은 그냥 못 넘기겠다.”
“이번만큼은 나도 동감이다, 애쉬. 너는 우리를 대체 어떻게 보고 있는 거냐.”
그들이 자신의 목숨을 아껴 동료를 저버릴 이들이었다면 지금의 ‘리버스’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애쉬 론모어가 주도해서 만든 ‘리버스’의 멤버들은 모두 같은 생각이었으나 정작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그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그들이 실망했다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나타냈지만 애쉬는 내뱉은 자신의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생각이 없었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그들을 밀어내려는 이유는 이번 일의 위험 때문이었지만, 사실 그보다는 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숨기고 그들의 호의를 받는 것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스스로가 ‘애쉬 론모어’인지 ‘이진현’인지 맥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저들의 목숨을 받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랬기에 애쉬는 그들의 실망에도 오히려 한 발짝 더 나아가 말했다.
“…테일러와 이 자리에 없는 녀석들에게도 미리 얘기해 둬.”
내가 너희를 보는 걸 그다지 내켜 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앞선 말보다 냉정한 목소리가 더해지자 말소리가 오가던 사무실은 일순간 적막에 잠겼다.
애쉬가 자신의 연인인 테일러에게까지 선을 그을 줄은 몰랐기 때문일까.
그를 찾아온 넷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고, 애쉬는 그런 그들의 표정을 바라보며 팔짱을 낀 채 더 할 말은 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렇게 자리에 있는 모두가 침묵만을 주고받기도 잠시.
이제까지 조용하던 브라이언의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적막을 깨고 그들의 사이에 흘렀다.
“…너, 정말로 변했군.차라리 네가 가짜인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변했어.”
“…….”
애쉬는 그런 그의 목소리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애쉬가 일부러 자신들을 밀어내기 위해 모진 말을 내뱉는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지켜야 할 선은 있었고, 지금 애쉬가 입 밖으로 꺼낸 말은 명백히 그 선을 넘어서는 종류의 것이었다.
과거의, 그들이 알던 ‘애쉬 론모어’였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결코 하지 않았을 말.
브라이언은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애쉬를 노려봤다. 그러곤 몸을 돌리며 한 마디 한 마디를 씹듯이 내뱉었다.
“난 이만 가보겠다. 이 자리에 계속 있으면 내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겠으니까.”
그 사나운 목소리에도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애쉬의 귓가로 멀어지는 브라이언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사무실의 자동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도.
그에 뒤따라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브로디 잭슨이 일어났고, 톨 마이어도 굳은 표정으로 한 마디를 남긴 채 자리에서 떠나갔다.
“너. 예전보다 더 멍청해졌어, 애쉬.”
감정에 못 이겨 소리치지도, 그렇다고 욕설을 섞지도 않은 목소리가 자리를 떠난 주인을 대신해 애쉬의 귓가에 맴돈다.
그렇게 다른 동료들이 모두 자리를 떠났음에도 마지막까지 자리에 남아있던 바렛이 천천히 입을 열어 물었다.
“이게 네가 내릴 수 있는 최고의 판단이냐? 애쉬 론모어.”
“…….”
애쉬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바렛이었기에 처음 봤을 때처럼 격분하여 달려들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그의 목소리에도 숨길 수 없는 실망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대답하지 않는 애쉬.
자신의 목소리에도 아무 반응 없는 애쉬를 잠시 바라보던 바렛도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떠난 동료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이게 그가 내린 최고의 판단이라면 억지로 그것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애쉬는 꽤나 가벼운 면이 있는 녀석이었지만 일단 결정을 내리면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는 이상 그것을 바꾸는 일이 없었으니까.
그것은 과거 그들이 기억하는 ‘애쉬 론모어’나 지금의 애쉬나 마찬가지였다.
“…언제든 생각이 바뀌면 찾아와라.”
우리는 예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테니까.
바렛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떠났고, 그들 일행이 떠난 사무실은 평소보다도 무겁고 차가운 공기만이 낮게 깔렸다.
“…저게 옳은 선택인지는 모르겠군.”
계속해서 이어지는 적막 가운데 그들의 해후와 마지막을 지켜보던 게빌만이 자신이 감히 이렇다저렇다 왈가왈부할 수 없을 애쉬의 선택에 모자를 푹 눌러쓰며 중얼거릴 뿐.
그리고 그런 게빌의 중얼거림은 애쉬 또한 동감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한 선택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틀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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