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225화 (225/230)

〈 225화 〉 15. 제 1구역(1)

* *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복수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덕분에 그이도 편히 눈 감을 수 있게 됐어요….”

기껏해야 서른이나 됐을까. 젊은 여성이 눈물을 글썽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녀는 애쉬의 사무실에서 자신의 의뢰가 완료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찾아온 의뢰인이었는데, 장례를 치르던 중 곧장 이곳으로 향했던 것인지 검정 일색의 상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게빌은 그런 의뢰인에게 고인의 명복을 빌며 간단히 어떤 식으로 의뢰가 진행되고 마무리 지어졌는지 설명했다.

“조사 결과 배우자 분을 해친 놈들은 일종의 범죄 카르텔이었고, 저희가 놈들을 직접 찾아가 징벌했습니다.”

“징벌이라면…?”

“편히 세상을 떠나진 못했을 겁니다.”

정확히 어떻게 처리됐냐고 묻는 의뢰인의 목소리에 게빌은 애쉬가 그들을 모조리 참살했다는 사실을 에둘러 말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의뢰 완수금 이외에 추가금이라도 더 드려야….”

“추가금은 괜찮습니다. 애초에 의뢰금 자체도 수고에 모자라지 않았으니.”

게빌의 대답에 자신의 복수가 깔끔하게 끝났다는 것을 안 의뢰인은 또다시 감사를 표하며 추가 사례를 하겠다는 듯 말했으나 게빌은 그것을 가볍게 거절했다.

쓰레기들을 뜯어먹는 것은 괜찮아도 가장 소중한 이를 상실한 미망인에게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조심히 들어가시죠.”

게빌의 단호한 목소리에서 그가 절대 추가 사례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느꼈는지 의뢰인은 끝까지 감사를 전하며 사무실을 떠났고, 게빌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떠나보냈다.

“부자고 빈민이고. 역시 어딜 가나 인간 사는 곳은 다 똑같군.”

그리고 게빌은 의뢰인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는데, 일견 부담스럽게까지 느낄 수 있던 의뢰인의 감사 의사 표현이 이해됐기 때문이다.

방금 떠난 미망인이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에 맡긴 의뢰는 자신의 남편을 살해한 범인을 찾아 복수해달라는 것이었다.

의뢰를 받은 애쉬와 게빌은 바로 자신들과 함께 1구역으로 자리를 옮긴 빌헬름의 힘을 빌려 조사에 들어갔고, 어렵지 않게 그 원흉을 밝혀낼 수 있었다.

덩달아 그 미망인이 아직 이름도 크게 알려지지 않은 자신들에게까지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알 수 있었고.

의뢰인의 남편을 살해한 이들이 무려 도시 중심부에서도 가장 거대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마약 카르텔, ‘클라우드’였던 것이다.

애쉬 일행이 의뢰 목표를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너무도 거대하고 강력한 세력이었기에 그 흔적을 지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며, 미망인이 된 의뢰인이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까지 찾아온 이유는 그들의 정체를 안 모든 곳에서 의뢰를 거절했기 때문.

의뢰 목표가 ‘클라우드’라는 거대 마약 카르텔인 것을 안 빌헬름은 사색이 된 낯빛으로 당장이라도 의뢰를 거절할 것을 권했으나 일단 한번 받은 의뢰는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며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던 애쉬가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였을 리가 없다.

의뢰 강행을 선택한 애쉬와 그를 따른 게빌이 ‘클라우드’의 어느 지부 하나를 박살 내놓은 게 바로 하루 전의 일이다.

“그럼 의뢰는 성공적으로 끝났는데, 이제 뒷일은 어떻게 할 거지?”

의뢰인을 배웅하고 자리에 돌아온 게빌이 소파에 앉아 있던 애쉬를 향해 물었다.

의뢰 완수금을 받으며 의뢰를 잘 끝낸 것은 좋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클라우드’는 도시 외곽도 아닌 중심부에서 마약을 비롯한 온갖 불법 사업을 어마어마한 규모로 다루고 있는 범죄 카르텔.

그런 사업적 수완과 과감한 행동력을 갖고 있는 놈들이 자신들의 지부가 당한 것을 모를 리가 없었고, 또 그것을 행한 이들이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그렇다면 그쪽에서도 어떻게든 손을 써올 테니 미리 대비를 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게빌의 그런 물음에 애쉬가 대충 대답했다.

“어쩌긴. 오면 죽이고,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좋은 거지.”

“…진심이야?”

