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40화
40화. 격산타우
유릭이 바깥으로 나온 순간.
쌔애애애애애액!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황금빛 참격이 떨어져 내렸다.
거의 원에 가까울 정도로 끝과 끝이 닿아 있는 초승달의 검격.
그 참격이 향해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폭포가 쏟아지는 듯한 압력이 느껴졌다.
“큽!”
호흡을 고를 여유도 없다.
유릭이 굳게 입을 다문 채 하늘을 향해 녹시아를 휘둘렀다.
휘익!
카가가가가가강!
3중첩의 화룡검화. 익스플로전의 술식으로 폭발의 속성을 먹이고, 드래곤이 손수 조율해 주는 바람으로 화력까지 보충했다.
단전이 불타는 집과 같이 타오르며 혈관엔 피 대신 뜨거운 용암이 내달리는 것만 같다.
명실공히 지금의 유릭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일격.
그 일격은.
카가가가가강!
마스터가 조금 신경 써서 날렸을 뿐인 평범한 오러에 무참히 밀렸다.
쿵!
참격을 받은 유릭의 몸이 쭈욱 밀려나 나무를 부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러고도 엘가이아의 참격은 전혀 힘을 잃지 않은 채 유릭을 몰아세웠다.
쿠구구구궁!
밀려나는 유릭을 따라 몇 그루나 되는 나무가 부서지고 흙먼지가 자욱이 피어오른다.
등판이 찢어질 것만 같이 아팠다.
하지만 유릭은 등의 고통을 살필 수조차 없었다.
이 순간에도 초승달의 검기가 유릭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려 달려들고 있었으니.
“크윽!”
유릭이 부서져라 이를 악물었다. 녹시아에 새겨진 룬어가 한층 더 빛을 발했다.
“크아아아아아!”
뱃속부터 울리는 고함과 함께 유릭이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손등에 핏줄이 돋아난다.
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녹시아를 휘둘렀다.
피잉-
눈이 멀 것만 같은 하얀 빛이 모이며.
콰아아아아앙!
폭음이 산 전체를 울렸다.
하늘로 치솟는 불꽃의 기둥.
푸드드드득, 홰치는 소리와 함께 산속의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산짐승도 풀벌레도, 그리고 이 산에 모여 있는 트레져 헌터들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뭔가 발견됐나 보다!
보물에 무엇보다 민감한 그들은 즉시 불꽃이 솟아오른 장소를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산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릭이 피워올린 불꽃의 기둥을 향해.
“하, 하아…… 하아…….”
유릭은 전신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방금의 일격으로 초승달의 오러를 산산이 폭발시켰다.
그러나 엘가이아의 오러는 그것만으론 사라지지 않았고, 작은 파편으로 쪼개져 수류탄처럼 유릭의 몸에 박혀 든 것이다.
‘작은 건…… 그래도 막았군.’
불행 중 다행인 건 자잘한 조각들은 몸에 닿기 전에 증발시킬 수 있던 것이다.
큼지막한 조각 십수 개는 미처 막지 못했지만.
-괜찮아요……?
메르가 걱정스레 유릭을 불렀다.
“문제…… 문제없어. 일단 내려가자.”
흘러내리는 핏물. 삐걱거리는 몸과 욱신거리는 상처.
찌를 듯한 통증을 감내하며 유릭이 비틀비틀 산을 내려갔다.
* * *
“…….”
엘가이아는 말을 잃은 채 스스로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놈을 잡지 못해 느꼈던 불쾌감은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남아 있는 건 강렬한 인상과 선명한 불꽃의 감각뿐.
“엘가이아 경! 방금 불꽃을 보고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결국 놓쳤군.”
“아직, 아직입니다! 왕자는 아직 굴 안에 있어요! 지금 바로 죽이면 괜찮습니다!”
마법사가 으득, 이를 갈며 소리쳤다.
엘가이아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다.”
“왜입니까! 아직 조금이지만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마법사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지만 엘가이아는 검을 집어넣었다.
스릉-
탁.
작전 종료의 신호나 다름없는 소리.
“눈치 못 챘나? 아즐렛 영감이 와 있다.”
“……!”
아즐렛 뷜러.
그 이름에 마법사는 소리치는 것을 멈추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스카디의 궁정마도사. 엘가이아와 같은 8성의 경지에 있는 대마법사.
“그 나이에 팔팔하기도 하군. 대체 언제 은퇴를 하려는지.”
다만 같은 8성이라도 해도 노회한 아즐렛 쪽이 엘가이아보다 조금 더 노련했다.
