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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1화 (11/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1화

11화. 칠색의 마경

전투1반이 사용하는 연무장.

한쪽 구석에서 데릭이 쉼 없이 검을 휘둘렀다.

이미 수백 번은 휘둘렀는지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자세는 처음 휘두르기 시작할 때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큭.’

단단한 신체와는 반대로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유릭과의 대련이 떠올랐다.

일전의 설욕을 위해 도전했는데, 또다시 패배하고 말았다.

2년 전엔 정체 모를 기술에 당했다는 변명이라도 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상대가 사용한 것은 <파이어 볼트> 단 한 가지.

아주 잘 아는 마법이었고, 사용할 거라 예상했으며, 대비까지 철저히 하고 갔다.

그런데 단 한 번의 허를 찔려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나와 그 녀석의 차이가 대체 뭐지?’

세례 의식 이후부터, 유릭이 미친 듯이 단련을 하는 건 알고 있다.

같은 별궁에서 지내기에 안다.

유릭은 그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누구보다 늦게 잠자리에 든다.

가끔 마주치는 야외 수련장에선 자신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강도 높은 단련을 하는 모습을 몇 번이고 목격했다.

하지만 단련이라면 자신도 한다.

유릭 못지않게 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2년 전에 느꼈던 차이가 줄어들지 않을까.

그때 보았던 벽의 높이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더 높아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거냐?’

어찌 보면 그런 식으로도 볼 수 있다.

물론 그딴 소리가 데릭의 위로가 되진 않았다.

오히려 분한 마음만 더욱 키워갈 뿐이었다.

-넌 말야, 좌우지간 너무 딱딱해. 좀 더 유연함을 가져봐라.

언제인가 유릭에게 들었던 얘기.

유릭에게 패배한 직후여서 그런 것일까, 녀석의 훈수가 불현듯 떠올랐다.

‘……확실히. 나는 가까이에서 파이어 볼트를 터뜨릴 거라곤 전혀 생각도 못 했지. 폭발 마법은 당연히 멀리서 쏘는 거라고 단정 짓고 있었어.’

훈수를 둬놓고 본인은 실천하지 않는다면 설득력이 없다.

하지만 유릭은 더없이 훌륭하게 자신의 말을 지키고 있었다.

비단 대련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별궁의 사용인들과의 관계나 그런 면에서도 유릭은 데릭보다 훨씬 융통성이 있었다.

그것은 유릭에게 자유로운 용병 생활의 경험이 있기 때문.

명문가에서 태어나 가문에서만 자라온 데릭으로선 꿈에도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거 아냐? 검은 빠르게 휘두르는 것보다 느리게 휘두르는 게 훨씬 어렵다는 걸.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속는 셈 치고, 데릭이 유릭의 말대로 검을 휘두르는 속도를 점점 늦춰봤다.

3할쯤 느리게 휘두를 땐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런데 절반 이상 느리게 하기 시작하자, 흔들리지 않던 자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검 끝이 흔들린다. 그걸 붙잡으려 힘을 주면 오히려 더 자세가 틀어진다.

‘이건…….’

뭔지는 모르겠지만, 유릭의 말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아직 기분 정도지 구체적으로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어머, 데릭 공자.”

그때, 익숙한 과일 향이 느껴지며 데릭의 상념을 방해했다.

데릭이 찡그리며 그녀를 보았다.

“뭐냐, 알리샤.”

그녀는 알리샤란 이름으로 데릭과 같은 전투1반의 학생이었다.

덧붙여 뭐만 하면 가까이 붙어오는 짜증 나는 여자이기도 했다.

“오늘은 왜 그렇게 매가리가 없어요? 더 빠릿빠릿하게 하셔야죠.”

그녀가 웃으며 얘기한다.

그에 대한 데릭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꺼져.”

“네~ 네~ 여전히 차갑네요.”

데릭이 차갑게 얘기하자 알리샤가 입술을 삐죽이며 떠나갔다.

기묘하게도, 그녀가 떠나갔음에도 기분 나쁜 과일 향이 더욱 짙어져만 같았다.

머릿속에 뭉게뭉게 연기가 낀 듯한 느낌과 함께, 다시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쯧.”

데릭이 혀를 차곤 다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손에 힘이 들어간다.

유릭의 말대로 천천히 휘둘러 보겠다는 생각은 옅은 안개처럼 사라져 있었다.

더 빠르고, 그만큼 더 딱딱해져만 가는 검.

그 사실을 데릭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데릭과 대련을 한 날부터 여러 날이 흘렀다.

데릭은 여전했다.

여전히 짜증스럽게 미간에 주름이 진 채였고 매사에 딱딱하고 완고했다.

