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39화
39화. 가장 위험한 순간
콰과과과과과광!
무슨 전쟁 영화처럼 폭격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떨어지는 것이 폭탄이 아니라 오러라는 점과.
‘큭!’
무차별 폭격이 아니라, 자신을 핀포인트로 노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떨어지는 참격을 피해 유릭이 통로 안을 달린다.
그러나 다급한 상황과 반대로 그의 눈은 가라앉아 있었다.
‘여기선 정면으로 가야 해.’
그가 아니스와 합류하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간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적의 혼란을 유도하기 위해.
아니스와 갈라짐으로써 적에게 대처를 더 어렵게 하기 위함이었다.
‘어차피 마스터 앞에선 뭉치나 흩어지나 큰 차이가 없다.’
4명이나 5명이나 어차피 수틀리면 죽는다.
차라리 흩어짐으로써 표적을 늘리는 쪽이 훨씬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정면 출구 쪽엔 마스터가 없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참격의 각도가 거의 변하지 않았어.’
지금까지 꽤 먼 거리를 달렸다.
하지만 떨어지는 참격의 각도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명백했다.
적의 위치가 머리 위, 그것도 한참은 먼 위쪽이란 뜻이었다.
‘일단 출구 쪽은 절대 아냐. 어쩌면 산꼭대기일지도.’
참격이 떨어지는 경로를 따라 선을 그었을 때, 그 선들이 만나는 지점에 적이 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떨어진 참격의 경로를 모두 고려해보면 산의 정상이라 하여도 될 정도로 높은 곳이다.
그러니 정면 돌파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
“하아…… 하아…….”
유릭의 입에서 벌써 단내가 풀풀 나기 시작했다.
전신을 바짝 달리는 긴장.
피부가 어느 때보다 민감하게 공기를, 그리고 마나의 흐름을 감지한다.
마스터에게 노려진다는 상황이 그의 집중력을 평소보다 한층 더 높이 끌어올렸다.
그건 유릭 본인의 몸과 정신의 소모 따윈 고려치 않은, 폭력적일 정도의 상승.
흡사 생명력이 빨리며 그 대가로 집중력이 오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큭!”
서걱! 콰과과과과과광!
그러나 그 덕에 엘가이아의 참격을 피하고 있다.
힘들다고 불평할 상황이 아니었다.
-많이 힘드세요?
메르베키아가 느긋한 어조로 물어본다. 하지만 그에 답할 여유도 없었다.
양손에 방해되지 않게 새끼 호랑이를 머리에 얹은 채, 유릭이 달려나갔다.
모자라도 되는 것처럼 매달린 새끼 호랑이는, 유릭이 아무리 구르고 격하게 움직여도 껌딱지처럼 매달려 있었다.
콰과과과과과광!
‘최단거리로 간다.’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적의 검에 노출된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빠져나간 후에 사람이 많은 곳으로 나가는 게 최선이다.
콰과과과과과과광!
달리는 와중에도 몇 차례의 참격이 더 떨어졌다.
이쯤 되니 슬슬 참격에서 초조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니, 초조함이라기보다는…… 뜻대로 안 되는 것에서 오는 불쾌함.
떨어지는 참격에선 상대의 불쾌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사람이다!”
“왕자인가!?”
통로를 점거하고 있던 공작의 기사들을 만난 것은 그때쯤이었다.
6성의 기사들이 네 명.
좁은 통로 탓에 띄엄띄엄 서서 통로를 경계하는 중이었다.
“왕자가 아닌데?”
“일단 잡아!”
그들을 발견했음에도 유릭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녹시아를 쥔 채, 차분히 거리를 파악하고 있다.
그때쯤, 위쪽에서 떨어지던 참격은 멎어 있었다.
자칫했다간 같은 편을 죽일 수도 있을 테니까.
‘그냥 부하면 몰라도, 왕족 암살에 투입할 정도의 부하라면 죽일 수 없지.’
왕자를 암살하기 위해 투입된 기사들.
당연히 공작의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충성도가 높고, 신뢰를 받는 자들일 것이다.
‘그런 부하를 쓰고 버리는 말처럼 취급하진 못할 테니.’
그러니 훌륭한 방패가 될 수 있다.
버겁기만 한 마스터의 참격을 피할 수 있는 방패.
“죽여라! 목격자를 남겨선 안 된다!”
달려드는 유릭을 보며 기사들이 대기했다.
6성의 기사가 4명. 아무리 유릭이 평범한 5성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다 해도 버거운 전력이다.
평소의 유릭이었다면 확실히 애를 먹었겠지만.
