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224화 (224/230)

〈 224화 〉 14. 동료(12)

* * *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리버스’의 멤버들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는 가라앉은 것을 넘어 침울하게까지 느껴졌다.

설마 자신들이 그렇게나 찾았던 애쉬에게서 저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그 누구도 얘기가 이런 식으로 끝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테일러한테는 뭐라고 얘기할까.”

“뭐라고 얘기하긴. 어차피 곧 올 텐데 뻔히 들킬 거짓말이라도 하려고?”

톨 마이어의 조심스런 목소리에 바렛이 당연한 걸 뭘 묻냐는 듯 대답했다.

거짓말로 적당히 넘긴다고 해도 일단 ‘웨인 시’에 있는 애쉬 론모어가 진짜인 이상 그녀는 반드시 이곳을 찾을 것이었고, 애쉬와 만나 얘기하는 순간 그들의 거짓말을 눈치챌 터였으니 사실대로 얘기한다는 것 외의 선택지는 없었다.

그때가 돼서 거짓말을 한 게 걸리기라도 하면 진심으로 날뛰는 그녀를 볼 수 있을 테니까.

애쉬가 사라진 이후로 성격이 조금 죽은 테일러였지만, 다시 불이 붙기 시작하면 바렛은 그녀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그것은 바렛 뿐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애쉬의 연인인 테일러는 분명 굉장한 미인이었지만, 그 성격이 워낙에 불같은지라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라도 그녀의 심기가 불편할 때면 살살 피하곤 했으니까.

“애쉬 저 녀석도 그래.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찾아다녔는지 들었으면서도 저런 소리나 하고.”

“그만큼이나 자기가 처한 상황을 무겁게 생각한다는 거겠지.”

이어진 톨 마이어의 불평에 대답한 것은 브로디 잭슨이었다.

브로디 잭슨 자신도 애쉬의 말에는 실망한 상태였지만, 그 이상으로 애쉬의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적대하고 있는 이들이 무려 그 ‘웃는 악마’다.

거기에 속한 용병들 개개인이 손에 꼽는 최정예 전력이며 특히나 그들 중에서도 상위 서열에 있는 이들은 이미 인간을 벗어났다는 용병집단.

아무리 ‘존 시’의 살아있는 전설과 같은 ‘리버스’의 멤버들이라고 해도 ‘웃는 악마’는 함부로 생각할 수 없는 이들이었다.

적대하는 순간부터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테니까.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지.’

톨 마이어를 바라보던 브로디 잭슨이 생각했다.

옛날, 애쉬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했을 때의 그들은 그 어떤 위험이라도 감수하며 도전할 수 있었다.

당시의 그들이 가진 것이라곤 몸과 깡밖에 없었고, 아무것도 상태에서 뭔가를 이루려면 그나마 가진 몸이라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가진 것 하나 없던 ‘리버스’의 멤버들은 이제 모든 것을 이루고 각자의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이들이 됐다.

부와 명예를 모두 손에 쥐었으며, 사랑하는 이와 가정을 이루고 평온한 삶을 살기 위해 은퇴한 녀석까지 있다.

이제는 지킬 게 너무 많아진 그들이었기에 과거처럼 모든 것을 걸고 위험에 뛰어들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일이었다.

‘아마 녀석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그랬기에 애쉬는 그들의 분노를 사면서까지 밀어내려고 하는 것일 터였다.

정말이지 어리석게도, 멍청하게도.

하지만 그런 애쉬의 생각과 달리 브로디 잭슨은 아직 자신의 동료를 위해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있었다.

아마 그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일 터.

그들이 지난 몇 년 동안 애쉬를 찾아 헤맸던 것은 결코 장식이 아닌 것이다.

겨우 이런 위험 하나에 동료를 저버릴 것이었다면 수년 동안 갖은 수고를 다 하며 그를 찾아다니지도 않았겠지.

“진짜. 방금 그대로 나오는 게 아니라 한 방 먹여 줬어야 하는데.”

“네가? 퍽이나 그랬겠군.”

“뭐어, 딱히 내가 아니더라도 브라이언이 한 방 먹여줄 수도 있고….”

