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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48화 (48/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48화

48화. 초대가 남긴 유적

서로의 검이 닿지 않는 떨어진 거리.

하지만 유릭은 방심할 수 없었다.

이 정도 거리쯤 놈은 아무렇지 않게 좁힌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놈을 주시하며, 특히 발 쪽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검을 겨누고 있자.

쿵-!

불꽃 인간이 땅을 밟았다.

일순간 다시 몸이 무거워진다.

녹슨 톱니바퀴처럼 몸이 뻣뻣해지고, 강제로 누가 어깨를 붙잡아 땅에 짓누르는 것 같았다.

으득.

유릭이 입술을 깨물며 강제로 온 힘을 다해 몸을 비틀었다.

카앙!

유릭의 등허리를 향해 떨어지던 불의 검이 녹시아에 막혔다.

하지만 급히 막느라 유릭의 자세는 많이 흐트러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불꽃 인간이 더욱 거세게 검을 내려쳤다.

캉! 콰앙!

불꽃 인간이 연이어 검을 휘둘렀다.

머리를 노렸다가 발목을 노렸다가, 부지불식간에 옆구리를 찔러오는 등 지근거리에서 잘도 검을 휘둘렀다.

첫 일격에서 손해를 본 유릭은 당장에라도 자세가 무너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의외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다.

‘역시.’

다시 한번 확신이 들었다.

‘순수한 전투 능력은 나랑 완전히 동일해.’

근접해서 연달아 검격을 나눠본 결과, 자신과 불꽃 인간과의 차이는 거의 없다.

판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힘과 속도는 완전히 동일했다.

그렇기에 놈은 자세가 어긋난 자신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그 사실은 불꽃 인간도 금세 알아차린 듯했다.

휙- 카앙!

놈이 크게 검을 휘둘러 유릭을 떼어냈다.

그리고 뒤로 뛰어 거리를 벌렸다.

“쳇.”

유릭이 혀를 찼다.

자신과 불꽃 인간의 스펙은 완전히 동일.

단 하나 차이가 있다면, 거리를 좁힐 때의 걸음.

그 한 걸음에서 크나큰 차이가 난다.

그 사실을 놈도 알아채고 이점을 살리기 위해 거리를 벌린 것이다.

쿠웅!

놈이 다시금 땅을 밟았다.

유릭의 몸은 전신 마비라도 온 것처럼 파르르 떨려왔다.

그사이 놈이 나타난 곳은 유릭의 오른쪽 뒤편이었다.

“큭!”

유릭이 급히 땅을 굴러 놈의 검을 피해냈다.

이글거리는 불의 검이 유릭의 윗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곧바로 일어나며 녹시아를 내지른 유릭이었으나.

‘또야?’

불꽃 인간은 다시 거리를 벌렸다.

그렇게 한차례 떨어진 후, 다시 땅을 지그시 밟으며 유릭을 습격했다.

캉-! 캉, 캉!

그런 교환이 몇 번이나 이루어졌다.

완벽히 우위를 둔 ‘한 걸음’으로 일방적으로 유릭에게만 손해를 강요한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히트 앤 런.

지금은 어찌어찌 막아내고 있지만 언젠간 자신의 빈틈이 드러날 터.

그곳을 공격당하면 끝이다.

‘시간을 끌면 내가 불리해.’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쿠웅!

놈의 검이 묵직하게 유릭을 내리눌렀다.

그러곤 곧바로 다시 팟, 하고 거리를 둔다.

-힘내세요, 어르신~ 파이팅~

‘느긋하구만!’

한쪽에선 메르의 느긋한 응원 소리가 들린다. 팝콘이라도 한 박스 놔주고 싶을 정도로 완벽한 구경 모드였다.

그 소리를 들으며 유릭이 땅을 박차 놈을 쫓았다.

놈이 우위를 가진 것은 첫걸음으로 접근할 때뿐.

유릭이 관찰한 바로는 놈은 항상 앞으로 걸을 때만 예의 기술을 발동해 왔다.

뒷걸음질로는 아마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

아니나 다를까 불꽃 인간이 크게 놀랐다.

유릭이 눈을 빛냈다.

‘지금이다!’

화르륵!

불꽃의 용이 녹시아의 검신을 감싸며 피어올랐다.

<화룡검화>.

불의 검기를 두른 녹시아가 불꽃 인간의 가슴을 그었다.

챙-!

-…….

그리고, 놈의 검이 녹시아를 막았다.

놈의 검에선 유릭의 것과 똑같은 불꽃의 용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웃고 있는 유릭의 턱을 따라 땀 한 방울이 스륵 흘러내렸다.

“하, 역시 그것도 쓰는 거냐?”

불꽃 인간이 피어올린 <화룡검화>.

놈의 화룡과 유릭의 화룡이 얽히기 시작한다.

동시에 기운이 급속히 팽창하며.

콰-앙!

폭발과 함께 유릭의 몸이 뒤로 쭈욱 밀려났다.

불꽃 인간 역시 마찬가지.

둘은 다시금 처음처럼 거리를 두고 대치하게 되었다.

