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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18화 (18/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18화

18화. 너 말이야 너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유릭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알리샤의 일로 어머니를 한 번 만나긴 했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저 보고, 듣고, 행한 일을 보고하기 위해 불렸을 뿐.

딱히 추궁을 당하지도 않았고 호위가 붙지도 않았다.

언제나와 똑같은 일상.

‘그래도 방침이 하나 더 생긴 건 좋은 일이야.’

달라진 점이라고 한다면 그것뿐이었다.

단순히 강해지고자 노력만 해오던 것과 달리, 조금 더 가문 내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일.

어디에 아이작의 수하가 숨어서 암약하고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그렇다 보니 누구를 마주칠 때마다 저도 모르게 의심부터 하고 본다.

딱히 나쁜 습관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자신의 안전과 관련된 일이다.

안전에 대한 고심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지 않다.

다만 알게 모르게 피로가 쌓이는 일이긴 했다.

‘이 백월봉 수련장이 더 각별해졌군.’

그렇다 보니 숲속 수련장이 더욱 각별해졌다.

단순히 수련만의 의미가 아니라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으니까.

풋풋한 내음이 풍기는 녹빛 숲속에서 유릭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운기를 이어나갔다.

어느새 주변에는 대령을 비롯한 숲의 동물들, 그리고 반딧불처럼 빛나는 녹색 정령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무리 형님이라도 동물들을 첩자로 보내진 않았을 테니.’

순간 토끼 따위가 암살자처럼 복면을 쓴 채 찾아오는 상상을 하였다.

자신이 하고서도 웃긴 상상에 피식 웃으며 유릭이 수련을 이어갔다.

얼마간 집중하여 염화신무의 축기를 일단락 낸 후, 그가 유화를 불렀다.

[“앗!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부른지 꽤 시간이 흐른 후에야 겨우 대답이 돌아왔다.

‘바빠?’

[“아하하, 아뇨, 그게. 집에 친척들이 좀 와서요.”]

‘괜한 때 불렀네. 집이 포목점이라고 했던가?’

[“맞아요. 이래 봬도 성에서 제일 잘나가는 부잣집이랍니다, 엣헴.”]

그녀가 거들먹거리는 어른들의 흉내를 내며 깔깔 웃었다.

물론 순진한 그녀의 목소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흉내였다.

‘바쁘다면 됐어. 다음에 연락할게.’

[“아, 지금은 괜찮아요. 인사 다 하고 혼자 방에 쉬러 왔거든요.”]

‘몸은? 요즘도 어디 아파?’

방에서 쉰다.

월하무녀의 체질을 가진 그녀의 말이니 쉬이 넘어갈 수 없는 말이었다.

걱정을 담아 물으니, 그녀에게선 지금까지 중 가장 반짝이는 대답이 들려왔다.

[“전혀요!”]

유릭의 작은 걱정 따윈 단번에 날려버리는 목소리였다.

[“아저씨가 알려준 마법 진짜 대단해요! 아저씨한테 배우고 난 뒤론 엄청 건강해졌다고 의원님이 그러셨어요! 기적이래요!”]

‘그, 그래?’

[“혹시 발작이 일어나도 꾹 참고 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운기하면 금방 가라앉아요! 예전에는 하루 6번은 탕약을 마셨는데 지금은 3번으로 줄었어요!”]

6회의 약이 3회로 줄었다는 건 정말 엄청난 차도였다.

그러나 동시에 아직도 병마가 짙다는 뜻이기도 했다.

3번씩이나 약을 먹어야 하는 것부터 보통이 아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까요, 저번에 마법을 써보다가 엄마한테 들켰거든요? 엄마가 무슨 고수한테 무공을 배웠냐고 막 다그치더라구요. 무공이 아니라 마법인데, 히히.”]

그 뒤로도 그녀는 서리 마법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였다.

그 모든 게 긍정적인 방향이다.

