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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55화 (55/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55화

55화. 이게 진짜네

돌아온 데릭의 모습은 이전과는 딴판으로 달라져 있었다.

요 몇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삐쩍 마른 몸에 피부는 푸석푸석하고 눈가는 퀭했다.

특유의 그 칼날 같은 눈빛만은 전혀 죽지 않았지만, 도저히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뭔 일 있었냐?”

유릭이 하도 어이가 없어 물어보니 데릭이 스윽 유릭을 곁눈질했다.

그러곤 그대로 한마디 던지며 지나쳤다.

“아무 일도.”

그대로 지나쳐 쾅, 문을 닫고 들어가는 데릭을 보며 유릭은 눈을 깜빡거렸다.

일단 어디 크게 다치거나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녀석의 모습은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때의 그것이었다.

‘정신이라.’

그렇다면 가능성은 둘이다.

하나는 무언가 충격을 받은 일이 있어 심마(心魔)가 찾아온 것.

심마라 하면 정신이 흔들려 그 영향이 몸속의 코어와 마나에도 영향을 끼친 상황을 뜻한다.

마나란 의지로 다루는 힘이었으니, 정신에 문제가 생기면 마나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 당연했다.

두 번째 가능성은.

‘설마 아이작 형님이?’

아이작이, 질리지도 않고 또 수작을 부려왔을 가능성.

이미 알리샤란 전과가 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뭐가 됐든 첫 임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

아이작의 수작에 당했거나 다른 일로 충격을 받았거나.

어느 쪽이든 첫 임무에서 뭐가 있었음은 명백했다.

“조사해 볼까요?”

그때 유릭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 그림자에서 글렌이 튀어나왔다.

“오랜만이다 너?”

“면목 없습니다.”

나름 유릭의 섀도우인 글렌이다.

그런데 지난 브랜든의 사건 때 전혀 활약하지 못했다.

그는 따라가지 못한 황색 지대에서부터 시작된 일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섀도우로서 보필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다못해 구출이라도 빠르게 해야 했는데.

“네가 면목 없을 게 뭐 있어. 누나보다 빨리 올 수 있을 리가 없잖아.”

“…….”

유릭이 피식 웃으며 한 얘기에 글렌이 고개를 숙였다.

분명 맞는 말인데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그래도 차마 대꾸는 하지 못한 채 고개만 숙이고 있는 그였다.

“……데릭 공자님에 대해 조사해 볼까요?”

“그래. 뭔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혹시라도.”

유릭이 웃던 입매를 싹 내리며 지시했다.

“형님과 관련된 일이라면 지체 없이 보고해.”

“예.”

스륵.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소리소문없이 글렌이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유릭이 힐긋 발밑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건국제 테메레르의 혈통이 가진 그림자 능력.

‘언제 봐도 신기한 능력이라니까.’

어깨를 으쓱이며 그가 짐을 챙겼다.

* * *

글렌을 조사를 보낸 후 유릭은 백월봉의 수련장에 올랐다.

그러곤 맞이하러 나온 대령과 힐라사에게 각각 선물을 주었다.

도와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준비해 온 것이었다.

“이게 육포인데 말이지, 그냥 육포가 아냐. 옛날엔 황제에게만 진상됐다던 겁나 비싼 녀석이거든.”

목축으로 유명한 퀴라스 영지의 최고급 소고기로 만든 녀석이다.

훈연의 과정에서도 요정숲의 과일나무를 태워 달콤한 향을 한껏 입힌, 이미 단순한 식량이 아닌 미식의 영역에 다다른 육포.

그런 육포가 보따리 채로 있었다.

거의 금덩이를 들고 가야 살 수 있을 만한 양이었다.

“크, 크릉!”

과연 그 효과는 완벽했는지 항상 꼿꼿하고 당당한 대령이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보따리 밖에까지 새어 나오는 폭발적인 향을 견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르신! 빨리요, 빨리!

“뭐야, 넌 왜?”

-……예? 왜라뇨?

“이건 대령한테 주려고 가져온 건데?”

-에…….

그리 얘기하자 메르의 표정이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야, 야. 농담이야 농담. 네 몫까지 가져왔어.”

-믿고 있었어요, 어르신!

더 놀리고 싶었지만 너무 세상 잃은 표정이라 그럴 수가 없었다.

보따리를 풀어헤치니 그 즉시 두 마리의 호랑이가 달려들었다.

그러곤 코를 박은 채 냠냠쩝쩝 육포를 마음껏 씹기 시작했다.

‘폴리모프를 하면 식성도 그 생물과 똑같아진다더니.’

하긴 그렇지 않으면 다양한 생물의 삶을 체험할 수가 없어진다.

개미로 변해도 식성이 드래곤일 때와 같으면 어떻게 개미의 삶을 살겠는가?

“천천히 먹어.”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는 둘을 보며 유릭이 피식 웃었다.

이번엔 힐라사의 차례다.

유릭이 품에 손을 넣어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주었다.

“아우?”

“설월화의 씨앗이야.”