“그럼.”

“젠장, 진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일을 벌였다고?”

이어지는 애쉬의 대답에 게빌이 골이 아프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클라우드’는 대표적으로 자신들의 카르텔명을 딴 ‘클라우드’라는 마약을 주로 다뤘지만, 그들의 사업 전부가 마약 쪽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약의 비중은 절반이 안 될 정도였고, 오히려 군용 병기 밀매와 유흥 및 사업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런 녀석들이 갖고 있는 장비가 얼마나 뛰어난 수준일 것이며, 또 그것을 상대해야 할 자신은 얼마나 고생을 할 것인가.

애쉬가 겉보기에는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아도 어느 정도의 대안이나 대책은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했던 게빌로서는 골치가 아픈 것을 넘어 머리가 깨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보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샤인이나 케일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지켜야지.”

“어떻게?”

“잘.”

“이런 개…!”

돌아오는 애쉬의 대답에 게빌이 욕지거릴 내뱉었다.

평소처럼 별 것 아닌 일이었다면 자신도 그냥 넘어갈 수 있었겠으나 지금 벌인 일은 그런 수준이 아니잖은가.

그런 게빌의 반응을 보던 애쉬가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농담이고. 생각은 어느 정도 해 놨어.”

“대체 어떻게 할 생각인데?”

“어차피 그 녀석들도 이 사무실에 대놓고 폭발물 같은 걸 터뜨리진 못할 거야.”

“그야, 그렇겠지.”

게빌이 애쉬의 그 말에는 동의한다는 듯 대답했다.

현재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의 사무실이 위치한 곳은 제 1구역의 최중심부 번화가였다.

이런 곳에서 빌딩의 한 개 층을 통째로 날려버릴 폭발물을 쓴다면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닐 터.

이곳은 슬럼처럼 공권력이 손을 놓은 지역이 아니었고, 그런 만큼 아무리 ‘클라우드’라고 해도 도시의 심장부에서 그런 일을 벌일 수는 없었다.

시 정부의 공권력이 작정하고 나서면 그들이라도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그들의 입장에서 그런 테러는 빈대 하나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수준의 일인 것이다.

“그럼 그 녀석들이 할 수 있는 짓이라고 해봐야 뻔하지.”

기껏해야 직접 인력을 동원한 공격, 그 정도가 한계.

눈에 띄게 움직일 수는 없을 테니 숫자도 그렇게 많이 동원하지 못할 게 뻔했다.

장비가 뛰어난 만큼 꽤나 성가실 수도 있겠지만 애쉬에겐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수준.

그리고 그냥 그런 수준이라면 케일이나 샤인이 위험할 것 같다 싶으면 둘을 챙겨서 안전히 몸을 뺄 자신도 있었다.

“그렇긴 한데….”

애쉬가 그렇게 설명하자 게빌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불안은 지우지 못하겠다는 듯 뭔가 다른 생각은 없냐며 애쉬를 바라봤다.

“그리고 저 둘을 지킬 수 있는 건 우리 둘이 전부는 아니잖아.”

“우리 둘이 전부가 아니라고? 그럼 누가… 아.”

이어진 애쉬의 말에 순간 누가 더 있냐며 의문을 나타낸 게빌이었지만, 그는 곧 지금은 보이지 않는 한 명을 더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암살자?”

“닌자라니까.”

“그래, 그 닌자.”

항상 보이지도, 그렇다고 인기척이 느껴지지도 않았기에 있는지 없는지도 헷갈리는 존재였지만, 그 여자 또한 분명히 이 사무실의 소속이었다.

그 애쉬 론모어에게 중상을 입힌 닌자인 만큼 그 실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과거 게빌 또한 애쉬와 한번 붙어봤지만, 상처 하나 주지 못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 닌자, 지금도 여기 있나?”

“아니, 어디 좀 다녀온다던데.”

“보이지도 않고 인기척도 없으니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군.”

“아마 곧 돌아올 거야. 지금 간 것도 안 가려다 어쩔 수 없이 간 거라고 하니까.”

“그럼 그 여자는 평소엔 항상 사무실에 있는 건가?”

“그렇다던데.”

실제로 부르면 바로바로 나타나기도 하고.

애쉬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게빌은 그런 대답에 괜히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럼 아닌 척 항상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항상 귀신처럼 몰래 숨어서는.

게빌은 그런 감정을 숨긴 채 애쉬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그, 별일 없을 때는 어지간하면 좀 모습을 드러내라고 하는 게 어때.”

