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22화
22화. 너랑 똑같이
엘드가르드 산맥의 봉우리 중 하나, 백월봉.
그 깊은 산속에 다섯의 나무꾼이 있었다.
우락부락한 덩치와 험상궂은 얼굴.
하관을 뒤덮은 덥수룩한 수염은 나무꾼이 아니라 마치 산적만 같았다.
그러나, 형형하게 빛나는 그들의 눈빛은 도저히 나무꾼이나 산적 따위로 보이지 않았다.
“베르드. 주변에 방해꾼은?”
한 사내가 나직한 목소리로 일의 진척 상황을 물었다.
“모두 처리했습니다, 대장.”
“불꽃 토템의 설치 작업은?”
“지정된 장소에 모두 완료했습니다. 마지막 수순만 남았습니다.”
“좋아.”
대장이라 불린 나무꾼, 아니 정체불명의 사내가 한 장소에 시립했다.
그곳은 마법진의 중앙이다.
5개의 토템에 둘러싸인 하나의 거대한 마법진.
그 가운데서 사내가 룬어가 빼곡히 적힌 지팡이를 땅에 콰직 꽂았다.
쿠구구구구-
땅이 흔들린다.
지팡이에 새겨져 있는 룬어가 빛나기 시작하며 동시에 땅에 마법진이 퍼져 나갔다.
화륵!
불꽃이 피어오르며 진의 중앙에 6개째의 불꽃 토템이 피어올랐다.
“베르드는 날 호위하고, 나머지는 주변을 정찰하도록.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 만한 존재는 가차 없이 처단해라.”
“예!”
대장 사내의 지시가 떨어졌고, 두 사람을 뺀 3명의 사내들이 숲속으로 사라졌다.
베르드가 대장 사내의 주변에 자리 잡고 호위를 선다.
그사이 대장 사내는 눈을 감고 마법진의 미세 조정에 들어갔다.
점점 의식이 떨어진다.
눈꺼풀 안쪽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마법진의 형상뿐.
“지금부터 숲의 근원을 뽑아내겠다.”
대장 사내가 마법진의 마력을 세밀하게 조정하기 시작했다.
* * *
뜨거운 열기가 몸을 감싼다.
이 엘드가르드에 있으면서 이런 기온은 처음 겪는 것이었다.
마치 남부의 사막을 연상케 하는 날씨.
수십, 수백 년을 쌓여 있던 눈들이 모두 녹아내리고 저온에서만 생장할 수 있는 식물들은 말라비틀어진다.
이 열기 안쪽의 공간만은, 유릭이 아는 백월봉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대령. 여기까지면 됐으니 넌 숨어 있어.”
“크릉!”
유릭의 말에 대령이 거칠게 목울대를 울렸다.
싫다는 얘기였다.
이 앞은 위험하다. 목숨을 불사하겠다는 그 결의는 무엇보다 고귀한 일.
하지만 유릭은 매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가. 네가 있어봤자 오히려 방해만 돼.”
“크르…….”
잠시 녀석이 납득하기 싫다는 듯 투레질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숙였다.
실제로 대령은 한 번 패배해 쫓겨난 몸이었으니.
대령이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발걸음을 돌려 왔던 길을 따라 돌아갔다.
흰 호랑이가 수풀 속으로 사라진 것을 보고서야 유릭이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최대한 기척을 줄이자.’
유릭의 눈이 이 비정상적인 공간 내부를 흐르는 불의 기운의 흐름을 포착했다.
기운의 흐름을 읽는 것이라면 유릭은 나름 자신이 있다.
그 흐름을 따라 유릭이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다만 이렇게 해도 들키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글렌처럼 특별한 은신술을 익힌 게 아니라면 흐름을 읽는 것만으론 기척을 모두 죽일 수 없어.’
비유하자면 마치, 사냥꾼이 바람을 등지고 사냥감에게 접근하는 것과 같다.
분명히 효과는 있지만, 그렇다 해도 완전한 은신과는 거리가 멀다.
이걸로 적에게서 완전히 모습을 숨겼다고 생각할 순 없었다.
‘이미 적에게 감지되었다 생각하고 움직이는 게 나아.’
자신이 압도적인 우위였다면 숨을 필요도 없이 강행돌파를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마 틀림없이, 자신은 열세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패배한다는 건 아니지.’
열세라고 해서 백이면 백 진다는 뜻은 아니다.
