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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54화 (54/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54화

54화. 왜 그렇게 다급해?

“의원의 말에 따르면 다행히 도련님의 몸에 문제는 없다고 합니다.”

“그거 다행이군. 정말 다행이야.”

레오폴딘의 거처.

그곳에선 아니스가 이번 사건의 정보를 레오폴딘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다만.

“아가씨께서 빠르게 대처하셔서 놈을 산으로 몰아넣고는 직접 처치했습니다.”

“대응이 좋았구나.”

“유릭 도련님도 잡힌 와중에 위치를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리셨다고 합니다. 인질범에게 잡힌 와중에 대단한 배짱이셨습니다.”

“과연 과연.”

보고의 내용은 진실과는 약간 달랐다.

아니스가 거짓 보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당사자인 유릭과 엘린이 그리 얘기했기에, 그것을 진실로 믿고 있는 것이었다.

평소의 13기사단이라면 정보가 들어왔을 때, 그것이 거짓이 아닌지 한 번 이상 의심해 본다.

사실 이번에도 그랬다.

엘린이 구출한 것이 아니라 다른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충분할 만큼 검증을 해보았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은 전혀 도출되지 않았다.

“당시 산에 들어간 인물을 모두 리스트업 해보았습니다만, 엘린 아가씨 외에는 도련님을 구출할 만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겠지. 그 아이보다 고수라고 해봐야 손에 꼽지 않더냐.”

유릭의 구출을 위해 산에 들어간 사람을 모두 찾아보았지만 엘린 외엔 없다.

그녀보다 강한 사람도, 또 절박한 사람도 따로 없었다.

“그래서, 문제의 빙하설월과 마검은 어떻게 되었느냐?”

“그것은 잘……. 아마 빙하설월은 엘린 아가씨께서 회수하셨을 겁니다.”

“마검은?”

빙하설월 역시 중요하긴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마검이다.

아니스가 조금 입을 우물거리더니, 포기한 듯 솔직하게 대답했다.

“도련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유릭이? 엘린이 아니라?”

“아가씨의 말씀으론 그건 도련님의 물건이라고…….”

레오폴딘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유릭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 했다.

잘 회수해서 가문의 비고로 들어가야 할 마검을 왜 유릭이 가지고 있단 말인가?

“엘린 그 아이가 그렇게 얘기했단 말이냐?”

“예. 도련님의 것이니 건들지 말라고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체 어찌……. 그 아이가 사감으로 일을 처리할 아이도 아닌데.”

“아가씨의 본의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만큼은 13기사단도 해명하지 못한 사안이었다.

가장 손쉽게 떠오르는 가능성이라면, 엘린이 그냥 유릭에게 마검을 선물했다는 설.

귀여운 동생이 무서운 사건에 휘말린 것이 가여워 마검을 건넸단 가능성이 그들 사이에서 나오긴 했었다.

레오폴딘 역시 같은 것을 떠올렸다.

엘린이 유릭을 귀여워하는 것은 가문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니, 영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만약 그게 정말이라면 한마디 해야겠구나.”

“…….”

레오폴딘이 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스는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첨언을 할 권한이 없었으니.

그때.

“그럴 필요 없습니다.”

레오폴딘의 거처에 새로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

그녀를 보곤 레오폴딘이 눈을 깜빡였고, 아니스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발렌티나?”

“가주님을 뵙습니다.”

발렌티나 로스카.

그녀가 직접 레오폴딘을 찾아온 것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버님.”

“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는 모양이구나. 네가 날 다 찾아오고.”

평소 발렌티나는 의식적으로 레오폴딘을 피하곤 했다.

과거의 일 때문에 서로 얼굴 보기가 영 어색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같은 성에 살고 있었음에도, 둘이 직접 만나는 것은 무척 오랜만이었다.

“그나저나 방금은 무슨 뜻이냐? 엘린을 혼낼 필요가 없다고?”

“엘린은 사적인 이유로 유릭에게 마검을 건넨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가문의 규칙을 지켰을 뿐입니다.”

레오폴딘이 고개를 갸웃했다.

규칙이 한두 개도 아니고 그렇게 말해봐야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전리품은 적을 쓰러뜨린 이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규칙 말입니다.”

“……?”

발렌티나가 덧붙인 말이 무슨 뜻인지 레오폴딘도, 그리고 아니스도 일순간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금세 말에 담긴 뜻을 깨닫고.

“유릭이, 말이냐?”

둘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발렌티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 허허허허.”

“…….”

레오폴딘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아니스 역시 말은 못 했지만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가능성이다.

아니, 둘뿐만 아니라 세상 누구를 데려와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갓 성인이 된, 경지는 5성에 불과한 아이가 7성의 기사를 이기리라 어찌 생각한단 말인가.