엘린이 유릭에게 빙하설월의 기운을 뽑아 주입하고 남은 씨앗.

빙하설월은 설월화의 돌연변이이니 이 씨앗은 평범한 설월화의 씨앗이다.

“인간은 절대 키울 수 없지만 너라면 다르겠지.”

설월화의 씨앗은 인간은 결코 키울 수 없다.

설월화 자체가 인간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는 곳에서만 자라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수의 정령인 힐라사라면 다를 터.

“아우아우아우!”

주머니 안의 씨앗을 보곤 힐라사가 눈을 빛냈다.

설월화는 정령인 그녀조차도 보기 쉽지 않은 희귀한 꽃이다.

그런 꽃의 씨앗이라니.

“잘 키워봐. 사람이 오지 않는 곳에 심는 거 잊지 말고.”

“아우!”

그런 거야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 힐라사가 가슴을 두드렸다.

몇 바퀴나 주위를 돌며 기쁨을 표한 힐라사가 씨앗 주머니를 가지곤 쪼르르 어딘가로 날아갔다.

아마 설월화를 키우기 적당한 깊은 곳을 찾으러 가는 것이겠지.

-인간들 음식은 시대가 흐를수록 맛있어지는 것 같아요.

어느새 메르가 유릭 근처로 다가와 느긋이 육포를 뜯고 있었다.

얼추 배를 채워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배가 다 찼는데도 육포를 입에서 떼지 못하는 것에서 얼마나 맛있어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대령이랑 힐라사가 어떻게 날 도우러 온 거야? 네가 불렀어?”

-근처에 기척이 느껴져서 불렀어요.

“근처?”

그때 유릭이 브랜든에게 잡혀 있던 산은 백월봉이랑은 꽤나 거리가 있었다.

왜 백월봉에 사는 대령과 힐라사가 그런 곳에 있었지?

-둘은 시간이 날 때마다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해요. 마침 그 산도 영역으로 삼으려고 찾아왔었다네요.

“아, 그래?”

-각 산의 주인 격인 맹수가 있는데, 대령이 하나씩 때려눕히며 다니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힐라사의 능력 없이 스스로의 힘만으로요.

그거 또 호쾌한 이야기다.

힐라사의 능력을 쓰면 맹수 정도야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제압할 수 있을 텐데.

-그사이 힐라사는 그 산의 숲의 정령들에게 인정받고 다니며 영역을 넓힌다고 하네요. 뭐 세계수의 정령이 인정하라고 하는데 인정 안 할 숲의 정령은 없겠지만요.

“보기보다 체계적인데?”

-인간들만큼은 아니어도 모든 생물들에겐 그들만의 사회가 있으니까요.

드래곤 사회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살던 네가 그리 말하니 참 의미심장……이라고 할 뻔한 걸 유릭은 꿀꺽 삼켰다.

“어쩐지 종종 찾아도 안 보일 때가 있더라니.”

간단히 산책을 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엘드가르드의 다른 산을 점령하러 다닌 것이라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산의 역사를 쓰고 있었구만.’

어쩌면 미래에는 이 넓은 엘드가르드 산맥을 전부 지배하는 산군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도 문득 해보았다.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다. 엘드가르드가 얼마나 넓은데.

“그럼 다 쉬었으니 수련을 시작해 볼까.”

이번에 얻은 것이 많았다.

<태양천보>와 풍마검 엑셀레아.

그리고 간신이 성공한 격산타우의 묘리를 이용한 <화령격>까지.

어찌어찌 사용할 수는 있다지만 아직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기엔 손색이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굳이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숙련도를 높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 * *

끼익-

창문이 열리고 하얀 후드를 쓴 사내가 바깥으로 몸을 기울였다.

광활한 사막 속 오아시스의 도시.

사막의 뜨거운 열기가 훅하고 들어오며 사내의 옷을 펄럭였다.

“왔군.”

사내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 손에 반짝이는 빛무리가 내려앉더니, 한 마리 비둘기로 변하였다.

이윽고.

챙그랑!

얼음으로 된 비둘기가 산산이 깨어지더니 사막의 열기에 녹아 사라졌다.

사내의 손에 남은 것은 자그마한 얼음 조각 몇 개, 그리고 작게 접힌 쪽지 하나.

사내가 쪽지를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항상 있는 일인 듯 익숙한 표정으로 글을 읽는 사내.

그의 표정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은 쪽지의 중반부를 넘어가고부터였다.

“브랜든이 죽어?”

너무나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브랜든이 죽을 이유가 없다.

그에겐 간단한 정보 수집 임무만 내렸을 뿐인 데다, 심지어 일곱 종복의 증표로 엑셀레아까지 안겨줬지 않았던가.

위험한 일에 휘말릴 일도 없고, 설령 휘말린다 하여도 헤쳐 나올 수 있는 무력이 있을 터인데.

어째서 죽었다는 말인가?

“…….”

쪽지의 후반부는 사건의 경위를 간략히 적은 것이었다.