역시 서리 마법을 가르친 것은 정답이었다.

‘서리 마나를 조금도 못 쓰는 내가 이 가문에 태어난 이유가 이것 때문일지도.’

그답지 않은 감상이었다.

유릭은 근거 없는 운명론 따윈 믿지 않는 주의다.

하지만 왠지 지금은,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녀의 목소리는 비유하자면, 마트에서 파는 작은 불꽃놀이 같았다.

밝고 활기차고 반짝이지만, 금방 꺼질 것만 같은 연약함이 느껴지는.

하지만 지금은 축제 때 터지는 화려한 불꽃 같다.

그 차이를 직접 느끼고 있다 보니 감상에 빠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맞다. 근데 왜 연락했어요? 물어볼 거라도 있어요?”]

‘응. 조금.’

확실히 안부 확인으로만 연락한 것은 아니다.

유릭이 잠시 머릿속에서 질문을 정리한 후 입에 담았다.

‘무공 중에, 음…… 나쁜 기운을 물리쳐 주는 그런 무공도 있나?’

[“나쁜 기운이요?”]

‘응. 저주라든지 뭐 그런 데 쓰이는 기운.’

유릭이 묻고 싶은 것은 염화신무의 그 효과였다.

처음 알리샤와 만났을 때 염화신무는 그녀의 향기를 모조리 태워 버렸다.

그 뒤로 전투를 할 때도, 마지막 저주에 저항했다.

결국은 <외우주>의 노인이 새겨준 기억 덕택에 물리칠 수 있었지만, 어쨌든 그전에 염화신무도 저항하긴 했다.

아마 염화신무의 경지가 높았다면 저주는 몸에 들어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종류야 엄청 많죠. 사이한 기운을 몰아내는 무공은 진짜 많아요. 개중에는 기운을 일으키는 것만으로 항마의 효과를 보는 것들도 있어요.”]

유화가 듣도 보도 못한 무공 이름을 줄줄이 외며 설명해 주었다.

항마의 무공. 특히 무림의 태산북두(泰山北斗)로 꼽히는 소림사에 그런 무공이 많다 하였다.

‘그럼 염화신무도 소림의 무공일까?’

[“웅…… 글쎄요, 소림의 무공 중에 그렇게 불을 일으키는 무공은 들어본 적이 없어서요.”]

그래도 유화는 아니라고 말하진 않았다.

무림의 무공은 너무나 방대하고, 특히 소림 같은 오랜 역사를 가진 문파라면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무공을 가지고 있다 하였다.

즉 그녀의 말은 소림의 것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역시 그렇게 쉽게 알 수는 없나.’

[“미안해요. 아저씨는 저한테 귀한 비급을 가르쳐 줬는데 저는 도움이 안 돼서…….”]

‘무공 설명만 해도 충분히 도움 되고 있어.’

[“그래도.”]

지난 2년간 어울리며 알게 된 것이지만, 유화는 자신에게 부채 의식이 있었다.

아무래도 서리 마법이 병을 고치고 있는 점이 큰 것 같았다.

그 어떤 명의도 고칠 수 없던 증상이 마법을 익히며 나아가고 있으니 빚을 지고 있다 생각해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마.’

하지만 유릭은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는 아픈 환자에게 치료법을 미끼로 빚을 지우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너는 나에게 무공 지식을 가르쳐 주고 나는 네게 마법 지식을 가르쳐 주고 있지. 그건 서로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지식들이야. 누구의 것이 더 가치 있고 없고, 그런 걸 따질 필요는 없어.’

[“…….”]

하고픈 말은 그것뿐이었다.

저편에선 숨죽인 소리밖에 들려오지 않았지만, 유릭은 그녀가 잘 알아들었다 여겼다.

유화는 아직 12살이지만 무척 똑똑한 아이니까.

-저벅.

그때,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스가 오는 소리였다.

모여서 쉬고 있던 동물들이 일어나 달아나고, 숲의 정령들도 저마다 흩어진다.

