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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50화 (50/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50화

50화. 네 동료 곁으로

인질의 교환은 별다른 방해 없이 바로 이루어졌다.

브랜든이 붙잡았던 아이들이 열댓 명이나 된다곤 하지만, 당연히 그 열댓 명보다 유릭 하나가 훨씬 가치 있다.

유릭이 스스로 인질이 된다는데 브랜든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공자님, 안 됩니다!”

“유릭 로스카! 그만둬라!”

말리는 이가 없진 않았다.

게오르그와 기사들이 말도 안 된다고 말리고 그 베르겐조차 유릭을 말렸다.

“당신이 내 걱정을?”

유릭이 피식 웃었다.

평소 자신을 그렇게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베르겐이 걱정을 다 하다니.

“미친놈! 드디어 정신이 나갔어!”

베르겐이 으득 이를 갈았으나 유릭은 자신의 결정을 뒤엎지 않았다.

가까이 온 유릭을 홱 낚아챈 브랜든이 크게 광소했다.

“크하하하! 멍청한 자식! 이렇게 날 도와주다니!”

유릭을 붙잡은 것으로 모든 고민이 해결됐다.

열댓 명의 아이들을 끌고 다니는 것보다 인질 하나를 끌고 다니는 게 훨씬 쉽다.

더욱이 유릭은 로스카가 절대 포기하지 않을 인질.

이걸로 엘드가르드 산맥에 숨기 전에 요격당할 우려는 없어진 셈이다.

“오, 오빠!”

“마르쉘!”

브랜든에게 잡혀 있던 아이들은 모두 풀려났다.

특히 직접 붙잡혀 검까지 겨눠졌던 마르쉘은 눈물로 범벅이 된 눈으로 마르쿠트에게 달려가 안겼다.

마르쿠트가 기쁜, 하지만 미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동생이 무사히 풀려난 것은 물론 좋다.

하지만 유릭이 대신 붙잡혔다는 것이 걸렸다.

“공자님…….”

그가 입술을 깨물며 유릭을 바라보았다.

충성을 맹세한 가문의 아이.

그런 아이가 스스로를 희생한 것을 정말로 좋아해도 좋은 것일까?

이 상황을 마냥 기뻐하는 것은, 도의적으로도 그의 기사도에도 반하는 일이었다.

“마르쿠트.”

그때 유릭이 그를 불렀다.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마르쿠트의 귀에는 천둥처럼 크게만 들렸다.

“무슨 생각하는지는 알겠지만 네가 그러면 안 되지.”

“공자님?”

“겨우 풀려난 동생이 지금 네 표정을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마르쿠트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의 동생인 마르쉘 역시 기사의 길을 걷고자 하는 아이다.

지금이야 정신이 없으니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지만, 만약 제정신을 차린다면.

마르쿠트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생각할 것은 뻔했다.

자신의 탓에 공자님이 위험에 처한 것이라고, 때문에 오빠인 마르쿠트 역시 어두워진 거라고 자책하겠지.

“정 마음에 걸리면 제대로 구하러나 와.”

“아, 알겠습니다! 꼭 모시러 가겠습니다!”

유릭은 가볍게 던진 말일 뿐이었으나, 마르쿠트에겐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그 무게를 정한 것은 누구도 아닌 그 자신.

“크흐흐, 이걸로 빙하설월은 내 것이다!”

브랜든이 광소하며 마경의 출구를 향해 뛰었다.

“공자님!”

“멈춰라, 이놈!”

그 앞을 게오르그와 베르겐이 다급히 막으려 했으나.

스윽.

“…….”

브랜든이 유릭의 목을 그었다.

옅은 상처에 불과했으나 목에서 흐르는 핏줄기는 그들을 멈추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걱정 마라! 나도 이놈을 죽여 평생 로스카에 쫓겨 살기는 싫으니까! 다 도망치고 나면 고이 풀어주마! 크하하!”

그 말만을 남긴 채 브랜든이 마경의 출구로 뛰어들었다.

* * *

로스카 전역에 비상이 걸렸다.

영지 전역에 비상종이 울리고 내부 치안을 담당하는 2기사단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정을 모르는 영지민들의 불만을 묵살하고 모든 성문이 강제로 내려갔다.

물건을 실은 수레를 끌고 들어오려던 상인이나, 일이 있어 출발해야 하는 이들이 경비병을 닦달했으나 소용없었다.

경비병들은 딱딱한 표정으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책임자를 불러오라 날뛰는 이도 있었으나, 그래 봐야 내려온 기사에게 간단히 제압당할 뿐이었다.

그 모든 명령을 지휘하는 건.

“다 틀어막아! 개미 한 마리도 영지 밖으로 못 나가게 해라!”

서류의 산에 파묻혀 있던 중 동생이 납치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 엘린이었다.

엘린과 그녀가 지휘하는 2기사단, 그리고 2기사단의 명령을 받는 병사들까지.

