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67화 (67/166)

#서리명가 검술천재로 회귀했다 67화

67화. 한 놈이라도

위장 망토로 몸을 가린 유릭 일행이 토굴 안을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물론 전력 질주가 아니라 가능한 한 여유를 두고, 주변을 최대한 경계하며 달리고 있다.

이곳은 지하고 언제 어디서 어스웜이 습격해 올지 모른다.

절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놈들이 어떻게 어스웜을 부릴 수 있는 것일까?”

달리던 중 데릭이 툭 말을 꺼냈다.

유릭이 글렌을 보았으나 그도 짐작 가는 것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똑같이 유릭도 아는 것이 없었다.

“글쎄. 무슨 이상한 약품이나 마법이라도 만들었나 보지.”

“카자르 왕실에서 말인가?”

데릭 역시 카자르 왕실이 유력한 용의자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왕실이 범인이라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다.”

“뭔데.”

“어스웜의 조련술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이 사막에서 엄청난 메리트다. 사막의 유일한 탈것인 낙타보다 훨씬 빠르고 지하로 이동하기에 지형의 제한도 적게 받지. 마음만 먹으면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장점이야.”

“그렇지.”

“그런데 왜 그 좋은 기술을 군용으로 사용하지 않지?”

데릭의 말은 이런 것이었다.

그 정도의 기술이 있다면 남몰래 사막화니 뭐니 음모를 꾸밀 것이 아니라, 보다 직접적인 군사력 강화에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그게 더 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길이라 하였다.

“맞는 말이야.”

유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데릭의 말은 회귀 전 카자르 왕실에서 주장한 것과 완전히 같은 주장이었다.

저런 논조를 펼치며 카자르는 사막화를 주도한 게 자신들이 아니라고 피력했지.

그걸 아칸에선 귀를 꽉 닫고 듣지 않았고.

당연히 유릭도 모두 감안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카자르가 범인이 아닐 가능성도 있어.”

“넌 이미 다른 용의자를 꼽아두고 있나?”

이때까지 굳이 얘기하진 않았지만 슬슬 얘기해도 좋을 때였다.

“아칸의 1공자 루카스 아칸. 아니면 2공자인 필리페 아칸.”

생각보다 더 거물들의 이름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사막화의 피해자인 아칸의 이름이기 때문인지, 데릭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걸 어떻게 알지? 예의 정보원인가?”

유릭이 고개를 저었다.

데릭의 말에 대답해 준 것은 지금껏 조용히 있던 글렌이었다.

“이곳에 클레어 아칸이 와 있기 때문입니다.”

“클레어 아칸이? 아…….”

그제야 일의 흐름을 눈치챘는지 데릭이 깨달았단 표정을 지었다.

글렌처럼 곧바로 눈치채진 못했지만 이름을 말하자마자 바로 알다니, 데릭도 이런 쪽으론 꽤나 머리가 돌아가는 녀석이다.

“이번 사건은 철저히 아칸과 카자르 사이의 일이야. 그러니 수상한 건 그 둘뿐이지. 제3자가 아칸의 눈도 피하고 카자르의 눈도 피해 일을 꾸민다는 건 현실성이 없어.”

“클레어 아칸은 3공녀의 사람이라고 했었던가?”

“언니 동생 하는 사이라고 하더군. 아니, 뭐 원래도 자매 관계가 맞긴 하지만.”

요는 그만큼 친하다는 얘기다.

그 3공녀가 사건의 해결을 위해 클레어를 파견했다고 한다면 결국 수상한 건 1공자, 2공자란 소리.

데릭이 잘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일의 중요함을 깨닫곤 더욱 몸을 긴장시켰다.

데릭이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그러고 보니 회귀 전에 클레어는 어떻게 된 거지?’

유릭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회귀 전에도 이번 사건은 존재했다.

당연히 클레어도 똑같이 카람 마을까지 조사를 왔을 터.

하지만 사건이 밝혀진 것은 수년이나 지난 후이다.

대체 회귀 전의 클레어는 어떻게 되었던 것일까?

‘그 성격을 생각하면 진실을 알았을 때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을 텐데.’

테메레르 대왕의 연극을 보며 아이처럼 웃고 좋아하던 그녀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녀라면 이런 비열한 이간질이나 음모를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진 않다.

