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7화 (7/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7화

7화. 몇 점입니까

유릭의 방에 손님이 찾아온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그것도 그냥 손님이 아니라 그 발터 로스카.

가주의 동생이자 근위대장까지 맡고 있는 명실공히 가문의 최고 권력자 중 한 사람이 아닌가.

“홍차입니다.”

그 덕에 차 시중을 드는 시녀 엠마는 시종일관 싱글벙글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고마워, 엠마.”

“잘 마시지.”

유릭과 발터가 찻잔을 들었다.

둘 사이에는 멋들어진 필체로 적힌 종이 한 장이 올려져 있었다.

잠시 홍차의 향기를 즐기는 시간을 가진 후, 유릭이 물었다.

“이건 뭔가요, 외숙?”

“추천서다.”

그건 발터가 직접 작성한 추천서였다.

차분히 그것을 읽어 내려가는 유릭을 보며 발터가 활기찬 목소리로 얘기했다.

“유릭. 전투1반에 들어가거라.”

“1반에요? 제가?”

전투1반.

빙하백가에는 온 영토의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있는데, 전투반은 이름 그대로 전투에 관해 가르치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1반은 당대 아이들 중에서도 최고의 아이들만 모아놓은 반.

말하자면 영재반 같은 곳이었다.

“제가 거기 들어갈 깜냥이 되나요?”

유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참고로 유릭이 몇 반인가 하면, 전투반에 들지도 못했다.

꼴찌반에 들어가는 것조차 실패했다 이 말이었다.

그런데 대뜸 1반에 들어가라고?

“원래는 하위반부터 올라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말이지. 하지만 추천서가 있다면 편입도 가능하단다.”

“그런가요?”

“이런 제도가 없다면 재능이 느지막하게 발견되는 아이들을 놓칠 수도 있으니까.”

유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편입이 왜 있는지는 알았다. 그것에 추천서가 필요하다는 것도.

하지만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왜 저를?”

발터가 자신을 추천한 이유.

그걸 모르겠다.

“나는 그동안 네게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발터가 고백하듯 얘기했다.

얘기를 하며 꽤나 유릭의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유릭은 덤덤히 끄덕일 뿐이었다.

“재능이 없는 건 맞죠. 아직도 서리 마나는 조금도 쓸 수 없는데.”

“그, 그러니? 이거 참. 기연관에서 선조의 선택을 받았길래 나조차 감지하지 못한 굉장한 재능이 있나 생각했는데.”

“그래서 추천서를?”

“그래. 그날의 널 보고, 너에게 걸어보고 싶어졌거든.”

발터의 표정이 조금 복잡해졌다.

아직도 서리 마나를 쓸 수 없어? 그럼 기연관에선 대체 뭘 얻은 거지?

‘서리 마나를 못 쓰면 추천서가 있어도 못 들어갈지도…….’

가문의 모든 가르침은 서리 마나에 근간한다.

마법은 당연하고 검술, 창술, 궁술 등 모든 것들이.

당연히 서리 마나가 없다면 배울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괜히 써온 건가.’

헛수고를 한 것일까? 발터가 많이 아쉬워하며 추천서에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종이를 가져가는 손이 있었다.

“이건 고맙게 받겠습니다.”

“유릭?”

고민 없이 챙기는 것을 보곤 발터가 눈을 깜빡였다.

“서리 마나는 못 쓰지만 다른 건 쓸 수 있거든요.”

유릭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단전에 깃든 불의 기운이 풀려나오며 그의 오른손을 따라 손바닥에 피어올랐다.

화륵.

선명한 주홍빛의 불꽃.

“너, 너 설마 화염 마나를 익힌 거냐?”

발터가 떡 입을 벌렸다.

빙하백가의 직계가 화염 마나를 익히다니!

‘처음에는 숨길까 했지만.’

고민한 결과 그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신이 이미 고수라면 몰라도, 이제 막 1성의 무공을 익혔을 뿐이다.

앞으로 한창 수련하며 성장을 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불꽃을 숨기는 일까지 신경 쓸 수는 없었다.

‘힘을 숨긴다고 성장이 늦어지면 본말전도니까.’

목적을 확실히 인지하자.

지금 자신에게 성장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분명 입반 테스트가 따로 있었죠? 알아서 잘해보겠습니다.”

유릭이 손을 털어 불꽃을 흩어내었다.

할 말을 잃은 발터를 두고 추천서를 고이 품에 넣었다.

* * *

그날은 아침부터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전투1반이 사용하고 있는 연무장.