물론 진짜로 싸워보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자리는 그들이 자웅을 겨룰 자리가 아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왕자 암살은 실패야.”
“크윽!”
쾅! 마법사가 분한 듯 땅을 내려쳤다.
역시 걱정했던 게 맞았다.
왕비 측에선 오늘의 암습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지하에 펼쳐두었던 탐색 마법을 거뒀다.
“영감 쪽의 동향에 유의하며 철수하도록. 우리의 흔적을 지우는 걸 최우선으로.”
“예.”
“그리고 각하께 전해라. 오늘 우리를 방해한 놈들.”
엘가이아가 떠올렸다.
마지막에 보았던 그 선명한 불꽃.
“아칸 쪽의 움직임을 조사해 봐. 왕비와 연결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알겠습니다.”
그만한 불꽃을 부릴 수 있는 곳은 정해져 있다.
고개를 숙이는 마법사를 일별하곤 엘가이아가 산 아래를 쏘아보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적이 보이는 것처럼.
‘다음에 만난다면…….’
녀석의 얼굴을 보진 못했다.
하지만 다시 만나면 알 수 있다. 엘가이아는 확신했다.
그렇게 강렬한 불꽃이 잊힐 리가 없었으니까.
* * *
당장 쓰러지고픈 욕구를 견디며 유릭이 간신히 도시로 돌아왔다.
도시는 아침보다도 훨씬 더 어수선해져 있었다.
산에서 무언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퍼지며 쉬고 있던 트레져 헌터들이 일제히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흐름과 정반대로, 철수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크라우 공작의 기사들이었다.
그들은 산을 향하는 인파의 파도를 거슬러 누구도 모르게 도시를 빠져나갔다.
소드 마스터 엘가이아와 그를 비롯한 기사들이 그웬델에 왔었다는 흔적은, 이미 씻은 듯이 증발한 후였다.
“하아.”
한편 유릭은 겨우 달의 향기 여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손님들이 —트레져 헌터들— 모조리 빠져나가 휑하니 비어 있는 여관.
유릭은 간신히 계단을 올라 방에 들어갔다.
‘이젠…….’
쉬는 공간에 도착하니 눈꺼풀이 한층 더 무거워진다.
납이라도 매단 듯한 눈꺼풀을 그대로 감고는, 유릭이 침대에 몸을 던졌다.
털썩.
—어르신?
메르가 유릭을 불렀다.
그러나 유릭은 이미 쏟아지는 잠에 빠진 후였다.
그런 유릭을 잠시 바라본 메르가, 이내 휙휙 방을 둘러보고는 짐가방을 발견했다.
그러곤 그 안에서 붕대를 찾아 물어왔다.
—…….
유릭이 잠든 틈을 타 다친 부위에 붕대를 감는 메르베키아.
보통의 새끼 호랑이라면 유릭의 몸을 살짝 들어 올리는 것부터 힘겨워했겠지만, 메르는 한 손으로도 간단히 들 수 있었다.
두 손, 아니, 두 발과 입을 이용해 유릭의 몸에 모두 붕대를 감곤, 그가 유릭의 옆구리쯤에 웅크리고 누웠다.
둘 모두 붕대를 감은 채 얌전히 침대에 누워 있다.
그러나 메르는 잠들지 않은 채, 귀를 쫑긋 세우며 조용히 여관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 * *
눈을 떠보니 아니스에게 간병을 받고 있었다.
피에 물든 붕대를 벗겨 내고 약을 바른다. 그리고 새 붕대를 감는 작업.
단단한 압박감에 유릭이 움찔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좀만 살살…….”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상체만 일으킨 채 머리를 움켜잡으며, 유릭이 고개를 저었다.
흐릿했던 초점이 점차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난 괜찮아. 글렌이랑 왕자는?”
비틀거리는 유릭을 부축하며 아니스가 대답했다.
“모두 무사합니다. 도련님 덕분입니다.”
아니스가 유릭이 사라진 이후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길게 얘기할 것은 없었다.
유릭에게 연락을 받고 동굴 바깥으로 나가던 중에, 적의 습격을 받고 도망 다녔다는 것 정도.
“너희한테도 떨어졌어?”
“예. 파비스 경에 따르면 엘가이아란 이름의 소드 마스터라고 합니다. 저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습니다만, 직접 검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군요.”
“직접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하지만 말이지.”
유릭이 손을 뻗자 아니스가 눈치 좋게 물컵을 쥐여 주었다.
꿀꺽꿀꺽 목을 축이는 유릭을 그녀가 입을 다물고 응시했다.