조사를 왔으나 소득 없이 돌아간 것일까?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나?

‘모르겠군.’

이제 와선 아무리 애를 써도 알아낼 수 없는 일이다.

회귀 전으로 돌아가 그녀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뭐, 그건 그렇고.’

사실 클레어의 일이나 아칸의 내부 사정 따위 알 바 아니다.

그가 엑셀레아를, 바람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뽑아 들었다.

아까 전부터 땅에서 미묘한 주기의 미약한 진동이 느껴진다.

“…….”

“…….”

유릭의 발검을 신호로 알아듣고 다른 두 사람도 검을 꺼냈다.

그러자 잠시 후.

콰과과과과광!

지하의 돌벽을 믹서기처럼 분쇄하며 어스웜이 덮쳐왔다.

* * *

“적이다.”

소란이 인 것은 이 지하 깊은 곳에도 알려졌다.

마을 쪽은 물론이고 지하 통로 쪽에도 어스웜이 날뛰고 있다.

낯선 이가 침입했다는 뜻이다.

“정찰 겸 요격을 위해 몇 사람이 나가보도록 하지. 구성은…… 가능하면 모래술사들로만 하는 것이 좋겠군. 불꽃의 흔적은 가능한 한 남지 않는 것이 좋아.”

리더격인 남자가 척척 지시를 내렸고 부하들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모래술사 몇이 뽑혀 통로 쪽으로 향했다.

어스웜을 도와 침입자를 요격하고, 만약 여의치 않으면 정탐만 하고 돌아오기 위한 요원으로.

나머지 불을 다루는 술사들은 지하 기지 전체에 퍼져 전투를 준비했다.

어스웜이 돌아다니는 곳인 만큼 이 기지에는 출입구가 꽤나 많았다.

어느 쪽에서 적습이 오더라도 대응할 수 있도록 철저히 계산된 배치였다.

“이곳은 절대 들켜선 안 된다.”

마물을 조종하여 도적단을 꾸려 동맹국에 피해를 입히고 있단 사실이 알려진다면.

나아가 가문과 동맹국의 이간질을 획책하고 있단 것이 알려진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스캔들이다.

이 거대한 사건을 필리페 2공자나 샤니스 1공녀, 그 능구렁이들이 절대로 놓칠 리가 없다.

도적단 하나를 잃게 되는 정도야 별것 아닌 일이지만 그 정치적 손해는 결코 무시 못 할 만큼 크리라.

“만약 이곳을 목격하는 이가 있다면 모조리 태워 없애도록. 흔적도 없이!”

아칸의 술사들이 살기 어린 눈으로 전투를 준비했다.

* * *

촤악!

어스웜의 머리가 세로로 쪼개지며 체액을 흩뿌렸다.

독까진 아니어도 결코 몸에 좋지 않을 액체가 비처럼 쏟아진다.

유릭이 풍령의 바람을 얇게 펼쳐 그것들을 모조리 튕겨냈다.

“이걸로 몇 마리짼지.”

쯧, 하고 그가 혀를 찼다.

이미 그들이 지나온 길엔 열 마리가 넘는 어스웜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데릭 역시 검에 묻은 체액을 닦으며 눈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많군. 이 많은 걸 약품 같은 걸로 일일이 세뇌했단 건가?”

“꽤나 공을 들였겠어.”

당장의 전투는 힘들어지겠지만 그래도 나쁜 소식은 아니다.

시설에 공을 들이면 들였을수록 그것이 파괴되었을 때의 타격 또한 커지는 법이니까.

콰과과과과광!

“쳇, 또 오나?”

또다시 이빨로 바위를 갈아버리다시피 하며 어스웜이 돌진했다.

유릭이 질린 듯이 엑셀레아를 들었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다른 것이 있었다.

어스웜의 난폭한 등장으로 눈과 귀를 가리곤, 그 틈새를 비집듯이 조용히 날아오는 모래 화살.

“모래술사다!”

그러나 유릭의 눈을 피할 순 없었다.

그가 엑셀레아로 화살을 쳐내며 크게 외쳤다.

“쳇!”

“들켰나!”

이젠 숨을 필요도 없다는 듯 어스웜 주변에서 모래술사들이 튀어나와 일제히 술법을 사용했다.

모래들이 칼이 되고 창이 되어 유릭 일행에게 쏟아진다.

그런데.

