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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35화 (35/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35화

35화. 이럴 줄 알았다

“끄아아아악!”

잘린 손목에서 피가 튀어 오른다. 부하 기사 한 명이 급히 다가와 천으로 상처를 동여매었다.

하얬던 천이 금세 붉게 물들었다. 콧수염이 오러를 일으켜 강제로 손목을 지혈했다.

“고, 공자. 왕국의 행사를 방해하지 마시오. 저자들은 죽어 마땅한 죄인들이외다.”

희번덕한 눈으로 유릭을 쏘아 보면서도 콧수염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

그 근성만큼은 감탄스러웠다. 제 손목을 자른 상대에게마저 냉정해질 수 있다니.

“거짓이오! 이쪽은 스카디 왕국의 단 하나뿐인 후계이신 리헨델 왕자 저하시오! 저자들은 저하를 암습하려 한 역적들이외다!”

뒤쪽의 노기사가 발작하듯 소리쳤다.

아니스가 눈을 크게 떴다. 아이의 정체에 놀란 모양이었다.

그러나 콧수염은 더욱 뻔뻔하게 나갔다.

“에에잇! 감히 왕자 저하의 이름까지 사칭해! 그것만으로 즉결 처형감이다! 가랏! 죽여!”

노련한 판단이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유릭 일행이 헷갈려 하고 있을 때 빠르게 일을 진행시키겠단 수작.

부하 기사들이 발소리를 울리며 달려들었다.

“도련님.”

아니스가 급히 유릭을 보았다.

어찌해야 할까요. 그녀의 눈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누가 진짠지 쉽게 아는 방법이 있지.”

유릭이 옆으로 한걸음 이동했다. 그렇게 물러서는가 싶더니.

휙!

<화룡검화>를 두른 녹시아를 허공에 냅다 휘둘렀다.

화르르륵!

검에서 쏘아진 불길이 왕자 일행과 달려들던 기사들 사이를 가로질러 불의 벽을 만들었다.

왕자 일행이 불의 벽에 갇히자 둘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려왔다.

“고, 고맙소이다!”

“이게 무슨 짓인가! 내 그렇게 얘기했건만 아직도 방해할 셈인가!”

갇힌 노기사는 한숨 돌렸다는 듯이 크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반대로 콧수염은 초조한 듯 발을 동동 구르며 날뛰고 있었다.

유릭이 그들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급할 이유가 없는데 급하다면 찔리는 게 있다는 말이지.”

“그, 그렇군요.”

확실히 콧수염의 말이 사실이라면 전혀 급할 게 없다.

죄인이라던 이는 이미 불의 벽에 갇혀 있는데 뭐하러 화를 낸단 말인가?

‘이 급박한 상황에서 그런 판단을…….’

이런 상황에 능숙한 판단을 내린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직접 실행까지.

아니스는 그 판단력과 결단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누가 지금의 도련님을 가문을 나와본 적이 없는 온실 속 화초라고 생각하겠는가?

“…….”

이 이상 말로는 해결할 수 없다 생각했는지 콧수염이 한껏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분노를 채 참지 못하는 목소리로 명령했다.

“이렇게 된 거 모조리 죽여라! 어느 나라의 공자인지 이젠 상관없다. 그냥 다 죽이면 돼!”

“예!”

“알겠습니다!”

전원을 몰살하라는 명령을 기사들이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애초에 왕자 암살 명령을 받아들였다는 것부터 그들 역시 뒤가 없는 이들이란 얘기였으니.

지나가던 목격자를 처리하는 것 정도는 당연하게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아니스!”

“예.”

카앙—!

아니스가 검을 긋는다.

허공에 한줄기 잔상과 함께 결로가 맺혔다. 얼음결정이 비산하며 기사들의 돌격을 막았다.

“조심해라! 상당한 실력자다!”

그 한 수에도 경지가 엿보인다.

이곳에 있는 그들은 6성의 기사들이었지만, 상대는 그런 자신들보다 더욱 강했다.

“도련님껜 손가락 하나 댈 수 없다.”

아니스가 보인 무위로 기사들을 움찔거리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사이 유릭은 벽 쪽으로 들어갔다.

스스로 일으킨 불의 벽의 안쪽, 왕자와 노기사가 보호받고 있는 그곳.

“…….”

“…….”

기사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다.

이런 전투 상황에선, 서로의 승리조건을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자신들의 승리 조건은 눈앞의 여기사를 처치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지키고 있는 뒤쪽의 왕자와 귀공자를 처리하는 것.

“하압!”

두 명의 기사가 아니스의 오른쪽에서 달려들었다. 검에 덧씌운 오러는 그들이 확실히 6성의 기사란 것을 알려 주었다.

챙! 채채채채챙!

첫 스타트를 두 명이 끊었을 뿐, 남은 기사들도 쉼 없이 아니스에게 검을 날렸다.

아니스는 노기사보다는 쉽게 그것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손이 어지러워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지금이다!”

그사이 유달리 체구가 작은 기사가 옆구리 쪽으로 빠져나갔다.

