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38화
38화. 정면으로 간다
—큭, 이쪽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마라! 따돌려질 우려가 있다!
공작의 기사들은 동굴 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길고 넓은, 그리고 복잡한 수정개미의 굴.
산을 모두 포위할 정도의 병력을 끌고 오지 못한 기사들은 깊이 추격할 수가 없었다.
“이쪽으로 가죠. 최대한 반대편 출구를 노리겠습니다.”
그걸 이용해 아니스는 굴의 다른 쪽 출구를 찾고 있었다.
놈들은 왕자를 암살하려 하고 있다.
암살이란 다시 말해, 남들에게 들키지 않게 죽이려고 한다는 말.
그러니 어떻게든 바깥으로 나가면 그것으로 되었다.
‘이 산엔 트레져 헌터가 잔뜩 모여 있으니까.’
보물찾기를 한답시고 발에 챌 정도로 몰려든 트레져 헌터들.
그 인파로 뛰어들 수 있다면 암살의 위협에선 벗어난다.
“반대쪽에도 기사들이 있지 않겠소?”
파비스의 의문에 아니스가 고개를 저었다.
“산 전체를 포위할 정도의 인원이 있다면 굳이 마스터를 불러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적의 인원이 많지 않다는 얘기겠죠.”
“확실히…….”
“적은 아마 최대한 이 굴 안에서 일을 해결하려 할 겁니다.”
그러니 자신들은 바깥으로 도주한다.
하지만 들어온 쪽의 입구는 이미 적들이 막고 있을 터.
반대편의 입구를 찾아야 했다.
“엘가이아 경이 왔다고 들었을 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상황이 절망적이진 않군.”
“이 굴이 복잡한 미로여서 살았습니다.”
단순한 형태였다면 마스터가 쳐들어오고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실타래같이 얽혀 있는 동굴에다 출구도 못해도 수십 군데는 된다.
이런 굴속에서 적을 찾아내 베는 것은 마스터라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글렌.”
“예.”
아니스의 부름에 글렌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곧 키에에에엑! 하는 소리와 함께 수정개미가 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뚫은 길로 다른 일행이 달려나갔다.
‘나쁘지 않아.’
빠르게 달리면서 아니스가 호흡을 골랐다.
괜찮다. 도망칠 수 있다.
마스터가 와 있다 하더라도 정면 승부만 아니라면 몸을 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녀도 7성의 기사가 아닌가?
‘밖으로 나가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면 도련님도 무사하실 거야.’
영주성에 지원 요청을 해도 되고, 정 급하면 주변의 트레져 헌터들을 끌고 와도 되었다.
비늘을 보여주며 레어를 발견했다 하면 득달같이 달려들 터.
보는 눈이 많아지면 적들은 결코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그러니 무사히 나가기만 하면 끝이야.’
그것만으로 자신들의 승리다.
아니스는 가팔라져 오는 심장 소리를 죽이며 일행을 이끌었다.
몇 차례나 막다른 길에 부딪혀 되돌아오고, 다른 길을 찾아 떠나고.
한참을 헤맸지만 일행의 표정은 결코 어둡지 않았다.
공작의 기사들은 이렇게 깊이 들어오지 못하니, 출구를 찾을 시간은 충분했다.
언젠가 하나는 찾을 것이고, 그렇게만 되면 모든 게 해결된다.
그런 생각에 동굴 내를 방황하고 있을 때.
“!”
아니스가 몸을 흠칫했다.
방금 수상쩍기 그지없는 마력을 감지했다.
그 마력의 느낌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탐색의 마법.
“파비스 경!”
아니스가 급히 파비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파비스가 반사적으로 검 손잡이를 잡았지만 그보다 아니스가 빨랐다.
서리 마나가 깃든 아니스의 검이 파비스의 머리 위.
떨어지는 참격을 막아냈다.
키—잉!
콰과과과과과광!
“큿!”
