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화 〉 15. 제 1구역(3)
* * *
“점심은 어떻게 할까요?”
“귀찮으니까 적당히 배달이나 시켜먹자.”
평소와 같은 풍경의 사무실.
마약 카르텔의 지부 하나를 쓸어버리고 온 애쉬였지만 며칠이 지났음에도 사무실에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조용한 느낌.
게빌은 그쪽에서 아무런 수도 쓰지 않을 리가 없다며 이어지는 평안한 분위기에 약간의 불안을 느끼는 것 같았지만, 애쉬는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할 정도로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에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었다.
점심 식사를 묻는 샤인의 목소리에 소파에 누운 모습으로 건성건성 대답한 애쉬는 다크 웹, ‘게이트’를 살피며 시간을 보냈다.
뒷세계 최대 규모의 커뮤니티인 ‘게이트’ 또한 최근 애쉬가 벌인 일들로 인해 상당히 떠들썩한 상태였다.
*
제목 : 미친칼잡이련 1구역에서 또 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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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끼 사무실 열더니 그냥 지 좆대로 다 깨부수고 다니는중임 ㅋㅋ
지금 주변에 있는 인력소 같은 곳 3분의1은 박살난듯
아직도 지가 있는 곳이 슬럼인줄 아나본데 조만간 저새끼도 끝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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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93)
익명 – 그새끼 슬럼에 있을때도 미친새낀건 알았는데 거기 가서도 그 지랄이냐?
└ 익명(작성자) – ㅇㅇ 지금 난리치고다녀서 주변에서 벼르고 있다는데
└ 익명 – 걔 그래도 이유없이 지랄은 안하던 것 같은데 거기선 또 뭔일이래냐
└ 익명 – 나도 얘기는 들었는데 슬럼에서 올라온 새끼라고 주변에서 텃세좀 부린듯
└ 익명 – ㅋㅋㅋ 그새끼 슬럼에 있을대도 절대 건들지 말라고 위에서 공문 내려올 정도였는데 거기서도 깽판치냐?
익명 – 이새끼가 그렇게 쉽게 갈 것 같진않은데.. 그리고 골든캐니언 그 컨셉충새끼도 저쪽에 붙었다고 함
└ 익명 – 골든캐니언 그새끼는 지네집 무너지고 붙은 게 저 좆만한 해결사 사무소냐
└ 익명 – 총여명 망함?
└ 익명 – ㅇㅇ 거기 사무직 다죽고 현장직도 반토막나서 그냥 해체했다던데
└ 익명 시발; 그새끼들은 뭐에 망했대
└ 익명 – 소문으론 악마새끼들이랑 한판 붙어서 무너졌다는 얘기가 있음
익명 – 미친칼잡이 그새끼 진짜 괴물인데 건들면 좆된다 나는 경고했다
└ 익명 – ㅋㅋㅋ미친칼잡이 빠돌이새끼 어서오고
└ 익명 – 솔직히 나도 그 미친새끼가 뒤지는꼴이 상상이 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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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가 제대로 활성화 되지 않은 슬럼과 달리 도심 한복판에서 일을 벌였기 때문일까.
애쉬의 행보는 카테고리 하나를 벗어나 웨인 시 전체의 안주거리가 되어 씹히고 있었음에도 정작 그 당사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본문의 내용 따위가 아니었다.
“이건 또 어디서 주워들은 거야?”
애쉬 자신의 앞날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게시글에 달린 댓글 중 예리하게 진실을 찔러오는 놈 하나.
‘총잡이들의 여명’이 무너진 것은 당연히 그 파급력이 대단했던 만큼 널리 알려졌지만, 그 원인이 ‘웃는 악마’라는 것은 대체 어떻게 알아냈단 말인가.
설마하니 ‘웃는 악마’와 싸우는 그 자리에 있었던 녀석이 이런 게시글 따위에 댓글을 달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그냥 아무 쪽이나 찔러본 건가?
그렇게 생각하려 해도 ‘웃는 악마’와 ‘총잡이들의 여명’에는 아무런 접점도 없었다.
‘빌헬름한테 한번 찾아보라고나 할까.’
괜히 신경이 쓰인 애쉬가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을 때.
애쉬가 누워 있는 소파 근처로 다가온 샤인이 그에게 식사 메뉴 선정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게빌 씨가 중식을 먹자고 하시는데 사장님도 괜찮으신가요?”
“중식?”
“네. 기름진 게 당긴다고 하셔서요.”
