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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9화 (9/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9화

9화. 벽

이 숲은 오직 유릭만의 수련장이었다.

마나를 모으기 위한 명상도 마찬가지지만, 내기를 모으기 위한 운기도 상당한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다.

수련을 위해선 자신의 내면에 깊이 가라앉아야 하는 법.

하지만 그렇게 가라앉을수록 외부의 위험엔 둔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안전한 수련방법을 궁리하곤 한다.

폐관실을 만들거나, 정말로 믿을만한 호위를 곁에 두거나.

그런 것들이 모두 명상 시의 위험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유릭에게는 이 백월봉의 숲이 그런 의미를 가졌다.

방에서도 혹시 모를 위험 탓에 운기 중에도 최소 3할의 신경은 바깥에 쏟아야 한다.

하지만 이 숲에서는 아주 약간의 신경만 쏟으면 되었다.

주변의 정령과 동물들이 외부의 위험을 민감하게 감지해 주니까.

‘왔군.’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손님의 기척이 느껴지니 정령과 동물들이 모두 흩어진다.

그 자리에 대신 찾아온 손님은 한 여성이었다.

보랏빛 머리카락에 특징 없는 검은 옷.

여성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도련님. 역시 여기 계셨군요.”

“남의 뒤를 밟는 일 좀 그만하지?”

“저도 임무인지라.”

그녀의 이름은 아니스 펠트릭.

발터가 유릭의 검을 봐주라고 붙여놓은 기사였다.

‘외숙의 부하라고? 거짓말.’

발터는 발렌티나의 개인 호위이니, 그 말을 믿으면 아니스 역시 어머니의 호위 기사란 뜻이다.

하지만 유릭은 잘 알고 있었다.

이 아니스란 이름의 기사는 호위 기사가 아니다.

‘13번대 기사단.’

제1기사단부터 12기사단까지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빙하백가의 무력부대가 아닌, 숨겨진 13번대 기사단.

겉으론 공표하기 힘든 온갖 일들을 처리하는 가문의 그림자들.

아니스는 그 그림자 중 하나였다.

‘외숙은 그냥 이름만 빌린 거고, 실제론 할아버님의 입김이겠군.’

유릭의 할아버지, 선대 가주 레오폴딘 로스카.

그는 가주직을 내려놓으며 1번부터 12번까지의 기사단을 모두 발렌티나에게 물려주었지만 오직 하나, 13번대 기사단만큼은 놓지 않았다.

여전히 가문의 그림자를 손에 쥐고 어둠 속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노인.

그 그림자 중 하나인 아니스가 붙었다는 것은 레오폴딘의 의지가 작용했단 뜻일 터이다.

“그럼 오늘도 봐드리겠습니다.”

아니스가 묵묵히 검을 뽑아 들었다.

목검이나 수련용 검 따위가 아닌, 제대로 날이 서 있는 진검.

스릉.

유릭도 한쪽에 세워두었던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대련은 무조건 진검으로 합니다. 목검 같은 걸로 하는 대련은 의미 없는 기술의 나열일 뿐.”

“날붙이의 서늘함을 피부로 느껴야 제대로 실력이 는단 말이지?”

“맞습니다.”

이미 몇 번이나 들었던 얘기다.

이 아니스란 여인은 갓 검을 잡은 2년 전의 자신에게도 진검을 들렸던 사람이니까.

캉!

별다른 시작 신호는 필요 없었다.

검을 든 즉시 두 사람이 맞부딪쳤다.

‘전투반에 들어가지 않아서 결과적으론 잘됐군.’

가감 없이 쇄도하는 검을 쳐내고 간신히 피하며 유릭이 생각했다.

지금 자신을 향하는 검은 1반의 아이들 따위가 펼칠 수 있는 검이 아니다.

무겁고 빠르다.

아니스는 25살로 유릭의 누님인 빙하백가의 장녀와 동갑이다.

듣기로는 어릴 땐 함께 전투1반에 있던 동기였다고.

그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냈던 그녀는, 졸업 후 수년간 각종 임무를 맡아 해결하며 더더욱 빠르게 경지가 올랐다 했다.

현재는, 아직 초입이긴 하지만 무려 7성의 경지.

그 7성 기사의 검을 2년 내내 받아왔다.

유릭이 1반에 들어가 또래 아이들하고만 부대끼고 있었다면 결코 얻을 수 없을 경험이었다.

“이제는 꽤 받아칠 수 있게 되셨군요.”

“하아…… 하아…….”

유릭이 거칠어지려는 숨을 가다듬으며 검을 휘둘렀다.

얼마나 휘둘렀는지 폐가 쥐어짜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아니스의 호흡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 차이가 언제나 분했다.

“그 감정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유릭의 얼굴에서 열기를 느꼈는지 아니스가 그리 얘기했다.

“누굴 놀려?”

유릭이 입을 삐죽였다.

“당치도 않습니다. 그 감정은 도련님의 무엇보다 큰 강점입니다.”