사무실을 나서기 전에 애쉬를 좀 패줬어야 했다고 후회 중인 톨 마이어와 그런 그를 놀리는 바렛의 목소리.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브로디 잭슨은 적당한 타이밍에 끼어들어 동료들의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그래서, 너희 정말 이대로 돌아갈 거냐?”

“그건…….”

브로디 잭슨이 일부러 피해가고 있던 주제에 대해 직설적으로 묻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잘만 떠들던 톨 마이어가 입을 다물었다.

그 질문은 그냥 Yes or No로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톨 마이어 자신으로서는 이렇게 끝맺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아무리 애쉬가 괘씸한 태도를 보인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동료’가 아닌가.

하지만 그런 톨 마이어도 브라이언의 눈치는 살필 수밖에 없었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성격의 브라이언이었지만 한번 터지면 그야말로 활화산과 같이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는 게 그였기에.

과거 바렛과 한번 제대로 부딪혀 둘이 서로를 반쯤 죽여놓았던 기억은 아직도 앳된 청년의 머릿속에 강하게 박혀 있었다.

그렇게 톨 마이어가 다른 동료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자 바렛이 먼저 입을 열어 대답했다.

“일단 녀석한테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고는 했는데, 그런 얘기를 들을 놈은 아니지.”

“…맞아. 그냥 둬도 어디서 픽 죽어버릴 녀석은 아니긴 한데,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잖아.”

바렛이 먼저 답하자 톨 마이어도 소심하게 동의했다.

‘웃는 악마’의 이름값은 지금의 그들에게도 굉장히 무겁게 다가오는 만큼 아무리 애쉬라도 그 녀석들을 상대로 무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

“브라이언, 너는 어떻게 생각해?”

바렛과 톨 마이어의 대답을 들은 브로디 잭슨이 아직 입을 다물고 있는 한 명, 브라이언에게 물었다.

그에 앞서 등을 보이며 걷던 브라이언이 천천히 발걸음을 멈췄다.

­ 뚜벅, 뚜벅, 툭.

“…거기에 대해선 테일러와 다른 녀석들이 도착한 뒤에나 결정하지.”

그리고 일반인들의 배는 될 것 같은 넓이의 어깨 너머로 그가 대답했다.

명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게 아닌, 뒤로 미루는 애매한 대답이었지만 브로디 잭슨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적어도 거절은 아니라는 것에서 브라이언이 분노만 느끼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후우…. 좋아, 그럼 그건 테일러와 다른 녀석들이 도착한 다음에 다시 얘기하도록 하고. 톨, 셋한테 연락은 다 닿은 거야?”

“일단 테일러랑 유한한테는 연락이 됐는데, 아이작은 출국 이후로 연락을 안 받아.”

“하, 애쉬는 찾았는데 이번엔 그 미친놈인가.”

브로디 잭슨은 자신이 본 미친놈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정신이 나가 있던 동료를 떠올렸다.

자신들이 어느 정도 잡아주지 않았다면 진작 연방의 감옥에 갇혀 평생 동안 썩고 있었을 녀석을.

“뭐, 아무튼. 그렇게 결정됐으면 적당한 곳에 숙소나 잡자.”

연락이 닿지 않는 아이작이야 그렇다 쳐도 다른 둘은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했으니 한동안은 이쪽에서 머물러야 할 것이다.

“여기 아일랜드라고 유명한 곳이 있다던데.”

“아일랜드? 호텔이야?”

“아니, 유흥 시설이 모여 있는 타워래. 꼭대기에는 호텔도 있고.”

“그것도 커뮤니티에서 얻은 정보냐?”

“응. 추천 명소로 올라와 있더라고.”

“…커뮤니티도 나름 쓸만한 부분이 있긴 하네.”

바렛과 브로디 잭슨, 그리고 톨 마이어는 시답잖은 얘기를 떠들며 브라이언의 등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한 도시에서 전설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용병과 그런 용병이 인정하는 최고의 해커, 그리고 그런 그들과 오랫동안 함께 했던 소년이 나누는 대화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급한 대화였지만 다행히도 그들을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 * *

“이, 이봐. 이러지 말자고. 우리 전에 본 적도 있는 사이잖아, 응?”

“그런 소리를 할 거라면 싸우기 전에 얘기했어야지. 멍청한 친구로군.”

­ 타앙!!

