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226화 (226/230)

〈 226화 〉 15. 제 1구역(2)

* * *

­ 예. 놈들은 정체를 숨길 생각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 흔한 복면 하나 없이 대놓고 일을 벌이더군요. 영상이 있으니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래.”

엘 파이 콘테는 부하에게 대답한 뒤 연락을 끊었고, 부하는 자신이 말한 대로 현장에 남아있던 CCTV영상을 그에게 전송해 보냈다.

그것을 받은 엘 파이 콘테는 부하로부터 전송받은 영상을 바로 확인했는데, 확실히부하의 말대로 범인들은 얼굴을 가릴 생각조차 않고 일을 벌이고 있었다.

­ 꺼져. 여긴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이다.

­ 거기서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오면 좋은 꼴은 못 볼 줄 알아라.

지부 건물 입구를 지키는 카르텔 소속 갱들의 경고에 멈춰서는 두 명의 남자.

그중 한 명은 잿빛 은발, 허리춤에는 검 한 자루를 매달고 있는 특이한 행색이었고, 다른 한 명은 눌러쓴 카우보이모자에 독수리 케이프를 걸쳐 검을 찬 쪽보다도 더 특이한 행색을 하고 있었다.

검을 차고 있는 쪽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반대편의 카우보이모자와 독수리 케이프 쪽은 어딘가 낯이 익은 모양새.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엘 파이 콘테가 그를 어디서 봤는지 잠시 떠올리는 사이에도 영상을 계속됐다.

지부를 찾은 두 명의 남자는 옷을 팔뚝까지 걷어 개조 파츠를 드러낸 채 위협하는 갱들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세계에 있는 듯 느긋하게 대화를 나눈다.

­ 여기 맞지?

­ 그렇다고 하던데. 진짜 할 생각이야?

­ 말했잖아. 의뢰를 받았으면 무조건 한다고.

자신들이 서있는 곳이 ‘클라우드’의 지부 앞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내키지 않는다는 기색으로 말하는 카우보이모자의 남자였지만, 검을 차고 있는 반대편의 남자는 더 얘기하지 말라는 듯 단호하게 대답했다.

­ 하…. 그래. 알겠다고.

­ 넌 빠져나가는 놈들이 없게 막기나 잘 해.

그렇게 그들이 갱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기자 경비를 서던 갱들이 각기 자신의 총을 들어 올렸고, 그때.

“…응?”

어느샌가 검을 뽑아 든 잿빛 은발 남자의 신형이 주욱 늘어나는 것 같은 착시 현상과 함께 한 줄기 섬광이 공간을 갈랐다.

눈 깜짝할 새 칼잡이는 갱들의 사이에 도착해 있었고, 그가 손에 쥔 칼날이 그려낸 수평 호선은 자신이 가는 방향에 있는 모든 것을 가른 이후.

­ …어?

경비를 서고 있던 갱 중 한 명이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얼빠진 목소리를 내는 것과 동시에 인간의 신체가, 그리고 강철로 된 개조 파츠들이 툭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 으, 으아악!!

­ 아악!!

분수처럼 치솟는 피와 함께 쏟아지는 비명들.

하지만 신체 일부가 결손 당하는 고통에 비명이라도 지를 수 있었던 둘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나머지는 목이 떨어지고 허리가 잘려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절명했으니까.

아니, 차라리 아무런 고통도 없이 죽은 쪽이 낫다고 볼 수 있을까?

잿빛 은발의 칼잡이는 신체 절단부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 갱들을 내려다보다 다시 한번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을 휘둘렀고, 그나마 살아 있던 갱 둘마저 목이 떨어지고 머리가 갈라지며 이승을 떠났다.

­ 언제 봐도 네가 나랑 나랑 같은 인간이 맞긴 한가 싶군.

­ 난 먼저 들어간다.

동료로 보이는 카우보이모자의 말에 시시하다는 듯 대꾸도 않고 제 할 말만 남긴 채 발걸음을 움직이는 잿빛 은발의 칼잡이.