-서걱.
“커허억!”
그의 검에 가장 앞에 있던 기사가 목을 움켜쥐고 쓰러진다.
나머지 세 명. 여전히 속도를 줄이지 않는 유릭의 눈은 잔뜩 피가 쏠려 충혈되어 있는 상태였다.
“마, 막아!”
“다리를 베라! 일단 멈추게 해!”
남은 세 명의 기사들이 달려든다.
한계 이상의, 그야말로 수명을 갉아먹는 것만 같은 집중 속에서, 유릭이 그들을 관찰했다.
어디를 어떻게 베고 지나가야 가장 빠를 것인지.
“후우.”
자신보다 경지가 높은 기사를 셋이나 두고, 유릭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편하군.’
마스터의 검이 떨어질 때와 비교하면 안방처럼 편안하다.
체력 포션이라도 먹는 기분으로 유릭이 검을 휘둘렀다.
* * *
“…….”
엘가이아가 불쾌한 듯 눈을 찌푸렸다. 마법사가 옆에서 그의 눈치를 보았다.
한 명 쪽도, 그리고 네 명 쪽도 모두 죽이지 못하고 있다.
그건 그의 자존심을 굉장히 상하게 하는 일이었다.
“와, 왕자는 네 사람 쪽에 있는 모양이군요.”
마법사가 조심스레 브리핑을 하였다.
엘가이아는 조용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한 사람이 남아 기척을 숨기고 있었는지…… 지금으로선 한 가지 가능성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뭐지?”
“한 명 쪽이 미끼인 게 아니라 왕자 쪽이 미끼인 겁니다.”
자신들의 시선이 왕자 쪽에 쏠려 있을 때, 몰래 숨어 있던 한 사람이 바깥에 나가 사태를 알리고 지원을 요청한다.
그것 외엔 상대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확실히.”
엘가이아도 납득했다.
“그렇다면 한 명 쪽을 확실히 죽여야 하겠군.”
그 눈에 살의가 깃든다.
검에서 풍겨오는 예기(銳氣)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그때, 마법사가 움찔거렸다.
“……우리 쪽의 반응이 사라졌습니다.”
“모두 죽었나?”
“아마도…….”
그리고 지금, 유릭과 조우한 기사들의 반응이 모두 사라졌다.
혹시 아군 쪽 기사가 살아남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살아남은 놈은 곧바로 출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적이 분명했다.
“…….”
엘가이아의 다리가 꿈틀거렸다.
놈이 나올 출구는 알고 있다. 지금 당장 내려가면, 놈이 나오기 전에 도착한다.
이렇게 오러만 날리는 게 아니라 이 손으로 직접 벨 수 있다.
“엘가이아 경! 왕자 쪽에서 움직임이 있습니다! 길을 찾았나 봅니다!”
쯧.
엘가이아가 혀를 차며 발을 멈췄다.
유릭과 왕자 쪽은 완전히 반대쪽 출구를 향하고 있다.
산을 둘러쌀 만한 인원이 없는 지금, 둘 모두를 막을 수 있는 건 산 정상에 있는 엘가이아뿐.
“어쩔 수 없군.”
두 반응이 같은 방향이었다면 산을 내려갔을 텐데.
반대편을 향하고 있는 이상 그럴 수도 없다.
그들의 목적은 ‘들키지 않고’ 왕자를 암살하는 것.
어느 한쪽이라도 놓쳤다간 이룰 수 없는 일이니.
‘급한 쪽은.’
먼저 처리해야 하는 쪽은 어딘가.
명백했다.
당장에라도 출구에 도착할 것 같은 유릭의 방향.
짙은 살의와 함께, 황금빛 오러가 다시 솟아올랐다.
* * *
유릭은 기사들을 처리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 대단하세요!
머리 위에서 새끼 호랑이가 반짝이는 눈으로 칭찬했다.
방금의 일전으로 메르베키아의 착각은 더욱 강고해졌다.
좁은 통로에서 한두 명씩 상대하였다고는 하나, 6성의 기사 넷을 모두 죽인 것이다.
평범한 5성의 인간에겐 결코 불가능한 일.
‘다시 노리기 시작하겠군.’
메르베키아의 말을 흘려들으며 유릭은 다시금 바짝 긴장했다.
두근, 두근!
힘차게 펌프질하는 심장이 전신의 혈류를 더욱 거세게 돌렸다.
콰과과과과과광!
아니나 다를까 다시금 참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탓!
유릭이 땅을 박찼다.