그것도 그냥 기사도 아닌 마검을 들고 있는 기사를!

유릭에 대한 얘기가 들어올 때마다 기쁘게 웃던 레오폴딘조차 이번만은 벙찔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향해, 아니스가 고심이 많은 얼굴로 얘기했다.

“……태상 가주님. 청이 하나 있습니다.”

“무어냐?”

“폐관에 들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폐관?”

갑작스러운 얘기에 레오폴딘이 고개를 갸웃했다.

유릭의 얘기를 하던 중에 폐관 얘기가 왜?

“저는 지금까지 도련님의 검술을 봐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니스의 말은 유릭과 관계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랬지.”

“이대로는 더 이상 도련님의 스승으로 있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면 머지않아 추월당할 테니까요.”

“…….”

“폐관에 들어, 벽을 깬 후 나오겠습니다.”

벽을 깨다.

아니스의 경지를 생각해 보면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8성에 올라, 소드 마스터가 되어 나오겠다고.

마스터란 것이 되고 싶다고 다 되는 그런 경지가 아니었지만, 레오폴딘은 아니스라면 오를 수 있다 생각했다.

그녀는 아직 젊고 재능이 창창한 데다, 무엇보다.

“눈빛이 좋아졌구나.”

뚜렷한 목표가 생겼으니까.

“좋도록 해라. 딘에게는 내 쪽에서 얘기해 두마.”

“감사합니다.”

레오폴딘이 피식 웃으며 흔쾌히 허락했다.

아니스가 꾸벅 예를 갖추고는 발렌티나에게도 인사를 하였다.

그러곤 레오폴딘의 거처를 뒤로했다.

“아니스 경이 빠지면 기사단의 업무에 차질이 있지 않겠습니까?”

“딘이 알아서 하겠지. 능력 있는 놈이니 믿어도 된다.”

그 말에 발렌티나도 별다른 이견 없이 끄덕였다.

딱히 진심으로 우려했던 것도 아니다.

기사 하나 폐관에 들었다고 업무가 마비될 기사단 따위 로스카에는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볼일은 이게 전부더냐?”

“다른 안건도 있습니다.”

“다른 안건이라면?”

마검의 얘기보다 이쪽이 본론이란 사실을 직감한 레오폴딘이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을 피하던 딸아이가 직접 찾아와 얘기할 정도의 안건이라니,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알리샤란 마녀에 이어서 4기사단의 부단장까지 아이작의 수하였단 걸 알았습니다. 더욱이 그들의 목적이 얌전히 정보수집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요.”

“그렇지.”

레오폴딘은 발렌티나가 꺼내려는 얘기가 무엇인지 눈치챘다.

하지만 일부러 말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입으로 직접 듣기 위해.

“모처럼 신년을 맞았으니 대청소를 한번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신년이라니, 성인식이 있던 1월에서 벌써 몇 달이 지났는지 알긴 하는지.

“그거 괜찮은 생각이구나. 깨끗한 집만큼 기분 좋은 것도 없으니.”

하지만 레오폴딘은 조용히 웃으며 수긍할 뿐이었다.

* * *

사건이 일어난 지 일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유릭의 소문은 영지 전역에 퍼져 한참이나 소란이 되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열기를 띤 것은, 소문으로만 들은 이들이 아닌 사건의 당사자들.

전투1반의 아이들이었다.

“어떻게 직접 뵐 방법이 없을까?”

“글쎄에……. 우리랑은 신분이 다른데. 공자님께서 직접 찾아오시는 것 말고는 없지 않을까?”

그들 1반의 아이들은 직접 사건을 목격했다.

목격한 정도가 아니라 브랜든에게 잡혔었고 유릭에게 구해진 당사자들.

그들의 뇌리에는 아직도 당시의 유릭의 모습이 강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당시의 유릭의 뒷모습도.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느꼈던 떨림도.

그 떨림의 대부분은 공포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중에는 분명히 다른 감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엉덩이가 달아올라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유릭의 별궁에 뛰어들고 싶다.

“특히나 지금은 치료에 전념 중이라고 하시니까…….”

“그러면 더 뵙기 힘들겠네.”

“응…….”

평상시에도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신분이 아니다.

하물며 다쳐서 치료 중이라면 더더욱 만나기 힘들겠지.

그들이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할 때.

부-웅!

묵묵히 검을 휘두르는 아이가 있었다.

4기사단의 마르쿠트의 동생인 마르쉘.

그녀는 이 자리의 누구보다 유릭의 인상이 강하게 새겨진 아이였다.

누가 뭐래도 정말로 죽기 직전에 구해진 아이였으니까.