갱들의 몸으로 피 분수를 만들었으면서도 자신의 몸에는 한 방울 튀지 않은 말끔한 모습으로 치덕치덕 붉게 물든 바닥에 발자국을 남기며 움직이는 모습이 섬뜩하게까지 보인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들어 영상을 녹화하고 있던 CCTV 렌즈를 올려다본 순간.

엘 파이 콘테는 저 칼잡이의 타오르는 듯한 진청색 눈동자와 자신의 눈이 마주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몸을 움찔 떨었다.

그리고 그는 저 칼잡이가 렌즈에서 시선을 돌리기까지 몇 초 동안 자신과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은 영상 속 칼잡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천적 앞에 선 피식자처럼 단 한 순간이라도 눈을 돌렸다간 저 예리한 칼날에 베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 어이, 같이 가!

그렇게 잿빛 은발, 진청색 눈동자의 칼잡이가 시선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카우보이모자의 남자도 급히 발걸음을 옮겨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것으로 입구 쪽 CCTV의 영상은 끝. 다음은 건물 내부의 영상을 볼 차례다.

“…대체 뭐 하는 놈이지?”

자신도 모르게 서늘해진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건물 내부에 설치된 CCTV 영상을 열던 엘 파이 콘테가 중얼거렸다.

저 칼잡이가 보여준 귀신 같은 움직임은 물론이고, 영상 너머로까지 이렇게 전해지는 기세가 보통 인물은 절대로 아니었다.

지금 자신이 모시고 있는 ‘클라우드’의 보스가 격분했을 때도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칼잡이에게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낄 줄이야.

“일단은 영상을 좀 더 봐야겠군.”

엘 파이 콘테는 이어서 다운로드가 끝난 다음 영상을 열었다.

지부가 박살 났다는 결과를 보고 받은 만큼 영상 내에서 보여주는 내용도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섬전과 같이 치고 나가는 칼잡이와 그의 뒤에서 엄호하며 빠르게 움직이는 총잡이.

총잡이는 제 파트너가 특이하게도 검을 사용하는 것처럼 자신도 구식 리볼버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음에도 역시 그 실력이 엄청나다는 게 느껴졌다.

­ 피, 피해! 안쪽으로 가서 지원을 요청해!!

­ 어딜!

­ 타아앙!!

몸을 돌려 도망치던 갱 셋이 동시에 피를 뿜으며 쓰려진다.

카우보이모자가 들고 있는 리볼버에서 총성이 한번 울릴 때마다 적어도 하나 이상씩 쓰러지는 갱들.

저 총잡이가 보여주고 있는 패스트 드로우와 리볼버 패닝은 그냥 기술이라는 수준을 넘어 거의 신기에 가까웠다.

대체 어디서 저런 실력자들이 갑자기 튀어 나왔…….

“아니, 잠깐.”

생각을 이어가던 엘 파이 콘테는 계속해서 재생되던 영상을 잠시 멈추고 화면 안에 들어온 카우보이모자의 남자에게 집중했다.

그리고는 영상을 확대해 그 총잡이의 얼굴을 살폈는데, 거기에는 그의 기억 속에 확실히 남아있는 얼굴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엘 파이 콘테는 그 남자의 별명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골든 캐니언’.”

영상 속 카우보이모자 총잡이의 정체는 ‘총잡이들의 여명’, 뒷세계에서도 가장 유명한 용병 집단 중 하나이자 최근에 몰락했다고 알려진 조직의 부단장이었던 것이다.

그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영상 속 남자는 ‘데일 리퍼슨’의 아들이자 ‘총잡이들의 여명’의 부단장인 ‘게빌 리퍼슨’이었고, 그것을 알면 그와 함께 하고 있는 칼잡이의 정체도 어느 정도 유추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놈들의 정체는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겠군.”

‘미친 칼잡이’라는 별명의 주인이자 ‘유성 그룹의 소드 마스터’의 정체로 유력하다고 알려진 애쉬 론모어.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는 최근 그가 1구역에 열었다는 사무실의 이름이었다.

