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화
서장(Prologue)
“으음…… 정말 미안하게 됐구나. 이런 일은 매우 드문데 말이다.”
“미안하다는 말로 넘어갈 생각은 아니시죠?”
“그건 아니다만…….”
노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붉은색 비단으로 된 옷이 펄럭거렸다.
평상시라면 사극 촬영이라도 하나 생각했을 테지만 지금은 평상시가 아니다.
조금 뜬금없지만.
정우는 지금 죽어 있었다.
육신이 없는 영혼 상태로 사신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이 이곳.
듣기로 <외우주>라던가 뭐라던가 하는 곳이라 한다.
수천, 수만의 우주를 관장하는 곳. 수많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바깥>의 차원.
‘……이라던가 뭐라던가.’
솔직히 무슨 소린지는 잘 모르겠다.
대충 저승 비스무리한 곳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지금 당장 살려줄 수도 있다. 그건 어떠냐?”
노인의 제안에 정우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 시신은 이미 화장되었다면서요? 다시 살리려면 어차피 과거로 보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는 김에 조금만 더 서비스해 주시죠.”
“끄응…… 호연 그놈은 얌전히 데리고만 올 것이지 쓸데없는 소릴 나불대서는.”
방금까지만 해도 정우는 미치고 팔짝 뛰는 줄 알았다.
멀쩡히 출근을 하던 중 픽 쓰러지더니 호연이니 뭐니 하는 사신 놈이 나타나 대뜸 명이 다해 죽었다는 것이 아닌가?
트럭에 치였다든가 육교에서 떨어졌다든가 그랬다면 억울하지라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 하나 없이 정말로 픽 쓰러져 죽었다. 픽.
그 후 토로할 길 없는 답답함을 안고 도착한 이곳 <외우주>에서, 정우는 천지가 뒤집힐 소리를 들었다.
“제 수명이 앞으로 50년은 더 남았다면서요? 이렇게 억울한 영혼을 그대로 돌려보내기만 해서 되겠습니까.”
자신이 죽은 것이 명이 다해서가 아니라 그 사신 놈의 실수라는 것이 아닌가!
정우는 할 말을 잃었었다.
28년의 짧은 인생이었지만,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 생각한 인생이었다.
고아로 태어나 부모 없이 자랐단 소릴 듣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공부했다.
대학교 때는 스펙 쌓기는 물론 각종 동아리와 봉사활동 등의 프로그램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뿐만 아니라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까지.
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노력했던 것이 인정받은 것일까.
그는 입이 떡 벌어지는 대기업까진 아니더라도 나름 이름 있는 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
내외부로 평가도 좋고 사내 복지도 잘되어 있는 꿈같은 직장.
그제야 그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앞으로 결혼과 노후 준비도 남아 있지만, 인생의 큰 능선 하나를 넘었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였다.
호연인지 뭔지 하는 저승사자 놈에게 변을 당한 것이.
“그러니까 네 말은…… 죽은 시점이 아니라 좀 더 전으로 돌려보내 달라? 그 사이의 기억도 그대로 온존한 채?”
“예. 제 나이가 28이니 통 크게 20년쯤 전은 어떤가요? 또 제가 기억력이 나빠서 옛날 일을 잘 기억 못 하거든요. 그 부분도 가능하면 서비스 부탁드립니다. 가능하면요.”
처음엔 화를 냈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당장 살려내라 악을 썼다.
그러던 중 듣게 되었다.
자신의 시신은 이미 화장했기에 되살리려면 <지구>의 시간을 통째로 감아야 한다고.
그때 번뜩였다.
‘어차피 되돌릴 거라면 좀만 더 돌려주면?’
일주일이니 한 달이니 쩨쩨한 시간이 아니라 5년,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때는 지금보다 더욱더 활짝 핀 인생을 보낼 수 있다! 정말 나이스 아이디어가 아닌가?
물론 더욱 오랜 시간을 돌리는 것은 훨씬 힘이 들겠지만, 그런 거야 정우가 알 바 아니다.