귀엽지 않은 쌍둥이 동생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유릭은 별달리 얘기를 하진 않았다.

회귀 전에도 마지막 보는 순간까지 저랬던 녀석이니까.

팔랑.

한편으로, 유릭은 차를 홀짝거리며 책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장서관에서 빌려온 가문의 역사책이다.

초대 가주를 조사해 염화신무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보고 있는 것이었다.

틈틈이 하고 있는 조사라지만 그래도 2년이나 지속했는데, 아쉽게도 얻은 건 하나도 없었다.

그때.

-도련님. 엠마예요. 본성에서 편지 하나가 도착했어요.

문을 두드리며 시녀 엠마가 찾아왔다.

들어오라 허락하니 은쟁반을 든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쟁반 위에는 편지와 편지칼이 담겨 있었다.

“웬 편지?”

“마경에서의 토벌 대회에 관한 것이라고 해요.”

엠마가 그리 얘기하며 공손히 쟁반을 건넸고.

‘왔구나!’

유릭은 올 게 왔다는 듯 눈을 빛내며 편지를 집어 들었다.

* * *

마경(魔境).

그것은 대륙 곳곳에 박혀 있는 사이한 땅을 말했다.

옛 태고의 마신이 존재하던 시절 파괴된 대륙의 흔적들.

마신은 유일제국을 세운 건국제에 의해 쓰러졌지만 수십에 달하는 마경만은 대륙에 상흔처럼 남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 제국조차 망해버렸다고 하는데, 마경만은 지금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변함없이 옛 태곳적 시절 그대로.

그런 마경 중 한 곳, 엘드가르드 산맥에 위치한 칠색의 마경에서 오늘의 토벌 대회가 개최되었다.

“아니스도 참가해?”

마경의 입구 앞에 모인 인파 속에서 유릭이 아니스에게 물었다.

“저는 안전 요원으로 참가합니다. 전투반의 아이들을 지켜보기로 되어 있습니다.”

아니스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13기사단이 겉으론 밝힐 수 없는 온갖 임무를 수행한다곤 하지만, 반드시 그런 임무만 있는 건 아니다.

지금처럼 누군가를 지키거나 호위하는 일도 맡았다.

“그럼 이만.”

아니스가 유릭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곤 떠나갔다.

딱히 그녀는 유릭의 호위 기사도 시녀도 아니다.

여기까지 같이 온 것도 두 사람이 아침 대련을 하다 왔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었다.

“하암.”

유릭이 가볍게 하품을 하며 적당히 구석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러곤 반쯤 뜬 눈으로 마경 앞에 모인 인파를 바라보았다.

‘많이도 모였군.’

대회라는 이름답게 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나이대도 다양했다. 아이부터 건장한 청년, 수염이 덥수룩한 노년의 인물까지.

모두가 마경에 들어가 스스로의 실력을 시험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물론 상품에 대한 욕심도 있겠고.

‘상품은 뭐 내 알 바 아니고.’

유릭은 상품에 대해선 관심 없었다.

어차피 아이와 어른은 판정의 기준 자체가 달랐다.

미성년자 부문에서 받을 수 있는 상품은 굳이 악을 쓰며 받을 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마경 자체가 중요하지.’

유릭이 원하는 것은 대회의 상품이 아니라 마경 자체.

보다 정확히는 마경 안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대충 사람들 뒤를 따라 다니다 갈라지면 되겠어.’

마경 안에는 마물들이 가득하다.

애초에 마경이란 사악한 마물이 태어나고 솟아나는 땅.

이번 토벌 대회도 실은 대회라는 이름을 빌린 토벌 작업이나 다름없었다.

마경의 마물들은 주기적으로 토벌해주지 않으면 바깥에까지 넘쳐흐르기 때문.

상품을 노리는 이들은 착실하게 마물을 토벌하고 다니겠지만 유릭은 아니다.

토벌에 힘쓰는 사람들 뒤를 쫓아가다 어느 지점에서 갈라질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가하게 있다 보니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필립이었다.

“……!”

녀석은 유릭을 보곤 크게 움찔거리더니,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자리를 피했다.

2년 전의 그 일 이후, 사실 필립은 두어 번쯤 더 유릭에게 덤볐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똑같았다.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결말.

그쯤 되니 어느 순간부턴 덤비지 않고 오히려 유릭을 피하게 되었다.

“그동안 괴롭혔던 걸 보복 받을까 봐 저러나 봐요.”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유릭이 고개를 돌렸다.

한 여자아이가 웃는 얼굴로 유릭의 옆에 서 있었다.

그녀에게선 한 번 맡으면 잊기 힘들 것 같은 과일 향이 나고 있었다.

“처음 뵈어요, 유릭 공자. 1반의 알리샤라고 해요.”