흡사 전쟁을 방불케 하는 움직임에 사정을 모르는 영지민들이 벌벌 떨었다.

그 시각.

“어이! 빨리빨리 들어와!”

“알았다니까.”

유릭과 브랜든은 이미 산속에 들어와 있었다.

애초부터 엘드가르드 산맥 쪽으로 빠져나갈 생각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엘린의 대응이 신속했던 탓에 산 말고는 빠져나갈 곳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산이라…….’

두 손이 묶인 포로 신세가 되어 따라가며, 유릭이 산의 지형을 살폈다.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글쎄.’

아직까진 전망이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녀석이 가진 마검의 위력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것만 아니라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조금 더 지켜보긴 해야 하니까.’

-지켜봐요?

‘녀석이 누구랑 연결되어 있는지.’

브랜든이 갑자기 이런 행동을 보인 이유는 단순히 영약에 대한 탐욕 때문만은 아닐 가능성이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단독범이 아닐 가능성.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유릭은 놈에게 순순히 붙잡힌 것이었다.

‘마검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진 않았을 테니까.’

-그건 그렇죠. 보통 보물을 가진 자는 조심스럽게 굴게 마련인데 이렇게 눈에 띄게 일을 저지르다니.

‘뒷배가 있다고 보는 게 맞겠지.’

그 뒷배가 누구일까.

아칸 쪽에서 수배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10가문에서?

그것도 아니라면…….

‘아이작 형님이?’

아이작 로스카.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유릭은 그걸 확인해야 했다.

“빨리 걷지 못해!”

생각하느라 유릭의 걸음이 늦어지자 브랜든이 거세게 줄을 당겼다.

밧줄이 손목을 꽉 조이며 유릭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자국이 남겠단 생각에 유릭이 한숨을 쉬었다.

“알았으니까 재촉하지 마. 길은 알고 가는 거야?”

“들어가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일단은 영지에서 멀어지는 것이 먼저다!”

“그렇게 계획성 없이 되겠어? 엘드가르드 산맥이 얼마나 넓은지 모르는 건 아닐 거 아냐.”

“닥쳐! 날 가르치려 들지 마!”

브랜든이 얼굴을 찌푸리며 밧줄을 당겼다.

아야야, 유릭이 작게 혀를 차며 그의 뒤에 붙었다.

브랜든은 기분이 묘해졌다.

분명 자신은 인질범이고 놈은 인질이다.

근데 저 태평한 태도는 뭐란 말인가?

꼭 상전이라도 모시는 것 같지 않은가?

“네놈-”

“그 마검은 어디서 난 거야?”

서열 정리를 위해 위협을 한번 하려고 할 때, 유릭이 절묘한 타이밍에 질문을 던져왔다.

브랜든이 와락 얼굴을 구기며 대답했다.

“알고 싶어 하지 마라. 죽는 수가 있으니까.

“어휴, 무서워라.”

“……이봐, 도련님. 인질이면 인질답게 좀 쭈그려 있는 게 어때.”

브랜든이 험악한 얼굴을 하며 얘기해 보기도 했지만.

“인질극을 하고 싶으면 일단 우리 집이나 벗어나고 하든가.”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브랜든이 크게 혀를 찼다.

그 말대로 그들이 있는 곳은 아직 로스카의 영역이다.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땅.

벗어나려면 산을 몇 봉우리는 넘어야 하리라.

그리고 그렇게 벗어날 때까지 자신은 유릭에게 손을 댈 수 없다.

이 도련님도 그걸 알고 이렇게 건방지게 구는 것이겠지.

“쳇.”

브랜든이 유릭에게서 시선을 떼고 앞을 바라보았다.

이젠 뭐든 상관없다.

어찌 됐든 방해는 하지 않고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자.

‘…….’

묵묵히 산길을 걷기 시작한 브랜든을 유릭이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렇게나 가는 것 같지는 않군.’

헤매는 것 같지도 않고, 목적 없이 그저 깊이 들어가고만 있는 느낌도 없다.

브랜든의 걸음걸이에선 제대로 된 목적성이 느껴졌다.

‘역시 계획적이었나?’

그렇다면 접선하기로 한 아군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미리 마련한 비밀 쉼터가 있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좋은 신호는 아니다.

전자라면 적이 늘어나고 후자라면 구속된다.

그때.

-어르신, 어르신.

메르가 유릭을 부르더니 소곤소곤 몇 마디 건네왔다.

그걸 듣곤 유릭의 눈에 빛이 스쳐 지나갔다.

‘정말이야?’

-네. 이 근처예요.

메르의 말이 사실이라면 충분히 변수가 될 수 있다.

유릭이 눈을 가늘게 뜨며 얘기했다.

‘일단은 조용히. 신호를 보낼 테니 타이밍을 맞춰줘.’

급해져선 안 된다.

일단 브랜든의 목적지를 확인하고 나서.

-네.

유릭의 말에 메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다 왔다.”

봉우리를 두 개나 넘어 도착한 곳.

그곳은 한 거대한 나무였다.