아니, 사실 막아내진 못했다. 온 힘을 다해 간신히 궤도를 비틀었을 뿐.
파비스의 머리를 쪼갤 듯이 날아온 초승달의 참격은, 그의 오른쪽 벽을 무참히 박살 내었다.
“허, 허억!”
한발 늦게 이 노기사가 발작하듯 몸을 떨었다.
자신은 눈치채지도 못했다.
아니스가 아니었다면 이미 두개골이 쩍 벌어져 뇌수를 흩날리고 있었을 터.
“이건 대체!?”
아니스가 전투태세로 임하며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참격이 날아온 위쪽 천장도 멀쩡하단 점이었다.
분명 위쪽에서 떨어져 내렸는데 동굴의 천장은 베이지도 부서지지도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조, 조심하게! 엘가이아 경이다!”
파비스가 외친다. 그건 알고 있다.
7성인 아니스가 온 힘을 다해도 궤도를 비트는 게 전부인 참격이라면, 당연히 마스터가 휘두른 것이겠지.
근데 대체 어디서?
천장은 왜 멀쩡한 거지?
“위쪽을 조심하고! 멈춰 서선 안 되오! 최대한 빨리 도망쳐야 하오!”
설명할 시간 없다는 듯 파비스가 재촉했다.
그리고 그때.
쌔애애애애애액!
마치 유령과 같이 동굴의 천장을 통과하며, 두 번째 참격이 떨어져 내렸다.
* * *
연한 금발의 사내가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다.
눈에 박힐 듯한 선명한 금색의 오러.
높은 곳 특유의 거센 바람에 어깨에 걸친 망토가 펄럭였다.
사내, 엘가이아 로젠베르그가 서 있는 곳은, 산의 정상이었다.
“내 검을 쳐내다니, 파비스 영감한텐 무리일 텐데.”
“아무래도 강력한 호위가 붙은 것 같습니다. 뭉쳐 있는 생명체의 숫자는 총 넷. 왕자와 파비스 경을 빼면 둘입니다.”
“그 두 사람의 실력이 제법인 듯하군.”
엘가이아가 피식 웃었다.
역시 왕자 측에서도 한 수를 숨기고 있었나.
어쩐지 계획이 쉽게 흘러가나 싶더라니.
“계속해서 위치를 보내도록. 네 명 모두 베면 그중 하나는 왕자겠지.”
“예.”
엘가이아의 옆에서 무릎 꿇고 있는 남자는 마법사였다.
짙은 황토색의 로브로 전신을 감싸곤 두 손, 두 발을 모두 지면에 대고 있다.
그의 마법이 이 넓은 산에 퍼지며, 지하의 인간들의 위치를 파악해 냈다.
그렇게 파악한 위치를 전달 마법으로 엘가이아에게 전달.
그리고 엘가이아는.
휘익!
검을 휘두른다.
식별된 적을 참살하기 위해.
그의 검에서 쏘아진 금빛 참격이 땅속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지면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흙도 바위도 나무뿌리도, 지하 동굴의 암석도 통과하며 그의 적들만을 노린다.
그건 도저히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었다.
“경의 검은 볼 때마다 감탄 밖에 나오지 않는군요. 소드 마스터들은 모두 그런 검을 쓰는 겁니까?”
분명 그는 검을 익힌 검사다.
지금 보여주는 것도 검술의 끝에 다다른 경지 중 하나.
그런데 어떻게 된 게, 어지간한 마법보다도 더욱 마법 같았다.
“베어야 할 것을 베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것. 기사라면 당연히 숙지해야 할 일이다.”
마법사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저 말은 알고 있다. 기사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기사도의 맹세 제3항.
하지만 3항의 뜻이 이런 마법 같은 검술을 뜻하는 것이 아닐진대…….
‘수천 갈래로 갈라진 물줄기도 그 끝은 모두 하나의 바다로 통한다고 하더니, 그게 이런 걸 말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마법사는 계속해서 적들의 위치를 탐색했다.
