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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7화 (17/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7화

17화. 시험

알리샤의 시체가 털썩 엎어졌다.

처음 행한 살인이었으나,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회귀 전에 용병으로 활동할 땐 전쟁에도 참여했던 그였으니까.

후우-

유릭이 호흡을 갈무리했다.

녹시아에 묻은 피를 닦아 검집에 넣는다.

그가 쓰러진 데릭에게 다가갔다.

“괜찮냐?”

쪼그려 앉아 물으니 데릭이 눈동자를 움직여 이쪽을 보았다.

몸이 간헐적으로 부들거린다.

아무래도 아직 제대로 움직이진 않는 모양이었다.

“크읏…… 하아!”

애써 움직이려다 실패한 데릭이 털썩 힘을 풀고 그냥 바닥에 누웠다.

그래도 몸이 회복되는 것은 느껴진다.

높다란 밤하늘을 올려보며 데릭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 듯, 몇 번이나 애를 먹던 그가 이내 툭 내뱉었다.

“……고, 고맙다.”

유릭이 피식 웃었다.

뭔 소리를 하나 했더니 겨우 그거였어?

하지만 뭐, 데릭의 입에서 감사 인사라니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만큼 듣기 힘든 것이기는 했다.

“그래서 뭔 일인데? 저 여자 정체가 뭐야?”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아는 거라도 말해봐.”

“일단 본인은 향기의 마녀라고 얘기하더군.”

“마녀라면…… 검은 늪의 마녀 말인가?”

대륙에서 마녀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검은 늪’이다.

온갖 사악한 비술과 저주의 온상지.

“모르지. 거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다만 모든 마녀가 검은 늪 출신인 것은 아니다.

그걸 생각하면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였다.

“다른 한 가지 쪽이 중요한 정보다만…….”

“뭔데?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녀석은 자기가 아이작 도련님을 모시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아이작? 형님 말이야?”

“동명이인이 아니라면.”

말은 그렇게 하지만 표정은 절대 동명이인일 리 없다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유릭이 조금 더 진지해졌다.

아이작 로스카.

빙하백가의 장남인 그에 대한 일이라면 유릭에겐 남의 일이 아니었다.

‘어쩐지, 돌아오자마자 가문을 휘어잡더라니.’

아이작은 오랫동안 집을 떠났다.

명분이 있어 떠난 것이 아니라 의절을 당해 쫓겨났다.

때문에 아이작의 세력은 한참 전에 와해된 후였다.

그럼에도 아이작은, 돌아오자마자 빠르게 가문 내에 단단한 세력과 기반을 구축한다.

유릭은 그것을 적마도가와의 화친을 주선한 업적 덕분이라 여겼지만, 아무래도 그게 전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미리부터 자기 사람을 심어놓고 있었군.’

하긴 그러니까 그렇게 빨리 세력을 다시 구축했지.

아마 알리샤 하나만이 아닐 것이다.

가문 곳곳에,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작의 수하가 숨어서 암약하고 있을 터.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의절을 당한 아이작이 왜 가문에 집착하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대단하다는 생각은 든다.

한 번 의절당한 몸으로 돌아와서는, 모든 비난들을 불식시키고 다시 세력을 만들었으니까.

다만.

‘세력을 불리는 건 상관없는데, 그 세력으로 날 볼모로 던지는 건 별론데.’

그 세력이 자신의 적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 문제다.

아이작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곧 자신이 볼모로 결정될 가능성이 커지는 일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알리샤를 처리한 것은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아이작의 영향이 줄어든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이 녀석, 돌아온 형님을 무척 잘 따랐었지.’

회귀 전에는 데릭도 아이작의 세력의 일원이었다.

형제인 만큼 매우 가깝게 지내는 측근이었지.

그건 데릭의 뜻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였을까? 아니면 이 알리샤의 수작이었을까?

“데릭. 너 아이작 형님 어때.”

“어떠냐니 뭔 소리지?”

“친해? 존경하고 따르는 형님인가?”

데릭이 어림도 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하, 내가 이런 굴욕을 겪고도 형님을 존경할 거라 생각하나? 만약 눈앞에 보이면 칼부터 뽑을 생각이다.”

데릭이 이를 갈며 얘기했다.

그 얘기로 확신했다.

회귀 전에 데릭이 아이작과 절친한 사이였던 것은, 아무래도 알리샤의 암약 덕택인 듯했다.

그렇다면 알리샤를 처리한 지금은, 데릭이 아이작의 세력에 가담할 일이 없다는 뜻.

아이작의 추종자에서 마녀 알리샤와 데릭을 빼낸 셈이다.

‘내 영향력을 높일 생각만 하지 말고, 형님의 영향력을 깎을 생각도 해야겠어.’

단순히 강해지는 것 말고 한 가지 방침이 더 생겼다.

지금도 가문 곳곳에 있을 아이작의 부하를 색출한다.