‘미안. 내 쪽도 손님이 와서 이만 끊을게.’

[“앗! 아저씨! 아…….”]

유화가 아쉽다는 듯 유릭을 불렀지만 이미 유릭은 연결을 끊은 후였다.

“오늘도 열심이시군요. 좋은 일입니다.”

수풀 너머에서 아니스가 도착했다.

“바로 시작할까.”

옅은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보며 유릭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 *

아니스와 유릭의 대련은 2시간가량 이어졌다.

유릭이야 넘쳐나는 게 시간이지만 아니스는 그렇지 않다.

기사단의 통상업무도 있고 스스로의 수련도 있기에 대련은 하루 2시간으로 정해 놓았다.

대신 단 하루도 쉬는 날은 없다.

추가업무치고는 상당히 가혹한 업무였지만 아니스는 불평하지 않았다.

별다른 취미도 흥미 거리도 없는 그녀에게 나날이 늘어가는 유릭의 검을 보는 것은 작은 낙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허억…… 허억…… 수고, 많았어.”

유릭이 풀숲에 대자로 눕는다.

전신이 부들거리고 땀으로 범벅인 그에 비해 아니스는 딱 좋게 열이 오른 정도였다.

2년이 지났지만 유릭은 아직 검술로 그녀의 땀방울을 보지 못했다.

“같이 내려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수련을 더?”

“더 하다 갈게.”

유릭은 항상 늦게까지 남아 수련을 계속한다.

무슨 수련인지 모르긴 하지만 추측은 할 수 있다.

아마 그 말 많은 화염 마법의 단련을 하는 것이겠지.

아니스는 화염 마법을 익혔단 이유로 유릭을 보는 눈을 달리하지 않았다.

힘에는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힘을 휘두르는 사람에게 있을 뿐.

그것이 그녀의 지론이었다.

단지 화염 마법의 수련엔 도움을 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서리 마법이었다면 조금은 조언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럼 전 이만.”

그래서 그녀는 더 권하지 않고 혼자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산의 초입 부근에 다다랐을 때쯤.

‘……?’

그녀가 발을 멈추고 눈을 찡그렸다.

조용히 검에 손을 가져가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나와.”

분명 아무도 없는 곳이다.

있는 것이라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잎사귀의 그림자뿐.

그런데도 아니스는 누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듯 주변을 보며 위협하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누구도 나타나지 않자.

스릉.

그녀가 검을 뽑아 냅다 휘둘렀다.

퍼석! 땅이 크게 베인다.

잎사귀의 그림자가 흔들리던 그 땅이었다.

그곳을 베어내자, 그림자가 기이하게 일렁였다.

곧이어 그곳에서 새까만 옷과 복면을 한 남성이 튀어나왔다.

아니스가 분노를 감추지 않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여기서 뭐 하고 있지? 임무 수행 중인가?”

“선배님과는 관계없는 일입니다.”

아니스의 으름장에도 복면인은 아무렇지 않은 눈으로 잡아뗐다.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요즘 이 길을 이용하는 건 유릭 도련님뿐이다.’

설마 도련님과 관련해서 불순한 의도의 임무라도?

라고 생각하던 중, 그녀가 얼마 전 전달받은 얘기를 떠올렸다.

“설마 네가…….”

“태상 가주께서 직접 내리신 임무입니다. 선배님께는 방해할 권한이 없습니다.”

아니스의 짐작이 정답이라는 듯 복면인이 태상 가주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랬군.”

하아-

그제야 아니스가 검을 내렸다.

입에선 한숨이 나왔고 미간은 골치 아프다는 듯 잔뜩 찡그려 있다.

태상 가주가 유릭에게 범상치 않은 관심을 가졌단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조만간 이런 일도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진짜로 보니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한 가지만 얘기해 줘. 어디까지 명하셨지?”

아니스의 영문 모를 질문에 복면인이 고민 없이 대답했다.