이젠 얼마 안 남았다. 기억대로라면 조금만 달리면 바깥으로 향하는 출구.
콰과과과과과광!
그 뒤로 2번의 참격을 더 피했을 때쯤,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굴 속 수정의 빛도, 스스로 띄운 붉은 불꽃의 빛도 아니다.
바깥세상의 빛이었다.
‘…….’
그걸 보고 유릭은 이제 살았다, 라는 생각보다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몸을 긴장시켰다.
‘저기만 넘으면 바깥…… 사람들은 금방 발견할 수 있겠지.’
이 산엔 트레져 헌터가 잔뜩 몰려 있다.
나가기만 하면 인파는 금세 발견하리라.
그러니 나가기만 하면 산다.
그것은 즉.
‘가장 위험한 순간.’
오늘 하루 중에서 어느 때보다 위험한 순간.
사냥감이 가장 위험한 순간은 도주에 성공했다고 안심했을 때.
유릭에게 있어 저 입구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상대도 같은 것을 노리고 있는지 참격이 잠시 멎었다.
자신이 동굴을 나가는 순간 벼르고 벼른 일격을 쏘아 보내리라.
몸을 구르고 땅을 뒹구는 정도로는 피할 수 없을 일격이.
‘…….’
유릭이 녹시아의 손잡이를 강하게 쥐었다.
화르르르륵!
불길이 피어오른다.
3중첩의 <화룡검화>. 용과 같은 3갈래의 불꽃이 녹시아의 검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과거와 같은 3중첩이었지만 그 위력은 차원이 달랐다.
애매한 3~4성 수준이었던 그때에 비해 지금의 유릭은 내기의 질부터가 달랐으니까.
“메르. 부탁 하나만 하자.”
-무슨 부탁이요?
메르베키아라는 이름은 매번 부르기엔 너무 길다.
대충 줄여 말하며 유릭이 풍령을 꺼내 메르의 손에 들렸다.
“그걸로 내 불꽃을 보조해 줘. 그 정도는 괜찮지?”
-그 정도라면 괜찮아요.
메르가 수긍하며 풍령을 받았다.
고행 중에 본신의 힘을 내는 것은 안 되지만, 그 생명체가 낼 수 있는 수준의 힘이라면 상관없다.
정령과 계약한 호랑이도 있는 마당에, 풍령 좀 울리는 호랑이가 있어도 이상하진 않을 테지.
띠링-
메르가 울리는 풍령의 소리가 유릭의 귓가에 파고든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뿜어져 나오는 바람은 거셌다.
좁은 동굴 속에서 폭풍처럼 이는 바람이 불꽃의 검에 모여들어 갔다.
검이 한층 더 밝게 타오르며 태양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그 불꽃으로.
‘<익스플로전>.’
유릭은 검면에 룬어를 새기기 시작했다.
<익스플로전>.
4성의 폭발 마법.
여러 술식을 섞어 뛰어난 위력과 범용성을 가지게 된 파이어 볼트와 달리, 오로지 ‘폭발’ 하나에만 치중한 기형적인 마법.
치이익—!
검면을 따라 룬어가 새겨진다.
불꽃으로 새겨진 룬이 붉게 빛나며, 그 검에 폭발의 속성이 깃들었다.
끼긱-
녹시아가 다소 버거운지 비명을 토해내었다.
3중첩의 검화에 드래곤이 불어넣은 풍령의 바람, 그리고 4성의 마법까지.
3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화력이었다.
‘좀만 참아.’
스스로의 애검을 달래며 유릭이 땅을 박찼다.
콰앙!
유릭의 신형이 쭈욱 늘어나는 듯한 착각마저 들며 그의 몸이 쏘아졌다.
녹시아의 검화가 길고 긴 잔상이 되어 동굴에 남는다.
목적은 하나.
—받아치시려구요?
“어.”
소드 마스터의 일격을 받아치는 것.
메르가 반짝이는 눈길로 유릭을 보았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자신이라면 무리다.
본신의 힘을 끌어온다면 모를까, 5성 수준의 인간의 몸이란 제약을 안고 마스터의 검을 받아칠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어르신이라면.
메르의 눈동자가 세로로 길게 갈라졌다.
그 눈이 호랑이의 것이 아닌 드래곤의 눈이 되었다는 사실을 메르는 눈치채지 못했다.
지식에 대한 탐욕.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것에 보이는 드래곤의 본능과도 같은 흥미.
메르의 눈이 바뀌었단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간다.’
불꽃의 길을 남기며 유릭이 동굴의 입구, 바깥세상을 향해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