오랜만에 입반 테스트를 실시한다는 말과 그 테스트를 받는 것이 유릭 공자라는 사실에 아이들이 쑥덕거리고 있었다.

“유릭 공자? 데릭 공자님의 쌍둥이인?”

“유릭 공자님이 전투2반에 있었던가? 2반 소속이어야 테스트를 받을 수 있잖아?”

“2반은 무슨. 전투반조차 아니야.”

“-? 그럼 어떻게?”

“발터 님의 추천이 있었다고 하던데.”

“……뭐?”

그 한마디로 연무장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 내렸다.

아이들의 얼굴에 혐오감이 차올랐다.

그러니까 지금, 실력도 안 되는데 신분을 내세워서 비벼보겠다 이거 아닌가.

“조용, 조용! 얌전히 단련이나 하고 있도록!”

아이들의 쑥덕거림이 점점 커지자 교관을 맡고 있는 베르겐 장로가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그러나 베르겐 장로 역시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데릭. 지금 도는 소문이 사실인가?”

“……유릭의 소문 말입니까?”

“그래.”

“외숙이 별궁에 방문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유릭과 차를 마시고 가셨죠.”

“쯧!”

사실상 인정하는 말이었다.

베르겐 장로가 티 나게 혀를 차며 얼굴을 구겼다.

“발터 그놈은 여전히 제멋대로군! 하여간 어릴 때부터 되먹지 못했다니까! 뭐? 그 유릭을 1반에 넣겠다고? 가주의 동생이라고 모두 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겐가?”

베르겐 장로의 말에 데릭이 얼굴을 굳혔다.

물론 유릭의 욕 때문은 아니었다.

“장로님. 유릭은 몰라도 외숙께 말이 심하신 것 같습니다.”

“어딜…….”

말대꾸를, 이라고 말하려던 베르겐 장로의 눈이 데릭의 손을 힐끔거렸다.

방금까지 휘두르고 있던 초대의 검, 마검 이솔렛.

가문의 역사상, 그 검을 쥔 자는 하나도 남김없이 위대한 인물이 되곤 했다.

베르겐 장로가 냉큼 표정을 풀곤 헛기침을 했다.

“큼큼. 미안하다, 데릭. 내 말이 심했구나.”

“아뇨. 저야말로 건방지게 죄송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데릭이 자리를 떠났다.

그가 떠나고 베르겐 장로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져 왔다.

‘아무튼 탈락이다, 탈락! 특히 발터 그놈의 추천이면 더더욱!’

발터와는 옛날부터 도무지 맞질 않는다.

자신이 뭘 하려고만 하면 사사건건 방해하던 되먹지 못한 녀석.

베르겐 장로가 혀를 차며 집무실로 들어왔다.

도중에 시종에게 얘기해 한 아이를 불러오라 하였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노크 소리와 함께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당숙.”

“왔구나, 필립. 여기선 당숙이 아니라 장로라 부르라고 했잖니.”

베르겐 장로가 아까보다 너그러운 표정으로 얘기했다.

그 역시 빙하백가의 방계 출신.

직계인 데릭에겐 엄했으나 같은 방계인 필립에게는 훨씬 후한 그였다.

“죄송합니다, 장로님.”

“아니, 괜찮다. 그보다 얘기는 들었겠지?”

“……유릭 말입니까?”

“그래. 오늘 오후쯤에 유릭의 입반 테스트가 있을 것 같다.”

“말도 안 됩니다! 그딴 녀석이 1반에 들어오다니!”

“진정하거라. 아직 들어온다고 확정된 것은 아니니. 테스트를 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제야 이를 갈던 필립이 조금 침착을 되찾았다.

“그렇군요. 그럼 입반 테스트는 누가……?”

물어보는 어조였지만 필립은 이미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네가 하거라. 다른 교관들에게 더 널 보여줄 기회가 아니더냐.”

역시 자신에게 시키려는 것이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유릭을 찍어 누르고 실력을 과시하란 것이겠지.

어차피 누가 상대여도 유릭은 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 기왕이면 그 빛나는 역할은 자신이 맡으라는 말이리라.

“특히 네겐 유릭에게 빚이 있다고 알고 있다만?”

“……맞습니다.”

필립이 이를 갈았다.

저번 주 무도회장에서 있었던 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은 유릭에게 모욕을 받았다.

그때의 일을 아직도 갚아주지 못한 채였다.

‘그땐 기습을 당해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입반 테스트는 기습 따윈 허락하지 않는 1:1 대련.

그렇다면 유릭 따위에게 질 일은 만에 하나라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장로님. 제가 반드시 놈의 코를 짓뭉개 주겠습니다.”