“뭐 이리 빈약해?”

유릭이 코웃음 치며 휘두른 엑셀레아가 쏟아지는 모래들을 모조리 베어 넘겼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빈약하다.

차라리 호람 한 사람이 펼친 술법이 훨씬 위력적일 정도였다.

-모래를 만들어낼 정도의 실력자들은 아닌가 보네요.

품속의 메르가 툭 얘기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이 지하는 단단한 바위가 대부분이라 모래는 그렇게 많지 않다.

하물며 모래를 만들어내는 일 따위 일개 모래술사들에게 가능할 리가 없다.

메르는 드래곤이니까 저리 간단히 얘기하지 보통의 인간들에겐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역시 전투는 무리다! 모두 퇴각한다. 적은 세 명. 셋 모두 검을 쓴다는 정보를 가져가는 것만으로 충분해!”

그건 술사 본인들 역시 주지하고 있던 사실인지 미련 없이 발을 돌렸다.

와서 일격만 날리고 곧바로 사라지다니?

“글렌. 한 놈만 살려라.”

그런 양아치 같은 짓거리를 유릭이 두고 봐줄 리가 없었다.

“예.”

글렌의 신형이 그림자 속에 녹아들며 모래술사들에게 쇄도했다.

움직이는 그림자 안에서 검은 검이 솟아 나오며 가장 뒤쪽의 모래술사를 푹 찌른다.

“컥!”

그는 자신을 찌른 이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절명했다.

“쫓아온다!”

“도망쳐!”

모래술사들이 일제히 흩어지지만 글렌 앞에선 의미 없는 일이었다.

이 지하는 모래보다도 그림자가 월등히 많다.

글렌의 <잠영(潛影)>이 마치 상어처럼 불길하게 술사들을 하나하나 덮쳐갔다.

하나둘, 모래술사들이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고 픽픽 쓰러져 나갔고.

“히이이익!”

마지막 술사 한 놈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앞에서 멈춘 <셰이드 소드>를 보고 있었다.

이미 엉덩방아를 찧은 그는 도망칠 기력조차 사라져 있었다.

“데려와.”

“예.”

그사이 유릭과 데릭은 이미 나머지 어스웜을 베어 넘긴 후였다.

턱을 까딱이는 유릭에게 글렌이 공손히 술사를 끌고 데려갔다.

술사가 이거 놓으라며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지만 글렌의 기둥 같은 팔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팍!

글렌이 놈을 유릭 앞으로 끌고 가 강제로 머리를 처박았다.

“네 동료들 위치랑 숫자. 그리고 대략적인 경지 수준. 그 외 기타 등등. 아는 건 전부 말해라.”

“큭…….”

고통으로 신음은 하고 있지만 입을 열 의지는 없어 보였다.

유릭이 표정 변화 없이 한 번 더 얘기했다.

“한 번만 더 얘기하지. 아는 거 다 말해.”

“……사막은 침묵을 사랑한다.”

그러나 소용없다는 듯 모래술사가 얘기했다.

그가 말하지 않는 것은, 그야 충성심도 있겠지만 그보단 자기 보신의 목적이 컸다.

본래 이런 경우 인질의 가치는 말을 하지 않을 때 유지된다.

정보를 하나둘 토해낼 때마다 가치가 낮아지며, 이윽고 더 토해낼 것이 없어지면 그 순간 죽게 마련.

그렇기에 결사의 각오로 입을 다무는 것이다.

그 어떤 고통도 죽음 앞에선 하잘것없는 것이니.

“아 그래? 이거 앞에서도 그 사랑을 지킬 수 있는지 볼까?”

유릭이 검지를 들어 올렸다.

그 끝에서 아주 가늘고 미약한 내기의 바늘이 돋아난다.

그걸 보곤 옆에 있던 글렌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정작 술사 본인은 의아한 듯 찡그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고작 그까짓 마나로 뭘 어쩌겠단 거지?”

“딱 그렇게 얘기하던 놈이 있었지.”

트라우마로 부르르 떠는 글렌을 곁눈질하며 유릭이 피식 웃었다.

그의 손가락이 술사의 혈을 짚었다.

자판기의 음료수라도 뽑는 기분으로.

잠시 후.

-끄아아아아아악!

이 지하에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

어스웜의 둥지. 여왕 개체가 있고, 놈들의 알이 나오는 부화장.