무슨 게임처럼 스탯으로만 승부가 결정 나는 것도 아니고, 현실의 전투는 무수히 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법.
열세라고 한다면, 열세일 때의 싸움법이 있을 뿐이다.
그중 가장 우선 확인할 것은.
‘이 근처에 동굴이 하나 있었지.’
지리적 우위.
백월봉의 지도라면 머리에 선명하게 들어 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전장을 선택하기 위해, 유릭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워렌은 적마도가 아칸의 귀염대(鬼炎隊) 소속 공작원이다.
귀염대는 아칸의 부대 중에서도, 아니 온 대륙을 통틀어도 매우 특이한 부대였다.
그들은 마나를 익히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마나를 조정하고 움직이는 법은 익히지만, 그 몸에 직접 마나를 쌓지는 않는다.
극한까지 단련한 신체 능력을 기반으로 한 능수능란한 아티팩트의 사용.
그것이 귀염대의 근간이었다.
말하자면 값비싼 아이템을 덕지덕지 바른 무지하게 비싼 부대란 뜻이었다.
어째서 이런 해괴한 부대가 발족되었는가 하면, 이유는 간단하다.
적지에 잠입해 테러를 하고 공작을 펼치는 것이 그들의 주요 임무이기 때문.
암살자 같은 존재와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백주대낮에 당당히 활보하면서도, 의심을 받지 않을 것.
그 때문에 마나를 익히지 않는 부대라는 특이한 부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로 워렌은, 마나 코어조차 없는 몸으로 5성의 마법사마저 제압한 적이 있다.
베르드는 워렌보다도 강하며, 심지어 대장은 6성의 기사조차 정면에서 쓰러뜨린 적이 있었다.
물론 몸에 걸친 아티팩트를 완전히 활용했을 때의 일이지만.
‘음?’
숲을 달리던 워렌이 순간 멈춰 섰다.
그가 신은 신발에서 깜빡거리는 빛이 새어 나왔다.
그것은 땅을 통해 전해지는 미약한 진동을 감지하는 신발이었다.
‘누가 들어왔군.’
그 진동을 워렌은 정확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누군가 자신들의 임무 구역에 들어왔다.
단순히 짐승이라면 적당히 쏘아 죽이면 될 일.
실제로 그와 동료들은 멋모르고 남아 있는 동물들을 여럿 죽였다.
자칫하다 마법진으로 들어와 방해라도 받으면 안 되니까.
하지만 지금 느껴진 진동은 동물의 것과는 달랐다.
‘사람이다!’
인간의 것이다.
워렌이 그 즉시 방향을 틀었다.
임무 중 그가 받은 명령은, 대장이 있는 중앙까지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
‘진동의 폭이 덩치 큰 성인의 것은 아냐. 작은 사람이거나 혹은, 어린아이.’
명령의 대상엔 아이라고 봐주라는 내용 따윈 없다.
아이일 가능성을 보았음에도 워렌의 눈에 번들거리는 살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워렌이 진동이 이는 방향을 추적했다.
점점 가까워진다.
상대는 뛰기는커녕 걷고만 있는 듯했다.
이쪽을 탐지조차 못 했다는 뜻.
조금 지나자 진동의 폭이 달라졌다.
워렌은 많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건 상대가 밟고 있는 땅의 재질이 보다 단단해졌단 뜻이었다.
‘동굴에라도 들어갔나?’
그게 가장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 뒤를 쫓으니, 정말로 동굴이 보였다.
그리고 진동은 동굴 바로 안에서 나오고 있었다.
동굴에 진입하기에 앞서 워렌이 허리춤에 묶어뒀던 망토를 끌러 어깨에 걸쳤다.
그러자 그의 모습이 점차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잘 보면 아지랑이 같은 모습이 보이는 불완전한 은신이다.
하지만 어두운 동굴 속에선 결코 발견할 수 없으리라.
‘역시 아이였나.’
동굴 속으로 들어간 워렌이 진동의 정체를 발견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였다.
아주 어린아이는 아니고, 대충 15살쯤 되었을 법한 나이.
‘산속에서 길이라도 잃은 건가? 그렇다면 안됐군. 네 불운을 탓해라.’
많고 많은 봉우리 중에서도 하필 이 백월봉에서 헤매다니.
자신의 눈에 띈 것이 불운이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다. 놈은 완벽하게 무방비해.’