“불가능한 건 아니다만…….”
노인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마음 같아선 냅다 호통을 치고 적당히 환생시켜 버리고 싶었다.
그편이 골치 아픈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규정상 불가능하다.
수천, 수만의 우주를 꿰뚫는 열 가지의 계율 중 하나.
망자가 <바깥>의 책임으로 억울함을 갖게 된다면 반드시 풀어줘야 한다.
억울함을 푸는 방법의 대부분은 그자가 원하는 바를 행해주는 것이고.
“정말 괜찮겠느냐? 과거로 돌아간다는 걸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그대가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비단 그대의 노력뿐만 아니라 운도 좋았기에 가능했음을 알아야 할 것이야. 그러니…….”
짐짓 무게를 잡던 노인의 어조는 끝에 가선 거의 애원 조가 되었다.
“괜찮습니다. 다시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어림도 없다.
정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선 이미 갖가지 계획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으니.
‘일생일대의 대찬스!’
이만한 기회를 대책 없이 흘려보낼 그가 아니었다.
“하아…….”
굳건한 정우의 태도에 노인은 이내 포기했다.
도저히 말로 구슬릴 수는 없어 보였다.
‘이번 일에 필요한 업(業)은 호연 네놈이 전부 감당해야 할 것이야!’
일을 저지른 사신 놈에게 마음속으로 이를 갈며 노인이 정우에게 얘기했다.
“좋다. 뜻대로 해주마.”
“정말입니까!?”
“단 정확한 시점을 지정해서 보내줄 수는 없다. 그대의 영혼이 운명의 강을 거스르며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선 나름의 이정표가 필요한즉.”
“무슨 얘기죠?”
정우의 의문에 노인이 대답했다.
“그대에게 무언가 전환점이 되었던 시기로 돌아가게 될 것이란 얘기다. 본래라면 육신의 죽음이라고 하는 무엇보다 확실한 이정표가 있겠지만 이번 경우엔 더욱 거슬러 올라야 하니 말이다.”
“으음, 알겠습니다. 몇 년이나 과거로 갈지는 모른다는 소리죠?”
육신의 죽음보다도 더욱 이전의 ‘이정표’에 데려다주는 것.
그 정도가 최선인 모양이었다.
“날짜를 지정하거나 그런 건 안 되나 보네요.”
“그래.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노인이 반쯤 눈을 감으며 담뱃대를 꺼내 물었다.
무엇을 태우는 것인지, 기이한 붉은 연기가 담뱃대에서 피어올랐다.
“어쩌면 한 달도 되지 않는 짧은 과거로 돌아갈 수도 있다. 혹은 걸음마도 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 모든 것은 그대의 영혼이 정하게 될 것이다. 어떠냐. 하겠느냐?”
정우는 노인의 기세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반개한 눈에서 기이한 안광이 쏘아져 그를 비추고 있었다.
몸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왔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돌이킨다면 지금이 유일한 기회였다.
회귀니 뭐니 집어치우고 순리에 따라 평범하게 환생할 기회.
……하지만.
“하겠습니다. 보내주세요.”
정우는 강하게 얘기했다.
“좋다. 곧바로 의식을 시작하지.”
탕!
노인이 담뱃대로 책상을 내리쳤다.
그러자 붉은 연기가 한층 더 울컥 쏟아져 나왔다.
연기가 정우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그대가 얘기한 기억에 대한 것도 들어주마. 돌아간 과거의 시점부터 죽었던 순간에 대한 일까지, 망각의 강에 휩쓸렸던 모든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를 것이다. 머리가 아니라 영혼에 새겨지는 기억이다. 다음 환생까지는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할 게야.”
“알겠습니다.”
정우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노인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금 그의 머릿속은 돌아간 직후에 대한 일뿐이었다.
‘일단은 자금! 코인이든 주식이든, 뭐든 해서 돈부터 만들고 간다!’
그래서 그는 보지 못했다.
붉은 연기로 화하는 자신을 보며 노인이 눈썹을 꿈틀거린 것도.