그게 이번 알리샤처럼 명백한 악당이라면 제거하고, 데릭 같은 입장이면 회유.

그것으로 아이작의 세력을 깎아낼 수 있을 것이다.

“끄응-”

데릭이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직 많이 부들거리는 것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았다.

“도와줘?”

“네 도움 따위 필요 없어.”

녀석이 까칠하게 거절했다.

솔직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원래대로 돌아갔다.

유릭이 한숨을 쉬며 그를 부축했다.

“그만둬.”

“새끼 노루처럼 파들거리고 있으면서 쫀심은.”

“큭…….”

데릭의 불평을 일축하곤 유릭이 그를 부축했다.

-으음…….

-여긴……?

그때쯤 바닥에 쓰러져 있던 기사들이 일어났다.

뭐가 뭔지 어리둥절하던 그들은 목이 잘린 알리샤의 시체를 보곤 표정을 굳혔다.

기절하기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상관인 아니스의 명으로 저 알리샤란 아이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밤에 숙소를 나오더니 쌍둥이 도련님들의 별궁에 수상쩍게 접근했다.

그걸 막으려 하다가, 뭘 당했는지도 모른 채로 기절하고 말았다.

6성 기사인 자신들 셋이 순식간에 제압당하다니, 결코 경시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알리샤가 시체로 누워 있다니?

‘대체 누가?’

기사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머물 때.

“그 시체, 치워둬. 대신 녀석한테 손도 못 쓰고 당했던 건 비밀로 해줄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궁의 주인인 유릭의 목소리.

그 말만을 남긴 채 데릭과 함께 궁으로 돌아가는 그를 보며, 기사들의 눈이 커져왔다.

“예, 예.”

“알겠습니다, 도련님.”

멀어지는 그의 등을 향해 기사들이 멍하니 대답했다.

* * *

다음 날.

알리샤의 죽음은 가문 내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가 사라진 것은 ‘가문의 물건을 훔치다 쫓겨났다’, 대충 이런 식으로 소문이 돌았다.

가주인 발렌티나의 명령이었다.

“데릭의 말론 확실히 들었답니다. 오라버니가 보냈다고 했다더군요.”

“…….”

가주를 위한 폐관실.

반개한 발렌티나의 눈에선 형형한 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문 너머에서 엘린이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하아…….”

가만히 딸의 얘기를 듣고는, 발렌티나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의 무표정한 그녀답지 않게, 미간을 찡그리며 머리를 짚었다.

“그 아이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구나. 되먹지 못한 것에 손을 대 의절을 당했으면서, 사이한 마녀 같은 것들을 가까이 두다니.”

의절 후에는 최대한 떠올리지 않으려 했던 큰아들이다.

그 아이작의 갑작스러운 소식에 발렌티나는 오랜만에 두통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작이 의절된 이유.

그건 그가 금기에 손을 댔기 때문이었다.

칠색의 마경의 최심부, 적색 지대에서 발견된 칠색의 마왕 크레마뉴의 유산.

발렌티나가 가져와 가문 내에서 엄중히 봉인을 해두었던 그것을, 아이작이 멋대로 들고 도망간 것이다.

가주의 이름으로 봉인을 명한 물건을 빼낸 것만 해도 큰 죄다.

그런데 심지어 마왕의 유산에 손을 대다니.

대륙에선, 다른 악마들의 유산은 몰라도, 마왕의 유산만큼은 금지되어 있었다.

마왕의 유산은 마신의 힘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

결국 아이작을 의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빙하백가는 온 대륙의 공적이 되었을 테고, 그건 적마도가에게 무엇보다 좋은 명분이 되었을 테니까.

“어머니. 어쩌면 오라버니가 심어놓은 자들이 하나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 무슨 일을 꾸미는지는 모르지만 마녀 하나만 달랑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찾아볼까요?”

“반드시 찾아내도록.”

엘린의 제안에 발렌티나는 더욱 강한 어조로 명령했다.

엘린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발렌티나가 미간을 짚고는, 이내 표정을 폈다.

그러고 보면 나쁜 소식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 마녀를 유릭이 쓰러뜨렸다고?”

엘린 역시 다소 기운이 돌아온 어조로 대답했다.

“예. 처음에는 데릭과 둘이 협력했나 생각했는데, 데릭 말로는 유릭이 혼자 처치했다더군요.”

“그거참 대단하구나.”

향기의 마녀 알리샤.

그녀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6성 기사 셋을 제압할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마녀를 상대로 유릭이 단신으로 활약했다니.

“정말로 대단한 아이입니다. 일전에는 마경의 토벌 대회가 있었는데…….”

엘린이 활기찬 목소리로 유릭의 말을 이어갔다.

발렌티나는 딱히 대꾸하진 않았지만 엘린의 말을 끊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엘린은, 어머니가 유릭에 대해 얼마나 흥미가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당장 말을 끊고는 시간 뺏지 말고 그만 가라고 명령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발렌티나 역시 엘린에게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뻐 보이는구나, 엘린.”