적의 기지는 그 부화장을 중심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바로 그곳으로 뛰어들기 위한 통로 직전에서 유릭 일행이 잠시 작전 타임을 가졌다.

“결국 아칸 쪽이 정답이었군.”

유릭이 중얼거렸다.

지하 기지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두 명의 술사들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아까 분근착골로 캐냈던 정보가 맞다면 놈들은 아칸의 화염술사들.

데릭이 조용히 물었다.

“그럼 임무는 어떻게 되나?”

본래 그들의 임무는 사막화를 일으키는 주범을 찾아내는 것.

여기까지가 임무의 전부이니 어찌 보면 이미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가문의 의도를 조금 더 읽을 필요가 있었다.

“원래는 찾아서 협력하거나 공조할 생각이었겠지. 아칸을 괴롭히는 놈들이니 적의 적은 아군이란 논리로.”

“하지만 아칸의 자작극이었다. 이러면 공조는 물 건너간 것 아닌가?”

“그렇다고 봐야지.”

유릭이 끄덕였다.

이렇게 된 이상 사실 가장 좋은 것은 그냥 발을 빼는 것이다.

카자르와 아칸의 관계가 어찌 되든 로스카와는 크게 관계가 없었으니까.

임무도 달성했겠다 이대로 돌아 나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지였다.

다만.

“우리의 선택지는 둘이다. 하나는 그냥 가문으로 돌아가는 것.”

이대로 그냥 가는 것은 너무 아쉽지 않은가?

자신들이 그냥 가면 이번 일의 범인은 목적을 달성한다.

클레어가 와 있다곤 하지만 아마 그녀 혼자선 진실을 파헤치지 못하겠지.

회귀 전에도 그랬으니까.

그 미래를 비틀기 위해서는 외부의, 자신들의 개입이 필요했다.

“다른 하나는 기왕 온 김에 녀석들을 힘껏 방해해 주고 가는 것.”

힘껏이니 뭐니 귀여운 단어로 말하고 있지만 담긴 뜻까지 그렇진 않았다.

모조리 죽이겠다는 소리였으니까.

“…….”

잠시 조용해지며 일행이 각자 고민하기 시작했다.

둘 모두 충분히 고려할 만한 선택지였다.

이대로 안전하게 빠질 것인가, 아니면 좀 위험하더라도 놈들의 음모를 분쇄하고 갈 것인가.

그때.

-아아악! 제, 제발 꺼내주시오! 이러다 진짜로 먹히겠소!

-닥쳐!

기지 안쪽에서 작은 소요가 들려온다.

깊은 곳에서 들리는 소리인지 매우 가늘고 연약한 소리였지만, 그걸 듣지 못한 이는 이 자리에 한 명도 없었다.

“두 번째로 간다.”

유릭이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일어섰다.

“글렌. 너는 안쪽으로 들어가 구출할 사람이 있으면 구출하도록. 아마 마을에 살던 사람이겠지.”

“예.”

글렌이 다시 <잠영>으로 몸을 숨겼다.

“데릭, 넌 나랑 같이 정면 돌파다.”

“알았다.”

유릭과 데릭이 각자 검을 뽑아 들었다.

유릭은 녹시아.

적이 아칸이라 확인된 이상 불의 기운을 숨길 필요는 없다.

흔적이 남더라도 아칸 놈들이 남긴 흔적이라 생각할 테니까.

그리고 데릭은 평범한 철검을 꺼내 들었다.

“역시 이솔렛은 쓰면 안 되겠지?”

“가능하면 서리 마나의 흔적은 안 남는 게 좋지.”

“쳇. 나만 불공평하군.”

데릭의 투정에 유릭이 피식 웃었다.

“엑셀레아는 안 빌려준다. 너도 나중에 다른 속성의 보검이라도 찾아보든가.”

“그래야겠어.”

두 사람이 검을 뽑아 들고 타이밍을 재었다.

일단 입구의 두 놈부터 조용히 처리할 필요가 있다.

“아, 이럴 땐 뽑아도 돼.”

그때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유릭이 얘기했다.

데릭이 물었다.

“어떨 때. 위험할 때?”

“아니.”

유릭의 눈이 흉성(凶星)처럼 번뜩였다.

“한 놈이라도 놓칠 것 같을 때.”

0