“죽이지만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니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검을 집어넣었다.

죽이지는 않는다.

그 말은 일이 틀어져 어디 하나 잘못되는 정도는 어쩔 수 없다는 뜻.

‘이 정도도 극복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건가.’

순간 다시 산을 올라 유릭에게 주의해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그건 해선 안 되는 일이다.

그녀는 기사였고, 그녀의 주군은 레오폴딘이지 유릭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이만.”

복면인이 한차례 꾸벅 숙여 보인 후 다시 그림자 속으로 숨었다.

그가 사라진 장소를 힐긋 보고는, 아니스가 산을 내려왔다.

‘부디 무사하시길.’

그녀의 작은 바람만이 적막한 숲속에 남겨졌다.

* * *

유릭은 수련을 마치고 백월봉에서 내려왔다.

별궁에 돌아와 방에 있는 샤워실에서 몸의 땀을 싹 씻어 내린다.

샤워실을 나오니 평소대로 방의 테이블에 저녁 식사가 마련되어 있었다.

유릭이 기분 좋게 앉아 흰 빵을 찢어 수프에 찍었다.

‘일’이 일어난 것은 그걸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있을 때였다.

‘……?’

천장의 작은 틈 사이에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입자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있는 유릭의 주스잔 위에.

‘……뭐 하는 새끼야.’

식사를 마시고 시원하게 들이켜려던 포도 주스다.

그게 실시간으로 망쳐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유릭의 눈이 가라앉았다.

사람이 마실 잔에 몰래 수상한 가루를 뿌리다니, 명백한 암살 시도다.

염화신무를 익히며 감각이 예민해진 그니까 발견했지, 보통 아이라면 결코 발견하지 못했을 일.

하지만, 동시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 별궁에서 암살이라니?

‘여긴 본가에서도 심처에 속한 곳인데 암살자가?’

유릭의 별궁은 겨울성 내에서도 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까지 암살자가 찾아오다니,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겨울성의 모든 경비를 뚫고 외부인이 침입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외부인이 아니라 내부인?

‘로스카에서 암살 집단이라고 한다면…….’

한 군데밖에 없다.

태상 가주 레오폴딘이 지배하고 있는 13번대 기사단. 빙하백가의 어둠. 그림자 달.

‘……둘 중 하나군.’

자연스럽게 가능성은 둘 중 하나로 좁혀졌다.

할아버지가 자신을 제거하려고 하고 있거나, 혹은 실력을 보기 위해 시험을 하고 있거나.

보낸 암살자의 실력을 보면 아무래도 후자 쪽으로 보였다.

전자였다면 자신에게 들킬 만한 녀석은 보내지 않았을 테니까.

‘하아.’

그가 조용히 기운을 끌어올리며 감각을 넓혀갔다.

동시에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주스잔을 집었다.

직후, 누군가의 시선이 짙어지는 것을 느꼈다.

천장에서였다.

“야.”

유릭이 그대로 툭 잔을 놓았다.

챙그랑!

손에서 떨어진 유리잔이 바닥에 부딪혀 산산 조각났다.

짙은 포도 주스가 마치 핏자국처럼 바닥에 퍼져 나갔다.

-…….

천장의 기척이 숨을 죽인다.

그러나 설마 자신을 부르는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하는지, 그대로 가만히 잠복하고 있었다.

유릭이 한 번 더 불렀다.

“너 말이야, 너.”

기척이 아주 살짝 움찔거린다.

하지만 움직이는 기색은 없었다.

들켰는지 아닌지, 아직도 반신반의하고 있는 모양.

유릭이 테이블 옆에 세워둔 녹시아를 뽑아 들었다.

그러곤 냅다 천장에 던졌다.

탁!

빙그르르 날아간 검이 천장에 꽂혔다.

그리고.

“사람이 부르면 대답 좀 해라.”

-……!

복면인의 코앞에서, 검이 불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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