기사들의 작전은 간단했다.

누구라도 좋으니, 우리들 중 한 사람만 여기사를 뚫고 지나가면 된다.

그리고 왕자를 죽이고 귀공자를 인질로 잡으면 끝.

‘뚫었다!’

작은 체구의 기사가 불의 벽에 달려들었다.

로스카의 꼬맹이가 피워올린 불이 있지만 별반 두렵지 않았다.

그까짓 것 오러로 흩어내면 그만이다.

그때.

—콰득!

“컥……?”

기사의 등판 쪽 갑옷이 종이 쪼가리처럼 찢기며 피가 치솟아 올랐다.

아무도 공격하지 않았다.

동료 기사들은 물론이고, 아니스 역시 다른 이들의 검을 막느라 작은 체구의 기사를 벨 순 없었다.

하지만 공격당했다.

작은 체구의 기사가 힘없이 동굴 바닥에 엎어졌다.

그의 등에 남은 상흔은 마치 맹수의 발톱에 찢긴 것처럼 보였다.

“어딜 가려고.”

아니스의 차디찬 목소리가 남은 기사들의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제길!”

반대편에서 기사 하나가 아니스의 옆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결과는 똑같았다.

콰드득!

“끄아아아악!”

아니스의 검은 그쪽을 향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나타난 푸른 참격이 기사의 어깨를 길게 베었다.

두 번을 보고 나서야 남은 기사들은 자신들을 공격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저, 정령인가?”

아니스의 검과 연결되어 있는 흐릿한 푸른 빛.

그 빛의 끝에는 반투명한 실루엣의 푸른 늑대가 자리해 있었다.

아니스의 가문인 펠트릭 가에 전해오는 수호령 <프로스트 팽(Frost fang)>.

그 한 마리의 늑대가 다가오는 기사들을 모조리 처치하고 있던 것이다.

“젠장! 저년을 먼저 노려!”

아니스와 정령 둘 모두를 무시하고 지나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기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앞에서 버티고 있는 아니스를 꺾는 일뿐이다.

술사를 처치하면 정령도 사라질 테니 그것은 옳은 판단이었다.

“하아아압!”

“…….”

하지만 아무리 옳은 판단을 내려도 실행할 힘이 없으면 속수무책.

아니스의 눈이 흉흉히 빛나기 시작했다.

뒤쪽에 있는 늑대와 무척이나 닮은 눈빛으로.

동시에 그녀의 검 역시 한층 더 빠르고 사납게 돌변하였다.

캉! 카강!!

방금까지만 해도 가지런히 정돈된 귀족 검술과 같은 인상이었다면, 지금 이 순간을 경계로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본능에 몸을 맡기는 맹수와 같은 검격.

갑작스러운 변화에 기사들은 혼란스러워 제대로 된 연계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악!”

“잡아! 잡으라고!”

동굴 내에 기사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소리는 불의 벽 뒤에 있는 유릭과 왕자 일행에게까지 생생하게 전해졌다.

저 상태라면 당분간은 괜찮겠지.

유릭이 아니스 쪽을 일별하곤 덜덜 떠는 왕자와 노기사를 응시했다.

“왕자라고 했나?”

새파랗게 어린 유릭의 입에서 반말이 나왔지만 노기사는 지적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도 빛을 잃지 않은 눈빛. 품위를 잊지 않는 행동거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상대는 지체 높은 가문의 자제가 분명했다.

“그, 그렇소! 스카디의 적통을 이은 리헨델 저하시오. 부디 저 부덕한 무리를 무찔러 주지 않겠소? 반드시 왕궁에 보고하여 섭섭지 않게 사례하리다.”

정체와 요구사항, 그리고 보상까지.

노기사가 핵심만 빠르게, 그러나 예의를 잃지 않은 말투로 얘기했다.

“하나뿐인 왕자를 암살이라……. 그러고 보니 스카디는 왕이 요절하고 왕비가 섭정 중이라 했던가?”

“맞소.”

“알 만하군. 왕의 동생인 크라우 공작이 그렇게 탐욕스럽다지?”

“!”

이미 아는 정보를 적당히 얘기했을 뿐이지만, 듣는 노기사의 눈은 동그랗게 커졌다.

대체 어느 가문의 사람이길래 왕궁의 내밀한 사정을 이리도 잘 안단 말인가?

“아니스. 무슨 얘긴지 알겠지?”

채채채챙!

유릭이 검 소리가 들리는 불의 벽 너머에다 대고 얘기했다.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 말고도 기사들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목소리, 그리고 간간이 비명 소리도 들려왔다.

“이들을 놓치면 크라우 공작의 기사가 들이닥칠 거란 얘기군요.”

그 소란 속에서도 아니스는 유릭의 목소리를 기막히게 알아들었다.

그녀의 중얼거림에 기사들이 식은땀을 흘렸다.

이미 동료가 다섯이나 죽어 나자빠졌다. 그런데 상대는 숨을 헐떡이긴커녕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냉담한 표정.