그걸 모두 읽곤 사내가 주먹을 쥐어 구깃 종이를 구겼다.

챙그랑!

순식간에 얼어붙은 쪽지가 방금 비둘기처럼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알리샤에 이어서 두 명이나…….”

일곱 종복 중 벌써 둘이 죽었다.

그건 상당히 뼈아픈 일이었다.

좀처럼 찾기 힘든 알리샤의 정신계 능력도 아쉽고, 마검이라는 지고의 보물을 아무 소득 없이 가문에 빼앗긴 것도 아쉽다.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이전까지만 해도 수월히 진행되던 일이, 갑자기 하나씩 턱턱 막히는 것 같은 기분.

‘그래. 오히려 지금까지가 너무 수월했던 거지.’

이 정도 고난은 있어야 정상이다.

사내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이 상대하는 게 어떤 가문인데.

“빙하설월이라…… 확실히 나에게 필요한 영약이긴 하다만, 그래도 네 목숨과 마검까지 걸 만한 건 아니었는데.”

브랜든의 죽음에 담긴 경위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웠다.

브랜든이 조금만 더 합리적으로 생각했다면 그런 독단은 벌이지 않았을 텐데.

‘아니면 충분히 목숨을 잃지 않고 훔쳐 올 자신이 있었던 거냐?’

어쩌면 충분히 합리적으로 계획을 세워 행한 일인 것일까?

그런데 그 계획을 예상 밖의 인물이 깨뜨렸나?

순간 오래전에 헤어졌던 여동생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그 아이는 예상 밖의 인물이라 보긴 어렵다.

그 아이의 능력은 충분히 브랜든의 계산 속에 있었을 터.

그럼 누가…….

-브랜든 경은 유릭 로스카를 인질로 삼아 탈출을 꾀했습니다.

막 쪽지에서 읽었던 문장이 떠오른다.

유릭 로스카.

이젠 얼굴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에 헤어졌던 그의 동생.

묘하게 그 이름이 밟혔다.

물론 이제 막 성인이나 되었을 그 아이에게 마검을 든 브랜든이 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있을 수 없는데…….

‘알리샤는 데릭의 별궁에서 죽었지.’

알리샤는 데릭에게 정신 마법을 걸려다 죽었다.

그 별궁은 유릭도 사는 궁이었다.

‘브랜든은 인질을 잡아 탈출하려 했고.’

처음에는 아이들을 붙잡았다가 더 고급 인질이 나타나 교환했다고 한다.

그 인질이 바로 유릭이었다.

“…….”

죽어 나간 두 종복에게서 공통적으로 그 아이의 이름이 보인다.

이게 과연 정말 우연일까?

-똑똑.

그때, 뒤쪽에서 노크 소리와 함께 시녀가 들어왔다.

사막의 여인답게 면적이 무척이나 적은 옷을 입고 있는 시녀.

목부터 발까지 꽁꽁 싸맨 로스카의 시녀복과는 전혀 다른, 아칸의 시녀복이었다.

“공자님. 부가주님께서 부르십니다.”

“…….”

순간 아이작의 눈에 짜증이 스쳐 지나갔다.

영감탱이가 또 귀찮게 구는군.

그러나 겉으로 표시할 순 없다.

어찌 됐든 자신은 그 영감탱이에게 비밀리에 신세를 지고 있는 처지니까.

같이 해야 할 일이 있는 동업자 관계이기도 하고.

“금방 가지.”

대답하는 사내의 눈 속엔 겉으론 드러내지 않는 어두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괜찮아. 아직 말은 다섯이나 남았으니.’

칠색의 마왕의 유산에서 얻은 일곱 종복의 각인.

둘이 증발했지만 아직 그 각인은 다섯이나 남았다.

유유자적 웃으며 사내, 아이작 로스카가 시녀의 뒤를 따랐다.

* * *

며칠 동안 유릭은 <화령격>과 <태양천보>를 가다듬었다.

그 외에 남는 시간은 엑셀레아를 손에 익게 하는 시간.

매일 있던 아니스와의 검술 대련이 없어진 만큼 그 시간을 더더욱 위의 수련에 투자했다.

‘아직 완벽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마음먹은 대로 사용하는 정도로는 숙련됐다.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더욱 몸에 익도록 다듬고 있던 중.

“도련님, 조사를 마치고 왔습니다.”

“도련님. 본성에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두 소식이 동시에 도착했다.

하나는 데릭의 첫 임무를 조사하러 갔던 글렌의 소식.

다른 하나는.

“뭐? 이거 진짜야?”

유릭에게 내려온 다음 임무의 소식.

“진짜라고 하셔도 저는 서신의 내용은 모릅니다만…….”

“아, 그래. 일단 물러가도 돼.”

“예.”

서신을 가져온 시종을 물리고 유릭이 눈이 빠져라 서신을 쳐다보았다.

보고를 하러 온 글렌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지금 그곳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미친. 이게 진짜네.”

유릭에게 내려온 다음 임무.

그 불의 능력을 살려 아칸의 영역에 침투하라는 내용의 임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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