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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23화 (23/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23화

23화. 안 알려줘

뼈가 부러지고, 그 부러진 뼈가 혈관과 근육을 마구 헤집고 다니는 듯했다.

턱이 미친 듯이 떨리고 어금니와 이빨들이 모조리 뽑혀 나갈 것처럼 시려왔다.

고통이 결코 가시지 않아서 1초 뒤의 미래가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모두 글렌에게 들었던 분근착골의 체험 후기다.

“으으으으으으읍-!”

그 고통이 지금은 워렌에게 쏟아지고 있다.

놈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소리는 입을 막고 지르는 듯이 나올 뿐이었다.

말을 못 하게 하는 아혈을 짚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비명 소리는, 워렌의 고통을 대변하듯 충분히 컸다.

동굴 속을 끝없이 메아리치는 비명.

다행히 그것은 동굴 바깥으론 그다지 새어나가지 않았다.

“역시 이 동굴이 정답이었나 봐.”

막 바깥을 확인하고 온 유릭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얼핏 순진해 보이기까지 하는 미소.

“여기 구조가 배배 꼬여 있고 입구가 좁아서 소리가 잘 안 새어나가거든. 그러니까 마음껏 비명 질러도 돼.”

“으으으으읍-!”

그러나 워렌의 눈에는 지옥불 속의 악마로 보일 따름이었다.

유릭이 쪼그려 앉아 몸부림치는 워렌을 빤히 지켜보았다.

그는 더 이상 묻지도, 입을 열지도 않았다.

마치 워렌에게 ‘살고 싶으면…… 알지?’ 하고 말하는 듯했다.

“으으으으읍-!”

워렌도 당연히 그 뜻을 잘 알았다.

하지만 그에겐 긍지가 있다.

대 적마도가를 섬긴다는 긍지.

동료를 팔아넘길 수 없다는 전우애.

자신의 희생으로 임무가 성공한다면 기꺼이 몸을 바치겠다는 희생정신.

그런 것들로 워렌이 당당히 정신 무장을 마쳤다.

그러나.

끄덕끄덕!

“오, 얘기하겠다고? 잘 생각했어.”

“읍!?”

그의 정신과는 다르게 몸은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것도 수차례나.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희생정신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 앞에서 결국 쓰러지고 만 것이다.

“자, 얘기해 봐. 몇 명이나 들어왔지?”

유릭이 워렌의 분근착골을 해제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고통에 워렌의 표정이 편해진다.

그 순간 다시 입을 다물려는 워렌이었으나.

유릭이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크게 몸을 떨더니 당장에 입을 열었다.

“다, 다섯 명이 들어왔다. 대장이랑 대원 넷.”

“그들의 수준은 어때.”

“다른 대원들은 나랑 비슷하거나 조금 강하거나. 대장은 확실히 강하다.”

유릭이 차분히 귀염대의 전력을 파악했다.

총 다섯 명. 한 명이 쓰러졌으니 남은 건 네 명.

그중 하나는 확연히 경지가 높은 놈.

“이제부터가 중요한데…… 왜 왔어?”

“…….”

“어쭈, 또 입 다문다.”

“그, 근원!”

“근원?”

“숲의 근원을 빼내려고 왔다.”

유릭의 눈이 함지박만 하게 커졌다.

숲의 근원.

그것은 대륙의 몇몇 숲에 존재하는 세계수의 결정체.

과거 마신의 불꽃에 세계수가 잿더미가 되어갈 때, 세계수가 마지막 힘으로 전 세계에 뿌려놓은 씨앗이었다.

“그게 여기 있다고?”

“그, 그래.”

“근데 그걸 너희가 왜?”

거창하게 숲의 근원이니 세계수의 씨앗이니 하지만, 사실 그 힘은 보잘것없다.

숲의 근원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나무와 풀이 잘 자라고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일뿐.

물론 그것도 대단한 힘이긴 하지만, 이렇게 공작원을 투입해서 탈취할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라고 생각했지만.

“아.”

유릭은 깨달았다.

귀염대가, 아니, 귀염대의 뒤에 있는 아칸이 숲의 근원을 원하는 이유.

“사막화가 많이 진행되었나 보군.”

“…….”

유릭의 말에 워렌이 입술을 물었다.

그들의 가문인 적마도가 아칸.

아칸의 영역은 남부 일대에 이르는데, 그중 절반은 대사막에 포함된 땅이었다.

나머지 절반에 아칸의 본가와 영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이다만.

‘불의 기운이 너무 강해서 사막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었지.’