유릭을 지키는 이 얼음의 방패를, 그들은 도저히 뚫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큭! 전원 산개! 임무는 실패했다! 한 사람이라도 살아서 바깥에 지원 요청을 하도록!”

콧수염이 아드득 이를 갈며 소리쳤다.

타탓!

기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땅을 박차고는 뿔뿔이 흩어졌다.

바위를 들어 올리면 순식간에 도망치는 벌레들처럼.

“모조리 잡아 와.”

“네.”

“알겠습니다.”

유릭의 명령에 아니스는 물론 글렌도 그림자에서 나와 기사들을 쫓았다.

“나도 다녀오지. 하나라도 놓치면 골치 아프니.”

유릭 역시 녹시아를 들곤 콧수염이 사라진 곳을 쫓았다.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이곳은 로스카가 아닌 스카디. 적의 앞마당이다.

지원이라도 몰려오는 날엔 여러모로 복잡해진다.

“하아…….”

둘만 남은 노기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왕자를 돌아보았다.

“저하,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으, 응. 경이 지켜준 덕분에 괜찮아요.”

리헨델 왕자가 아직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창백해진 얼굴을 보니 아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진 못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외상은 없다는 사실에 노기사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말 다행입니다. 이름 모를 은인 덕분에 살았군요.”

“대체 누구일까요? 실력이 굉장한 것 같았는데.”

“타국의 귀족임은 확실해 보입니다만…… 그 이상은 모르겠습니다. 돌아오면 물어보도록 하죠.”

“응.”

후우, 하아. 왕자가 심호흡을 한다.

최대한 침착하려 애쓰는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또 안타까웠다.

본래라면 아무 걱정 없이 뛰놀 나이인데…….

“걱정 마십시오, 저하. 도시로 돌아가 영주성에만 도착하면 위협은 모두 사라집니다. 그웬델의 영주는 왕비 전하의 편이니까요. 그때까지 이 불초 파비스가 지켜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파비스 경.”

든든한 노기사의 말에 왕자가 작게 안심했다.

그때.

“그러다 제 명에 못 간다고 얘기하지 않았나, 파비스 경.”

비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기사가 흠칫 떨면서 재빨리 일어나 자세를 취했다.

“킥킥킥.”

손목이 잘린 콧수염의 기사가, 남은 왼손으로 검을 들고 서 있었다.

얼굴엔 땀이 가득하고 오른손은 잘린 상태, 언제나 잘 정리해 뒀던 콧수염 역시 지금은 흐트러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쥔 검의 예기는 그대로였다.

“네, 네놈이 어찌……!”

“이 중요한 임무를 놔두고 도망칠 리가 있나. 도망간 척을 하고 근처에 숨어 있었지.”

콧수염의 눈에 귀기 어린 빛이 비쳤다. 그가 칼을 들어 올렸다.

“경이 왕자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것처럼, 나 역시 공작 각하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릴 수 있음을 알아라!”

오러를 두른 검이 떨어진다. 노기사가 급히 얼마 남지 않은 마나를 바닥까지 긁어모아 검에 둘렀다.

오러는 오러로만 맞부딪힐 수 있다.

하지만 노기사의 그것은 콧수염의 귀기 어린 오러에 비해 조금 미약했다.

“크하하! 겨우 그걸로 막을 생각이냐!”

“그아아아아!”

서로의 목숨, 그리고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걸고 두 검이 쇄도한다.

양측의 오러와 오러가 서로 부딪히려는 순간.

캉!

사이로 끼어드는 검이 있었다.

일렁이는 오러를 담은 두 검과 달리, 한 점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맨 검.

그러나 그 검은 두 오러를 너무나도 간단히 받아내었다.

“!”

노기사도, 그리고 콧수염도 눈을 크게 떴다.

그 검의 끝에는, 투명한 망토를 벗는 유릭이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 그냥 도망갈 리 없지.”

유릭이 코웃음 치며 망토를 벗어 던졌다.

왕자 암살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이런 식으로 내팽개칠 리 없지.

목숨을 걸고서라도 완수하러 올 것이 분명하다.

그런 생각에 유릭은 위장 망토를 걸치곤 근처에 잠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콧수염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이 자……! 컥, 커헉!”

다시 한번 핏대를 세우려는 콧수염의 목을 유릭의 검이 푹 찔렀다.

켁켁거리는 바람 빠진 소리만 들리길 수차례.

이윽고 콧수염이 쓰러졌다.

초점 없는 텅 빈 눈에는 이미 생명의 기색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녀왔습니다.”

“다 처리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니스와 글렌도 목적을 달성하곤 돌아왔다.

즉 도주했던 기사들을 모조리 죽였다는 뜻.

꿀꺽.

태연하게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는 세 사람을 보며 왕자와 노기사는 파르르 떨고 있을 뿐이었다.

“으, 은공들께 감사를 표하오.”

혹시라도, 승냥이를 막겠다고 호랑이를 끌어들인 것이 아닐까.

그런 불안감에 휩싸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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