아니스는 결코 허언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유릭은 아직 어린아이고, 자신은 13번대 소속의 정예 중의 정예.

당연히 그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압도적인 간극이 존재한다.

‘보통은 이 정도 차이가 나면 부러움이나 질투 같은 감정도 올라오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가짐을 달리한다든가 하는 정도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보다 근원적인 본능의 문제.

너무나 격차가 큰 상대를 보면, 머리가 멋대로 저건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인식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유릭과 대련을 했을 때, 아니스는 놀랐다.

‘도련님은 언제나 나를 뛰어넘을 벽으로 보고 있어.’

부딪쳐 좌절하기 위한 벽이 아닌 뛰어넘기 위한 벽.

아니스는 그것이 유릭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재능이라 생각했다.

그 말을 듣곤 유릭이 웃었다.

“하하, 재능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

“서리 마나의 재능만이 재능의 전부가 아닌 법이죠.”

유릭의 입가에 쓴맛이 맴돌았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굳이 입에 올릴 필요도 없는 그런 말.

‘그런데 왜 과거의 나는 그 당연한 걸 몰랐을까.’

회귀 전의 자신은 이 당연한 걸 몰라 방황했다.

빙하백가에서 태어난 이상 서리 마나가 아니면 답이 없다 생각했다.

아니, 서리 마나 외의 모든 것이 오답이라 생각했다.

‘돌대가리 같은 놈이었지.’

그 딱딱한 머리가 깨진 것은 이미 볼모로 팔려간 후였다.

모든 것이 너무나 늦었을 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다시 할 수 있다.

‘이미 서리 마나와는 정반대인 염화신무를 익히고 있기도 하고.’

유릭이 피식 웃었다.

한쪽은 얼음이고 한쪽은 불꽃.

그야말로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기운이 아닌가.

‘그런 게 초대의 유산이라고 하니 또 신기하단 말이지.’

초대 가주는 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어떻게…… 아니, 어째서 전혀 다른 두 기운을 동시에 익히고 있었을까?

그때.

채앵!

커다란 소리와 함께 검 한 자루가 붕붕 날아갔다.

유릭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꽉 쥐고 있던 검이 튕겨 날아간 덕분에 손바닥이 욱신거리고 있었다.

“집중이 끊기셨군요. 실전이라면 최소 팔 하나는 나갔을 겁니다.”

“미안.”

초대의 생각 때문에 집중이 풀린 모양이었다.

유릭이 옷소매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소매가 물에 담근 것처럼 흥건해졌다.

“잠시 쉬시겠습니까?”

힘들어하는 유릭을 보곤 아니스가 물었다.

유릭이 허리를 숙여 튕겨 나간 검을 다시 주웠다.

“한 번 더.”

아직 쉬기엔 일렀다.

* * *

“그럼 저는 이만 내려가 보겠습니다. 도련님도 함께 가시겠습니까?”

“아니. 난 잠시 정리 좀 하다 갈게.”

“알겠습니다. 너무 늦지 않도록 주의하시길. 숲은 해가 지는 게 빠르니까요.”

한동안 검을 봐준 후 아니스가 산을 내려갔다.

그녀가 사라지자마자 유릭이 풀밭에 쓰러졌다.

“하아…….”

거친 숨을 토해내며 숨을 몰아쉰다.

전신이 땀으로 젖은 데다 몸은 금방이라도 가루가 되어 부서져 내릴 듯했다.

그만큼 아니스와의 대련은 가혹했다.

덕분에 검술 실력만큼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늘고 있었지만.

“크릉.”

“뭐야. 대령 왔어?”

잠시 누워 있으려니 그를 빤히 내려다보는 고양이 눈이 보였다.

새하얀 털을 가진 커다란 호랑이.

곰도 슬슬 피해 다니는 녀석으로, 이 백월봉의 주인인 맹수였다.

참고로 대령이란 이름은 유릭이 붙인 것이다.

녀석의 어깨 부근에 흉터가 나 있는데, 그게 꼭 대령의 계급장인 영관처럼 보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 있는 풍채도 각 잡힌 군인같이 멋들어진 녀석이라 제법 어울리는 이름이라 자부하고 있었다.

터벅터벅.

대령이 유릭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누웠다.

뿐만 아니라 숲의 정령들도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걸 보곤 유릭이 읏샤, 몸을 일으켰다.

‘다음 훈련을 하기 전에 일단 운기부터.’

유릭의 훈련은 검술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소모한 체력과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유릭이 눈을 감았다.

‘후우…….’

여느 때와 같이 호흡을 조절하며 그가 소주천을 시작했다.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진 경로를 따라 내기를 돌린다.

동시에 오늘 있었던 아니스와의 대련을 복기했다.

‘거기서 한 걸음 뒤로 빼야 했어. 너무 급하게 들어갔다.’

요즘 들어 부쩍 성급히 들어가는 자신이 보였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염화신무의 경지가 요사이 3성에서 멈춰 있었기 때문이다.