“뭐, 오랜만에 중식도 나쁘진 않지.”
중식 하니 갑자기 지구에서 먹었던 짜장면을 떠올린 애쉬였지만, 아쉽게도 연방에는 짜장면이라는 음식이 없었다.
원래 그가 있던 지구에서도 거의 한국에만 있는 음식이었던 만큼 게임 속 세상에서까지 그것의 존재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일이었다.
“네, 그러면 메뉴는 항상 드시던 느낌으로 골라도 될까요?”
“어.”
애쉬도 샤인의 물음에 가볍게 대답했다.
그는 중식 중에서도 향신료의 향이 너무 강한 것은 싫어하는 편이었는데, 샤인은 이미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맡겨두면 센스 있게 잘 고르는 편이었다.
그렇게 애쉬의 의향을 물은 샤인이 다시 게빌과 케일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그럼 저는 마저 주문하러 가볼게요.”
“그…아, 잠깐.”
그래, 하고 대답하려던 애쉬가 깜빡했다는 듯 자리를 떠나는 샤인을 멈춰 세웠다.
생각해보니 잊은 게 있었던 것이다.
린느 데 파르셰. 전날 저녁 복귀했다며 보고한 그의 닌자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다.
그녀도 식사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네? 뭔가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잊고 있던 사람이 하나 있어서. 린느, 너도 메뉴 하나 골라.”
샤인도 그녀의 존재를 잊고 있던 것인지 갑작스런 애쉬의 부름에 멈춰서며 물었고, 애쉬는 그런 샤인에게 대답하며 지금도 모습을 감추고 있을 린느를 불렀다.
“아, 그러고 보니 린느 씨가….”
샤인은 애쉬의 목소리에 자신이 잊고 있던 그녀의 존재를 떠올렸다.
원래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녀였고, 최근 며칠 동안은 또 완전히 자리를 비웠었기에 아직 그녀의 존재가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소년이었다.
그렇게 샤인이 그녀를 잊고 있던 자신의 실수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며 다짐하는 사이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종이 한 장이 팔랑팔랑 테이블로 떨어져 내렸다.
그것을 발견한 샤인이 종이를 집어 거기에 적혀 있는 짧은 글씨를 읽었다.
[불필요.]
“…린느 씨는 괜찮다고 하시는데요.”
“됐으니까 골라.”
샤인이 종이에 적힌 메시지를 읽음으로서 린느의 뜻을 대신 전했지만, 애쉬는 다시 한번 메뉴를 고르라 말했다.
이번에는 억지로라도 같이 식사를 함께 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녀 또한 일단은 이 사무실의 직원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는데, 다른 이들과 너무 동떨어져서 움직이고 있었다.
같은 곳에 소속된 만큼 서로 간에 최소한의 신뢰 정도는 쌓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애쉬의 의지를 읽은 것인지 린느는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샤인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파두부. 맵게.”
“아, 네. 그럼 그렇게 주문할게요.”
“그래. 주문 끝나면 좀 쉬어. 저쪽에도 쉬라고 하고.”
“네, 그렇게 할게요.”
린느의 메뉴 선택은 마파두부.
굳이 맵게 해달라는 말을 덧붙인 것을 보면 그녀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린느의 메뉴 선택까지 들은 샤인은 다시 주문을 끝마치기 위해 움직였고, 곧 그것을 마친 뒤 반대편에서 얘기하고 있던 게빌, 케일과 함께 응접용 테이블로 다가와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사장의 재량 하에 갖는 휴식시간.
두런두런 한자리에 모인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의 직원들은 앉은 자리에서 대화를 이어갔다.
“그럼 그 린느 씨는 지금도 이 자리에 있는 거예요?”
“어. 어지간하면 내 근처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 같던데.”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지만 말이지.”
애쉬의 대답에 게빌이 말을 더했다.
광학미채 슈트와 그녀 특유의 은신술은 두려울 정도로 모든 것을 완벽히 감춰 게빌로서도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는지 감지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녀의 존재를 느끼는 것은 모든 감각이 인간을 초월한 애쉬조차 힘든 일이었기에 그가 감지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당사자는 아무래도 그것이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일반인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전장을 오가는 현장직이었기에 더욱.
하지만 케일은 게빌처럼 불안감을 느끼기 이전에 이 자리에 있음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둘러봤다.
“린느 씨, 혹시 사라지고 나타나는 걸 보여줄 수 있나요?”