후우, 그녀가 잠시 검을 멈추곤 이마의 땀을 닦으며 얘기했다.

“만날 수 있어. 시간은 좀 걸리지만.”

“만나?”

“어떻게?”

그녀의 말에 아이들이 갸웃했다.

“성인식 때, 기사 서임을 받으면 뵐 수 있잖아.”

5년 후 그들이 성인이 될 때, 성적이 좋은 이는 정식 기사로서의 서임도 함께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서임은 가문의 직계가 하는 것이 일반적.

지금까지는 가주 대행인 엘린이 해왔지만 5년 후의 서임이라면 분명히 유릭도 참가할 것이다.

“확실히…….”

“서임할 때라면 직접 뵐 수 있겠네!”

그 얘기는 아이들 사이로 금세 퍼져 나갔다.

물론 다들 알고는 있다.

아무리 만나기 힘들다 하더라도, 5년 동안 정말로 한 번도 만나지 못할 리가 없다.

하지만 서임식의 자리에서 딱 만나 그날의 감사 인사를 한다.

당신이 구해준 목숨 덕에 이렇게 어엿한 기사가 되었다며.

……왠지 멋있다.

한창 이 나이대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로망이 아닌가.

“좋아! 꼭 내가 서임을 받는다!”

“그 실력으로 되겠어?”

“지, 지금부터 더 열심히 하면 돼!”

아이들이 앞다퉈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성인식 때 정식 기사로서 서임을 받기 위해선 전투1반 안에서도 특히 성적이 좋아야 하였으니.

“후.”

그런 활기찬 아이들의 모습을, 베르겐이 쓰게 웃으며 보고 있었다.

역시 어느 시대에나 아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자신들 같은 딱딱한 교사가 아니다.

언제나 아이들을 달아오르게 하는 것은, 한 명의 영웅이었다.

* * *

오랜만에 유릭은 방에서 차를 마시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건의 뒤처리도 끝났고, 빙하설월의 기운을 조정하는 일도 끝이 났다.

초대가 남긴 불의 단약을 섭취하는 일이 남았지만 아직은 아끼고 있었다.

좀 더 좋은 자리에서 완벽한 상태로 섭취하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모처럼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근래 많은 일들이 있었던 만큼 한나절 정도는 쉬어줄 필요가 있다.

‘그나저나 아니스가 폐관에 들었다고?’

항상 2시간가량은 그녀와 대련을 하는 것이 일과였다.

그런데 오질 않기에 수소문해 보니, 폐관에 들어 검을 수련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마스터를 목전에 두고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겠지.

‘몇 개월 정도로 나오려나?’

보통 폐관 수련이라 하면 그 정도 단위지만 혹시 모른다.

마스터에 오르기 전에는 나오지 않겠다고 한다면 년 단위로 걸릴 수도.

‘몇 년이라…….’

몇 년 후의 자신은 과연 뭘 하고 있을까.

아이작의 수작을 막지 못하고 아칸에 가 있을까? 아니면 무사히 미래를 바꾸었을까.

유릭이 피식 웃었다.

당장 내일의 일도 모르겠는데 몇 년 후의 일 따위 알 수 있을 리가.

“슬슬 새 임무가 내려올 때가 됐는데.”

그건 그렇고, 좀처럼 임무가 내려오지 않았다.

몸은 이미 다 나은 지 오래여서 임무를 달라 신청해 놨는데 일주일 째 소식이 없던 것이다.

‘일이야 산적해 있을 텐데.’

가문의 일은 언제나 산처럼 쌓여 있다.

때문에 보통은 신청하고 하루 이틀이면 적당한 임무가 선정되어 내려온다.

그런데 벌써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이라니 의외였다.

‘나한테 줄 적당한 임무를 선정하는 게 힘든 건가.’

확실히 근래 이런저런 일이 많긴 했다.

그웬델의 일도 그렇고 이번 브랜든의 일도 그렇고, 평범한 5성이 해낼 일들은 아니다.

그 때문에 어떤 난이도의 임무를 하달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힘든 것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 말은 다음 임무는 척 봐도 어려울 거란 말이군.’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임무를 기다리며 초조해할 때가 아니다.

언제 어떤 임무가 내려와도 수행할 수 있도록 몸을 단련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일.

말하자면 컨디션을 유지하는 일이다.

뭐 그런 이유로 오랜만에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도련님! 데릭 공자님께서 돌아오셨어요!”

시녀 엠마가 그런 소식을 전해왔다.

첫 임무에 나갔던 데릭이 돌아왔다는 소식.

“그래? 근데 왜 그렇게 다급해?”

“그것이…….”

그런데, 말을 전하는 목소리가 심상치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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