‘골든 캐니언’, 게빌 리퍼슨이 몸을 의탁했다는 것으로도 유명해진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는 최근 그곳의 사장인 ‘미친 칼잡이’ 애쉬 론모어의 거침없는 행보로 더욱 그 이름값을 올려가고 있었는데 이제는 겁도 없이 ‘클라우드’까지 건들 줄이야.

“그런데 대체 저놈들이 왜 우릴 건든 거지?”

그들의 정체를 알아본 엘 파이 콘테가 중얼거렸다.

그들, ‘클라우드’는 ‘미친 칼잡이가 자신의 사무소를 건드는 놈들을 모조리 박살 내고 있다’라는 소문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구경꾼의 입장이었다.

‘클라우드’와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는 애초에 각자의 분야가 달랐을뿐더러 인원이 겨우 몇 되지도 않는 해결사 사무소 하나의 등장으로 흔들릴 만큼 그들의 입지가 작지 않았으니까.

사실상 규모를 따져봤을 때 경쟁자라고 하기에도 우스울 정도의 격차가 있는 것이다.

그랬기에 굳이 그들에게 손을 대지 않았으며, 또 손댈 생각도 없었는데 왜 저들이 먼저 ‘클라우드’를 쳤는가.

그것도 자신들의 짓임을 숨길 생각도 않고.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영상 내에서 확인된 저들의 실력은 확실히 여태껏 본 적 없을 정도의 괴물들이 맞았지만, 그래 봐야 겨우 둘이었다.

현대의 전투, 전쟁에서는 아무리 특출난 개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판도를 뒤집을 수 없다.

그것이 상식이었고, 또 사실이었다.

제깟 놈들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신이 아니라면 매초 당 수천 수만 발씩 쏟아지는 탄환을 감당할 수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저놈들이 감히 겁도 없이 ‘클라우드’를 건드렸다는 것.

그것이 뜻하는 바는 따로 있었다.

“…설마 ‘다크 머천트’놈들의 사주인가?”

‘다크 머천트’, 무기 밀매를 업으로 삼고 있는 또 하나의 거대 카르텔의 이름이다.

‘다크 머천트’는 ‘클라우드’와 달리 다른 분야에는 전혀 손을 뻗지 않고 오로지 무기 밀매만을 다루는 자들이 모인 카르텔이었는데, 그들은 마약상이면서도 자신들의 분야인 무기 밀매에 손을 대고 있는 ‘클라우드’를 무척이나 아니꼽게 보고 있었기에 두 카르텔은 크고 작은 일로 충돌하는 경우가 잦았다.

일 년 전에는 크게 부딪히는 수준을 넘어 완전히 전면전으로 돌아설 뻔한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끝내 두 카르텔 보스들의 협의로 무마되었었다.

한때 진짜 전쟁을 벌일 뻔한 적도 있었던 만큼 아무리 보스들이 뜻을 모았더라도 밑의 관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 같은 상태였는데, 지금 이런 식으로 일이 벌어진 것을 보면 ‘다크 머천트’로 그 의심이 가장 먼저 향할 수밖에 없었다.

저들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의 사장이 아무리 정신이 나갔다고 유명해 ‘미친 칼잡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지만, 겨우 두 명의 해결사가 활동하고 있는 상태에서 ‘클라우드’만 한 거대 카르텔에게 아무런 대책 없이 총구를 겨눌 리가.

분명 자신들의 뒤를 봐주는 놈들이 있었기에 가능할 것이 틀림없었고, 그 뒷배의 정체는 ‘다크 머천트’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렇다면 진짜 범인은.

“‘알릭스 호프만’. 그 새끼가….”

‘알릭스 호프만’.

일 년 전 엘 파이 콘테 자신과 격하게 부딪혀 ‘클라우드’와 ‘다크 머천트’가 전면전 직전까지 가게 만든 장본인.

놈의 사주를 받아 움직인 것이라면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 놈들이 감히 ‘클라우드’를 건드릴 수 있었던 이유도, 그리고 하필이면 그의 산하에 있는 지부 하나를 박살 낸 것도 이해가 됐다.