‘3성까지는 금방 올라왔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막힘없이 올라왔다.

그러나 4성을 목전에 둔 이때, 염화신무의 경지가 콱 잠긴 수도꼭지처럼 막혀버렸다.

그 때문에 초조함을 느끼게 되었고, 그게 대련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것이었다.

“후우…….”

그런 갑갑함을 품으며 유릭이 몇 차례 소주천을 돌렸다.

하지만 나아가는 느낌이 아닌, 쳇바퀴처럼 뺑뺑이를 돌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눈을 뜨고 하늘을 보니 슬슬 해가 지고 있었다.

‘유화.’

유릭이 마음속으로 그녀를 불렀다.

[“아! 아저씨! 일주일만이네요!”]

대답은 곧바로 들려왔다.

만약 이게 전화였다면 전화 앞에서 대기라도 하고 있었나 생각했을 정도였다.

‘어때. 마법 수련은 잘돼가?’

[“그럼요. 아저씨가 말한 것보다 훨씬 쉽던데요? 히히, 혹시 나도 아저씨 같은 천잰가?”]

“그래그래.”

유릭이 피식 웃었다.

무공의 지식을 가르쳐 주는 대가로 유릭은 그녀에게 서리 마나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런데 배우는 속도가 아득히 빠르다.

당연했다. 그녀는 그 월하무녀(月下巫女)의 체질을 타고났으니까.

‘그럼 얘기한 과제는 다 했어?’

[“으응~ 그건 아직이요. 며칠이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잠시 짧은 근황이 오갔다.

그 후에 유릭이 본론을 얘기했다.

‘소주천에 30분이 걸리는데. 이 정도면 4성에 올라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라고 했었지?’

[“일반적으로는요. 근데 아저씨의 경우는 장담 못 하겠어요. 제가 듣던 거랑은 너무 달라서요.”]

유릭의 질문에 유화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녀의 말로는 유릭이 무공을 익히는 속도는 범상치 않다고 하였다.

자신이 그녀를 보고 느끼는 것과 비슷하게 느끼는 것일까.

[“너무 걱정 마세요! 원래 벽은 넘으라고 있는 거니까요. 정말 안 될 사람은 애초에 벽의 존재조차 못 느낀대요.”]

‘뭐 딱히 침울해하고 있는 건 아닌데.’

그녀 역시 요사이 유릭의 성장이 멈춘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에 유릭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그녀가 보기엔 정말 배부른 고민이었다.

[“애초에 2년 만에 4성을 바라보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니까요! 아저씨는 욕심이 너무 많아! 뭔가 계기만 있으면 뻥 뚫릴 테니까 차분하게 기다려 봐요.”]

‘욕심이 많다는 자각은 있는데.’

똑같이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마법의 경지만 봐도 2년 만에 3성은 말이 되지 않는 성장이다.

보통 3성은 딱 한 사람 몫을 하게 되는 경계선으로 여겨진다.

이건 적어도 5년은 익혀야 오를 수 있는 경지였다.

‘하지만 욕심을 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릭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예기간이 앞으로 5년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물론 희망적인 관측은 있지만.’

아예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자신은 가문의 역사상 처음으로 초대의 불꽃을 얻었다 한다.

다른 사람은 평범한 화염 마나로 생각하고 있지만, 가주인 어머니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볼모로 뽑히지 않을지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모두 던져 버리고 태평하게 인생을 구가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난다.

그러나 유릭은, 그런 생각을 흔적도 없이 날려 버렸다.

‘인생이 걸린 도박을 할 수는 없지.’

가장 확실한 것은 볼모 얘기 자체를 없애 버리는 것.

그게 가장 뒤탈 없이 완벽하다.

그러기 위해선 가문 내에서 영향력, 즉 발언권을 가져야 했다.

그리고 발언권을 가지기 위해선.

‘공을 세울 것…… 결국 강해져야 한단 말이지.’

좌우지간 더욱 강해져야 했다.

그래야 이런저런 공을 쌓아 이름을 알릴 테니까.

[“아무튼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해봐요. 때론 비워야 채워지는 것도 있다고 하니까.”]

‘그런 말은 어디서 들은 거야?’

[“히히.”]

유릭이 고개를 저었다.

처음 만날 땐 남 보고 아저씨 같은 말투라고 했던 주제에, 요새 보면 본인이 더 늙은이 같은 말을 한다.

좋게 말하면 조숙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녀와의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유릭이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한번 분위기를 바꿔줄 때가 되었다.

그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커다란 바위가 있는 곳이었다.

바위의 한쪽 표면에는 마치 드릴로 판 것만 같은 무수한 구멍이 나 있었다.

바닥부터 저 위까지 빼곡히.

유릭이 손바닥을 폈다.

그 손에 불꽃이 모여 회전하며 불의 구체를 만들었다.

“<파이어 볼트>.”

이 바위 앞은, 유릭이 마법의 훈련을 하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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