유릭의 몸에 난 상처들.
그리고 방금 유릭이 말한 ‘너희한테도’라는 말.
그 말은 역시…….
‘도련님도 노려졌었다. 그것도 마스터에게.’
적의 목적은 왕자였다. 그러니 자신들만 노릴 거라 생각했다.
7성인 자신이 시간을 끌고, 그 사이에 도련님은 무사히 도망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잘못된 판단 때문에 도련님을 위험에 빠뜨렸다.
그 사실이 죄책감의 가시가 되어 그녀를 쿡쿡 찔렀다.
“악! 크으…… 쓰려 죽겠네.”
기세 좋게 물을 들이켜다 옆구리의 상처가 벌어졌는지 몸을 웅크리는 유릭.
“갈아드리겠습니다.”
아니스가 그쪽 붕대를 새로 갈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눈에 유릭의 몸에 난 상처가 들어왔다.
얕은 상처는 아니다. 살이 깊이 패 완치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만한 상처.
하지만 그렇다고, 죽거나 후유증이 생길 만큼의 중상도 아니었다.
‘마스터의 검을 받고 이 정도로 끝났다고?’
가슴에 박힌 가시와는 별개로 그것은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었다.
엘가이아의 검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왕자를 지키기 위해 몇 차례나 참격을 흘리느라 진땀을 뺐으니까.
그건 7성인 그녀였기에 그 정도로 끝난 것이다.
그녀가 알고 있는 유릭의 경지는 5성.
5성의 검사가 받아낼 수 있는 참격이 절대 아니었다.
‘도련님은 대체…….’
검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부터 재능이 있다고는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 천재라고 생각했다.
갓 검을 쥐었을 때부터 유릭은 몇 년은 전장에서 구른 용병과 같은 날카로움이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날이 갈수록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늘어만 가고 있었다.
어릴 때 천재 소리를 듣는 대부분의 아이가 자랄수록 평범한 범부가 되어가는 것과는 정반대.
도련님의 재능은 날이 갈수록 점점 빛이 나고 있었다.
‘엘가이아라…… 그 사물을 통과하던 검술, 예전에 한 번 들었던 것 같은데.’
한편, 그 시각 유릭은 아니스에게 몸을 맡기곤 홀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떠올리는 것은 그 몸으로 겪었던 엘가이아 로젠베르그의 검술.
분명 예전에 그와 비슷한 기술 이름을 들었다.
‘아, 격산타우(隔山打牛)였나?’
산을 때려 그 너머에 있는 소를 친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기술.
본래는 더욱 간단히, 갑옷을 입은 적의 내부를 타격한다거나, 벽을 쳐서 벽 너머에 있는 적을 물리치는 등의 기술이라 하였다.
그것만 하더라도 일류나 절정 수준에 이른 고수들만 사용할 수 있다고 유화는 그랬었는데.
‘엘가이아는 아예 그쪽으로 단련을 한 건가?’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의 검이었다.
보통 8성 이상의 마스터들은 스스로의 고유 기술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엘가이아에게 있어 그 초승달의 참격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추측에 불과했지만.
‘유화한테 더 자세히 물어보고 이번 기회에 익혀봐야겠어.’
격산타우의 묘리.
분명 익혀두면 유용하게 쓰일 만한 기술이다.
본래는 너무 뜬구름 잡는 것 같아 잘 알지 못했던 개념이지만, 엘가이아의 검을 몇 차례나 보고 나니 얼추 감이 잡히는 듯싶었다.
‘이곳의 검을 보고 무공의 묘리를 깨닫게 되다니.’
뭔가 신기한 느낌이었다.
설령 세계가 다르더라도 무인들끼리는 통하는 것이 있다는 것일까.
앞으로는 조금 더 다른 이의 검술에도 주의를 기울여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똑똑.
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글렌이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문 너머에서 들린 건 나이 지긋한 노인의 목소리였다.
-왕국의 궁정마도사인 아즐렛이라고 하네. 들어가도 되겠나?
생각지 못한 손님에 유릭이 눈을 깜빡였다.
스카디의 궁정마도사라면, 대마법사인 아즐렛 뷜러?
“들어오시죠.”
유릭이 허락의 말을 하며 눈짓하자 아니스가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문 너머에는 목소리의 주인으로 보이는 마법사 노인.
그리고.
“몸도 불편하신데 찾아와 죄송합니다.”
얼굴을 푹 가리는 후드를 벗으며 들어오는, 서른 즈음의 여인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