아칸의 고질적인 문제이자, 역대 아칸의 가주가 항상 골머리를 썩이는 사안.

아칸이 뿌리내린 남부 땅은, 땅 자체가 품은 불의 기운이 너무 강하다.

그 덕분에 화염명가인 아칸이 자리 잡았던 것이지만, 그와 별개로 다른 쪽에선 문제가 터지고 있는 것이다.

강력한 불의 기운 탓에 산과 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

물론 사막화는 급속도로 찾아오진 않는다. 수십 년에 걸쳐 천천히 찾아온다.

하지만 그것 역시 재앙은 재앙이다.

해결하지 못하면 남는 건 가문의 쇠락, 그리고 멸망.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녹색 벌판을 물려주고 싶다. 황폐한 사막 따위 물려주고 싶지 않아.”

“그래서 숲의 근원을 모으고 있다고?”

“……그래. 나는 사막에서 살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 하지만 내 자식은, 기름지고 풍족한 땅에서 살았으면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이유였다.

할 수만 있다면 발 벗고 도와주고 싶을 정도로.

“그렇다고 남의 걸 뺏어가려 해? 니네 입만 입이고 우리 입은 입도 아니라 이거지?”

물론 놈들이 뺏으려는 게 우리 집 물건이 아니라면 말이다.

“흥. 로스카의 악적들이야 얼음만 먹으면 살 수 있는 거 아니었나? 푸른 숲 따위 너희들에겐 사치다.”

워렌이 표독스러운 눈으로 얘기했다.

“네가 지금 네 입장을 잘 모르는 모양이구나.”

유릭이 손가락을 들었다.

그제야 자신이 무슨 상황인지를 깨달은 워렌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가 어떻게든 유릭의 손가락을 피하려 몸을 비틀었으나, 묶인 몸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끄아아아아아악!”

한번은 멈췄던 비명 소리가 다시 연장되었다.

5분 후.

분근착골을 해제한 유릭이 워렌에게 물었다.

“너네. 긴급 시의 지원 요청은 어떻게 보내지?”

상대의 전력과 목적은 알았다.

이제는 놈들을 낚아 올릴 미끼가 필요한 때였다.

* * *

매의 눈으로 숲을 정찰하며 다니던 디우스가 멈칫했다.

그가 품속에서 작은 수정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수정구에선 미약한 빛이 깜빡깜빡 점등하고 있었다.

‘지원 신호!’

그건 동료로부터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는 신호였다.

디우스가 수정구를 들고 잠시 주변을 돌아다녔다.

수정구의 방향을 바꿀 때마다, 빛이 점등하는 주기가 변해갔다.

빛이 좀 더 빠르게 점등하는 쪽. 그쪽이 신호가 발신된 방향이다.

방향을 잡고 디우스가 빠르게 숲을 주파했다.

얼마 안 가 그가 한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신호는 동굴 내부에서 나오고 있었다.

“디우스. 너도 왔군.”

“라논.”

동굴 앞에는 다른 동료인 라논도 와 있었다.

“그렇다면 신호를 보낸 건 워렌이란 소리군.”

“그렇겠지.”

두 사람이 눈짓을 나누며 동굴 입구의 양옆에 섰다.

조심스러운 태도.

이곳은 적지고, 적지에서 동료가 지원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무리 신중해도 모자라지 않았다.

“안에서 느껴지는 건 불의 기운뿐이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겠군. 완전히 기척을 숨길 수 있는 강자가 얼음의 기운을 숨기고 있거나, 아니면 로스카와는 관련 없는 다른 사안이거나.”

“후자라면 문제없지만 전자라면 큰일인데.”

찌푸리며 말하는 라논의 말에 디우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마 전자는 아닐 거다. 그 정도의 강자라면 이런 함정을 팔 게 아니라, 마법진의 중앙으로 바로 달려갔을 테니까.”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새어 나오는 미약한 기운조차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강자라면, 이렇게 조심스레 행동할 리가 없다.

워렌을 붙잡아 고문하여 지원 신호를 알아내고, 그걸 이용해 동굴에 함정을 판다?

번거로운 건 둘째 치고, 시간이 너무 걸린다.

고로 이 안에 있는 건 로스카와는 관계없는 이레귤러란 말이었다.

“쳇. 무슨 몬스터라도 있는 건가?”

“그냥 함정에 빠져서 자력으로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워렌 녀석, 뭘 하고 있는 건지…….”

디우스와 라논이 투덜거리며 위장 망토를 둘렀다.

그러자 두 사람의 모습이 스르르 사라지곤 흐릿한 아지랑이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 상태의 두 사람이 동굴로 진입했다.