“그래. 맡기마.”

필립의 호언장담에 베르겐 장로가 흐뭇하게 웃었다.

필립이라면 분명 처참하게 유릭을 밟아 주리라.

그것은 곧 유릭에게 추천서를 써준 발터 로스카의 체면을 뭉개는 것이기도 했다.

잠시 후.

점심때가 지나고 연무장에 유릭이 찾아왔다.

“입반 테스트를 받으러 왔습니다.”

그가 베르겐 장로에게 추천서를 건넸다.

그걸 대충 힐끔거리곤 베르겐 장로가 거칠게 품에 구겨 넣었다.

그러곤 유릭에게 한쪽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테스트 내용은 간단하다. 내가 고른 1반의 아이와 대련을 해보거라. 그 대련 내용에 따라 나를 포함한 교관들이 점수를 매긴다.”

그곳엔 대련을 위한 무대가 있었다.

무대 주변에는 1반의 아이들과 다른 젊은 교관들이 자리해 테스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점수는 어떻게 매기나요? 따로 기준이라도?”

“그건 네 알 바 아니다. 그보다 몸 걱정이나 하는 게 좋을 게야.”

베르겐 장로가 비웃음을 던지며 얘기했다.

유릭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베르겐 장로가 자신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건 알겠는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와 발터의 악연을 모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뭐 알겠습니다. 가서 대련을 하면 된다 이거죠?”

유릭이 무대 위로 올랐다.

그 손에는 오늘을 위해 가져온 목검 한 자루가 있었다.

그러자 반대쪽에서도 한 아이가 올라왔다.

필립이었다.

“뭐야. 테스트 상대가 너였냐?”

유릭이 김이 샜다는 듯 얘기하자 필립이 으득 이를 갈았다.

“그때처럼은 안 될 거다.”

그러나 필립은 이 이상은 흥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녀석도 한 수는 있다.’

무도회장에서 자신이 당했던 일.

필립은 그것을 우연이라 치부하지 않았다.

비록 기습일지라도, 자신은 분명 녀석에게 한 번 졌다.

‘방심하지 않아.’

그러니 이젠 방심하지 않는다.

유릭이 나름 체술에 일가견이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렇다면 그에 맞게 상대하면 그만이다.

‘나는 마법사니까 마법사답게 싸우면 돼.’

그가 허리춤에서 짧은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끝에 작은 보석이 박힌 물건으로, 마나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주고 마법의 표적을 잡기 쉽게 해주는 지팡이였다.

“후우…….”

필립이 심호흡을 하며 심장의 고동을 의식했다.

심장에 새겨진 마나 코어가 동시에 고동치며 마나를 풀어헤쳤다.

그 마나가 전신을 순환하며 손끝에 모여들었다.

대련이 시작하면 그 즉시 지팡이를 통해 방출되리라.

“자, 그럼…….”

무대 아래서 심판이 입을 열었다.

시작을 외치기 위해서.

필립이 한층 더 집중했다.

저 앞에 있는 유릭의 전신을 눈에 담으며, 특히 발을 주의했다.

일전엔 저 발의 움직임을 보지 못해 걸려 넘어졌었지.

이번에도 비슷하게 다리를 걸어올 가능성이 컸다.

‘목검을 들고 있으니 육탄전으로 오겠지. 일단 아이스 월을 펼쳐 접근을 막고, 그 후에 땅을 얼린다. 그걸로 녀석은 발밑이 불안해져서 움직임이 둔해질 거야.’

차분히 전략을 세운다.

상대의 일차적인 접근을 막고 발밑을 흐트러뜨리는 것.

마법사가 검사를 상대할 때의 매뉴얼과도 같은 전략이었다.

단순하지만 그만큼 확실한 효과가 보장되어 있는 전투법.

이윽고 심판이 팔을 내리며 외쳤다.

“시작!”

바로 그 직후였다.

-빠악!

유릭의 몸이 빛살처럼 쏘아져 필립의 명치를 가격한 것은.

필립의 눈에 보인 것이라곤 유릭의 발치에서 작은 불꽃이 터져 나간 것 같다는 것뿐.

“꺼어어…….”

그가 지팡이를 떨어뜨리곤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눈은 흰자가 보이고, 입에는 침을 질질 흘리고 있다.

좌중은 조용했다.

팔을 내린 심판은 아직 그 팔을 거두지도 못한 채였다.

“몇 점입니까?”

오직 유릭의 목소리만이, 침묵을 가로질러 울리고 있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