이내 덜커덩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경악하는 모습도.
이윽고 허공에 작은 틈이 열렸고, 연기가 된 정우의 영혼이 빨려 들어갔다.
* * *
깊은 물 속에 가라앉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 상태로 얼마나 지났을까.
찰나의 시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셀 수 없이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기도 했다.
곧 수면 위로 떠오르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윽고 의식이 완전히 부상했을 때.
-팍!
“어……?”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둔부 쪽에서 올라오는 아픔.
엉덩방아를 찧었을 때와 비슷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파?’
주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먼저 환희가 올라왔다.
아프다는 것은 곧 살아 있단 증거.
유령 상태일 땐 느끼지 못했던 고통이란 감각이 그의 전신을 일깨웠다.
-저거 봐봐. 웃고 있어.
-기분 나빠……!
-처음부터 저게 목적이었던 거 아냐?
-아하하. 설마 그런 변태이려구.
그러나 곧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오며 웃음기가 빠르게 사라졌다.
고풍스러운 샹들리에가 몇 개나 달려 있는 넓은 파티장.
형형색색의 드레스와 정장을 입은 서양인들이 자신을 힐긋거리며 쑥덕이고 있었다.
‘뭐, 뭐야?’
장소도, 그리고 상황도 전혀 익숙하지 않은 것들.
자신은 어째선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져 있었고, 그런 자신을 싸늘하게 내려다보는 남자아이가 보였다.
“쓸데없이 어슬렁거리지 마라, 유릭 로스카.”
남자아이가 표독스러운 말투로 쏘아붙였다.
정우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깜빡거렸다.
“응? 나?”
정우의 반응에 남자아이가 더 인상을 구겼다.
이제는 거의 기어 다니는 벌레를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쯧…… 버러지 같은 놈.”
남자아이는 혀를 차더니 그 말만 남기고 쌩하니 돌아섰다.
파티장 밖으로 나가는 그에게 몇 명의 메이드 복장의 사람이 붙었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보던 그 메이드 말이다!
‘아니, 이거 뭔데? 몰카야?’
구경꾼들은 얼마간 더 쑥덕이는 듯싶더니 이내 관심을 끊고 자기들끼리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멈춰 있던 음악이 재개되고 몇 쌍의 남녀가 빙글빙글 춤을 추었다.
‘어, 어?’
정우는 밀려드는 인파에 밀려 어느새 회장 구석에 등을 부딪쳤다.
멍하니 휩쓸리던 그의 얼굴이 점점 찡그려졌다.
머릿속에 자신의 것이 아닌 기억이 샘솟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억은…….’
떠들썩한 파티의 소음이 점점 멀어졌다.
고요한 파티의 한중간.
정우는 노인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돌아간 과거의 시점부터 죽었던 순간에 대한 일까지, 망각의 강에 휩쓸렸던 모든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를 것이다.
탁.
정우가 쟁반을 들고 지나가던 시종 하나를 붙잡았다.
갑작스러운 일에 시종이 깜짝 놀라 대답했다.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거울…….”
“예? 잘 못 들었습니다만…….”
“거울 좀 빌려주세, 아니, 빌려줘.”
“아, 예.”
항상 들고 다니는 것인지 시종이 품속에서 휴대용 거울을 꺼내주었다.
손바닥에 들어가는 작은 사이즈였지만 어차피 크기야 전혀 상관없었다.
딸깍.
정우가 뚜껑을 열고 거울을 들여다봤다.
그곳에 비친 것은 검은 머리의 한국인이 아니었다.
눈과 같은 새하얀 머리칼과 청아한 눈동자를 가진 13살의 아이.
“말도 안 돼!”
정우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지금 그에게는 이 아이가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의 기억이 새겨져 있었다.
그 기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대륙을 지배하는 10대 가문 중 하나, 빙하백가 로스카의 삼남, 유릭 로스카.
이 아이는…….
“태어나기도 전으로 회귀시키면 어쩌라고!”
정우의 전생의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