‘좋지 않은데.’

유릭이 꼴깍 침을 삼켰다.

여러 차례 합이 오갔으나 진전된 건 없다. 역으로 자신만 타격을 받았을 뿐.

당장 피가 흐르는 상처는 없었으나, 무리한 자세로 놈의 검을 몇 번이나 받아치는 바람에 몸에 피로가 축적되었다.

이대로 가면 필패다.

‘의외의 한 수가 필요해.’

필요한 것은 기사회생의 한 수.

놈은 쓰지 못하고 유릭 자신은 쓸 수 있는.

유릭이 품속에 항상 가지고 다니는 풍령을 울렸다.

청아한 울림과 함께 소용돌이가 풀려 나오며, 화룡검화의 불꽃이 2배 이상 몸집을 부풀렸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쿠르르르릉!

그런 반칙 따윈 통하지 않는다는 듯이, 양옆의 불꽃의 호수가 솟아오르더니 불꽃 인간의 화룡검화에 불길을 쏟아부었다.

놈의 화룡 또한 유릭과 비슷할 정도로 커져 왔다.

“…….”

유릭이 양손으로 검을 잡는다.

이대로 직접 부딪힐 생각은 없다.

그건 예의 걸음이 있는 불꽃 인간에게 유리하다.

그 우위를 없애려면 놈이 첫 한 걸음을 내딛기 전.

즉 멀리서 요격해야 한다.

-…….

촥!

그 마음을 읽었다는 듯이 불꽃 인간이 검을 그었다.

마치 유릭과 본인 사이에 선을 긋듯이.

화르륵!

그러자 놈의 화룡은 불의 벽이 되어 유릭의 앞을 완전히 틀어막았다.

‘내 검기를 확실하게 상쇄시키고 발걸음으로 승부를 볼 생각이로군.’

불꽃 인간의 생각은 훤히 꿰듯 보였다.

놈의 ‘걸음’을 무력화할 생각으로 유릭이 원거리 공격을 택한 것처럼, 놈은 스스로의 걸음을 무기로 삼기 위해 유릭의 공격을 완벽히 받아낼 생각이다.

피하거나 크로스 카운터를 노리는 것보다 그게 더 확실한 승리 플랜이니까.

‘똑똑해. 합리적이고.’

언제나 정석과 같은 수를 두는, 그야말로 본받아 마땅할 판단력.

유릭이 피식 웃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자신은 어떤가?

견실히 승리 조건을 쌓아 올리는 불꽃 인간에 비해, 이토록 불확실한 도박에 몸을 내던지다니.

<화령격(火靈格)>.

격산타우의 묘리를 익혀 만들어낸 그의 기술.

그러나 아직 미완성인 불꽃의 유령.

공기에도 나무에도 바위에도, 세상 만물 어디에나 존재하는 마나를 매질로 하여, 불꽃의 파장을 전달하는 기술로 원리는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

하지만 아직 훈련에서조차 제대로 성공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기술에 모든 걸 걸다니.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뇌며 유릭은 투지를 불태웠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아니, 해내고 말겠다.

그렇게 타오른 투지는 유릭의 집중력을 더더욱 높이 끌어 올렸다.

과거 엘가이아의 검을 받았을 때, 한번 한계 이상의 집중력을 경험한 유릭의 정신력은 다시금 수월히 치솟아 올랐다.

세상 만물이 모두 사라지고 자신과 상대만이 남은 듯한 감각.

“!”

유릭의 눈에 불꽃이 번뜩이며 녹시아가 휘둘러졌다.

저격 같은 것엔 전혀 소양이 없는 유릭이었으나 가로로 길게 쏘아낸 검기엔 에임 같은 건 전혀 상관없었다.

화르륵!

불꽃의 검기가 불꽃 인간이 피워 올린 불의 벽에 쇄도했다.

이른바 창과 방패의 싸움.

하지만 유릭이 노리는 것은 방패를 뚫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그 너머에 타격을 입히는 것.

‘과연…….’

처음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긴장에 휩싸인 상태에서 두 불꽃이 부딪혔고.

-콰아아아앙!

불의 기둥이 피어올랐다.

* * *

‘공자님은 어디 갔지?’

한창 마법진을 해제하던 도중, 게오르그가 문득 유릭을 찾았다.

아까부터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잠시 의아해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중.

“단장님! 성공했습니다. 조금씩 해제되고 있습니다!”

“그런가!?”

부단장 브랜든이 달려와 보고했다.

게오르그가 화색을 띤 채 그의 뒤를 따랐다.

‘애도 아니고 근처에 잘 계시겠지. 캠프에서 쉬고 계실 수도 있고.’

유릭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빙하설월의 한기 탓에 이 근방엔 마물도 접근하지 않는다.

위험할 일은 없었다.

“저기 보십시오.”

“과연…….”

빙하설월을 둘러싼 마법진이 조금씩 해제되고 있다.

마치 조금씩 껍질이 벗겨지는 과일처럼, 빙하설월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오오오!”

게오르그가 아이처럼 탄성을 내지르며 그 과정을 지켜보았고.