“예?”

“근래 들어 네가 이렇게 기쁘게 얘기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 그랬나요?”

엘린은 너무 떠들어버린 것에 살짝 부끄러움을 느꼈다.

작게 헛기침을 하며 그녀가 얘기했다.

“그래도 유릭만이 아닙니다. 데릭도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어요. 두 동생이 모두 잘 자라준 것 같아 기쁠 뿐입니다.”

“……그래. 아이작의 몫까지 네가 잘 보살펴 주려무나.”

절연된 오라버니의 이름이 나오자 엘린의 표정에 다시금 그늘이 졌다.

오라버니는 어째서, 해선 안 되는 걸 알면서 마왕의 힘에 손을 댄 것일까.

그토록 듬직하고 재능 역시 뛰어난 사람이었는데.

‘하아…….’

생각해 봤자 알 수 없는 일이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직접 물어볼 수밖에.

“예. 걱정 마세요.”

아이작의 일을 머릿속에서 털어버리고, 엘린은 폐관실에서 물러났다.

* * *

“크하하하하! 그래서 기절했다가 일어나 보니 이미 목이 날아가 있었단 말이냐? 그 목을 친 건 유릭이고?”

“예, 예! 죄송합니다!”

빙하백가의 태상 가주, 레오폴딘 로스카는 평소와 같은 어둑한 방에서 보고를 듣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 불려 나온 이는 13기사단의 일원.

아니스의 명으로 알리샤를 감시하던 예의 세 명의 기사였다.

“아, 딱히 나무라는 건 아니니 걱정 말거라. 난 진정으로 기뻐서 웃고 있는 것이야.”

“그, 그렇습니까?”

“야, 이 멍청아. 무조건 죄송하단 말만 하라니까!”

“헉! 죄, 죄송합니다!”

“크흐흐. 거 괜찮다니까 그러네.”

레오폴딘의 말엔 한 점 거짓도 없었다.

그는 지금 정말로 유쾌했다.

안 그래도 눈여겨보던 손주인 유릭이 기사 셋도 어쩌지 못한 적을 용감히 무찌를 줄이야.

심지어 그 아이작의 수하라지 않은가?

감히 로스카의 이름을 달고 마왕 따위의 힘에 손을 대버린 되먹지 못한 놈.

레오폴딘의 아이작에 대한 인식은 딱 이랬다.

인식 정도가 아니다.

애초에 아이작의 의절에 가장 큰 목소리를 낸 것이 바로 그였으니까.

“흥, 병신 같은 녀석 같으니. 의절 당해 쫓겨난 주제에 어디 근본 없는 마녀 계집을 본가에 쑤셔 넣고 있단 말이더냐? 그게 그 잘난 마왕의 힘인가 보지?”

아이작의 욕설을 뱉는 레오폴딘에게 기사들은 차마 대꾸할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오폴딘은 차갑게 말을 이었다.

“발렌티나는 그 마녀 말고 누가 더 있진 않은지 색출하라 했겠지?”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엘린 공녀님께 직접 명령하셨다고 하더군요.”

“단장에게 전하거라. 엘린에게 협력하라고. 그리고 그런 괘씸한 무리가 더 발견된다면 당장 고문실에 처넣으라는 말도 전해.”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린 후에야 레오폴딘은 다시 유릭의 화제로 돌아왔다.

그가 다시 방긋 웃었다.

“크하하! 고 녀석 참 물건이란 말이지. 원석이야, 원석!”

“그, 그 말씀대롭니다.”

“들리는 말론 다른 또래 아이들도 유릭 공자 앞에선 기를 펴지 못한다 합니다.”

“토벌 대회에서도 혼자서 큰 차이로 앞섰다고 하더군요.”

세 기사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맞장구쳤다.

그들에게 레오폴딘은 까마득하게 위에 있는 상관.

그 상관이 손주 자랑을 시작했는데 가만히 있는다는 선택지는 그들에게 없었다.

“크흐흐.”

뻔한 아부였지만 싫진 않은 듯 레오폴딘이 기분 좋게 웃었다.

그는 본인 스스로를 향하는 아부엔 혐오마저 느끼는 이였지만, 자식과 손주를 향한 아부엔 무척이나 약했다.

어쩔 수 없는 할아버지라 해야 할까.

“그렇구나……. 이쯤 되니 한번 시험을 해보고 싶구나. 유릭 그 녀석이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레오폴딘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얘기를 꺼냈다.

순간 세 기사는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레오폴딘은 손주들에게 무척 관심을 가지는 할아버지다.

동시에, 그 관심이 얼마나 사람을 아찔하게 만드는 것인지 그들은 매우 잘 알았다.

레오폴딘은 사랑하는 새끼를 아무렇지 않게 벼랑에서 떨어뜨리는 타입의 사자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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