“안 그래도 전에 말했는데 자기는 그게 편하다더라고.”

“…그래?”

“어.”

“하….”

본인이 편하다는데 억지로 끄집어낼 필요까지는 없다며 애쉬가 대답하자 게빌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앞으로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 내부 한구석이 괜히 더 찜찜하게 느껴질 것 같다.

“…뭐, 아무튼. 우리는 그쪽에서 친다면 방어하는 식으로 대처한단 말이지?”

“그래.”

“별다른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럴 리는 없겠지.

게빌은 자신이 바라는 게 결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란 걸 잘 알았다.

놈들은 반드시 한 번쯤은 이쪽을 찔러올 것이 분명했다.

* * *

“그게 무슨 소리지? 지부 하나에 있던 녀석들이 모조리 몰살당했다고?”

“예. 무슨 정육 공장에라도 온 것마냥 토막이 나 있었다고 하더군요. 분쟁지역의 경험이 있는 놈들도 토악질을 하고 있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정확히는 저도 현장을 가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래. 다녀와서 바로 보고해.”

“예. 그럼.”

책상에 앉아 찾아온 부하로부터 소식을 듣던 남자, 제 1구역의 총괄 관리라는 직책을 갖고 있는 ‘엘 파이 콘테’는 고개를 숙여 보이는 부하에게 손짓해 내보낸 뒤 방금 전까지 자신이 들여다보던 거래 내역 및 매출 서류를 내려놓았다.

“…여기가 박살 났다고? 그것도 오늘?”

마침 그가 보던 서류는 오늘 개작살이 났다던 그 지부의 지부장으로부터 하루 전 올려받은 물건이었다.

그곳은 제 1구역에 위치한 지부들 중에서도 꽤 규모가 큰 곳이었기에 서류에 적혀있는 자금의 흐름 또한 평범한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굵직했는데, 그런 곳을 관리하던 놈들이 몰살을 당했다니 그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그리고 그것은 제 1구역을 관리하는 총괄 관리인 그에게도 크나큰 타격이 될 터였다.

“알 리프네의 소행인가? 아니면 이쪽에 원한이 있는 용병?”

‘클라우드’ 내의 경쟁자의 이름을 떠올렸다가도 외부의 용병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클라우드’는 규모가 거대한 만큼 적도 많았기에 내부자의 소행이든, 아니면 외부인의 소행이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범인을 유추하는 일보다 더 그를 신경 쓰이게 하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보스에게 이런 사항을 보고해야 하는 그 자신의 처지였다.

“씨발. 엄청나게 깨지겠군.”

인적 손실도 손실이었지만 지부 하나를 박살 낸 놈들이 그곳에 있던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았을 리가 없다.

손실된 양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할 텐데, 그것을 들은 보스가 책임자인 그를 가만히 두겠는가.

지난 세월 동안 쌓아온 신뢰가 있었기에 이 정도 일로 살해당하지는 않겠지만 가만히 넘어갈 수 없는 일인 것은 당연했다.

보스의 집무실로 들어가자마자 날아오는 온갖 집기에 이마가 터지지는 않을지 걱정되는 상황.

엘 파이 콘테는 급히 보스에게 무어라 변명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일단 범인은 만들어서라도 찾아야 할 거고….”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일단 대가리부터 박아야 그나마 피를 덜 볼 것이다.

그리고 항상 들고 다니는 단검과 권총도 사무실에 두고 가야지.

엘 파이 콘테는 빈손이었던 보스가 어느 간부에게 격분해선 무기를 빼앗아 손모가지를 날려버리던 것을 생생히 기억했다.

그런 일을 다시 한번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미리 방지하는 게 중요할 터다.

그리고 또…….

­빠드득.

보스에게 보고하러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생각하던 엘 파이 콘테는 어느 순간 바득바득 이를 갈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왜 하필이면 자신의 구역이란 말인가.

1구역이 아닌 외부의 지부가 노리기 훨씬 편했을 텐데.

“…내 구역에서 이딴 짓을 벌여?”

자신이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머리를 박고 사죄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화가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다.

‘누군지 몰라도 잡히면 지옥을 보여주마.’

엘 파이 콘테는 이를 갈며 보스에게 할 변명과 함께 정체 모를 범인을 잡아 고문할 방식도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흘러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그의 업무용 책상에 있는 전화에 불이 들어왔고, 그것을 받은 그는 현장을 확인하러 간다던 부하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범인을 알았다고? 벌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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