워렌이 혹시 몰라 기운을 펼쳐 주변을 탐색해 보았다.
혹시라도 함정이 아닐까 싶어서.
하지만 아이의 주변에선 로스카 특유의 얼어붙을 것 같은 한기는 나지 않았다.
있는 것이라곤 불의 기운을 띤 뜨거운 열기뿐.
그 즉시 워렌이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뱀의 비늘과 같은 기괴한 무늬가 음각되어 있는 단검.
그 홈을 따라서, 오우거도 일격에 거품을 물게 하는 지독한 독액을 묻혀놓은 물건이었다.
쌔액-
그가 가차 없이 눈앞의 아이에게 달려들었다.
동굴을 가득 메우고 있는 불의 기운이 요동친다.
워렌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뜨거운 열기는 그들의 대법의 부산물임이 틀림없었으니까.
그도 그럴 게, 이 로스카의 땅에서 불의 기운이라 하면 자신들 외에 있을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 착각이, 그의 패인이었다.
“!”
단검이 허공을 가른다. 아이의 몸이 사라졌다.
워렌의 눈이 찢어져라 커지며,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그러나 늦었다.
한껏 자세를 낮춰 단검을 피한 아이, 유릭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파이어 볼트>.
콰앙!
그 주먹이 워렌의 복부를 가격하며 굉음을 만들어내었다.
폭발 소리는 동굴 내에선 거대하게 메아리쳤지만, 동굴 바깥으로는 조금밖에 새어나가지 않았다.
“컥! 커헉!”
워렌이 죽을 것처럼 기침을 하며 피를 토해낸다.
데릭과 대련을 할 때와 다르게, 파이어 볼트의 출력을 최대한 높였다.
제대로 맞으면 내장이 곤죽이 될 정도로.
유릭이 아픈 손을 탈탈 털며 토혈하는 워렌을 보았다.
“너네, 귀염대였구나?”
“큭…….”
정체를 들킨 워렌이 이를 악물었다.
유릭은 놈들을 잘 알고 있다.
마나를 익히지 않은 놈들이란 것도, 그런 것에 비해 결코 전투력이 낮지 않다는 것도.
그리고, 그 전투력의 근간이 몸에 두르고 있는 아티팩트들이란 것도.
‘그 모두가 값비싼 아티팩트.’
유릭의 눈이 반짝였다.
그것은 별과 같이 순수한 빛도, 아이다운 동심의 빛도 아닌.
‘보물 고블린이 제 발로 들어왔구나!’
황금의 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였다.
* * *
워렌은 천 하나만 두른 채 동굴 속에 묶여 있었다.
팬티 한 장조차 혹시 모를 아티팩트일지 몰라 모두 뺏고는, 유릭이 적당한 천 쪼가리를 던져준 것이다.
당장 아티팩트를 살펴보고 싶지만 그건 나중이다.
유릭이 워렌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내가 뭘 물어보려는지 알고 있지?”
“…….”
“어디 보자…… 우선 몇 놈이나 기어들어 온 건지. 대체 뭘 하러 온 건지 말해줘야겠어. 아무것도 없는 이 산에 말이야.”
“…….”
“아, 그리고. 너희들이 쓰는 지원 신호도 알려줄래? 가능하면 몇 놈 더 이 동굴로 끌어들이고 싶거든.”
“……소용없다.”
그러자 묵묵히 듣고만 있던 워렌이 툭 내뱉었다.
“응? 뭐가?”
“나한테 뭘 물어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워렌이 굳은 표정으로 얘기했다.
“네놈이 무슨 짓을 하든 내 입을 열 순 없을 것이다. 로스카의 악적 놈!”
귀염대로서의 결의와 긍지로 가득한 눈빛.
숭고한 군인과도 같은 그 모습에 유릭은,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피식 웃음을 지었다.
“네 녀석……!”
그것이 비웃음이라 생각했는지 워렌이 순간 발끈했다.
하지만 유릭의 웃음은 비웃음이 아니었다.
그냥 얼마 전의 일이 떠올라서 그런 것이었다.
“아, 미안, 미안. 얼마 전에도 너랑 똑같이 얘기한 놈이 있었거든.”
“……?”
“걘 두 시간은 버티던데, 넌 얼마나 버틸지 볼까?”
유릭이 손가락 끝에 내기를 모았다.
가느다란 침처럼 길고 뾰족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