“…….”

그 뒤에서 브랜든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빙하설월을 응시했다.

* * *

화룡검화가 피워 올린 불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기둥이 솟아오른 곳은 불꽃 인간이 펼친 불의 벽……이 있는 곳이 아니라, 불꽃 인간이 서 있던 장소였다.

-……! ……!

소리가 되지 않는 비명을 지르며 불꽃 인간이 흩어진다.

이윽고 흩날리는 불티마저 사라지고, 유릭의 앞을 막는 건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와아, 그때 그 마스터의 검이네요?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대단하세요!

메르가 유릭을 칭찬하며 다시 쪼르르 그의 머리에 올랐다.

새끼 호랑이를 머리에 얹은 채로 유릭이 녹시아를 수납했다.

‘성공했다.’

메르에겐 겸손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그의 속내는 적지 않게 벅차올랐다.

훈련에선 좀처럼 안 되던 기술을 실전에서 성공한 것이다.

뿌듯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 감정을 마음껏 즐기며 유릭이 불의 호수를 가로질렀다.

딸깍.

그가 목함을 열었다.

안에 들어 있는 건 누렇게 색이 바랜 한 장의 종이.

그리고 정체 모를 단약이 하나.

“이건…….”

유릭이 먼저 집은 것은 종이 쪽이었다.

책이 아닌 한 페이지에 불과했지만, 이런 물건에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염화신무.’

기연관에서 찾았던 염화신무가 딱 이런 느낌의 종이로 된 책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종이를 집으니 곧바로 불꽃으로 화하더니, 유릭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그것에 거스르지 않고 유릭은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걸음에 대한 거구나.’

새로 들어온 무공은 불꽃 인간이 밟았던 그 첫걸음에 대한 것.

염화신무의 비급이 머리에 각인되었을 때처럼, 그 걸음의 무공이 유릭의 머리에 각인되었다.

‘좋아. 돌아가면 바로 익히자.’

그 효용성은 직접 몸으로 체험하였다.

새로운 무공을 익혔단 생각에 유릭의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다.

“혹시 여기 말고도 초대가 남긴 유적이 또 있을까?”

-그럴지도 모르죠. 아닐지도 모르고.

메르가 그렇게 얘기하였지만 유릭은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무공 한 페이지랑 단약이 남긴 물건의 전부일 리가 없어.’

본디 사람이 무언가를 남긴다고 하는 건, ‘의지’를 남기는 것이다.

못다 한 일에 대한 의지, 생애 미련으로 남은 것에 대한 의지, 등등.

그러나 지금 얻은 페이지에서는 어떤 의지도 엿보이지 않았다.

‘왜 굳이 염화신무의 비급이랑 따로 떼어서 숨겼지? 뭘 위해서?’

분명 이유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분명 찾지 못한 유산이 남았다는 뜻일 터.

‘초대의 행보를 다시 한번 훑어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유릭이 단약을 집었다.

그러자.

쿠구구구구구궁-

땅이, 아니, 공간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불의 호수가 더욱 펄펄 끓어오르더니 수백의 분수라도 된 듯이 솟아올랐다.

용솟음치는 수백의 불꽃이 유릭이 쥔 단약에 빨려들기 시작했다.

공간을 가득 메웠던 불의 기운이 사라진다.

방금까지 평범하게만 보이던 단약이 지금은 붉은빛으로 번들거리는 새빨간 단약이 되었다.

이 공간 전체에서 느껴지던 불의 기운이 작은 단약 하나에서 풍기기 시작했다.

유릭의 눈이 새빨간 단약에 매혹되어 떨어지질 않았다.

마치 빙하설월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설마…….’

그제야 유릭이 눈치챘다.

초대가 빙하설월을 발견하고도 가져가지 않은 이유.

오히려 봉인을 위한 유적을 만들어 놓은 이유.

‘이곳 때문이었군.’

모두 이곳에 남겨놓은 방대한 불의 기운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빙하설월도, 그 꽃을 봉하고 있던 유적도, 궁극적인 목적은 이 장소를 숨기고 유지하기 위한 것.

‘숨길 필요가 있었다?’

숨겨야 한다는 것은 숨길 대상이 있다는 것.

대체 누굴까.

아직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초대의 의지의 편린 정도는 엿볼 수 있었다.

유릭이 단약을 목함에 잘 넣은 후, 그 목함을 품에 넣었다.

“올라가자. 날 찾고 있을지도 몰라.”

-넹.

메르를 데리곤 유릭이 계단을 올랐다.

그가 뒤로한 장소에는 이미 불의 바다는커녕 조그마한 불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 * *

유릭이 계단을 올라 황색 지대로 돌아왔다.

올라와 보니 해의 위치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얼추 2시간가량 지난 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게 늦진 않았네.’

이 정도면 주변을 잠시 둘러보고 왔다는 식으로 둘러댈 수 있다.

유릭이 다시 유적으로 향했다.

그런데.

-어이! 그 꽃에서 손 떼!

-뭐 하는 겁니까, 부단장!

안쪽에서 평화롭지 않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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