그리고 그렇게 부탁했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애초에 주인인 애쉬에게도 명령이 떨어지지 않으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녀가 다른 이의 부탁에 따를 리가.
그것을 지켜보던 애쉬는 다른 직원들과 친분을 쌓는데 매우 비협조적인 린느의 태도에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린느.”
“…….”
이름만 불렀음에도 그 뜻을 알아들었다는 듯 애쉬가 앉아있는 소파의 뒤편 허공에서 폴리곤 입자 같은 것들이 일어나며 그 사이에서 한 사람의 인형이 나타난다.
눈처럼 새하얀 머리칼과 새하얀 눈동자.
머리칼뿐 아니라 눈썹, 속눈썹까지도 순백색으로 가득해 신비한 분위기를 흘리고 있는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케일이 눈을 빛내며 린느를 바라봤다.
“전에도 한번 얼핏 보긴 했었는데, 진짜 미인이시네요.”
“…….”
“어떻게 우리 사장님 같은 사람한테 이런 미인들이 잔뜩 달라붙지? 유성 그룹의 이사님도 그렇고, 파티에 왔던 다른 분도 그렇고. 안 그래, 게빌?”
“그건 동감할 수밖에 없군.”
“내가 뭐 어때서.”
린느를 칭찬하는 듯하면서도 은근히 자신을 공격하는 둘 연인의 목소리에 애쉬가 무슨 소릴 하냐며 툭 대꾸했다.
애쉬는 자신 정도면 굉장히 훌륭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능력 있지, 돈 있지, 외모도 뛰어나지.
이성들이 선호하는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케일은 그런 애쉬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솔직히 애쉬 씨는 다른 부분에선 뭐라고 못하겠는데 성격이 조금….”
“성격?”
“네, 게을러도 너무 게으르잖아요. 그리고 배려심도 부족하고, 주변에 여자도 많고.”
케일은 조목조목 애쉬의 성격에 있는 문제점들을 짚어갔다.
게으름, 배려심 부족, 유흥을 즐기며 문란한 이성 관계까지.
뒷세계의 밑바닥 용병들이 무릇 갖춰야 할 모든 덕목들이 애쉬에게도 존재했으니 굳이 따지자면 뒷세계의 사람이 아닌 케일에게는 그것이 어떻게 느껴졌겠는가.
사실 마약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뒷세계의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들이었지만, 뒷세계의 기준을 벗어나 정상적인 사고로 되돌아본다면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옳은 지적들뿐이다.
“그건….”
애쉬는 자신의 약점을 후벼 파는 케일의 말에 무어라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거봐요, 애쉬 씨도 할 말 없죠?”
“핫, 역시 케일. 독설 성능이 확실하구만.”
“게빌. 너도 마찬가지야.”
“…갑자기 나를?”
게빌이 할 말을 잃은 애쉬를 놀리자 이번에는 케일의 예리한 혀가 이번에는 그를 향했다.
그에 게빌이 당황한 표정을 지을 때.
띵.
애쉬의 맑은 알림음이 들려왔다.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가 위치한 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춘 것이다.
벽 하나를 넘고도 십수 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들려온 소리였으나 애쉬의 귀는 그조차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초인적인 청각을 자랑했다.
그리고 멈춘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시작되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뚜벅, 뚜벅.
묵직한 발소리들이 적어도 스물 이상.
엘리베이터의 알림음이 울릴 때까지만 해도 조금 이르지만 잡담을 나누는 사이 배달이 도착한 것인가 생각하던 애쉬였다.
하지만 저 발소리를 듣는 순간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무거운 발소리에서는 배달 음식을 든 정도가 아니라 신체 내부에 개조 파츠를 잔뜩 박아넣은 사이보그들에게서나 날 정도의 무게감이 느껴졌고, 그 숫자가 이상할 정도로 많았다.
게다가 바깥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들이 향하는 곳은 마침 지금 애쉬가 위치한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의 사무실.
애쉬는 거기까지 안 애쉬는 저들이 게빌이 걱정하던 ‘후환’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왜 그러…?!”
그리고 저들이 사무실의 자동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순간 애쉬는 자신의 감각이 경고하는 바에 따라 자신이 앉아있던 소파를 뒤집어 엎으며 샤인과 케일을 그 아래로 밀어넣었고, 갑작스런 그 행동에 케일이 당황의 목소리를 내뱉은 직후.
와장창!
투두두둥!!
반투명한 유리로 이뤄진 사무실 내부 벽면을 모조리 깨부수며 총탄의 비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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