놈이 손가락 하나를 잘린 일 년 전의 원한을 잊지 않고 이제서야 복수를 시작한 것이다.

엘 파이 콘테는 생각이 한번 맞아 떨어지기 시작하자 이번에 지부 하나가 무너진 일이 ‘다크 머천트’ 쪽의 소행일 것이라 거의 확신을 갖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자신도 상대방에게 이번 일의 대가를 돌려줄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번 일은 반드시 배로 갚아주마.”

녀석들이 자신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최대한 흔적을 숨기되 복수의 규모는 더욱 커져야 한다.

그것은 무척이나 까다로운 일이었지만 ‘클라우드’만 한 거대 카르텔의 총괄 관리 자리를 손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수완이 뛰어난 엘 파이 콘테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상대방의 의심은 사겠지만 그것을 명분으로 공격할 수는 없도록 수를 쓰는 것.

머리를 굴리던 엘 파이 콘테는 대략적인 계획을 빠르게 수립해나갔고, 업무용 책상 위 전화의 수화기를 들어 믿을 수 있는 부하들을 몇 불러들였다.

“조만간 비밀스럽게 일을 하나 해줘야겠다.”

‘다크 머천트’, 그중에서도 알릭스 호프만의 세력을 깎아내는 것이 1차 목표.

그는 부하들에게 각기 계획을 설명한 뒤 움직이도록 명령을 내렸고, 부하들은 그것을 똑바로 빠르게 이해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쪽을 보조하면서…….”

“알겠습니다.”

엘 파이 콘테의 명령을 들은 부하들이 그렇게 대답하며 일의 준비를 시작하려던 찰나. 그는 자리를 떠나려던 부하 중 하나를 잡아 불렀다.

“잠깐. 너는 남아라, 오펜.”

“예.”

2 미터가 가볍게 넘어가는 키와 전신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근육질.

인간의 성장이 충분히 상향 평준화 된 현대에서도 거인이라고 불릴 정도의 체격을 지닌 그는 엘 파이 콘테의 밑에 있는 부하들 중에서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실력자였으며, 누구보다 충성심이 뛰어난 부하였다.

엘 파이 콘테는 홀로 남은 그에게 다른 부하들과는 조금 다른 임무를 추가로 내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에 대한 처분이었다.

아무리 ‘다크 머천트’의 사주를 받아 움직인 것이라고는 해도 그것을 직접 수행한 놈들이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그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할 의무가 있었고, 또 그것을 통해 감히 ‘클라우드’를 거스르지 말라는 경고를 다시 한번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까 놈들을 단 한 놈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죽여 창밖에 목을 매달아라.”

일종의 효수.

제아무리 최근 이름을 알리고 있는 놈들이라고 해도 ‘클라우드’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뒷세계의 모두에게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펜은 그런 엘 파이 콘테의 명령에 익숙하다는 듯 무뚝뚝하게 대답했고, 엘 파이 콘테는 그런 그의 반응에 믿음직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깜빡했다는 듯 덧붙여 말했다.

“아, 그리고. 놈들의 실력은 들려오는 소문 이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니 방심하지 마라.”

“…그 정도입니까?”

“그래. 놈들의 영상도 보내줄 테니 확인하고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이만.”

오펜은 엘 파이 콘테에게 고개를 한 차례 숙여 보인 뒤 자리를 떠났다.

오펜은 자기 자신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엇보다 분쟁지역의 군 간부 출신으로 최고의 야전 지휘관이기도 했다.

그런 녀석이라면 상대방의 영상을 보고 전투력을 분석한 뒤 전술을 짜는 것 정도는 간단할 터.

‘클라우드’의 풍부한 인력과 장비를 사용한다면 더더욱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엘 파이 콘테는 영상 속 애쉬 론모어와 눈을 마주쳤던 그 순간을 떠올리자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으나 이내 고개를 저어 그것을 털어내곤 곧 있을 보스와의 미팅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개인은 집단을 이길 수 없다.’

그래, 그것이 상식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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