그녀가 치마의 양쪽을 잡고 살짝 무릎을 굽힌다.

절도를 지킨 딱딱한 동작이라기보단 애교가 듬뿍 섞인 귀여운 동작이었다.

유릭의 눈이 가라앉았다.

“유릭 로스카다.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어머, 누가 데릭 공자의 형 아니랄까 봐 딱딱한 것도 똑같네요.”

그녀가 무척이나 재밌다는 듯이 꺄르륵 웃어댄다.

유릭은 뭐가 재밌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볼일은?”

“꼭 볼일이 있어야만 오나요. 굳이 말하자면 인사? 앞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요.”

그녀가 살포시 웃었다.

과일 향이 짙어지며, 볼에 핀 보조개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유릭은 얼굴을 찡그렸다.

“내가 왜.”

그리 대꾸하자 알리샤가 웃는 얼굴로 잠깐 굳었다.

그러나 아주 잠시였을 뿐.

곧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를 이어나갔다.

“호, 호호. 정말 차갑네요. 화염 마나를 익혔다길래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적인 사내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유릭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괜히 차갑게 구는 것이 아니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과일 향.

그 냄새가 비강을 타고 몸 안에 들어올 때마다, 단전의 염화신무가 불같이 끓어올라 향의 입자를 모조리 태워 버리고 있었다.

“너, 냄새나.”

그러고 나니 남는 것은 썩은 과일과 같은 지독함.

그 더러운 냄새도, 염화신무가 독소를 태울 때처럼 반응했다는 사실도 모두 그를 불쾌하게 했다.

주변이 아무렇지 않은 것을 보면 병이나 죽음에 이르는 종류는 아닌 것 같지만, 좋지 않은 것임은 명백했다.

“…….”

이번에야말로 알리샤가 굳어버렸다.

그녀는 미소 지을 생각도 못 한 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알리샤! 알리샤 어디 있나!”

그때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전투1반의 교관인 베르겐 장로였다.

1반 역시 이번 대회에 참가한다.

그래서 다 모아놓고 한바탕 연설을 하려고 봤는데, 한 명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가 알리샤를 발견하곤 성큼성큼 다가왔다.

“알리샤! 집합 시간이 지났는데 대체…… 응?”

그러곤 유릭을 보고 확 눈을 찡그렸다.

“흥! 1반 따윈 아무렇지도 않은 대~단한 화염술사께서 우리 학생에게 볼일이라도? 뭐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고 싶은 것이냐?”

베르겐 장로가 이죽거리는 어조로 얘기했다.

“과연 백가의 긍지를 버리고 독학한 화염 마나가 얼마나 활약할지 잘 지켜보지. 참고로 우리는 남색 지대에 출몰했다는 아이스 골렘을 잡으러 갈 예정이다.”

“아이스 골렘?”

유릭이 살짝 놀랐다.

아이스 골렘이라니, 아이들 수준에서 잡을 만한 마물이 아니다.

적어도 4성은 되어야 손쉽게 토벌할 수 있을 텐데 그 정도 경지의 아이가 1반에 있었나?

“훗. 보아하니 네놈은 자색 지대에서나 좀 깔짝대다 나올 느낌이구나. 크하하하!”

유릭의 놀란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드는지 크게 웃으며 베르겐 장로가 떠나갔다.

“알리샤! 빨리 와!”

“아, 옛!”

집합을 해야 하는 알리샤도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가기 전,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유릭을 보는 그녀의 눈은 뱀의 그것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너. 뭐야?”

“아까 대답했잖아. 그보다 난 네 향수 브랜드가 더 궁금한데. 어디 상회 거야?”

유릭의 비꼬며 얘기하자 알리샤가 으득 이를 갈았다.

“알리샤!”

베르겐 장로가 재촉한다.

알리샤는 하는 수 없이 떠날 수밖에 없었다.

얼마간 지나자, 멀찍이서 커다란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부터 칠색의 마경의 토벌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작이다.

유릭이 전신에 적당한 긴장을 둘렀다.

그전에 그가 아니스를 찾아 그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도련님?”

“1반의 알리샤라고 알지?”

“물론입니다. 그녀는 왜…….”

아마 오늘 일을 저지르진 않을 것이다.

첩자인지 뭔지 몰라도 오늘은 주변에 강한 이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른다.

“걔를 중점적으로 감시해.”

“?”

아니스가 잠시 갸웃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받았다.

그걸 보곤 유릭이 자리로 돌아왔다.

모두의 눈을 피하고, 7성 기사의 감시까지 피해 불온한 일을 저지르긴 힘들겠지.

잠시 후.

마경의 입구를 우르르 통과하는 인파에 섞여 그가 칠색의 마경의 땅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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