투덜대던 것과는 달리 둘의 눈빛은 신중하고 날카로웠다.

로스카가 아니라고 해도 이 동굴 안에 미지의 위험이 있는 건 사실이니까.

그렇게 그들이 대여섯 걸음, 딱 대여섯 걸음 걸어 들어갔을 때.

-도, 도망쳐라!!

동굴 안쪽에서 워렌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디우스와 라논이 흠칫 몸을 떨었다.

“늦었어.”

푹.

섬뜩한 소리와 함께 디우스의 가슴에서 칼날이 돋아났다.

위장 망토가 벗겨지며 디우스의 경악한 표정이 드러난다.

그가 떨리는 눈으로 자신을 찌른 검을 내려다볼 때.

유릭은 이미 옆에 있는 라논을 덮치고 있었다.

그의 주먹이 라논에게 작렬했다.

콰광!

주먹에서 발사된 파이어 볼트가 동굴의 벽을 때렸다.

간신히 상체를 비틀어 피한 라논이 식은땀을 흘렸다.

동굴 벽이 부서져 내릴 정도의 일격.

만약 맞았다면 최소 중상이다.

“누, 누구냐!”

라논이 벽을 등지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워렌의 위장 망토를 뺏은 건가!’

걸쳤을 때 사용자를 은신 상태로 만들어주는 망토.

주변의 빛을 굴절시켜 모습을 사라지게 하는 물건으로,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는 무언가가 남는 불완전한 아티팩트다.

다만 그 단점도 이런 어스레한 동굴에선 상쇄되고도 남았다.

“큭…….”

라논이 식은땀을 흘리며 주변을 계속 경계했다.

이 동굴 속에서 위장 망토를 알아채는 건 극히 힘들다.

하지만 소리라면 다르다.

위장 망토는 빛을 굴절시키는 망토로, 소리까지 없애주는 건 아니니까.

“…….”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놈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웅크리고 있단 증거였다.

라논에겐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어차피 자신의 임무는 적극적으로 뭘 하는 것이 아니다.

대장이 숲의 근원을 뽑아낼 때까지 방해꾼을 막는 것.

여기서 계속 시간을 끈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임무 완료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꼼짝 않고 경계할 때.

“라, 라논. 커헉!”

“디우스!”

칼에 찔려 쓰러진 디우스가 라논을 불렀다.

동료의 상태를 본 라논이 눈을 크게 떴다.

틀림없이 일격에 심장이 뚫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의 위치는 심장에서 많이 비껴가 있었다.

결코 즉사하지 않을 위치.

“큭!”

까득-

라논이 이를 갈았다.

완벽히 기습에 성공한 적이 어째서 디우스의 심장을 찌르지 않았는가.

이건 실수한 것이 아니다. 일부러 그런 것이다.

이유는 하나.

‘나보고, 먼저 움직이라고 하는 거냐!’

자신을 초조하게 만들기 위해.

초조하게 만들어서, 빈틈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

본디 전쟁에서도 전투 불능이 된 적병은 굳이 확인사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 명의 사망자보단 한 명의 부상자가 아군에겐 더 큰 부담이 되니까.

이 어둠 속의 적은 상당히 전쟁에 익숙하단 뜻이었다.

“사, 살려줘. 빨리 처치를…….”

디우스가 애원한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미약하여 당장에라도 꺼질 것만 같았다.

라논이 그를 보았다.

당장 지혈하고 응급처치를 한다면 살아날 수 있을지도 모를 동료를.

‘미안하다.’

라논의 눈이 차갑게 물들었다.

그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손가락 두 개로 소매 속에 숨겨둔 비도를 잡아, 튕기듯이 던진다.

눈 깜짝할 새에 디우스의 미간에 비도가 박혔다.

“라, 논…….”

디우스의 눈에서 빛이 사라져 간다.

라논은 죽어가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며,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르는 적의 공격을 대비하고 있을 뿐.

“너, 꽤 매정한 놈이구나?”

“큭! 어디냐!”

목소리가 들려와 라논이 당장 그쪽을 돌아보았다.

그러곤 멈칫 굳어버리곤 말았다.

“어, 어린애?”

망토를 벗은 유릭을 라논이 경악스럽게 쳐다보았다.

적은 전쟁에 익숙한, 예를 들면 노회한 용병 같은 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노회는커녕, 아직 아이가 아닌가?

“망설임 없이 동료를 죽이다니. 아칸 놈들은 피도 눈물도 없구만.”

유릭이 히죽거리며 얘기했다.

그러나 라논을 노려보는 그의 눈만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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