게빌은 식은땀을 흘리며 용서를 비는 남자를 향해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리볼버의 총구가 불을 뿜음과 동시에 남자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흐음.”

탄환에 머리가 터져나가며 핏물과 뇌수가 튀는 모습을 보던 게빌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자신과 한번 안면을 익힌 적 있는 용병의 목숨을 제 손으로 거뒀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 으아아악!!

­ 괴, 괴물이야. 괴물…커억!

애쉬가 올라간 위층에서 비명과 함께 핏물이 흩뿌려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빌은 그런 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화풀이도 아주 거하게 하고 있군.”

최근 ‘리버스’의 동료라던 이들이 다녀간 뒤로 기분이 안 좋다는 티를 팍팍 내던 그의 상태를 봤을 때 아주 난리가 났을 텐데, 뒤처리를 책임진다던 클라이언트가 그것을 보고 구역질을 하는 건 아닐지 걱정될 정도였다.

­ 케흑….

­ …….

게빌은 위층에서 들려오던 비명이 가라앉을 즈음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자신의 예상대로 피바다가 된 채 잘려나간 인간의 신체가 굴러다니는 지옥의 풍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는 애쉬도.

그곳에 발을 들인 게빌은 이 층에 자신과 애쉬 단둘을 제외하곤 살아있는 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찡그린 표정으로 이런 지옥을 만든 당사자를 향해 다가갔다.

“이봐, 애쉬. 너무 심하게 하는 거 아닌가? 굳이 다 죽일 필요는 없었잖아.”

“클라이언트는 전부 죽이는 게 처리하기 편할 거라고 하던데.”

“이중에도 일회성으로 고용된 용병들은 있었을 텐데, 그런 녀석들은 좀 보내줘도 돼.”

의뢰 목표는 어디까지나 이곳 건물을 차지하고 있는 마약 카르텔의 일원들만을 제거하는 것.

카르텔의 소속이 아닌 용병들은 어디까지나 짧은 기간만 고용된 몸이었다.

이쪽 세계에서는 그런 경우 그냥 보내주는 게 관행 아닌 관행으로서 이어지고 있었는데, 애쉬는 그런 것의 구분 따위를 두지 않고 모조리 참살한 것이다.

물론 용병들도 마찬가지로 애쉬와 게빌을 향해 총구를 겨눠온 놈들이었기에 잘못이라고 하기엔 뭐했지만, 게빌이 보기엔 그 손속이 너무 지나칠 정도였다.

하지만 애쉬는 그런 게빌의 말에도 새로 얻은 검의 내구도를 확인하듯 검신을 바라보며 설렁설렁 대답했다.

“약쟁이들이랑 붙어먹는 놈들을 살려두긴.”

“초짜들은 일을 가려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 텐데…. 아니, 됐군. 위층은 내가 정리할 테니 너는 여기서 그냥 쉬든지 해.”

케일에게 배우기라도 한 듯 애쉬에게 잔소리를 하려던 게빌은 이내 그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애쉬보다 한 발짝 먼저 위층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슬슬 자신들의 아지트가 습격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테니 다소 성가신 일이 생길 수도 있었지만, 애쉬를 위층으로 보내서 이 건물 안에 있는 놈들을 구분 없이 죽여버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그러든가.”

애쉬도 게빌이 지금 자신의 기분 전환을 못마땅하게 본다는 것을 알고 말했다.

의뢰를 나온 김에 검의 성능 테스트도 어느 정도 끝났고, 약쟁이들을 정리하며 기분도 조금 풀렸다.

이제 그는 도망치는 놈들만 처리하고 나머지는 게빌에게 맡겨도 되겠지.

애쉬는 피가 조금 묻은 것을 제외하면 손상 하나 없이 말끔한 검을 다시 허리춤에 차고는 올라가는 게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실전 테스트를 겸한다며 입고 있는 파워 슈트가 부드럽게 기동하는 모습이 괜히 눈에 들어온다.

기사의 갑주를 모방해 만들어진 파워 슈트는 여전히 멋있었다.

‘나도 얼른 저런 거나 나왔으면 좋겠네.’

애쉬는 사고가 다른 방향으로 향하지 않도록 그런 생각에 집중하며 게빌이 일을 끝내길 기다렸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