그 정보를 전달받아 엘가이아가 검을 휘두른다.
하지만 표정이 영 좋지 못했다.
이미 대여섯 차례 참격을 날렸으나 적을 베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7성 수준의 호위가 붙어 있군.”
“……왕자 측도 꽤 힘을 썼군요.”
7성의 검사, 혹은 마법사는 결코 흔하지 않다.
그런 이를 왕자의 보물찾기 나들이에 호위로 붙이다니.
혹시 이번 암살 계획을 미리 알고 있던 것일까?
‘그러면 큰일인데.’
그렇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금 그들이 이 장소에 있는 것부터 위험했다.
설령 왕자를 처리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현행범으로 잡힌다면 아무런 소득이 없다.
오히려 자신들은 국민의 공분만 사게 되고, 왕비 측은 더욱 결집하여 이쪽을 몰아붙이겠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탐색 마법을 이어가던 중.
마법사가 움찔했다.
“왜 그러지?”
“동굴 깊숙한 곳에서 생명 반응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나타나?”
이상한 일이다. 동굴 안에서 갑자기 나타나다니.
“모종의 아티팩트로 탐색을 피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응은 하나. 한 명입니다.”
“그 한 명이 왕자일 가능성은?”
마법사의 탐색 마법은 생명체의 숫자는 알아도, 그 정체까진 알지 못했다.
“어린 왕자가 혼자 남겨졌을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아티팩트를 사용해 탐색을 피하고 있었다는 점이 걸립니다. 앞선 무리는 미끼고 이쪽이 진짜일 가능성도 어쩌면…….”
“그럼 베지.”
왕자든 아니든 죽이면 그만이다.
엘가이아가 검을 치켜들었다.
선명한 황금빛 오러가 검을 감쌌다.
일반적인 기사들처럼 넘실거리는 오러가 아닌, 마스터 특유의 단단히 정제된 오러.
휘익!
새로이 나타난 생명체를 향해, 그가 검을 휘둘렀다.
* * *
새끼 호랑이를 안은 유릭이 레어로 향했다.
메르베키아가 만든 통로를 타고 오르며 둘은 두런두런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 녀석 성별이 뭐야?’
인간 사회에 나도는 드래곤 관련 서적에는 드래곤의 성별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혹자는 드래곤은 하나로 완성된 생명체라 구분화된 성별 따위 없다 그러고, 혹자는 다른 생물들처럼 남성 여성의 구분이 있다 그러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메르베키아는 자신을 같은 드래곤이라 착각하고 있는데 물어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예를 들어.
-너 남자냐 여자냐?
-넹? 드래곤은 성별 없잖아요? 그런 당연한 걸 왜……. 설마 당신! 날 속였어!
이런 전개가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결국 궁금증은 풀리지 않은 채 유릭은 레어에 도착했다.
레어의 상태는 그가 내려갈 때와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런데.
‘……?’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진다.
그의 감각이 경종을 울렸다.
이 감각, 예전에 분명 느껴본 적이 있다.
과거 용병 생활을 하던 중, 적의 마법사가 탐색 마법을 펼쳤을 때.
‘탐색당한다?’
유릭의 표정이 굳었다.
탐색을 당한다는 건 즉, 이미 적의 사정거리에 포착되었다고 봐야 했다.
“큭!”
순간 온몸의 솜털이 곤두선다. 유릭이 급히 몸을 굴렀다.
서걱! 콰과과과과과광!
황금빛 초승달 같은 참격이 날아와 방금까지 그가 서 있던 곳을 무참히 베어내고 지나갔다.
“뭐지?”
등골이 서늘했다.
참격이 날아온 천장을 바라보았지만 적은커녕 수상한 물체조차 없었다.
심지어 천장이 무너지지조차 않았다!
—오. 일천(一天)의 문 앞에 선 인간이 있네요.
품 안의 새끼 호랑이가 얘기했다.