“들어가라.”

브랜든이 그 나무로 유릭을 밀었다.

들어가라니 어디로?

그런 의문을 품은 순간, 유릭은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를 맡았다.

‘이건…….’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맡아본 적 있는 냄새.

그 썩은 우유 같은 냄새를 자각하자 눈앞의 나무가 일렁이더니, 이내 커다란 구덩이로 바뀌어 있었다.

환각 마법이었던 것이다.

냄새를 매개로 한.

“……들어가라니, 어디로?”

유릭이 환각이 풀리지 않은 체를 하였다.

그러자 브랜든이 콧방귀를 뀌더니 그대로 유릭을 밀었다.

“그 나무는 진짜가 아니라 환상이니까 안심하고 들어가라.”

“환상?”

“그래, 크크. 이제는 더 만들 수도 없는 고위급 향수를 빌려 왔거든. 네놈이 뭘 알기나 하겠냐마는.”

확실했다.

과거 알리샤에게서 나던 그 향수 냄새다.

이걸로 알게 되었다. 브랜든의 뒤에 누가 있었는지.

‘참고 따라온 보람이 있었어.’

이제는 의심의 여지도 없다.

알리샤의 향수를 쓴다면 당연히 브랜든 역시 아이작과 한패라는 것이겠지.

“잘 알지. 3년 전이랑 똑같이 코가 비뚤어질 것 같은 썩은 냄새로군.”

“뭐?”

브랜든이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듯 눈을 찌푸렸다.

그것에서 한 가지 사실을 더 알 수 있었다.

이 녀석, 알리샤를 죽인 게 자신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메르.’

-기다리고 있었어요!

유릭이 메르에게 신호를 보낸다.

동시에 손에 불을 일으켰다.

아쉽게 녹시아는 인질로 잡힐 때 떨궈서 들고 있지 않았다.

“이 자식이, 이제 와서 반항을!”

쩌적!

브랜든의 손에서 빙검이 돋아나 유릭을 베었다.

죽으면 안 되기에 노리는 곳은 팔과 어깨.

하지만 그것은 안일한 선택이었다.

“형님한테 듣지 못했나? 아니면 형님도 모르는 건가?”

“무슨-”

“3년 전 알리샤의 목을 벤 게 나라는 거.”

“!”

브랜든의 검이 크게 흔들린다.

유릭의 한마디는 단순한 한마디가 아니다.

자신이 알리샤의 동료였다는 사실, 함께 아이작을 모시는 사이였다는 사실.

그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단 사실.

가뜩이나 급소가 아닌 팔을 노리고 있는데 검 끝이 흔들리기까지 한다.

아무리 경지의 차이가 있더라도 성공할 수가 없는 일격.

그에 반해 유릭은, 초지일관으로 브랜든의 급소를 노리고 있었으니.

<연화지(蓮火指)>.

손끝에 모인 불꽃의 탄환이 쏘아진다.

노리는 곳은 적의 심장.

한 줄기 붉은 선이 브랜든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었다 유릭 로스카.”

브랜든은 어느새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관통한 것처럼 보였던 것은 그의 잔상.

상처 하나 없는 브랜든이 정제되지 않은 살기를 풍기고 있었다.

“죽여주마. 일단 팔다리를 잘라 짐가방처럼 메고 다니겠다. 그리고 로스카를 탈출하는 즉시 목을 베어주지.”

브랜든의 눈에는 방금까지와 같은 가벼운 기색은 일절 사라져 있었다.

“그 가벼운 입을 탓해라. 얌전히 있었다면 목숨만은 살았을 것을.”

낮게 중얼거리며 그의 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유릭이 긴장하며 녹시아를 대신해 불의 검을 만들었다.

불꽃 인간이 만들었던 그 검과 똑같이.

그가 자세를 낮추며 땅을 박찼고, 동시에 브랜든의 손이 마검의 손잡이에 닿았다.

‘풍마검 엑셀레아.’

검집과 검이 한 세트인 마검.

주변의 대기가 요동치며 검과 검집 사이에서 폭풍이 새어 나온다.

유릭을 보는 브랜든의 눈이 가늘어졌다.

거센 반발력을 느끼며 그가 튕기듯 검을 뽑아-

“뭣!”

아니, 뽑지 못했다.

어느새 그의 팔과 검, 그리고 검집까지, 굵은 나무뿌리에 칭칭 휘감겨 있었다.

-크허엉!

위쪽 언덕에 들리는 짐승의 울음소리.

털끝이 연녹색으로 빛나고 있는 하얀 호랑이였다.

그 빛과 함께 땅에서 솟아오른 수십의 뿌리들이 사냥감을 집어삼키듯 브랜든을 덮쳐왔다.

그 사이로, 유릭이 파고들었다.

불꽃의 검을 휘두르며.

“네 동료 곁으로 보내주마.”

“이 새끼가아아아아!”

뿌리에 꽁꽁 묶인 놈을 향해 불꽃의 검이 호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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