일천의 경지는 인간들로 치면, 정확하진 않지만 9성의 경지와 비슷하다 하였다.
그 문 앞에 섰다는 건, 바로 아래인 8성의 경지라는 뜻.
‘마스터!’
마스터급의 인물이 자신을 공격하고 있단 뜻이다.
서걱! 콰과과과과과광!
다시 날아온 두 번째 참격을 가까스로 피하며 유릭이 통로로 뛰어들었다.
식은땀이 절로 났다.
방금 참격으로 옷깃이 살짝 베였기 때문이다.
“메르베키아! 어떻게 뭐 좀 안 돼?”
유릭이 통로로 뛰어들며 얘기했다.
메르베키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행 중엔 본신의 힘을 쓰면 안 되는 게 일족의 규칙이잖아요. 지금 저는 새끼 호랑이에 불과한데 뭘 어떻게 하겠어요?
젠장, 그런 규칙이 있었어?
유릭이 몸을 던져 세 번째 참격을 피해냈다.
덕분에 자신이 이렇게 굴러도 메르베키아의 착각이 풀리지 않는 것은 좋지만, 용의 힘이면 무슨 임무든 쑥쑥 해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사라져 버렸다.
‘일단 뛰자!’
유릭이 발, 특히 발바닥을 중심으로 내기를 끌어올렸다.
빠르게 달려야 할 때는 하체의, 그중에서도 발바닥이 가장 중요하다.
강하게 땅을 박차며 그의 신형이 동굴을 쭉쭉 가로질렀다.
서걱! 콰과과과과과광!
“큭!”
빨라진 속도를 예측한 듯 참격이 저 앞에 떨어진다.
유릭은 능숙히 속도를 줄여 피했다.
빠르게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하면서도, 동시에 최고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안 됐다.
적이 예측할 수 없게 조절을 하면서.
굴 내부는 양옆으로 피할 곳이 한정되어 있기에 속력으로 심리전을 거는 것이 적지 않게 중요했다.
-캬! 역시 어르신이세요! 5성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의 몸으로 8성의 검을 피해내다니!
남의 타는 속도 모르고 메르베키아는 느긋하기만 했다.
말투만 봤을 땐 드래곤이 아니라 웬 애새낀가 했지만 마스터의 검격 속에서도 태연한 걸 보면 역시 드래곤은 드래곤이다.
팝콘 하나 쥐여주면 딱 어울리겠네.
‘후우.’
유릭이 침착하게 호흡을 골랐다.
‘참격이 막무가내로 떨어지고 있진 않아.’
쏟아지는 참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면서도, 유릭의 머리는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기계가 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공격인 이상 반드시 일정한 의지가 깃들어 있을 터.
‘날 동굴 안쪽으로 유도하고 있어.’
아니, 정확히는, 출구에서 멀어지도록 하고 있다.
‘이 굴 안에서 끝장낼 생각인가? 탐색 마법의 범위가 그렇게 넓어?’
탐색을 펼치는 마법사 역시 8성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히 고위의 인물인 듯하다.
이 굴만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결국 독 안에든 쥐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유릭이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싸움. 전투의 핵심은 상대가 싫어하고 꺼리는 일을 하는 것.
일단은 바깥을 향한다.
“!”
그때,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유릭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반짝이는 드래곤의 비늘 한 장.
이런 곳에서 발견될 물건이 아니다. 그렇다고 누가 실수로 흘렸을 리도 없다.
‘아니스다.’
아니스가 표식을 남긴 것이다.
뒤따라올 도련님이 합류해 주길 원하며.
그 비늘은 그들이 한 번 지나온 통로가 아니라, 더욱더 깊숙이 들어가는 통로로 향해 있었다.
그걸 보고 유릭이 즉시 방향을 결정했다.
아니스가 지나간 방향이 아닌, 반대 방향. 표식이 없는 쪽.
“정면으로 간다.”
답은 정면 돌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